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묻지마 소방장비 입찰 병폐 없애겠다”장비 납품 문제 수두룩… “하루 이틀 아냐, 근본 문제 고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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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안전을 위해 소방관들이 사용하는 장비 구매 실태가 이해되지 않는다. 소방공무원이 안전해야 국민도 안전한데…”
서울지하철노동조합 정책실장과 역무지회장 등을 지낸 정의당 이은주 국회의원은 역무원으로 일한던 노동운동가 출신 비례대표다. 산업재해와 가혹한 노동환경, 군대식 노사관계, 폐질환, 갑질, 열차 사망사고, 공황장애 등을 겪는 동료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에 힘써 왔다. 서울지하철노동조합에서 활동하며 서울지하철의 직원 해고 문제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 문제 해결에 앞장선 핵심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20년 넘게 민주노동당과 정의당 당원으로 활동해 오면서도 사실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노조 활동 과정에서 정치권과의 협상을 통한 환경 개선을 몸소 경험하며 정치가 실질적으로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결심한 그는 정의당 비례경선에서 5번을 받아 국회에 입성했다. 그에게는 27년간 역무원 노동자이자 노동운동가로 지내며 쌓은 경험을 발휘해 정의당을 모든 시민의 노동조합으로 만들고 더 넓은 노동의 가치를 실현하겠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다.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첫 의정활동을 시작한 이 의원은 노동운동가 출신답게 소방공무원이 처한 노동환경에 주목했다. 9단계인 일반공무원 직급 체계와 달리 소방공무원은 1단계가 더 많아 소방경까지의 근속승진 소요기간이 2년이나 더 긴 문제를 보며 단축 필요성을 절감했다.
소방위 6년, 소방경 7년으로 근속승진 소요기간을 단축하는 법안을 냈다. 법안심사 과정에서 소방경이 8년으로 조정되긴 했지만 국회를 통과하면서 소방공무원의 노동환경이 개선될 수 있었다.
이 의원은 “당초 발의한 개정안보다 미흡한 내용으로 법안이 통과돼 아쉽긴 하지만 그동안 일반직공무원에 비해 근속승진 소요기간이 길어 상대적 박탈감 속에서 일했던 경찰공무원과 소방공무원의 직무만족도를 조금이나마 올릴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소방공무원의 정밀건강진단 문제에도 관심을 가졌다. 소방공무원 특수건강진단에서 확인된 각종 질환자나 발병 가능성이 높은 이상자에게는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 의원 조사 결과 2018년까지 전국적으로 이를 시행한 곳은 부산소방본부뿐이었다. 이조차도 3~5% 수준에 그쳤다.
이 의원은 “소방공무원 보건안전 및 복지 기본법상 소방공무원의 특수건강진단은 의무조항이지만 정밀건강진단은 임의조항이기 때문”이라며 “지자체가 정밀건강진단 예산을 책정하지 않아 시ㆍ도 소방본부는 정밀건강진단을 진행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문제는 2018년 감사원 감사에서도 지적된 바 있다. 하지만 이 의원이 그 이후인 2020년 정밀건강진단 예산편성 현황을 분석해보니 예산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그는 “위험한 업무환경에 상시 노출돼 건강이 악화된 소방공무원의 건강관리를 위해 특수건강 검진을 했더라도 사후관리가 진행되지 않는다면 도로아미타불”이라며 현실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특히 이은주 의원은 지난해 열린 소방청 국정감사에서 소방장비 납품 실태를 고발하며 병폐 개선을 강하게 요구했다. 납품 업체 관리 제도가 부재해 무분별한 입찰과 납품기한 지연 사례가 이어지고 있어서다.
당시 이 의원은 “소방장비의 공급 지연 문제 중 가장 큰 원인은 전문성 없는 업체의 무분별한 입찰 참여 때문”이라며 “업체들의 계약이행 능력 등을 사전에 검증할 수 있는 방안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5월 24일 이 의원은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소방장비관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일정한 등록요건을 갖춘 자가 소방장비를 판매할 수 있도록 ‘소방장비 판매업 등록제’를 도입하고 결함 장비 납품 시 수거나 파기, 권고 명령 등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법안에 담았다.
