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규모 복합쇼핑몰 ‘코엑스몰’이 리모델링 과정에서 내부 유리벽체의 내화구조 인정을 위해 적용한 윈도우스프링클러가 논란에 휩싸였다.
하루 평균 유동인구가 15만명에 이르는 코엑스몰은 지난해 4월부터 올해 12월까지 약 1,600억 규모의 리모델링 공사를 추진하고 있다. 이번에 진행되는 리모델링 공사는 총 공사면적이 173,000㎡(옥외 33,000㎡, 옥내 139,000㎡)에 달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코엑스몰과 같은 건축물은 건축법에 따라 연면적 1,000㎡가 넘는 곳은 내부 구획 시 내화구조를 갖춘 벽을 적용해야 하고 바닥면적 3,000㎡ 이하마다 방화구획을 해야만 한다. 이는 건축물에서 발생되는 화재시 불이 건축물 전체로 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현행 법규정이다.
코엑스몰은 대규모 판매시설 등의 복도와 상점을 구획하면서 유리벽체에 대한 내화구조 성능 확보를 위해 윈도우 스프링클러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내에는 윈도우 스프링클러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나 법규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여서 허가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유리벽체 내화 성능 논란, 문제는?
▲ 코엑스몰 내부 유리벽체의 내화구조 성능 확보를 위해 설치된 스프링클러의 모습. 코엑스몰은 내화구조 성능인증을 위해 유리벽체 양쪽 면에 윈도우 스프링클러를 적용하고 있다. ©최영 기자 | |
코엑스몰은 리모델링 과정에서 수많은 상점과 주통로 사이를 유리벽체로 구획하고 있다. 이 때 사용되는 유리벽체는 현행법에 따라 반드시 2시간 이상의 내화성능을 갖춘 벽체로 구획해야만 한다.
코엑스몰은 내화성능 확보를 위해 1시간의 내화구조 성능을 가진 유리벽체와 스프링클러 헤드(일명 윈도우스프링클러)를 적용한 상태다.
윈도우스프링클러는 화재 시 유리면에 설치된 스프링클러 헤드가 개방되면서 물을 방수해 창문에 수막을 형성시켜 화염이나 열에 노출된 유리를 보호하도록 하는 설비로 미국과 캐나다 등 일부 선진국에서 실제 사용되고 있는 시스템이다.
코엑스몰은 현행법에 따라 방화셔터로 구획할 경우 거대 공간 특성상 화재발생시 2만 5천여 명에 이르는 수용인원의 시야가 차단되고 평소에 없던 구획까지 생기면서 공포심을 유발해 오히려 피난 장애에 따른 대형 인명피해를 불러올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코엑스몰 관계자에 따르면 리모델링 공사 계획 시점이었던 지난 2012년 7월, 강남소방서로부터 방화셔터 설치 시 시야 확보가 안되고 오작동으로 인한 피해 등 피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방화유리에 윈도우 스프링클러 시스템의 적용을 권장받았다.
이 같은 소방서 권장에 따라 코엑스몰은 방화유리에 윈도우스프링클러시스템을 적용했고 지난 2012년 12월 사전재난영향성 평가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2월에는 해당 내용을 반영시켜 건축허가도 득했다.
허가 이후 같은 해 4월 말 착공에 들어간 코엑스몰은 착공 이후 3개월이 지난 7월 강남구청으로부터 공사관리에 따른 추가적인 요구사항을 전달 받으면서 리모델링 공사에 제동이 걸렸다. 강남구청이 방화구획으로 시공되는 유리벽체에 대해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내화구조 인정’과 ‘품질관리확인서’를 준공 요건으로 요구해 왔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강남구청에는 코엑스몰 리모델링 시 적용되는 유리벽체 내화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내용의 민원이 접수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15년 전에는 ‘허가’, 지금은 안돼?
▲ 코엑스몰의 리모델링 공사 현장의 모습 © 최영 기자 | |
코엑스몰은 지난 1999년에도 윈도우 스프링클러 시스템을 적용해 방화구획의 범위를 완화조치 받았던 곳이다. 하지만 15년이 지나 리모델링 과정에서는 당시와 달리 제동이 걸리면서 발주처인 한국무역협회와 시공사인 현대건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시공사인 현대건설에 따르면 1999년 당시 1시간 내화도를 가진 방화유리창 위에 윈도우스프링클러 시스템을 건교부의 유권해석에 따라 강남구청의 건축심의위원회를 거쳐 설치됐다.
그러나 리모델링 과정에서는 강남구청이 과거와 달리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내화구조 인정’과 ‘품질관리 확인서’가 없으면 내화구조로 인정할 수 없고 준공허가도 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시공사인 현대건설은 지난해 10월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유리벽체와 윈도우스프링클러에 대한 내화구조 인정을 신청하고 12월 5일과 11일, 두 번의 시험을 거쳐 성능 테스트를 받았다.
