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1일 상황일지 _ 생존자 3명 구조, 사망자 5명 수습②
사망자 1명 수습
“아들과 딸이 3층에서 계단으로 대피하다가 딸이 뭘 가지러 간다고 다시 뛰어 올라갔는데 그사이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졌어요”
신고자는 중년의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보고 있는 앞에서 자녀 모두가 참변을 당했다. 어머니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우린 최선을 다해 계단실을 수색했지만 생존자나 사망자를 발견하지 못했다.
건물이 심하게 무너져 건물의 중심부 수색은 불가능했다. 정말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면 중장비로 건물을 철거할 때 발견되지 않을까 싶었다.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하고 복귀 차량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 현지인이 다가와 우리를 불러 세웠다. 조금 전 수색하던 옆 건물 2층에서 사망자를 봤다는 것이다. 구조반장은 현장 확인을 지시했다. 1층이 무너진 상태라 정상적으로 진입할 수 없었다. 결국 특전사 대원들과 함께 도로에 주차된 자동차를 밟고 2층 발코니로 진입했다.
다행히도 2층은 많이 무너지지 않았다. 사망자는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실에서 발견됐다. 2층 바닥 콘크리트에 깔린 상황이었다. 신발도 신지 못하고 급하게 도망쳤지만 건물 외부로 나가지 못했다. 콘크리트 더미 사이로 보이는 그의 맨발이 처량해 보였다.
손으로 콘크리트 더미를 조금씩 옮겼다. 다행히 안쪽에 공간이 꽤 있는 듯했다. 무거운 콘크리트에 깔린 것 같지 않았다. 이 정도면 1시간 안에 충분히 구조작업을 완료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다시 발코니로 나가 구조반장에게 1시간이면 사망자 수습이 가능할 것 같다고 보고했다.
“몇 명이면 작업 가능할까요?”
계단실이 좁아 많은 인원은 필요 없었다.
“네 명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구조대원 네 명과 특전사 대원 두 명이 배정됐다. 나머지 대원들은 다시 주변 무너진 건물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이곳에 남은 구조대원은 중앙119구조본부에서 도시탐색구조 전문가인 형님들이었다. 특전사 대원들은 구조 관련 교육이나 경험이 없었지만 재해재난 부대 소속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어 이해도가 높았다. 게다가 엄청난 체력을 소유하고 있어 든든했다.
한 줄기 빛도 없는 암흑 같은 계단실에서 개인 랜턴으로 현장을 비춰가며 작업을 시작했다. 휴대용 발전기를 돌려 착암기로 사망자를 짓누른 콘크리트 잔해물들을 깨고 제거했다. 착암기 같은 반동이 있는 장비를 사용하는 건 체력 소모가 크다.
대원들과 교대로 콘크리트 잔해물을 제거해 나갔다. 구조대원이 착암기로 콘크리트를 깨면 특전사 대원들이 양옆에서 부서진 잔해물을 치웠다. 콘크리트를 깨니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철근이 나왔다. 유압 콤비 절단기로 철근을 잘라내며 계속 작업을 이어갔다.
형님들은 이 분야 전문가답게 장비를 활용하는 방법부터 달랐다. 장비는 힘만 있다고 잘 운용하는 게 아니다. 연륜이 필요하다. 콘크리트 사이 철근은 자르기가 어려웠다. 그때마다 지렛대를 철근 사이에 넣어서 들어 올려주면 편하게 자를 수 있었다.
선배들이 소방서에서 지렛대를 잘 써야 선임자라고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내가 가끔 지렛대를 들고 헤맬 때마다 선배들은 “저기로 넣어서 이 방향으로 당겨”, “이 돌멩이 끼워서 젖혀봐” 같은 조언을 해줬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하면 기가 막히게 철근이 젖혀졌다. 그깟 지렛대를 쓰는 게 뭐가 대수냐 싶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지렛대를 사용하는 동작 하나하나에는 많은 센스가 요구된다.
약 2시간 만에 사망자를 구조했고 구조반장에게 사망자 수습 사실을 알렸다. 사망자 얼굴에 출혈이 조금 있었지만 염려했던 만큼 시신이 훼손되지 않아 유가족에게 보여줘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지금 우리가 구조한 사망자와 옆 건물에서 찾지 못한 자매가 지진 당시 집에서 나오지 않고 식탁이나 책상 아래로 대피했다면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숙영지에서 다른 구조반 대원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여기 말고도 이런 현장이 많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런 안타까운 광경을 볼 때마다 우리 구조대원의 마음은 점점 무거워져 갔다.
아마도 인간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면 숨고 도망가게 프로그래밍 돼 있지 않을까. 정작 집은 멀쩡한데 지진의 흔들림에 본능적으로 뛰쳐나가다가 계단실이 무너지면서 사망한 사람들…….
대형 재난 상황에서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운명의 장난이란 게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사망자를 사체낭에 모시고 안전한 외부로 운반했다. 인근에 있던 사람들에게 구조 소식이 알려지자 한 젊은 남성이 나타났다. 사망자가 그의 아버지라고 했다. 남성은 조금 떨리는 표정으로 사체낭을 열어 사망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리고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더니 쪼그려 앉아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들의 한쪽 손에는 커다란 토끼 인형이 안겨 있었다.
‘인형의 주인은 누구일까? 이 남성은 아버지 말고 또 다른 실종자의 가족일까? 실종된 딸의 것일까?’
물어보진 못했지만 인형을 들고 다니는 사연이 궁금했다. 실종된 자녀의 것일 수도 있겠단 생각에 코끝이 찡해졌다. 서글프게 우는 그를 보며 삶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계속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 것 같아 고개를 들어 하늘만 바라봤다.
우리는 사망자에게 예우를 갖춘 후 유가족에게 인계했다. 복귀하기 위해 큰 도로로 나와 차를 기다렸다. 그때 무너진 담벼락 옆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수십 장의 사진이 눈에 띄었다. 누군가가 밟고 지나간 사진들은 바람에 날려 제멋대로 뒹굴고 있었다.
한 가족의 행복한 추억을 엿볼 수 있던 그 사진 속에는 남녀가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자녀들이 아기 때부터 커가는 과정이 담겨있었다. 그 추억이 더는 사람들에게 밟히지 않도록 잘 모아 한쪽 구석에 가지런히 정리해 뒀다.
‘어딘가에서 안전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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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119구조본부_ 김상호 : sdt1970@naver.com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1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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