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은 재난 현장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고위험 직업군이다. 또 화재 등 재난 현장에서 죽은 이의 최초 목격자다.
중앙119구조본부에서 국제구조대를 운영하는 이유는 여러 해외 재난지역에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준비된 조직이기 때문이다(튀르키예 지진 피해 대응 파견 이후 시도 소방본부 소속 직원에게도 국제구조대원 활동 기회를 주기 시작했다).
이번 튀르키예 대지진으로 발생한 정확한 사상자 수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무너진 건물 아래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지진 피해 현장 수색 간 무너진 건물 틈 사이로 사망한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길거리에서 유가족, 현지 소방관 등이 사망자를 수습하는 광경은 지옥 그 자체였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사망자 수습 시 지독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더 시간이 지나면 길거리 이곳저곳에서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할 것이다.
튀르키예 정부는 일주일 동안 국가적 애도 시간을 가진 후 지진 피해 지역의 건물을 철거한다고 발표했다. 살아남은 이의 슬픔을 빨리 정리하고 국가 프로세스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기 위한 노력이다.
수많은 사고 현장에는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 국제구조대원들은 죽은 자에게도 명예가 있다고 생각한다. 죽은 이의 마지막 가는 길이 누군가에게 흉이 되지 않길 바란다. 그래서 우린 구조작업 시 외부로 노출되지 않도록 천 등으로 현장을 차단하고 사망자를 수습한다. 이 방식은 생존자를 구조할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행동이 유가족들에게 실례가 되지 않도록 통역사를 통해 절차를 전달했다. 그 얘기를 들은 유가족들은 고개를 끄떡이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가 재난 현장에서 사망자에 대한 예의를 표현하는 방법이 다른 나라 구조대에게 전파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간혹 궁금해하는 외국 구조대도 있었다).
국내 재난 현장과 달리 이번처럼 대규모 지진 피해 현장에서 구조 활동 시 산 자와 죽은 자의 가치를 논할 때가 있다. 제한적인 시간에 살아 있는 사람을 구조하는 게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면 사망자를 수습하는 건 가치가 없는 일인가. 이번 튀르키예 현장에서는 이런 딜레마에 빠진 대원들이 많았다. 생존자가 있다는 제보를 받고 이동하다 보면 우릴 잡는 현지 주민이 많았다.
“건물에 깔려 사망한 가족을 꺼내주세요”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리고 가족에게 어떤 말을 할 것인가. 생존자든 사망자든 유가족들에게는 모두 소중한 존재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한 가족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렸는데 안 슬퍼할 사람이 있겠는가.
생존자를 구조하든 사망자를 수습하든 유가족 모두 우리에게 기쁨과 슬픔의 눈물을 보여줬다. 그리고 감사의 인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 삶과 죽음의 현장에서 우리가 배운 건 가족의 소중함이었다.
상황일지 2월 9일_ 생존자 5명 구조, 사망자 9명 수습 ① 첫 번째 생존자 구조, 그 감격의 순간
새벽부터 탐색반은 무너진 건물을 수색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재난ㆍ비상관리 당국 소속 운전기사가 서둘러 다가왔다.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신고가 튀르키예 재난ㆍ비상관리 당국으로 접수됐어요. 신고접수 지역으로 이동해야 해요”
이것이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의 공식적인 첫 번째 구조 출동이다. 재난ㆍ비상관리 당국 소속의 현지 운전사도 신고 내용을 알아서인지 다급하게 가속페달을 밟으며 핸들을 거칠게 다뤘다.
좁은 골목을 통과하면서 차량 사이드미러가 파손됐다. 장애물이 있어도 개의치 않고 거침없이 목적지로 향했다. 영화의 한 장면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운전기사는 운전에 집중했다. 우리가 도착한 현장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포탄이 떨어진 전쟁터의 중심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주변은 적막했다. 무너진 건물 더미를 잡고 울부짖으면서 흐느끼는 유가족들을 보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차량에서 하차한 후 각자 임무를 나누고 신속하게 붕괴된 건물을 살피며 탐색을 시작했다.
훈련 시 참고 자료에서나 볼 수 있었던 팬케이크 붕괴 형태가 내 눈앞에 아주 선명하게 펼쳐졌다.
작은 틈으로 건물 내부를 보며 실낱같은 희망에 간절함을 품고 현장 활동을 시작했다. 무거운 콘크리트 더미에 머리나 관절이 끼어있는 사망자가 다수 식별됐지만 아기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신고한 사람을 만날 수 없어 신고된 건물 말고는 정확한 정보가 없었다.
위치를 특정할 수 없어 범위를 넓혀 수색하기로 했다. 한 시간가량 주변 건물을 수색했다. 그때 무너진 건물 틈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현지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생존자가 정말 이곳에 살아 있을까?’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에는 체구가 작은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법한 틈이 있었다.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은 좁았고 걸리적거리는 구조물도 많았다. 장애물들을 하나씩 제거하며 통로를 개척해 들어갔다. 작은 손 망치로 콘크리트 장애물을 깨고 손으로 걷어냈다. 생존자를 구조해야겠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정신없이 깨고, 부수고, 자르는 동안 밖에 있는 현지 주민들의 다급한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우리가 의도한 일이 잘못됐다는 걸 직감하고 입구를 향해 엎드린 채 낮은 자세로 뒷걸음질 치며 나왔다.
대원들이 손전등으로 틈 사이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때 작은 구멍 사이로 사람의 움직임이 보였다. 생존자에게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우리가 만들어 놓은 통로 쪽으로 손전등 빛을 비춰 유도하기 시작했다. 그분도 우리의 뜻을 알았는지 불빛이 있는 통로로 천천히 기어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순간 안도의 한숨이 나왔지만 ‘조금만 늦었더라면’이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마침내 통로를 개척하고 있던 대원이 생존자와 손을 잡았다.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가 콘크리트 잔해 속에서 생존자 1명을 구조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생존자는 70대 남성이었다. 사흘 동안 콘크리트 장애물에 갇혀 아무것도 먹지 못해 몸에 힘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런데도 마지막 힘을 다해 생존 신호를 보냈다. 구조 타이밍도 절묘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체됐다면 다시는 세상의 밝은 빛을 보지 못했을지 모른다.
좁은 통로로 들것이 들어갔다. 조금 뒤 구조대상자가 들것에 실려 나오면서 구조대원의 손을 꼭 잡았다. 그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빛만으로도 그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우리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눈인사를 보냈다.
현장에 도착해서 수색 활동을 시작한 지 약 2시간 만에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우릴 이곳으로 안내해 주고 다른 업무를 본 뒤 도착한 튀르키예 재난ㆍ비상관리 당국 직원 Rakip Aslan은 생존자 구조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뻐했다. 그리고 재난ㆍ비상관리 당국과 현지 언론에 대한민국 구조대가 생존자를 구조했다는 소식을 알려야 한다며 연신 고마움을 표현했다.
“이번 지진으로 아버지를 하늘나라에 떠나보냈어요. 하지만 슬픔에 잠길 겨를도 없었죠.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생명을 구조하려고 안간힘을 써야만 했거든요. 아직 구조대상자가 생존해 있을 골든타임이니 지체할 시간이 없어요”
환희와 슬픔도 잠시, 우린 또 다른 생존자를 찾아 어두운 도시의 골목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중앙119구조본부_ 김상호 : sdt1970@naver.com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6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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