이 의원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호에 사용되는 소방장비는 무엇보다 안전성과 신뢰성이 우선돼야 한다”며 “업체들의 계약이행 능력을 사전 검증해 국민 안전과 소방공무원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의원의 법안은 소방의 오랜 역사상 고질적 병폐로 지적돼 온 소방장비 보급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해법으로 꼽힌다. 법안을 통해 좋은 소방장비를 제때 받아 사용할 수 있다는 신뢰가 형성되고 납품 후 A/S 걱정까지 덜 수 있을 거라는 게 이 의원의 기대다.
<119플러스>가 소방공무원의 근무환경 개선과 장비 납품 문제 해소를 위해 애쓰는 이은주 의원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소방장비 판매업 등록제 도입을 골자로 한 ‘소방장비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각종 소방장비의 납품이 지연되거나 계약 해지, 규격 미달 또는 결함이 있는 장비가 납품되는 등 문제가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나 살펴보니 현행 국가 조달시스템에 원인이 있었다. 현재 조달청을 통한 계약은 참여 업체의 전문성과는 관계없이 예정가격을 잘 맞추는 업체들이 낙찰될 가능성이 큰 시스템이다.
이 예정가격을 맞추는 게 업체들 사이에선 거의 ‘로또’라고 하는데 ‘로또’에 당첨돼 낙찰 받은 업체 대다수가 소방장비와 관련 없는 비전문 단순 공급업체인 경우가 많다. 오로지 투찰 가격으로만 낙찰 여부가 좌우되다 보니 그렇다.
사업자등록만 해놓고 사무실에 전화기 한 대와 컴퓨터 한 대만 놓고도 공고가 날 때마다 입찰에 참여한 뒤 낙찰받으면 납품권을 양도하면서 마진을 챙기는 입찰 브로커들이 판을 친다. 이런 과정에서 납기 일을 넘기는 상황이 발생하는 거다.
소방장비는 국내 제조업체가 많지 않아 수입품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은데 장비 수입에 실패한 계약자가 납품기한에 쫓기다 스스로 납품 포기각서를 제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후관리 문제도 있다. 장비만 납품하고 나 몰라라 하곤 하는데 사용자 교육이나 정비, 리콜 대처 등 사후관리 능력이 떨어지는 업체가 대다수다.
성능 미달인 장비에 대해 리콜을 하면 해당 소방장비를 납품한 사업자가 잠적해 버리기도 한다. 한마디로 ‘먹튀’하는 거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방장비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일정한 등록요건을 갖춘 자가 소방장비를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소방장비판매업 등록제를 도입하는 게 핵심이다.
또 현행법에는 소방장비를 제조ㆍ판매한 자에 의한 사후관리에 대해선 규정돼 있지 않은데 이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판매업자가 제공한 소방장비의 결함 등으로 소방장비 운용자 등에게 위해를 끼치는 경우 수거ㆍ파기 등의 권고나 명령을 할 수 있는 이른바 ‘리콜(recall)’ 조항을 넣었다.
무분별한 장비 입찰 등은 소방조직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돼 왔다. 오랜 기간 개선되지 못했는데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이 있나.
과거 서울지하철 역무원으로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안전장비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지하철 역사 내에도 소화기와 소화전, 피난유도등, 화생방용 방독면 같은 안전장비가 구비돼 있다. 이런 안전장비들이 제대로 작동해야 만일의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하게 대응할 수 있다.
소방장비야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지난해 소방청으로부터 사업설명을 받았을 때 현 소방장비 구매와 사후 관리상 나타나는 문제를 듣고 정말 심각하다고 느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세밀하게 조사를 진행하신 것으로 보인다. 실태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는 어떤 거였나.
일단 납품 문제가 생긴 건수부터 어마어마했다. 2015년부터 2020년 7월까지 전국 18개 시ㆍ도 소방본부가 주문한 550건의 구조ㆍ구급ㆍ화재진압ㆍ소방관 개인보호장비 등 각종 소방장비 납품이 지연됐다. 부도나 계약이행 능력 부족, 업체 사정 등을 이유로 한 조달계약 해지ㆍ파기한 사례도 48건이었다.
납품 문제를 일으킨 업체 598건을 전수조사해 봤더니 약 14%(83건)가 기념품이나 문구용품, 접착제, 정수기, 동물사료, 장의ㆍ장묘 등 소방장비와 동떨어진 물품을 취급하는 업체였다.
