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안전교부세 배분율 폐지 검토하는 행안부… “도입 취지 잊었나”예산 투입비율 특례조항 방향에 ‘촉각’, 소방노조에 국회까지 거센 비판
|
[FPN 최영 기자] = 올해를 기점으로 효력이 사라지는 소방안전교부세의 소방분야 배분 비율 규정이 아직도 가닥을 못 잡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내부적으로 소방안전교부세의 소방분야 투입비율 규정을 폐지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어 도입 취지를 훼손하려 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지난 7일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에 따르면 소방안전교부세의 75% 이상을 소방장비 확충 등 소방분야에 국한해 사용하도록 한 특례조항의 유지 여부를 이달 중 확정할 예정이다.
소방안전교부세는 지난 2015년 담뱃값을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인상하면서 처음 도입됐다. 담배에 부과되는 개별소비세 총액의 45% 중 25%는 신규 확충 소방공무원의 인건비로 사용되며 나머지 20%는 소방ㆍ안전시설 사업비로 쓰여왔다. 담배 1갑당 118.8원씩 모여 연간 확보되는 예산의 총 규모는 올해를 기준으로 8692억원(인건비 4829억원, 소방안전시설 사업비 3853억원) 정도다.
소방인력과 장비 노후ㆍ부족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처음 만들어진 이 소방안전교부세는 ‘지방교부세법’에서 인건비를 제외한 사업비 투입 대상이 정해진다. 예산 투입비율은 ‘지방교부세법’ 시행령 부칙의 특례조항을 근거로 운용된다.
최초 소방안전교부세가 만들어진 2015년부터 마련된 이 특례조항에선 75%를 소방인력 운용과 소방장비, 소방안전관리 강화에 쓰도록 하고 있다. 나머지 25%는 포괄적인 안전시설 확충이나 안전관리 강화 등에 투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같은 특례조항은 소방안전교부세 도입 당시부터 만들어져 지금까지 3년에 한 번씩 두 번에 걸쳐 연장됐다.
문제는 내년부터다. ‘지방교부세법’ 주무 부처인 행안부가 이 특례조항 일몰 도래 시점에 맞춰 투입비율 근거를 완전히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서다.
행안부 안전사업조정과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소방안전교부세 비율을 현행 상태대로 유지하는 것과 시행령 부칙에 한시적으로 규정된 내용을 일몰로 없어지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이 두 가지 방안 중 늦어도 이달 안에는 확정될 것 같다”고 말했다.
소방분야에 투입되는 소방안전교부세의 비율이 정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만약 행안부가 이 특례조항을 연장하지 않는다면 소방안전교부세 전액은 특별한 비율 구분 없이 시도에 교부하게 된다. 자율적 배분이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전국 시도 소방분야 예산의 투입 규모를 가늠할 수 없을뿐더러 실제 투입 여부조차 장담할 수 없게 되는 셈이다.
이를 두고 행안부가 소방안전교부세의 최초 도입 취지를 망각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소방안전교부세는 소방장비 노후 문제 해결과 소방서비스의 균등화를 목적으로 주요 화재 원인인 담뱃값을 올려 만든 재원이기 때문이다.
소방노조들도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8일 전국 각지에서 기자회견을 연 전국공무원노조 소방본부는 “그간 소방안전교부세 75%를 소방분야에 사용하도록 강제했기 때문에 그나마 안정적인 예산 확보가 가능했다”면서 “낡은 장비와 노후한 시설을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하는데 소방안전교부세라는 안정적 재원이 단절된다면 장비와 시설 노후 등으로 인해 소방관의 안전과 국민 안전에 큰 위험이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노총 국가공무원노동조합소방청지부도 이날 정부세종청사 소방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소방예산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해 규정된 소방안전교부세 관련 규정을 없애는 건 국민 안전확보와는 정반대로 역행하는 것으로 용납할 수 없다”며 “모든 합법적 수단을 동원해 총력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행안부 2024년 예산 심의 예산결산소위원회에서도 날선 지적이 이어졌다. 소위원장을 맡은 더불어민주당 오영환 의원은 이날 회의에서 “소방안전교부세를 시도 자율에 맡기면 너무 저조한 소방 사업비 투자 문제가 개선되지 않을 것이 명확해 소방분야에 75% 이상 투자하도록 지방교부세법 시행령에서 정하고 있는 것”이라며 “비율의 의무 조항 폐지는 도입 취지와 목적에도 맞지 않고 소방장비와 재정 상황을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꼬집었다.
또 “지자체별 재정여건에 따라 소방분야 규모가 축소되면 국민에게 균등한 소방서비스 제공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며 “행안부가 소방안전교부세 투자 배분 비율 폐지 추진을 중단하고 소방 투자비율을 100%로 조정하는 등 국회에서의 입법 논의에 적극적인 자세로 임할 것을 부대 의견에 명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결소위 소속 의원들은 오 의원의 이 같은 요청에 동의했다.
한편 행안부의 독단적인 행태 등 도입 취지를 훼손하는 소방안전교부세 교부비율 논란을 원천 해소하기 위해선 국회에 제출된 관련 법안의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1대 국회에 들어서며 소방안전교부세의 교부권과 사업비 투자비율을 명문화하는 내용의 법안은 여ㆍ야를 가리지 않고 줄지어 발의됐다. 모두 다섯 건에 달하는 ‘지방교부세법 법률’ 개정안은 교부권을 행안부 장관이 아닌 소방청장에게 부여하거나 사업비 교부비율을 법률에서 명문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에선 김용판, 이명수, 전봉민 의원이 각각 유사 법안을 발의했다. 김용판 의원은 소방안전교부세의 교부 권한과 소방안전분야의 투자비율을 법률에 명문화해 사무별 재원 운용의 책임성과 효율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법안 발의 배경을 밝혔다.
이명수 의원 법안은 소방안전교부세 중 소방분야에 대해 소방청장이 교부토록 하는 등 예산 운용의 독립성 확보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전봉민 의원 법안에는 소방안전교부세를 소방교부세와 안전교부세로 각각 분리하고 소방안전교부세의 89%를 소방분야, 11%를 안전분야로 투입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오영환, 권인숙 의원도 유사 취지의 법안을 내놓은 상태다. 오영환 의원은 소방안전교부세의 명칭을 소방교부세로 변경하고 소방청장이 교부하는 한편 모든 재원을 소방분야에 사용토록 규정하고 있다.
권인숙 의원 법안에는 소방인력 인건비의 비율을 유지하되 이를 제외한 소방안전교부세의 75%를 소방분야, 25%를 안전분야에 교부토록 법률에서 직접 정하고 있다.
다섯 가지에 이르는 이 법안들은 소방안전교부세를 도입 취지에 맞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적정 비율을 법률에 명문화하고 교부 권한은 소방청장에게 부여하는 등 유사성이 짙다. 하지만 해당 법안들은 행안부의 반대 의견에 부딪혀 제대로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최영 기자 young@fpn119.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