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진재시의 정보전달 수단은 크게 매스컴과 구전(口傳)에 의한 방법 두 가지로 구분되고 있다.
천재(天災)가 발생하여 라이프 라인이 두절되면 평상시의 통신수단인 전화나 팩시밀리 그리고 컴퓨터통신, 핸드폰 등은 사용하지 못하게 되고 구전만이 유일한 정보전달수단이 된다.
일본의 관동대지진재해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대규모의 재해가 발생하면 재해자들은 심리적으로 심한 불안과 공포로 패닉(panic)상태에 놓이게 된다. 평상시보다 심한 과민반응을 보이며 극심한 스트레스성 장애로 인하여 정신분열증 현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 언론의 잘못된 보도와 정보의 부재 및 부족은 유언비어를 확대시키는 부가적 요인이 되는 것이다.
언론의 사명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특히, 규모가 큰 재해일수록 언론기관으로서는 뉴스가치(news-value)가 상당히 높고 독자나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도 본인의 생명과 재산에 결부되어 있다. 그만큼 재해를 다루는 언론의 책무는 매우 중차대하다고 하겠다.
과거 언론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여 무고한 인명이 살상된 예로 관동대지진재해를 들 수 있다.
이에 대한 사건에 일본언론은 어떤 대응을 하였는가 또한 그 폐해의 실상은 어떠했는가에 대하여 고찰하면서 재해 시 언론의 중차대한 사명을 인지하고자 한다.
2. 일본의 관동대지진재해 시 언론보도의 폐해
관동대지진은 1923년 9월 1일 11시 58분 마그니티튜드(magnititude) 7.9의 강진을 동반한 명치이후 한신대지진까지에서 최대의 지진으로 기록되고 있는 대사건이다.
지진피해당사자인 일본인은 이로 인하여 도쿄, 요코하마, 사이타마켄, 카나가와켄 등 관동지방에 20만 명 이상의 이재민과 10만 명 이상의 사망자, 그리고 수많은 재산피해를 입는 등 전사회적인 패닠(panic) 상태를 겪었다.
또한 관동대지진으로 말미암아 특히 당시의 수많은 조선인들이 무차별하게 도륙되었다.
지방경찰서에서 수집된 유언비어를 중앙의 경시청이 아무런 여과장치도 하지 않고 관계 장관에게 통첩한 내용을 보면, ‘동경근처에 진재를 이용하여 조선인들이 각지에서 방화하거나 강간, 폭탄, 석유 등을 소지하고 있기 때문에 철저히 경계하라’고 경고하였고 이에 흥분한 자경단의 무차별한 조선인 학살 사건이 지진전역에서 자행되는 빌미를 던져주었다.
심지어는 조선인은 인간이 아니라 동물보다도 못한 박테리아와 같다는 의미인 ‘불령선인’이라는 별칭으로 취급한 언론보도기사가 도쿄니찌니찌 지방지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不逞鮮人 각지에 방화」,「요코하마 부근에서 조선인 200여 명이 경찰과 충돌하여 수십 명이 부상당했으며 경찰이 현장에서 조선인 20여명을 검거했으나 모두 달아났다.
불령선인들이 방화하고 절도하며 일본인들을 강간했으나 모두 달아나 버렸다」,「불령선인이 방화하고 우물에 독약을 넣고 있다고 하여 체포하여 보았으나 역시 진실이 아니고 오인된 것들이었다.」
당시 지진으로 인하여 신문사들이 거의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으나 도쿄니찌니찌(東京日日新聞, 현 每日新聞). 호찌(報知新聞), 미야꼬(都新聞) 등 세 개의 신문사만이 겨우 재해를 면하여 관동대지진재해를 독점보도 하는 실정에 있었고 엄청난 재앙에 직면하여 무력해져있던 사람들에게 있어서 보도의 영향은 거의 절대적인 상황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죽은 조선인들 수는 무려 만 명 이상(동아일보,1923년 9월 8일자 참조)이 되었다.
3. 언론과 국가위상
과학기술의 발달로 상당부분 재해를 방지할 수 있다고는 해도 재해는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피해를 경감하기 위해서는 국민 개개인의 신속한 대처행동이 내재화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안전에 불감증인 사회일수록 언론의 피드백정보제공의 임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관동대지진재해 시 무고한 목숨을 빼앗긴 조선인들의 대참사는 일본사회와 일본인이 패닉 상태에서 근거 없는 유언비어들을 만들어낸 것이 발단이 되었다면 알고도 모르는 척 묵인하며, 사회 불만과 원망을 그렇게 분출하도록 선동했던 책임은 일본정부와 언론에 있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한다.
물론 이 사건을 두고 자국 내의 비판과 외국의 비난이 빗발쳤고 그 이후 많은 성찰과 반성의 시간을 통하여 거듭나기 위해 일본국가와 일본인이 부단히 노력했다는 것을 많은 기록에서 접하게 된다.
▲그림1. 교토역 앞 대형모니터방재지식 24시간 홍보 그림2. 교토대학방재연구소안내표지와 필자
관동대지진 후, 1995년에 진도 7을 기록하는 한신대지진이 발생했다. 이 지진의 경우는, 재일외국인들에 관련된 모든 언론보도들이 매우 적절히 통제되었다고 평가되며 또한 유언비어가 퍼지는 것을 빨리 막고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 보이지 않도록 하는 노력 등 언론매체들의 의식적인 노력이 돋보였다고 전해진다.
중앙관청은 전형적인 다떼와리(종적인 행정구조)의 한계라는 비판을 받은 반면 차분하고도 냉정한 재해극복태도는 일본의 공영방송인 nhk의 맹활약과 그 외 민방이나 catv, 퍼스컴의 실시간 정확한 정보 등의 적절한 피드백정보제공의 발빠른 대처에 기인하였다는 것이다.
이제 세계는 방재선진국가로 변신한 일본에 해마다 많은 인력을 파견하여 그들의 선진방재시스템과 방재의식을 배우고 있다.
재난 시마다 보여주고 있는 일본인의 차분하고 질서정연한 재해극복 태도와 자원봉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정신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