서울소방재난본부에 화재 시 피난 유도나 탈출구 확보를 위해 설치하는 라이트라인 15종의 납품기한을 46일 지연시킨 업체는 기념품ㆍ교구문구 도매업체였다. 대구소방안전본부에 화생방ㆍ대테러 구조장비를 납품기한에서 169일 늦게 납품한 업체는 가전제품과 부품 등을 취급하는 도ㆍ소매업체였다.
탐색용 구조장비 납품을 끌다가 계약해지 당한 업체는 의류ㆍ침구류ㆍ컴퓨터ㆍ통신용품 제조업 도매업체로 등록된 곳이었다. 산악용 구조 장비를 70일 늦게 납품한 곳은 인력용역업체였다.
광주소방안전본부가 발주한 119특수구조단 구조장비를 64일 지연 납품한 업체는 열쇠ㆍ도장ㆍ문구용품 도ㆍ소매업체였다.
충북소방본부가 발주한 건식ㆍ습식 잠수복 130벌을 납품기한에서 247일, 수중영상탐지기를 332일 늦게 납품한 업체는 각각 소프트웨어, 장의ㆍ장묘업체였다.
경북소방본부의 산악구조장비를 60일 지연 납품한 곳은 도서ㆍ사무용품업체였고 제주소방본부가 발주한 현장지휘텐트 5점은 의료기기 도ㆍ소매업체가 낙찰받아 납품기한을 132일 지나 공급했다.
전북소방본부의 경우 총 42건의 납품 지연된 물품 중 23건을 접착제나 철물, 정수기, 서적, 사무기기, 의류, 보청기, 청소방역, 포장재, 광고물 도ㆍ소매업체 등 비전문업체가 낙찰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한두 건도 아니고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수준이 심각하다. 법안이 통과되면 실제 어떤 변화가 생길 거로 보나.
우선 사무실에 전화 한 대 놓고 낙찰 후 수수료만 받아 챙기는 입찰 브로커 난립이나 장의ㆍ장묘업체, 인력용역업체처럼 누가 봐도 이해하기 힘든 업체들이 입찰에 참여하는 일은 막을 수 있게 된다.
질 좋은 소방장비를 제때 받아 사용할 수 있다는 신뢰가 형성되고 납품 후 A/S 걱정까지 덜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소방서비스 품질 또한 높아질 거다. 소방서비스 품질이 높아지면 결국 대한민국 안전으로 이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등록제 도입 과정에서 조달청 등 정부 물자 구매 관련 부처와의 협의도 중요해 보인다. 주요 쟁점이나 부처 이견 또는 예상되는 난관은 없나.
아무래도 판매업자에 대한 문턱을 높이는 법령이다 보니 과도한 규제가 아니냐는 반발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개정안의 목적은 소방장비 판매자의 진입 금지가 아니라 소방장비의 성능 유지와 품질관리에 방점이 찍혀 있다. 무자격자에 대한 규제지 정상적 판매업체에 대한 규제가 아니란 얘기다. 소방장비를 판매하는 기존 업자들은 그대로 참여할 수 있을 거다.
불량한 소방장비는 곧 시민과 소방관의 생명ㆍ신체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런 소방장비의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법 개정의 타당성은 충분히 있다고 본다.
그리고 현재 계약 관련 법령인 ‘국가계약법’과 ‘지방계약법’ 모두 다른 법률에서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 타법을 우선 적용토록 규정돼 있어 조달청에서도 특별한 반대 의견은 없는 거로 알고 있다.
장비 판매업 등록제는 법안 통과 후 하위법령에서 구체화가 필요하겠지만 큰 틀의 방향성에 대한 구상은 있을 것 같은데.
업체들로서는 소방장비판매업 등록 기준이 가장 관심일 텐데 납품 이행 능력과 소방장비 회수ㆍ반납ㆍ사후관리 체계에 대해 업체들도 고개를 끄덕일만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자본금은 얼마 이상이어야 한다든지 판매한 소방장비를 회수하거나 교환할 때 필요한 내부 운영체계와 조직을 갖춰야 한다든지 등의 구체적인 내용을 하위법령에 담아야 할 거다.
기존 소방장비를 판매하는 업체들은 큰 걱정 안 할 수 있도록 하겠다.
등록요건을 갖춘 자가 소방장비 판매가 가능하다면 이를 위한 평가 기준 설정이 제도 실효성을 좌우할 것 같다.
