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국을 강타한 집중호우로 곳곳에서 토사 붕괴와 산사태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산사태로 인해 주택이 무너지고 사람이 고립되거나 차량이 토사에 매몰되는 사고가 반복된다. 겉보기에는 멀쩡했던 산과 경사면이 단 몇 시간 만에 무너졌다는 사실은 지금 우리가 마주한 위험이 일시적 현상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번 사태를 통해 확인된 건 단지 산사태에 국한된 위험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에 준하는 토사 붕괴, 사면 침하, 절개지 유실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는 점에서 지금은 ‘산사태’가 아닌 ‘토사 재해 전반’에 대한 경계와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산불 지역이 아니어도 어디든 무너질 수 있다
7월 중순, 충북 제천에서는 산사태로 농로가 끊기고 축사가 파손됐다. 이 지역은 산불 이력이 없었지만 경사가 급하고 배수로가 관리되지 않았던 지형이었다. 같은 시기 전남 구례와 경남 함양 등지에서도 명확한 산불 판정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비탈면이 붕괴돼 주택과 차량이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사례는 산불 이력 유무와 상관없이 전국 어디든 붕괴 위험지대가 될 수 있다는 현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 특히 과거 산불 이력이 없었던 지역이라 하더라도 최근과 같은 강도 높은 집중호우가 반복되면 토사 붕괴 위험이 급격히 높아질 수 있다.
산사태와 토사 붕괴, 왜 발생하는가
토사 붕괴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복합될 때 발생한다.
첫째, 장기간 강우에 의한 지반 포화
둘째, 식생 훼손(산불, 개발지 등)으로 인한 지지력 상실
셋째, 급경사지ㆍ인공 절개지 등의 구조적 불안정
넷째, 배수체계 미비로 인한 우수 통제 실패
이러한 조건들이 형성되면 흙과 암석이 중력에 의해 지지력을 잃고 아래로 이동하면서 붕괴가 발생한다. 특히 비가 내리는 중이나 그 직후 지반이 수분을 흡수한 뒤 포화상태에 도달하면서 급격히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붕괴 전조 증상, 반드시 인지해야 할 신호들
산사태와 토사 붕괴는 전조 없이 갑자기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사전 경고 신호를 동반한다. 대표적인 전조 증상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지면에 균열이 생기거나 기울어진 나무가 늘어남
둘째, 진흙 섞인 물이 대량 유출됨
셋째, ‘쫙’ 하는 장력음 또는 지면의 울림 발생
넷째, 지반이 꺼지거나 마른 땅에서 물이 솟는 현상
다섯째, 실내에서 문ㆍ창틀의 뒤틀림 또는 밀림 현상
이러한 징후 중 하나라도 관찰된다면 즉시 고지대로 대피하고 관할 소방서 또는 지자체에 신고해야 한다. 경사면 근처에 거주하거나 통행 중인 사람일수록 평상시에도 이런 변화를 민감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대응 요령 – 실내, 야외, 차량 이동 중
토사 재해는 발생 장소와 상황에 따라 대응법이 달라져야 한다. 사전 숙지와 즉각적인 판단이 피해를 줄이는 핵심이다.
실내에 있는 경우 산사태가 발생할 방향을 고려해 산의 반대편 방으로 피해야 하며 기상특보나 외부 이상 징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대피가 필요할 경우 전기와 가스를 차단한 뒤 즉시 고지대로 이동한다.
야외에서는 절개지ㆍ절토지ㆍ공사장ㆍ급경사지 등 붕괴 위험 지역에 접근하지 말아야 하며 침하 또는 균열이 발생한 지점은 즉시 이탈해야 한다. 특히 배수로 주변이나 물이 흐르는 곳은 토사 흐름의 통로가 되므로 가급적 우회 이동해야 한다.
차량을 운행 중일 때는 붕괴 흔적이나 토사 유입이 보이면 즉시 정차하고 하차해 고지대로 이동하는 게 원칙이다. 침하 가능성이 있는 도로나 하천변 도로에서는 평소에도 우회 경로를 확보해두는 게 안전하다.
산불 피해지역은 더욱 취약하다
산불은 단지 나무를 태우는 데에 그치지 않고 토양의 구조와 뿌리망을 파괴해 지반의 보강 기능을 제거한다. 국립산림과학원과 산림청은 산불 피해지역에서는 강우량 40㎜ 이하의 소형 호우에서도 산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봄 경북 의성ㆍ청송ㆍ안동 등 대형 산불 피해지는 산림청이 지정한 산사태 고위험 지역에 포함돼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의 ‘산사태위험지도(fms.forest.go.kr)’에서 상시 모니터링되고 있기도 하다.
산림청이 발간한 ‘산불피해지 산사태 예방 매뉴얼’은 다음과 같은 대응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비탈면에 방수포, 식생매트 설치 등 응급복구 조치
둘째, 배수로 정비, 낙엽 제거, 우수 흐름 유도
셋째, 지자체 협조를 통한 사방댐ㆍ보강망 설치 요청
넷째, 주민 대상 징후 관찰 교육ㆍ순찰 활동 병행
이러한 조치는 산불 발생 직후부터 최소 2년 이상 지속돼야 하며 지역 주민과 지자체의 협업이 핵심이다.
지금 필요한 건 더 빠른 인식과 더 선제적인 대응이다. 산사태는 땅이 갑자기 무너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오랜 시간 약해지고 침식된 끝에 발생한다.
겉으로 평온해 보이는 경사면도, 폭우가 몇 차례 반복되면 어느 순간 한계에 도달한다. 산불 피해지든 아니든, 경사면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 모두는 자신의 생활 반경이 붕괴 가능 지대에 포함되는지를 먼저 확인하고 기상특보 발령 시에는 대피 준비를 사전에 갖추는 게 핵심적인 안전수단이 돼야 한다.
지금은 한 차례 지나간 재난을 정리할 때가 아니라 다음 폭우에 무너지지 않기 위한 준비를 할 때다.
계양소방서 작전119안전센터 소방위 김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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