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119] “현장 아는 구급대원의 연구, 구급 발전에 도움되길”[인터뷰] 양진철 대전소방본부 소방위
2008년 소방에 입문한 양진철 소방위는 대전 서부ㆍ둔산ㆍ유성소방서에서 활동해온 14년 차 구급대원이다. 그는 하트ㆍ브레인ㆍ트라우마 세이버 인증을 받고 청ㆍ본부 단위 구급 관련 TF팀 등에도 참여하는 등 현장과 행정 경험을 두루 갖춘 소방관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는 대전소방본부에서 구급 차량ㆍ장비 구매와 병원 전 단계 응급의료 체계 개선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양 소방위는 지금까지 ▲후임 구급대원을 위한 구급 현장 프리셉터의 핵심 역량에 관한 연구 ▲중증외상환자의 병원 전 처치가 현장 체류 시간에 미치는 영향 ▲COVID-19에 의한 EMS 동반 손상 등 여러 연구에 참여했다. 이 논문들은 한국응급구조학회 학술지에 실리기도 했다.
그의 구급 관련 연구는 소방에 몸담은 현직자가 작성한 논문이 별로 없다는 안타까움에서 시작됐다.
“충남대 보건대학원에서 석사 학위 논문을 준비하면서 자료 수집을 위해 여러 논문을 살펴봤지만 만족할 만한 자료를 찾지 못했어요. 소방 현직자가 작성한 논문이나 소방 조직ㆍ현장 활동에 관해 깊이 연구한 논문이 거의 없었죠. 실제 구급 현장 실정과 맞지 않는 연구도 여럿 보였어요”
그때부터 양 소방위는 소방과 관련된 연구는 소방관이 더 잘 안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 소방 조직에서 일어난 일은 스스로 연구해보자고 마음먹은 그는 2017년 공주대 응급구조학과 박사과정에 지원해 수료를 마쳤다.
구급 관련 연구에 몰두 중인 양 소방위는 최근 대전에서 진행한 ‘실시간 병원정보 공유시스템’ 구축사업 TF팀의 일원으로도 활동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이어지면서 환자 이송 업무를 맡은 구급대원들의 어려움이 더욱 커졌습니다. 응급환자는 물론 확진자 이송 업무가 더해졌기 때문인데요. 병상이 부족해 병원 앞에서 14시간 넘도록 구급차에서 대기하는 상황도 빈번했습니다”
이에 대전시와 10개 응급의료기관, 대전소방은 협의체를 꾸려 환자 중증도에 따라 진료 가능한 병원으로 이송할 수 있는 ‘실시간 병원정보 공유시스템’을 만들었다. 이 시스템은 구급대원이 측정한 혈압, 맥박, 호흡 등 정보와 환자 주요 증상을 애플리케이션(앱)에 입력하면 가장 가까운 거리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응급실의 병상 정보를 구급대원에게 제공한다.
“응급의료 체계상 구급대원은 병원 전 단계를 담당합니다. 응급환자를 평가하고 중증도를 분류해 응급처치한 뒤 진료 가능한 의료기관에 환자를 이송해야 하죠. 이런 체계 유지를 위해선 간결한 응급의료정보 체계와 함께 응급의료기관과의 유기적인 협력 관계가 필요한데 코로나19로 이 체계가 훼손된 상태입니다”
협의체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과 ‘119구급대원 현장응급처치 표준지침’을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대전지역 특성을 반영해 응급환자 중증도 분류 도구를 개발했다. 앱으로 병상 정보를 받아볼 수 있는 시스템도 구축했다.
“분류 구역별 병상 정보가 정확하지 않다며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구급대원도 있었죠. 하지만 시스템 운영 전 병원에서 근무하는 응급구조사들과 데이터를 확인했을 땐 정보가 틀리지 않았어요. 다만 코로나19 유증상자 발생 시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이송 가능한 격리병상을 갖춘 의료기관이 부족해 병원에 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곤 했죠”
안 좋은 시선도 많았지만 이 시스템을 사용하니 119구급대원의 현장 활동ㆍ병원 대기 시간은 눈에 띄게 줄었다. 이는 2021년 12월 2일부터 2022년 1월 31일까지의 시범운영 데이터가 증명한다.
