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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 동굴 사고가 일깨운 그 날의 아픈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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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부소방서 한정민 | 기사입력 2020/07/20 [10:00]

해상 동굴 사고가 일깨운 그 날의 아픈 기억

서울 중부소방서 한정민 | 입력 : 2020/07/20 [10:00]


글을 쓰기에 앞서 지난 6월 6일 통영 해상 동굴에 고립된 다이버 2명을 구조하다 순직하신 해양경찰관의 명복을 빈다. 

 

물론 육상에서의 구조 활동도 위험한 상황에 많이 노출되지만 특히 수중에서의 구조 활동은 생명을 담보로 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해양경찰관의 수중구조 중 순직 소식을 접하고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이 있어 써 내려 가보려 한다. 먼저 이 글에 언급되는 분의 숭고한 희생을 왜곡하거나 폄하할 의도는 절대 없음을 밝힌다. 필자를 포함한 많은 이에게 아픈 기억이지만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일이기에 용기 내어 조심스레 적어 보겠다.


 

2013년 5월… 

안동 임하댐에 산불 진화 헬기가 추락했다!

벌써 7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아직까지 생생하게 그날의 일이 기억난다. 2013년 5월 9일 오전 10시 30분께 안동 임하댐에 산림청 산림항공대 소속 산불 진화 헬기가 추락했다. 당시 헬기에는 기장과 부기장 그리고 정비사가 탑승했는데 정비사만 추락 중 탈출, 육지로 수영해 구조됐고 기장과 부기장은 실종된 상황이었다.

 

우리에게도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최초 수보된 정보에 의하면 사고지점의 수심은 40~45m. 현장을 직접 보지 못한 상황이라 확신할 순 없었지만 수보된 정보를 믿고 45m 수심에 맞는 기체를 혼합해 출동했다. 이때 사용한 기체는 산소 21%, 헬륨 35%가 혼합된 트라이믹스였다.

 

▲ 현장에 가져간 장비들


헬기로 출동해 선착장에 도착했을 땐 경북 구조대원들이 사고현장으로 배를 이용해 출발한 상황이었다. 몇 시간 후 경북 구조대원들이 헬기 동체를 찾았고 헬기에 라인을 연결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즈음 우리도 댐에서 운항하는 배를 이용해 사고지점에 도착했다. 당시 경북 소속의 현장 지휘관은 우리에게 조종석 내부와 그 주변 수색 임무를 부여했다. 그렇게 나와 버디는 수중으로 입수를 시작했다.

 

▲ 수중 다방향 카메라를 활용해 수색하기도 했다.

 

수중으로 들어가 보니 헬기는 앞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주 날개에는 라인이 설치돼 있었다. 라인이 설치된 수심은 약 27m, 바닥은 37m. 수온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차가웠고 시야는 생각보다 좋았다. 먼저 조종석을 수색했는데 요구조자를 발견할 수 없었다. 뒷좌석도 마찬가지였다.

 

사고지점 수심이 생각했던 45m보다 더 얕았기 때문에 처음 계획했던 수색시간 안에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버디에게 사인을 보내 동체의 전체적인 부분과 바닥을 1차로 수색했다. 2차 수색은 200m 릴을 이용해 동체에 고정하고 더 넓은 범위를 수색하려고 했다.

 

하지만 임하댐이 수몰지역이라 그런지 일정하게 잘린 나뭇가지들이 릴 줄에 쉽게 부러지면서 그 부유물로 인해 시야가 제로 상태가 되는 상황이 연출됐다.

 

수중 수색은 빠른 판단력과 과감한 결단력이 필요하다. 아쉬운 마음에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는 자칫 다른 변수가 발생하게 된다. 이는 곧 대원이 위험에 노출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때 나의 판단은 ‘더 이상의 수중 수색은 무의미하다’는 것이었고 상승 사인을 보낸 후 수면으로 상승했다.

 

수면으로 상승해 지휘관에게 수중 수색 결과를 알렸다. 더불어 더 이상의 수중 수색은 무의미하고 자칫 구조대원들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비를 이용해 수색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건의했지만 내 의견은 묵살됐다. 오히려 “하기 싫으면 빠져라”는 모욕적인 말까지 들어야 했다.