납품 이행 능력의 기준이라 할 수 있는 자본금의 규모는 유사 입법례 등을 참고해 하위법령에서 적정한 수준으로 정하게 될 거다.
현행 ‘소방시설공사업법’ 시행령 별표 1 ‘소방시설업의 업종별 등록 기준 및 영업범위’를 보면 전문ㆍ일반 모두 1억원 이상의 자본금이 있어야 소방시설공사업에 등록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이런 입법례가 참조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소방장비 납품 관리와 판매 후 교환ㆍ수리 같은 사후관리에 필요한 요건 기준도 제시될 거로 보인다.
법안 상정 이후 아직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앞으로도 법안심사소위 등 입법 절차가 많이 남아 있는데 법안 통과를 위해 어떤 노력을 이어나갈 계획인가.
소방장비의 체계적인 유지관리는 그 장비를 직접 사용하는 소방관들의 안전은 물론 궁극적으로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다.
소방장비 입찰부터 납품, 사후관리까지 전 과정이 바르게 자리 잡아야 제대로 된 대국민 소방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 작업을 벌이겠다. 또 법안심사 과정에서도 행정부와 동료 의원들에게 최선을 다해 설득하겠다. 개정안 취지에 공감해주시는 분이 많을 거로 기대한다.
장비도 마찬가지지만 소방공무원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의정활동이 눈에 띈다.
지난해 소방직협 대표자들과 간담회를 했는데 근속승진 소요기간 단축에 대한 요구가 정말 높았다. 일반공무원의 직급 체계(9단계)와 달리 소방공무원은 1단계가 더 있어 소방경까지의 근속승진 소요기간이 일반직공무원(6급)에 비해 2년 더 길다. 그래서 상대적 박탈감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었다.
소방위로 10년 이상 재직할 경우 소방경 근속승진 대상자가 되지만 40% 승진제한으로 인해 실제 승진까지는 12년가량이 소요되는 현실을 고려하면 일반직 공무원 근속(23.5년)에 비해 추가 단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소방장에서 소방위까지 가는 데 6년, 소방위에서 소방경까지 가는 데 7년으로 근속승진 소요기간을 단축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심사 과정에서 일반직공무원과 맞춰야 한다는 얘기가 많이 나왔다. 결국 소방위에서 소방경으로 근속승진 임용할 수 있는 기간을 2년(10→8년) 단축하는 데 그쳤다.
당초 발의한 개정안보다 미흡한 내용으로 법안이 통과돼 아쉽긴 하지만 그동안 일반직공무원에 비해 근속승진 소요기간이 길어 상대적 박탈감 속에서 일했던 경찰공무원과 소방공무원들의 직무만족도를 조금이나마 올릴 수 있게 돼 다행이다.
소방공무원의 정밀건강진단 실태에 대한 문제도 제기했다.
2015부터 2019년 소방공무원 특수건강진단 현황을 보니 지난 5년간 검진자 10명 중 6명 이상이 각종 질환을 앓고 있거나 발병 가능성이 높은 건강이상자였다.
건강이상자 중 직업병 관련자로 드러난 이들에 대해선 특별한 대책이 필요했다고 본다. 그런데 특수건강진단을 통해 건강이상자로 분류되고도 각 지자체의 예산상 문제로 정밀건강진단 등 후속 조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소방청장 또는 시ㆍ도지사는 소방공무원의 건강을 보호ㆍ유지하기 위해 특수건강진단을 실시하고 진단 결과 건강이상자로 분류된 소방공무원에 대해 정밀건강진단을 시행할 수 있다.
하지만 소방청과 18개 지역 소방본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2015년 이후 2018년까지 건강이상자들에 대한 정밀건강진단을 진행한 곳은 부산소방본부 한 곳밖에 없다. 이조차도 건강이상자로 진단받은 인원의 약 3~5% 수준으로 진행됐다.
‘소방공무원 보건안전 및 복지 기본법’(소방공무원복지법)상 소방공무원의 특수건강진단은 의무조항이지만 정밀건강진단은 임의조항이기 때문이다.
‘필요한 경우 정밀건강진단을 실시할 수 있다’는 임의조항으로 인해 지자체가 정밀건강진단 예산을 책정하지 않아 시ㆍ도 소방본부는 정밀건강진단을 하지 못한 거다.