사그라지지 않는 코로나19 여파로 현장 구급대원들의 피로도는 극에 달하고 있다. 전국 각 시ㆍ도 소방본부에서는 이들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한 포상이나 휴가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돼선 안 된다고 강조하는 양 소방위.
“그런 방안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선 구급 현장에서 경험을 쌓은 지휘관이 배출돼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소방 활동 대부분을 차지하는 구급 업무에서 구급대원 출신 지휘관이 많지 않은 실정입니다. 경험을 두루 갖춘 지휘관이 현장을 지휘한다면 현장도 많은 변화가 있지 않을까요”
그가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구급 현장을 아는 지휘관이라면 전체 소방활동 중 70~80%를 차지하는 구급 정책에 현실성을 반영할 수 있을 거란 기대 때문이다.
양 소방위의 머릿속엔 구급 조직 발전을 위한 고민도 가득하다. 더 나은 시스템으로 지금보다 발전된 조직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 첫 번째 과제로 구급대원 채용 과정과 교육 프로그램의 변화를 꼽는다.
“미국이나 호주 등 선진국에선 관련 학과 졸업생이 소방 시험에 합격한 뒤 인턴십 과정을 거쳐 구급대원으로 임용됩니다. 병원 임상 경력을 요구하는 경우는 거의 없죠. 3~4년간 학교에서 공부한 지식을 현장에서 경험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병원 전 단계를 충분히 경험한다면 현장의 이해도를 높일 수 있고 지금은 과거와 달리 이들을 가르칠 인력이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또 소방 조직 내 구급지도관들이 인턴십 과정에서 교육을 맡아야 한다는 게 양 소방위의 생각이다.
호주 파라메딕 양성 과정에서는 캡스톤(Capstone)이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구급 관련 학과를 졸업한 학생이 인턴십 과정을 마친 뒤 받는 교육이다.
조별로 팀을 이뤄 ▲현장 상황에 대한 판단 ▲1차 평가에 대한 판단 및 처치 ▲환자 활력징후에 대한 평가 ▲2차 평가 시 환자 증상에 대한 판단 ▲응급처치와 이송 등 단계마다 서로 토론하며 의사결정을 내린다.
토론을 거쳐 배운 지식을 단기기억으로 만들고 시뮬레이션 학습으로 자신이 내린 결정이 맞는지도 확인한다. 이를 통해 교육 내용을 장기기억으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박사과정 당시 지도교수님이 호주의 한 파라메딕을 섭외해 처음으로 캡스톤 교육을 받았어요. 기존 방식과 달리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학습하기 때문에 배운 내용이 기억에 오래 남았죠. 구급대원은 상황을 정확히 인지한 뒤 환자 평가 등 매 순간 의사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이런 교육이야말로 구급대원에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양 소방위는 연구에 이어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응급구조학과 학생들에게 지식과 경험을 전하는 일이다. 응급구조학과와 연계해 구급대원과 학생이 서로 마음을 터놓는 자리를 만들어 나갈 생각이다. 구급대원을 목표로 학업에 열중하는 학생들의 꿈을 이뤄주고 싶다는 욕심이 커서다.
“대부분의 의료기관 응급구조사는 충원이 완료되다 보니 졸업생들의 취업이 어려워 실무 경험을 쌓을 기회조차 줄어들고 있어요. 임상 경력을 요구하는 소방의 채용 현실로 인해 취업 자체가 힘든 응급구조학과 학생들은 119구급대원을 꿈꾸는 것마저 힘들다는 말을 많이 하곤 합니다”
양 소방위는 장기간 전문지식을 습득한 응급구조학과 학생들이 소방에 들어와 제대로 활약하기 위해선 현장에 즉시 적응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예전처럼 학과 출신의 신규임용자 채용을 늘리고 채용 인원이 즉시 현장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야말로 구급대원을 꿈꾸는 새내기 응급구조사들이 국민의 곁에서 가장 빠르게 활약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요. 이런 후배들에게 선배로서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보려고요”
최누리 기자 nuri@fpn119.c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2년 6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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