 

결국 우리는 철수를 결정했다. 보트로 장비를 옮겨 싣고 있는데 멀리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바로 고 박○○ 주임이었다. 구조견 핸들러 생활을 하면서 같이 훈련하고 대화도 나눴던 사이라 무척 반가웠다. 그래서 수중 상황 등을 얘기해주며 위험하니 될 수 있으면 라인을 따라 들어갔다가 그냥 상승하라고 귀띔해 줬다.

 

사실 이렇게 말해줄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는데 당시 경북 구조대원들이 현장에서 사용했던 기체는 공기 200bar의 11ℓ 싱글탱크였기 때문이다. 이 기체는 수심 37m를 수색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분당 호흡률이나 무감압 한계시간 등을 고려했을 때도 수색 시간이 약 10분 정도 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 수색 중 기장을 찾아 선착장으로 이송하고 있다.

 

그렇게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선착장으로 복귀했는데 팀장님이 다급하게 뛰어오더니 우리에게 다시 수색할 수 있냐고 물어보셨다. 이유를 들어보니 경북 구조대원 네 명이 수색을 위해 입수했는데 세 명은 급상승하고 한 명은 실종됐다는 거였다.

 

아뿔싸! 실종된 한 명이 바로 고 박○○ 주임이었다. 시간을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곧장 잠수 로그와 여분의 기체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재수색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해 다시 사고지점으로 돌아갔다.

 

재입수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헬기 동체와 바닥 사이에서 엎드린 자세의 고 박○○ 주임을 발견했다. 요구조자 인양법으로 상승하려 했는데 부력조절기(BC)에 기체를 아무리 집어넣어도 과 주입된 기체가 덤프 밸브에서 터져 나올 뿐 상승하지 않았다. 순간 당황했지만 고 박○○ 주임의 웨이트 벨트를 제거하니 상승할 수 있게 됐다.

 

박○○ 주임은 왜 고인이 됐나

어떻게 순직하셨는진 내가 의사가 아니기에 이렇다, 저렇다 함부로 말할 수 없다. 그날의 일을 이렇게 장황하게 쓴 이유는 문제점을 파악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사고 후 나는 궁금한 게 많았다. 왜 네 명이 같이 입수했는지, 어떤 방법으로 수색을 진행하려고 했는지 말이다.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내가 들었던 바에 의하면 네 명이 횡대로 10m 수심에서 혹시 수중에 떠 있을지 모를 요구조자를 수색하려고 입수했다는 거다.

 

앞선 <119플러스> 5, 6월호에서 부력과 트림에 관해 다뤘다. 수심이 37m인 곳에서 수중 10m 위치를 나란히 횡대로 수중 수색한다는 건 기술이 굉장히 좋아야 가능한 얘기다. 그리고 수온이 낮아 착용한 드라이슈트는 훈련되지 않은 대원들에게 심리적 부담으로 다가왔을 거다. 그래서 오버 웨이트를 착용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그날의 일은 당사자들만이 알 것이다. 당시의 상황을 짐작해보면 네 명이 같은 수심에서 부력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거고 과 착용한 웨이트로 인한 급하강, 그에 따른 반작용으로 부력조절기(BC)에 과 주입된 공기 때문에 급상승하게 됐을 거로 생각해 본다.

 

당시 현장의 분위기는 지휘관이 시키면 하지 못하겠다고 말할 수 없었다. 오죽했으면 우리 보고도 하기 싫으면 빠지라고 했을까. 수난 구조에서의 지휘관은 현장을 정말 잘 알고 수색 경험도 많아야 하지만 사실 우리 소방에서는 아직 미흡하다.

 

특히 수중구조 활동에서 지휘관의 역할은 굉장히 중요하다. 계급이 높은 사람이 지휘하기보다 그 분야에 경험이 많고 그 지역의 수중 상황을 잘 아는 대원이 지휘관을 해야 한다.

 

7년이나 흘렀지만 해경 대원의 순직 소식을 듣고는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다시 한번 고 박○○ 주임과 통영 수중동굴 구조 중 순직하신 해경 고 정종호 님의 명복을 빈다.

 

 


독자들과 수난구조에 관한 다양한 얘기를 나누고 싶다. 사건ㆍ사례 위주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자 한다. 만일 수난구조 방법에 관해 궁금한 점이 있다면


e-mail : sdvteam@naver.com facebook : facebook.com/chongmin.han로 연락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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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부소방서_ 한정민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0년 7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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