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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화재 효과 불분명한 D급 소화기 ‘주의보’

무분별한 정보에 비치 권고까지… 소화기 전문가들 “주의해야”
우후죽순 등장하는 배터리 소화기들에 소비자들 혼란만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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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누리 기자 | 기사입력 2023/07/25 [10:38]

배터리 화재 효과 불분명한 D급 소화기 ‘주의보’

무분별한 정보에 비치 권고까지… 소화기 전문가들 “주의해야”
우후죽순 등장하는 배터리 소화기들에 소비자들 혼란만 키워

최누리 기자 | 입력 : 2023/07/25 [10:38]

▲ 온라인 쇼핑몰에선 D급 소화기가 배터리 화재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처럼 홍보되고 있다.  

 

[FPN 최누리 기자] = 금속화재에 사용하는 D급 소화기가 마치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처럼 무분별하게 홍보되면서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엔 아직 D급 소화기에 대한 기술기준조차 만들어지지 않고 배터리 화재 적응성에 대해서도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전기차 누적 등록 대수는 46만5126대에 달한다. 전기차 충전기의 경우 24만695기가 설치됐다. 지난해 1월부터는 100세대 이상 아파트와 주차대수 50면 이상 공중이용시설ㆍ공영주차장에는 총 주차대수의 5%(기존 시설은 2%)의 충전시설을 갖추도록 의무 설치 대상이 확대됐다.

 

전기차 보급이 늘면서 관련 화재 역시 증가하고 있다. 소방청에 따르면 전기차 화재는 2017년 1, 2018년 3, 2019년 7, 2020년 11, 2021년 24, 2022년 43, 2023년 4월까지 31건으로 늘었다.

 

리튬이온 배터리(이하 배터리) 화재는 전기차만의 문제가 아니다. 골프장 카트나 전기를 저장하는 공간 등 다양한 장소에서 배터리 사용이 늘고 있어서다. 

 

문제는 이 같은 배터리 화재 진압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배터리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내부 온도가 순식간에 1천℃ 이상 치솟으며 불이 번질 수 있는 ‘열폭주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양극재와 음극재, 분리막, 전해질 등으로 구성되는 배터리에 열적 또는 전기적, 물리적 충격이 가해져 온도가 상승하면 분리막이 분해되면서 쇼트(합선)가 발생한다. 이후 양극재와 음극재가 만나면서 과도한 전류가 흐르고 열폭주를 일으키며 화재 또는 폭발로 이어진다. 배터리 소재 중엔 산소와 결합된 물질도 있다. 연소의 3요소인 가연물과 점화원, 산소를 모두 갖춘 셈이다. 

 

전기차 등 배터리 화재에 대한 위험성이 알려지면서 화재 대비책을 고심하는 곳이 늘자 인터넷 등에선 D급 소화기가 배터리 화재진압에 효과가 있다는 정보가 무분별하게 퍼지고 있다. 심지어 지자체나 공공기관, 소방에서도 전기차 충전기 설치 시 D급 소화기 비치를 권고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실제 서울 광진구는 지난 5월 환경부 주관 ‘2023년 무공해차 전환 브랜드사업’에 선정되면서 오는 9월까지 공영주차장 등에 전기차 급속 충전기를 설치하고 D급 소화기와 질식소화덮개를 비치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에선 지난 4월 가락몰 전기차 충전소에서 D급 소화기 등 장비를 활용한 초기 화재 대응 교육을 진행하고 D급 소화기를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지방의 한 소방서는 지난 1월 관내 시청에 지하 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시설 설치 등 건축허가 동의ㆍ착공 시 D급 소화기 등이 갖춰질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는 내용을 권고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 D급 소화기가 배터리 화재에 대한 적응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경우 D급 소화기 자체의 성능 검증을 위한 법령 정비 작업도 완료하지 못한 상태다.

 

배터리 화재 전문가로 알려진 강경석 경기 구리소방서 소방장은 “D급 화재는 반응성이 높은 리튬 등과 같은 알칼리 금속이나 알칼리 토금속에서 발생하는 화재”라며 “배터리는 리튬 금속 자체를 사용하지 않고 양극재에 산소와 결합된 리튬이온 상태로 존재하기에 리튬 금속과 다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별한 조건에서 음극 표면에 얇은 리튬(금속) 막이 생기는 현상이 발생하지만 그렇다고 D급 화재로 분류하는 건 적합하지 않다”고 했다. 

 

미국방화협회 코드(NFPA 855)에 따르면 화재진압설비 테스트 결과 물이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를 냉각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매체인 것으로 나타났다. 테슬라가 발표한 ‘리튬이온 배터리 비상대응지침’에서도 배터리 화재를 진압(관리)하는 선호 물질로 물을 꼽았다. 또 금속화재 진압제는 효과 가능성이 크지 않아 배터리 팩과 관련된 화재진압에 적합하지 않다고 명시했다. 

 

배터리ㆍ특수재난대응 전문가로 알려진 김흥환 경기 용인소방서 소방위는 “배터리 보호와 화재 확산 방지를 위해 배터리 케이스를 견고히 만들기 때문에 소화약제가 내부 깊숙이 침투되긴 힘들다”며 “열폭주 현상 직전부터 엄청난 양의 가연성 가스와 연기, 증기 등이 외부로 쏟아져 실제 소화약제는 극히 일부만이 배터리 내부로 닿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어떤 소화약제든 화재 확산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중요한 건 열폭주는 매우 격렬한 화학 반응을 일으켜 지금처럼 소화약제가 거의 닿지 않는 상황에선 소량으로 이를 단번에 멈출 수 없다는 게 중요하다”며 “이는 단단한 배터리 하우징과 다량의 가스 발생 등의 복합적인 문제다”고 덧붙였다.

 

한편 최근 배터리 화재에 대비하기 위해 개발되는 소화약제의 검증과 실험 데이터를 공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수의 국내ㆍ외 민간 기업이 배터리 화재 적응성을 주장하며 다양한 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배터리 화재 대비책을 고민하는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전기차 등 배터리 화재 위험성을 해소하기 위한 소화기 비치를 검토하고 있지만 정작 공적인 실험 결과나 검증 데이터는 찾아볼 수 없다”며 “기업들의 일방적인 정보만이 인터넷상에 혼재되면서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고 전했다.

 

최누리 기자 nuri@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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