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칼럼] 지하 주차장 전기차 화재 포비아… “특단 안전관리 대책 서둘러야”
당시 현장 폐쇄회로(CC)TV 영상에는 흰색 벤츠 전기 차량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다가 폭발과 함께 불길이 치솟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번 사고는 밀폐된 지하 주차장에서 전기차 화재가 발생하면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낳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날 불은 발생 8시간 20분 만에 꺼졌다.
전기차 배터리의 경우 일단 불이 붙으면 더 많은 열을 만드는 ‘열폭주’가 순식간에 일어나 일반 소화기론 끌 수 없다. 물막이판을 설치한 후 배터리 높이까지 물을 채워 불을 끄는 소화수조를 써야 하지만 지하에선 거의 무용지물이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와 국토교통부, 환경부의 무공해차 통합누리집 등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에 등록된 전기차 누적 대수는 60만6610대다.
2017년의 전기차 등록 대수는 2만5108대였다. 7년 만에 24배가량 급성장한 것이다.
전기차 등록 대수가 많아지면서 전기차 화재도 매년 늘고 있다. 2018년엔 3건이었으나 2023년은 72건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는 10건이었다.
전기차 화재는 이동식 수조에 차량을 통째로 빠뜨리는 방식으로 진압한다. 하지만 이번 화재에서 소방은 이동식 소화수조를 투입하지 못했다. 화재 차량 근처로 수조를 옮겨야 하는데 지하 공간이 연기로 가득 차 소방대가 접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하 주차장은 천장이 낮아 소방차량 진입이 어렵다. 지하 주차장과 전기차는 화재의 취약조건을 다 갖춘 그야말로 최악의 조합인 셈이다.
이처럼 전기차 화재가 매년 급증하고 있지만 전기차 화재대응을 위한 소방시설 설치와 주차장 안전기준에 관한 규정은 없는 실정이다. 소방당국은 전기차 충전시설을 지상에 설치하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강제 사항이 아닌 데다 2000년대 중반 지어진 공동주택 대부분엔 지상 주차장이 없어 유명무실하다.
정부와 소방당국은 지하 주차장의 ‘전기차 주차와 충전소 안전기준’을 조속히 마련하고 배터리 화재진압 장비를 개발해 현장에 보급해야 한다. 특단의 화재 대책이 없다면 아파트 비율이 높은 한국에서 전기차는 기피 대상이 될 우려가 있다.
미국화재예방협회(NFPA)는 충전시설을 전기 케이블 등 위험 시설과는 충분한 거리를 두고 이격해 설치토록 하고 있고 지하 환기 시설과 단열재를 의무적으로 구축토록 하는 등 꼼꼼히 규제하고 있다.
전기자동차 화재의 특성과 지하 주차장 구조의 특수성이 맞물리면 십중팔구 이번처럼 대형화재로 확산할 수밖에 없음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난해 12월 11일 국토교통부와 소방청이 ‘공동주택 전기차 화재대응 매뉴얼’을 만들고 배포하긴 했으나 지하 3층 이하엔 충전구역을 피하라는 식의 권고 정도다. 이 정도로는 대형참사를 막는 데 어림도 없다. 국회와 정부가 서둘러 관련 법령을 정비하고 새로 만들어 국민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전 소방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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