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은 단순한 ‘산림 화재’가 아니다. 주거지와 인접한 자연환경에서 발생해 인명과 재산, 지역 공동체 전체를 위협하는 중대한 국가재난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현행 법체계는 이 특수 재난에 대해 소방의 개입을 구조적으로 제약한다. 결과적으로 산불 현장에서 소방은 능력은 있지만 권한은 없는 ‘보조자’로 머물고 있다.
‘소방기본법’은 화재와 재난, 구조, 구급 상황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소방의 기본법으로 소방청의 임무와 지위를 명확히 규정한다. 제2조는 화재를 포괄적으로 정의하는데 산림에서 발생하는 산불 역시 이에 포함된다. 이는 산불이 주거지 주변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특성상 소방의 즉각적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현실을 반영한 거다. 제3조는 각급 소방 지휘관에게 화재 현장의 지휘권을 부여한다. 사실상 소방이 모든 화재의 ‘주관기관’임을 선언하고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산불 대응에서만은 이 원칙이 무력화된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은 산불을 사회재난 중 하나인 ‘화재’로 분류하면서도 주관기관을 소방청이 아닌 산림청으로 지정하고 있다. 이는 ‘산림보호법’과 내년부터 시행될 ‘산림재난방지법’에 따른 결과다. 이로 인해 산불이 발생하면 소방은 지휘권도, 판단권도 없는 ‘지원기관’으로 밀려나고 만다.
이 같은 법ㆍ제도 구조는 여러 문제점을 낳고 있다.
첫째, 산불은 시설물 화재와는 완전히 다른 재난이다. 넓은 면적과 빠른 확산, 항공 중심 진화, 급변하는 기상조건 등 고도의 전문성과 기동성, 조직력이 요구된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일반 화재로 규정한다. 특수성을 반영한 별도의 지침이나 대응체계는 부재하다. 현실을 무시한 법 조항은 오히려 재난 대응을 방해하게 된다.
둘째, 불가피한 지휘체계 이원화로 현장 혼선이 반복된다. 산림청은 산불 진화에 필요한 실질적 역량이 부족한 반면 소방청은 인력, 장비, 현장 경험 등 풍부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산불 현장에서 소방은 지휘권이 없어 신속한 판단과 대응에 한계가 생긴다. 골든타임을 놓치는 구조적 원인이다.
셋째, 책임과 권한이 불균형하다. 법적 책임은 산림청에 있지만 실제 현장 부담은 소방에 전가되는 기형적인 구조가 고착화돼 있다. 예산과 인력은 산림청에 집중되면서도 소방은 법적 근거 없이 대응을 요구받고 있다. ‘권한 없는 책임’, ‘책임 없는 권한’이 반복되는 셈이다.
최근 기상이변이 잦아지면서 겨울 산불은 갈수록 앞당겨지고 여름 산불도 빈발하고 있다. 특히 산불의 대형화와 도시 인접지까지의 확산 위험이 날로 커지고 있다. 산불이 ‘사회재난’을 넘어 ‘자연재난’이 되는 시대가 온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불 대응에 있어 소방의 법적 지위는 여전히 ‘지원기관’에 머물러 있다. ‘소방기본법’이 명시한 ‘화재에 대한 총괄지휘’ 원칙과 산불 관련 법령이 부여한 소방의 제한된 역할 사이엔 뚜렷한 충돌이 존재한다. 이 같은 법과 현실의 모순은 현장 대응을 왜곡시키고 골든타임을 놓치게 만든다.
이제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 산불 대응에서 소방의 법적 지위와 지휘권을 명확히 재정립해야 한다. 관련 법령 간 충돌을 해소하고 책임과 권한이 일치하는 ‘소방 중심 통합 지휘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은 행정구역이나 부처 간 이해관계보다 앞서야 한다. 더 이상 제도적 모순이 현장을 가로막게 둬선 안 된다.
황정석 산불정책기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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