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갈 예정이다. 그래서인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전입신고다. 예전에 전입신고를 늦게 했다가 과태료를 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위장전입도 아니고 실제로 거주하고 있었는데 왜 문제가 되느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은 의외로 단순명료했다.
“법적으로 특정 주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국가가 공인해야만 개인의 권리 보호와 국가의 행정 관리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주민등록은 단순한 종이 한 장이 아니라 행정과 책임의 출발점이었다. 누가 어디에 사는지 명확해야 선거권도, 복지도, 조세도, 재난지원도 작동한다. 그래서 전입신고는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국가와 개인 사이의 법적 관계를 확인하는 행위다.
소방안전관리자 선임신고 역시 본질은 같다. 행정청은 특정소방대상물의 관계인이 실제로 소방안전관리자를 선임해 소방안전관리를 수행하고 있는지 현실적으로 일일이 확인할 수 없다. 그렇기에 최소한의 감독과 책임 확인을 위해 ‘누가 누구를 선임하였는지’를 국가에 신고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현행 소방안전관리자 선임신고서 서식을 보며 문득 의문이 들었다. 수많은 사람이 출입하는 특정소방대상물의 안전을 책임지는 ‘소방안전관리자 선임신고’는 과연 누구를, 무엇을 확인하기 위한 신고일까.
‘화재의 예방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제24조는 소방안전관리대상물의 관계인이 소방안전관리자를 선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관계인은 ‘소방기본법’상 소유자ㆍ관리자ㆍ점유자를 말한다. 즉 법률상 선임의무자이자 신고주체는 관계인이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관계인의 ‘관리자’와 ‘소방안전관리자’를 같은 개념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름에 모두 ‘관리자’라는 표현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률상 두 개념은 전혀 다르다.
관계인 중 ‘관리자’는 특정소방대상물을 사실상 지배ㆍ운영ㆍ관리하는 권한을 가진 자를 의미한다. 반면 소방안전관리자는 관계인에 의해 선임돼 소방안전관리업무를 수행하는 자다. 즉 관계인은 선임의무자이고 소방안전관리자는 선임되는 자다.
물론 건물주나 관리권자가 직접 소방안전관리자로 선임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는 관계인과 소방안전관리자의 지위가 예외적으로 중첩되는 경우일 뿐 원칙적으로는 서로 다른 법적 지위다.
그런데 현실의 선임신고 실무에는 구조적 어색함이 있다. 현행 소방안전관리자 선임신고서 서식을 보면 신고인 항목 아래에 관계인과 업무대행 항목이 병렬적으로 배치돼 있다. 겉으로 보면 마치 관계인과 업무대행업체가 동등한 신고주체인 것처럼 읽힌다. 그러나 법률상 선임권자는 어디까지나 관계인이다. 업무대행업체는 선임권자가 아니라 관계인의 위탁을 받아 업무를 수행하는 자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실제 운영 방식이다. 온라인 신고는 본인인증만 가능하면 입력 자체는 누구에 의해서도 이뤄질 수 있으며, 오프라인 역시 신분증만 제시되면 사실상 접수가 가능하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현재의 선임신고는 “누가 신고했는가”보다 “자격증이 있는가”만 확인하는 체계로 운영되고 있다.
진짜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예를 들어 업무대행업체가 선임신고를 했고, 선임된 자가 법정 기간 내 강습교육을 받지 않아 결국 법적으로 소방안전관리자 자격 유지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하자. 행정청은 결과적으로 ‘미선임 상태’로 보아 ‘화재의 예방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제50조제3항제3호에 따라 관계인을 300만원 이하의 벌금 대상으로 고발조치한다, 또한 같은 법 제28조에 따라 소방안전관리자 선임명령까지 하게 된다.
관계인은 억울함을 호소한다. “나는 신고한 적도 없는데 왜 내가 처벌받느냐.” 단순한 변명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현재 구조에서는 본인인증만 가능하면 누구라도 신고 입력이 가능하지만 정작 관계인의 명시적 신고의사나 위임 여부는 제대로 확인되지 않기 때문이다.
행정법적으로 보더라도 현재 선임신고의 성격은 상당 부분 자기완결적 신고에 가깝다. 즉 신고서가 제출되면 행정청은 선임 자체를 허가하거나 재량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자격 여부와 형식적 요건만 확인한 뒤 사실상 자동으로 수리한다. 그러나 이러한 처리 구조와 별개로 법률상 선임의무와 관리책임의 주체는 여전히 관계인이다.
문제는 지금의 신고 체계가 신고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는 데 있다. 선임신고는 단순히 자격증 있는 사람의 이름을 등록하는 절차가 아니다. 특정소방대상물의 관계인이 “누구에게 소방안전관리 권한과 책임을 맡겼는지”를 국가에 공식적으로 알리는 감독행위다. 그렇다면 신고의 핵심은 단순한 자격확인이 아니라 감독권의 귀속 확인이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서식은 이러한 본질을 전혀 드러내지 못한다.
특히 신고인 항목은 관계인과 업무대행을 병렬적으로 배치해 법적 책임주체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으며 실제 신고인이 누구인지도 불분명하다. 더구나 하단의 “신고인 서명 또는 인” 역시 관계인인지, 대리인인지, 단순 제출자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온라인 시스템 역시 로그인한 사람의 본인인증만 확인할 뿐, 관계인의 명시적 신고의사나 위임 여부는 사실상 확인하지 않는다.
이제는 선임신고의 본질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첫째, 현행 신고서의 ‘신고인-관계인-업무대행’ 병렬 구조는 재검토가 필요하다. 현재 서식만 보면 업무대행업체 역시 독립된 신고주체인 것처럼 읽힐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률상 신고주체는 어디까지나 관계인이다.
둘째, 관계인 중 ‘관리자’와 소방안전관리자는 서로 다른 법적 지위라는 점 역시 서식상 명확히 드러낼 필요가 있다. 관계인은 선임의무자이자 신고주체이고, 소방안전관리자는 관계인에 의해 선임되어 업무를 수행하는 자다.
셋째, 신고서 본문의 신고인과 하단의 서명 주체가 서로 다른 경우에는 실제 제출자가 누구인지와 관계없이 관계인의 위임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절차가 필요하다. 적어도 관계인의 위임장과 신고인의 신분확인 정도는 갖춰져야 법적 책임 구조와 신고행위가 일치할 수 있다.
넷째, 소방안전관리 형태 역시 ‘소방안전관리자 일괄관리’인지, ‘소방안전관리자와 업무대행 병행관리’인지 서식상 구분할 수 있도록 정비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실제 관리방식과 책임 귀속관계를 보다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소방안전관리자 선임신고는 단순한 자격증 등록 절차가 아니다. 누가 특정소방대상물의 안전을 책임지고, 누가 그 업무를 감독하며, 그 권한과 책임이 누구에게 귀속되는지를 국가에 확인받는 절차다.
보험 광고처럼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끝까지 묻고 따져야 한다. 누가 선임했는지. 누가 감독하는지. 누가 책임지는지. 그리고 그 사람이 실제로 그 건물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인지 말이다.
적어도 이러한 방식의 ‘보험 판매처’가 생각보다 많지 않기를 바라본다.
한국소방안전원 부산지부 시상수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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