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국현 소방기술사

스프링클러는 화재를 진압하는 소방시설이다. 이 중 겨울철 동파 방지와 오동작에 의한 수손 피해를 막기 위해 설치하는 게 준비작동식(Pre-action) 스프링클러설비다.

이 설비는 습식이나 건식 스프링클러처럼 화염에 헤드가 개방돼 바로 물을 뿌리지 않는다. 교차회로 방식으로 설치된 2개 이상의 화재감지기가 동시에 작동해야 방사한다.

화재감지기가 작동하면 회로가 연결된 준비작동식 스프링클러 밸브의 수동조작함(SVP: 현장제어반)에 두 개의 접점을 활성화해 솔레노이드 밸브와 주 밸브를 열어 비어있던 2차측 배관에 물을 채운다. 이어 스프링클러헤드가 녹아 개방되면 살수한다.

준비작동식 스프링클러설비처럼 수동조작함을 갖는 소화펌프, 방화셔터, 배연창, 가스계소화설비 등 소방설비는 소방법에 따라 화재 시 수신기 동작 여부와 관계없이 현장제어반에 의해 독립적으로 동작하게 돼 있다.

‘자동화재탐지설비 및 시각경보장치의 화재안전기술기준’에서 수신기는 ‘감지기나 발신기에서 발하는 화재신호를 직접 수신하거나 중계기로 수신해 화재의 발생을 표시ㆍ경보하는 장치를 말한다’고 명시돼 있다.

최근 막대한 인명과 재산피해를 낸 화재사고를 보면 준비작동식 스프링클러가 정상 작동하지 않았다. 그 원인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야 대응책을 수립할 수 있다.

차동식, 접점방식으로 화재감지기가 설치된 감지기 교차회로는 일반 전선으로 화재 시 각 회로가 준비작동식 스프링클러밸브의 수동조작함에 접점 신호를 직접 전달한다. 수신기와는 관계없이 작동시킨다는 얘기다.

화재로 감지기회로 전선이 단락되면 일반 화재감지기처럼 접점 신호로 감지되며 연결된 수동조작함이 준비작동식 스프링클러 밸브를 직접 개방시킨다.

그런데 최근 도입된 준비작동식 스프링클러밸브와 연동하는 아날로그 화재감지기는 온도계, 연기 농도계와 같은 기능을 갖는다. 각각 주소를 갖는 데이터신호를 발생시키고 감지기회로인 통신선으로 수신기에 연결되며 온도와 연기농도를 읽어내 화재 여부를 판정하는 지능화된 수신기 내장 프로그램의 도움이 필수다.

아날로그 화재감지기는 데이터화된 신호를 내보낸다. 그러나 단순한 접점방식의 준비작동식 스프링클러밸브의 수동조작함은 이 신호를 읽어내지 못한다. 수동조작함에 직접 연결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감지기회로 또한 통신선이기에 화재 시 녹아 단락이 되면 작동 불능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각 방화구획에 분산 설치되는 모든 아날로그 화재감지기는 수신기에서만 온도와 농도로 화재를 판정할 수 있다.

그리고 아날로그 화재감지기 고유의 주소로 구획별 그룹화해 각각의 그룹에서 2개 이상의 화재 신호가 판정되면 수신기가 화재 발생으로 판단해 이를 매트릭스 조합의 가상(Pseudo)의 접점방식 화재 신호로 만들어 통신선으로 해당 중계기를 통해 당해 구획의 준비작동식 스프링클러밸브의 수동조작함에 전달해야만 비로소 작동하게 된다.

이제껏 화재 시 단순무식하게 수신기의 도움 없이도 잘만 작동하던 준비작동식 스프링클러 소화설비가 교차회로 방식의 일반 화재감지기를 대체한 비싼 아날로그 화재감지기 판매상의 개입으로 이상하게 변질, 전적으로 수신기에 의존하는 피동적인 시스템으로 변질해버렸다.

지하주차장 화재와 같은 엄중한 상황에서 절대적으로 능동적인 역할이 필요한 스프링클러 소화설비가 수신기의 프로그램이 만든 이 도깨비 같은 가상신호에 따라 피동적으로 운전(Pseudo Operation)하게 됨으로써 복잡하고 긴 신호전달체계를 통한 장애, 화재로 인한 감지기회로인 통신선로의 훼손 등의 요인이 합쳐져 큰 화재에도 제대로 작동조차 못 하는 무용지물이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수신기의 이런 가상의 연동 프로그램은 방재실의 방화관리자들도 능숙하게 다루기 쉽지 않다. 따라서 수신기가 없어도 화재 시 무조건 능동적으로 작동해야 하는 이 준비작동식 스프링클러설비가 수신기의 운전 여부와 관련해 작동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방화관리자와 시공자에게만 물을 수는 없다.

결론적으로 준비작동식 스프링클러 소화설비가 화재 시 즉각 작동해 화재를 조기에 진압하기 위해선 접점방식의 일반 화재감지기를 선택해 교차회로 방식으로 수신기가 아닌 수동조작함에 직접 연결해야 한다.

그러면 화재 시 방화관리자 재실 여부와 관계없이 수동조작함이 방화셔터와 같이 독립적이고 능동적으로 작동하게 될 것이다. 만약 아날로그화재감지기를 굳이 설치하고 싶다면 화재감지기와 관계없이 작동하는 습식이나 건식 스프링클러설비와 함께 설치하는 게 맞다.

손국현 소방기술사

※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 등은 FPN/소방방재신문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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