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이 아니어도 괜찮아! Episode 04.소방관 엄마, 아빠라 미안해!소방관이라면 비상근무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을 수 있다. 요즘은 근무 여건이 나아져 부부인 경우 둘 중 한 명만 응소하는 규정도 신설돼 부부가 자녀를 온전히 양육하는 가정에서 비상근무에 대한 부담이 다소 줄었다.
내가 서른둘에 어렵게 엄마가 됐을 때 53세라는 젊은 나이로 친정엄마가 돌아가셨다. 친정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니 정말 급할 때 마음 편히 아이를 맡길 데가 한 곳도 없었다. 교대근무시절 어린이집이 휴원인 경우 누군가는 지참이나 조퇴를 써야 아이를 교대로 양육할 수 있었다.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둘 중 하나는 병원 진료나 케어를 위해 휴가를 내야 했고 입원이라도 하면 한 명이 장기 휴가를 내거나 하루씩 돌아가며 간호해야 했다. 애국자가 되기 싫어 안 된 게 아니라 도저히 둘, 셋을 나을 여건이 아니었다.
17년 전만 해도 직장에서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육아휴직 수당도 거의 없을 때라 여러 가지로 육아는 나에게 죽음 수준이었다.
가까이 부모님이나 형제자매가 있으면 그나마 좋으련만 도와줄 부모도, 형제도 없었다. 아이가 아파도 어쩔 수 없이 어린이집에 등원시켜야 하는 날이 많았다.
어느 날은 열이 39℃가 넘는 6살 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데 아이가 날 쳐다보며
“엄마, 나 어린이집 안 가면 안 돼?” “어쩌지 엄마 출근해야 해” “알아. 나도 안 가면 안 되는 거”
휴가도 못 내고 어쩔 수 없이 출근길에 어린이집을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아이도 알고 있었다. 엄마, 아빠는 일하고 본인은 어린이집에 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금도 생각하면 아이에게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내가 소방관이 아니었다면, 아니 부모님만 살아 계셨다면…’
내게 육아는 소방서를 그만두느냐, 버티느냐의 중요한 문제였다. 폭풍 같은 육아로 또 다른 출산에 대한 욕심은 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이가 자라며 어느 정도 육아의 고통이 해소됐다.
부부 소방관이라 좋은 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다. 우리 부부는 인근 관서에 떨어져 근무하는 걸 선호했다. 한 서, 같은 직장 안에서 남편을 자주 보게 되는 일이 불편했다. 동료들도 불편할 것 같았다. 그렇게 같은 서에서 근무하지 않으니 좋은 점도, 때론 힘든 점도 있었던 것 같다.
17년 전은 대형 화재가 유독 잦았다. 행정 업무하는 직원들이 ‘내근출동대’라는 이름으로 현장 출동도 하고 비상 응소되는 일이 많던 시절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현장 대응과 인력 보강의 의미로는 내근출동대가 참 효율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행정업무를 하다가 관내 화재가 발생하면 내근출동대로 현장에 가서 화재진압도 소화해야 하는 힘든 시기였던 것 같다. 멀티 소방관 다음으로 정말 직원들을 혹사시키는 허울만 좋은 행정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우린 공동육아를 위해 교대근무 팀을 다르게 조정해 맞췄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간 이후 나는 일근, 남편은 외근으로 공동육아를 이어 나갔다.
사건이 있던 날 나는 방호구조과 구급업무 담당자로 당직근무였고 남편이 아이를 돌보고 있었다. 새벽에 남편이 근무하는 서에 대형 화재가 발생해 비상응소가 발령됐다.
“잠시 집에 와서 아이를 교대로 봐줄 수 있어?”
새벽 시간이라 어디 부탁하기도, 전화하기도 미안했다. 당직 근무자니 외출 달고 잠시 교대를 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다.
같은 소방관으로 비상에 응소하는 일이 당연했기에 당일 현장대응팀장에게 보고했다. 팀장님도 “집에 잠시 다녀오거나 조퇴를 하는 거로 하자”며 현장대응단장에게 보고를 드렸다. 그런데 그 당시 현장대응단장이던 분(10년 전 정년퇴직)이 사정을 듣고 나더니
“아니, 이 사람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여기가 놀이터야? 거기 소방서 비상 걸린 건 중요하고 우리 소방서 당직 업무는 아무것도 아니란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근무나 똑바로 서라고 하세요”
문밖에 서 있는데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했다. 너무 민망하고 속상해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괜히 나 때문에 새벽에 온갖 욕을 먹은 팀장님은
“미안한데 비상응소는 해야 하니 아이를 회사에 데려와 같이 자면 안 될까요?”
‘집에 가나, 애를 데려와서 있나 어차피 당직자의 의무를 다하지 못 하는 건 똑같은데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리고 애를 사무실에 데려와 자는 게 맞나?’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저 때문에 괜히 불편 끼쳐 죄송합니다”
당직실로 돌아와 한참을 펑펑 울었다.
결국 남편은 그날 비상에 응소하지 못했다. 물론 비상응소를 하지 못해 경위서를 쓰고 불이익을 당할 순 있겠지만 우리 부부는 그 순간 선택이라는 걸 할 수밖에 없었다. 돌도 안된 아이를 집에 혼자 두고 소방서에 다녀올 순 없었기에 회사에서 받는 불이익은 감수하기로 하고 아이를 선택했다.
그 이후 한번은 아이를 데리고 화재 현장에 응소했다가 잃어버린 일도 있다. 다행히 금방 아일 찾았지만 아찔한 상황이었다. 그 이후 부부공무원 비상응소 제외 관련 규정이 신설되고 지금은 여건이 아주 좋아졌다.
이젠 그 아이도 자라서 더는 아쉬운 소리를 할 일도, 눈물을 흘릴 일도 없다. 그냥 우리 부부는 아이에게 늘 미안한 엄마, 아빠였다.
그때 황당하게 소리 지르며 욕하던 그 과장을 동네에서 우연히 만난 일이 있었다. 난 굳이 모른척할 생각까진 없었는데 그 과장이 먼저 모른 척 지나쳐 갔다. 나 또한 일부러 쫓아가 인사할 마음이 없었다. 솔직히 불러세워 따져 묻고 싶었지만 속으로 혼잣말을 했다.
“그때 왜 그러셨어요? 꼭 그렇게까지 하셨어야 했나요? 그게 그렇게 욕까지 먹을 일이었나요?”
과거 가슴에 못을 박았던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다 용서하고 잊자’라고 생각하지만 마음처럼 깨끗이 잊히질 않는다. 그 시절은 그런 시절이었겠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래서 지금 그 위치에 선 나는 직원들이 어렵사리 꺼내는 육아 문제나 개인 문제의 이야기를 다 듣기도 전에 “편하게 다녀와요”라고 한다.
직장도 중요하지만 우린 행복하기 위해, 그리고 가족들과 잘 살기 위해 직장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불합리한 것들이 확 바뀔 순 없겠지만 윗사람이 된 내 작은 배려가 쌓이다 보면 우리 조직도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해찬아, 소방관 엄마, 아빠라 미안해!”
경기 파주소방서_ 이숙진 : emtpara@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3년 11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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