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Hot!119] “전쟁 같은 산불이 현실로 닥치기 전에 철저한 대비 필요하다”

[인터뷰] 국내 최초 산불 교육 박사학위 취득한 황정석 산불정책연구소장

박준호 기자 | 기사입력 2022/05/20 [10:00]

[Hot!119] “전쟁 같은 산불이 현실로 닥치기 전에 철저한 대비 필요하다”

[인터뷰] 국내 최초 산불 교육 박사학위 취득한 황정석 산불정책연구소장

박준호 기자 | 입력 : 2022/05/20 [10:00]

 

“대형 산불은 앞으로 더 자주 발생할 겁니다. 심지어 산에서 그치는 게 아닌 도심으로까지 번지는 재앙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제 더는 산불을 만만히 봐선 안 됩니다. 산불의 위험성과 효율적인 진압 전술을 전파하기 위해 지난 10년간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습니다. 산림이 뜨거운 불로 인해 아프지 않는 그날까지 저는 계속 뛸 겁니다”

 

지난 3월 초 경상북도와 강원도가 산불로 몸살을 앓았다. 경북 울진과 강원 강릉 산불은 각각 발생 213시간, 90시간 만에 주불이 진화됐다. 산림 피해면적은 약 2만523㏊(잠정)로 이는 축구장 2만8744개, 서울의 33.9%에 달하는 규모다. 1986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후 제일 길었고 2000년 동해안 산불 이후 두 번째로 많은 산림을 태운 산불이다.

 

산불이 발생하자 황정석 산불정책연구소장도 즉시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는 2013년 1월 산림청에서 주관한 산불전문가 양성과정을 통해 산불과 연을 맺었다.

 

 

“대학에서 원예조경을 전공한 후 목질탄화에 대해 15년간 공부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원 교수님께서 산불전문가 교육을 한번 들어보라고 권유하셨어요. 제가 나무와 불의 관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셨나 봐요. 저도 호기심에 수강했죠”

 

산림청에서 주관하는 산불전문가 양성과정은 1년에 한 번, 40명 내외의 산불 관련 전공자나 업무경험자를 선발해 2주간 교육하는 커리큘럼이다. 이 교육 중 ‘교수법’ 시간에 그는 산불이 확산하는 이론을 온돌의 원리에 대입해 설명한 적이 있다. 당시 수강생 대부분이 온돌의 과학적 원리를 인지하고 있어선지 큰 호응을 얻었다.

 

 

“제가 생각한 효율적인 산불 진화 방법에 관해서도 얘기했는데 많은 분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불은 인간처럼 산소를 필요로 하는데 특히 바람이 가장 좋은 먹잇감입니다. 바람만 잦아들어도 불은 쉽게 꺼져요. 그러니 불만 볼 게 아니라 바람을 타는 불인지, 죽는 불인지 먼저 판단해야 합니다. 단순하게 불만 보고 달려들면 정작 주불을 놓치게 됩니다. 전시 때처럼 산불 진화엔 전술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교육과정 수료 후 산림청 산불방지교육강사가 된 황정석 소장은 2013년부터 9년간 산림청과 소방청, 지자체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약 1300회 산불방지교육을 진행했다. 2015년엔 국내 최초로 산불 교육 박사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황 소장의 집 거실과 안방에 있는 TV, 휴대전화는 실시간 산불 상황을 24시간 볼 수 있도록 설정됐다. 대형 산불로 번질 조짐이 보이면 전국 어디든 즉시 달려간다. 그는 지난 10년간 약 600회 산불 현장을 찾았다. 일주일에 한 번이 넘는 셈이다.

 

“산불 확산의 기본 요소는 지형과 기상, 연료입니다. 산불은 주변 지형이 높을수록, 바람이 셀수록, 탈 게 많을수록 빠르게 커집니다. 산의 지형과 바람 상태가 중요한 이유죠. 대형 산불로 번질 위험이 큰 곳은 직접 가서 불이 어떤 형상으로 진행되는지, 진화는 효율적으로 이뤄지는지 등을 관찰합니다” 

 

산림청에 따르면 4월 12일 기준 올해 발생한 산불은 397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206건)보다 2배 가까이 증가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2~5년 주기로 발생하던 대형산불(산림 피해 면적 100㏊ 이상)이 2017년부턴 매년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9년 고성 산불은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 당시 불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1시간 반 만에 직선거리 약 8㎞를 이동했어요.

 

낮은 곳에서 위로 향하는 불의 특성에 반하는 것으로 당시 바람 세기가 얼마나 강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마치 화염방사기에 강풍기를 틀어놓은 것과 같죠. 세계 산불 역사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사건으로 자연재해엔 이론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산불이 더 자주 발생하고 대형 산불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황 소장 시각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산림에 연료(나뭇잎)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쌓이고 있어서다.

 

“어느 산을 가더라도 오래된 수목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죠? 그 나무에서 떨어지는 나뭇잎과 말라비틀어진 가지는 전부 다 가연물입니다. 창고로 치면 종이박스가 계속 쌓이고 있는 셈이죠. 기후변화도 물론 영향이 있겠지만 저는 산불이 대형화재로 이어지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산불에 대해 확고한 신념과 소신이 있다. 산불 발생 자체를 막거나 나뭇잎을 일일이 제거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 초동 조치와 효율적인 진압 전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3월 울진 산불은 후방에 남은 잔불이 주불이 돼 9일 동안 1만6천여 ㏊를 태웠어요. 주불이 아닌 잔불이 대형 산불로 이어진 건 부실한 대응 탓이죠. 인력을 효율적으로 배분해 불을 꺼야 하는데 모든 대원이 불이 난 곳만 찾아가니 길어질 수밖에요. 바람 상태와 주불을 파악한 후 확산할 조짐이 보이는 곳을 먼저 진압하는 게 핵심입니다”

 

현재 산불 주무기관은 산림청이다. 그러나 황 소장은 이제 더는 산불 대응을 산림청에게만 맡겨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산림청이 지난 50년간 산불 예방 정책과 대응을 담당했지만 나아진 게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동안 산림청이 아무런 노력을 안 한 게 아닙니다. 여러 정책을 펼쳤지만 산불이 줄어들긴커녕 오히려 늘었어요. 56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2만3천명의 인력을 보유했지만 실효성이 없습니다. 산불을 끄는 분들이 대부분 나이가 많은 비정규직이라는 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죠.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으면 뭐 합니까. 머리와 손발이 따로 노는데요”

 

 

산불 현장에 가면 실제 진화작업을 하는 인력 대부분은 소방공무원이라고 말하는 황정석 소장. 그는 산불 대응 기관에 대한 변화가 꼭 필요하다는 시각을 내비친다.

 

“이제 산불 대응 기관을 소방청으로 이관해야 합니다. 최근 산불은 복합 재난화되는 경향이 뚜렷하기 때문에 한시적인 운영구조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소방청이 담당하거나 산불만을 전담하는 기관을 새롭게 설치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해외뉴스에서만 보던 게 곧 현실로 닥칠 수 있습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전쟁 같은 산불이 우리의 모든 걸 앗아가기 전에 철저히 대비해야 합니다. 저부터 앞장서 노력하겠습니다”

 

 

박준호 기자 parkjh@fpn119.c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2년 5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Hot!119 관련기사목록
연속기획
[연속기획⑤] 기술 필요한 현장에 직접 발로 뛴다… ‘기술지원과’
1/4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