2018년 감사원 감사에서 소방공무원 건강이상자에 대한 후속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지적된 이후 2019년 서울과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울산, 경기, 강원, 충북, 충남, 전남, 경북, 경남, 제주, 창원소방본부에서 건강이상자 3272명을 대상으로 정밀건강진단을 진행했지만 이 또한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2020년도 소방공무원 정밀건강진단 예산편성 현황자료를 봤는데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예산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위험한 업무환경에 상시 노출돼 건강이 악화된 소방공무원의 건강관리를 위해 특수건강 검진을 했더라도 사후 관리가 진행되지 않는다면 도로아미타불이다.
올해 초에는 공무원직장협의회의 전국 연합을 허용하는 법안을 냈다.
‘공무원직장협의회법’은 1998년 제정돼 시행된 이후 20여 년이 지나는 동안 큰 줄기는 바뀌지 않았다. 경찰ㆍ소방공무원은 직협 가입에서 제외됐었으나 지난해 6월 ‘공무원직장협의회법’이 개정되면서 소방과 경찰도 직협을 구성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직협을 구성ㆍ가입했다고 그들의 목마름이 해소되진 않았다. ‘공무원직장협의회법’상 직장협의회 가입 제한 업무가 많고 ‘2 이상의 기관 단위에 걸쳐 하나의 협의회를 설립하거나 협의회 간 연합협의회를 설립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전국단위 연합체도 결성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전국단위 연합을 허용하는 내용의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빗발쳤다. 그래서 직장협의회 간 전국단위 연합을 허용하고 직장협의회 가입 범위에서 직급 기준을 삭제, 가입 금지 업무 범위를 조정하는 내용 등을 담은 개정안을 발의했다.
다행히 그사이 소방공무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공무원노조법’이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하면서 소방공무원들은 7월 6일부터 노조 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
오랜 기간 노조 울타리 밖에서 제대로 된 노동권을 확보하지도, 요구하지도 못한 채 일해 온 소방공무원들이 이제라도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찾을 기회가 만들어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몇 년간 소방청 발족과 신분 국가직 등 소방에는 환경적으로 다양한 변화가 있었다. 소방분야에서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고 보는 부분이 있나.
소방공무원 신분이 국가직으로 전환됐지만 남은 숙제가 많다. 우선 안정적인 재정 확보가 필요하다. 소방공무원이 국가직화되면서 담배개별소비세에서 떼 내는 소방안전교부세율이 20%에서 45%로 인상되긴 했지만 내년까지 소방인력을 안정적으로 충원하려면 추가적 조치가 필요하다.
물론 내국세에서 담배개별소비세 제외 규모가 커지면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감소와 이에 따른 시ㆍ도교육청 예산이 감소하는 등의 문제가 있긴 하다. 한정된 세수 안에서 비율 조정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앞으로 소방분야에 관한 특별한 의정활동 계획이 있나.
물류센터 대형화재로 귀한 목숨이 사라지는 안타까운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사건으로 다시 한번 확인된 사실이 바로 대형 선반이나 컨베이어 시설 때문에 방화구획이 어렵고 이 때문에 한 번 불이 나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다는 거다.
쿠팡 물류센터 지하 2층 창고 공간은 창고 전체가 방화구획 없이 건축허가를 받아 최종 준공까지 이뤄졌는데 이를 가능하게 한 ‘건축법’상 완화 조항을 빨리 개정해야 한다고 본다.
현장 소방대원들의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도 나서겠다. 순직사고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지난 6월에만 2명의 소방관이 순직했다.
지난해엔 공무상 재해로 순직 승인된 소방공무원이 15명(사고 8, 질병 7)이었다. 안타깝다. 현장 소방대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 조성과 순직 유족에 대한 예우, 지원방안을 모색하겠다.
전국의 소방공무원에게 당부 또는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소방공무원들의 용기와 희생, 헌신 앞에 많은 빚을 지며 살고 있다. 각종 재해ㆍ재난이 발생했을 때 항상 그곳으로 달려가 생과 사의 기로에 선 시민의 손을 가장 먼저 잡아 주는 분들이 바로 소방공무원이다. 여러분이 자부심을 갖고 일했으면 좋겠고 그에 걸맞는 처우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개인적으론 지하철 역무원 시절 크고 작은 사건ㆍ사고로 소방관, 구급대원과 협업하는 일이 많았다. 얼마나 고생하시는지 잘 알고 있다.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최영 기자 young@fpn119.c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1년 8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