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보면 빨간 소화전을 흔히 볼 수 있다. 소화전 색깔을 빨간색으로 한 건 무슨 규칙이나 규정이 있어서가 아니다.
멀리서도 눈에 잘 띄는 빨간색이 주는 시인성, 경각심, 그리고 관리의 용이성 때문이다. 즉 빨간색으로 도색하는 게 효율적이란 얘기다.
사실 눈에 더 잘 띄는 색으로는 노란색과 주황색도 있기에 시인성만 생각한다면 꼭 빨간색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도 소화전이 빨간색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이유는 빨간색이 시인성이 높은 색상 중에서 비교적 오염에 강해 관리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대기에 먼지 농도가 많은 공단지역이나 화물트럭 통행량이 많은 도로변 소화전의 경우 어두운 계통의 붉은색으로 도색됐음에도 소화전 오염 비율이 높다.
지역 특성상 도심과 공단지역이 많은 인천시내 소화전을 흰색이나 노란색 등 밝은색으로 도색한다면 소화전이 쉽게 오염돼 도시미관을 해칠 것이다.
이런 상황이 발생되면 많은 예산을 들여 매년 소화전을 재도색을 하든지, 수시로 정밀 세척을 해야 할 것이다.
오염된 소화전을 재도색 등의 정비 없이 그냥 둔다면 소화전의 시인성이 떨어져 유사시 소방대원이 소화전을 쉽게 찾지 못할 수 있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라는 이론에서 볼 수 있듯 정비 없이 방치된 소방용수시설은 고의적 훼손과 무단 불법 사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법으로 지정된 게 아님에도 소화전의 색상은 빨간색인 것이다.
그러나 정말 우리 주위엔 빨간색 소화전만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옆의 사진 속 소화전은 제주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화전이다. 앞서 말했듯 관련법에 색상에 관한 규정이 없기에 파란색과 노란색 도색이 가능하다.
아무래도 제주도는 국제적인 절경이 가득한 천혜의 관광지이기에 천편일률적인 강렬한 적색 소화전보다 시인성이 좋고 주변 경관에 잘 어울리는 색으로 도색한 것으로 보인다.
지역 특성상 소화전 오염에 대한 관리가 다른 도시보다 용이하기에 조금은 특색있게 판단할 수 있었을 것이다.
소화전이 관행처럼 빨간색으로 굳어진 건 좋지만 제주도처럼 관리가 가능하다면 지역의 얼굴이 될 수 있는 특색있는 소화전을 디자인하는 것도 사람들에게 유쾌한 기억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소화전을 보러 관광객들이 그 지역을 찾아오는 말도 안 되는 일은 없겠지만 효율과 관행보다는 다양성과 보는 즐거움을 주는 지역을 대표하는 소화전이 하나쯤은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송도소방서 미래119안전센터 소방장 권희병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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