이 시험에서 윈도우스프링클러를 적용한 유리벽체가 차염성과 차열성 등 120분의 내화성능을 확보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건설기술연구원은 규정된 시험조건(노내온도)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인정 신청 자체를 반려했다.
건설기술연구원 관계자는 “시험은 규정된 모든 조건에 따라 수행될 때 타당(적합)한 것으로 인정되지만 관련 규정(KS 내화시험방법) 중 하나인 ‘노내온도’ 조건을 충족시키기 못했기 때문에 인정신청을 반려했다”고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로 인해 코엑스몰의 윈도우스프링클러 시스템을 적용한 유리벽체는 아직까지 내화구조로 정식 인정받지 못한 상황이다.
전문 연구기관은 전문성 부족?윈도우스프링클러에 대해 건설기술연구원이 내화구조 인정 신청을 반려한 사유를 놓고 화재관련 전문가들은 건설기술연구원의 전문성 부재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방화구획을 윈도우 스프링클러로 인정하기 위한 별도의 관련 법규나 명확한 규정들이 정립되지 않은 실정이어서 코엑스몰은 관련 규정(건축물의 피난방화구조 등의 기준 제27조 제1항)에 따라 기존 규격 이외 제품을 적용하는 것으로 내화구조 인정을 진행했다.
건설기술연구원은 윈도우 스프링클러의 내화구조 인정 신청을 반려한 것에 대해 시험시 만족해야만 하는 시험조건 중 노내온도의 ‘내화표준화재 온도곡선’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 건설기술연구원에서 진행한 윈도우스프링클러 품질시험의 내화표준화재온도곡선 실험결과 값. 당시 실험에서는 룸내의 온도변화가 스프링클러 작동시 물의 증발잠열로 인해 40~50% 가량 감소했다. ©최영 기자 | |
쉽게 말해 유리벽체의 내화구조 시험을 진행할 때 가열로에서 유리벽체로 뿜어지는 화세의 온도와 시간이 정해진 값과 일치해야 하는데 이를 만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일부 소방분야 전문가들은 건설연의 전문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유리벽체 구조에 스프링클러를 적용한 윈도우스프링클러는 지속적으로 방수되는 물입자가 기화하며 가열로의 증발열을 빼앗기 때문에 냉각효과로 인해 내부의 평균 온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건설기술연구원은 시험 결과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특성은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윈도우스프링클러를 도입해 시험방법을 정립하고 있는 캐나다와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윈도우스프링클러의 내화성능을 시험할 때에는 물이 방수되지 않는 일반 내화시험 때와 동일한 연료량으로 일정한 연소부하를 유지하는지를 확인해 화세 강도의 동일성을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90년대 인정한 윈도우 스프링클러 … 허송세월 15년 선진 외국 규격인 UL 및 ULC(UL캐나다) 등에서는 윈도우 스프링클러에 대한 관련 기술기준을 정립하고 있으며 캐나다 온타리오주 건축법에서는 윈도우스프링클러를 방화구획용으로 2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수 윈도우스프링클러에 대한 UL인증 등 글로벌 인증을 보유하고 있는 TYCO사에 따르면 이러한 시스템은 인도와 싱가폴, 홍콩, 중국 등 아시아권 주요 건축물에 적용되기도 했다.
▲ 일부 선진국에서 실제 적용되고 있는 윈도우스프링클러의 모습 © 소방방재신문 | |
우리나라는 1990년대 말 유리벽체 방화구획에 윈도우스프링클러로 적용했고 올해로 15년이 지났지만 관련 법규는 고사하고 명확한 기준이나 규정조차 정립되지 못한 상태다.
과거 일부 건축물의 방화구획으로 인정해 준 사례가 있었음에도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와 건설기술연구원 등 관계 전문 기관은 기 사례에 대한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뒷짐을 진채 허송세월을 보내온 셈이다.
이로 인해 이번 코엑스몰 리모델링 공사에 따른 방화구획 윈도우스프링클러 인정 논란은 십년이 넙도록 안일하게 방치해 온 관계 기관의 무관심이 불러왔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과 롯데월드에도 영향 미치나윈도우스프링클러를 적용한 사례는 코엑스몰 외에도 인천국제공항 교통센터, 롯데월드 등 주요 건축물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모두 1990년대 말에 허가 받은 곳으로 이번 코엑스몰의 리모델링에 따른 윈도우 스프링클러의 합법성 판정 여부는 기존 건축물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조짐이다.
인천국제공항의 경우 지난 1998년 교통센타 지하에 위치한 열차 플랫폼과 주차장 등을 윈도우 스프링클러를 적용해 방화구획으로 인정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롯데월드는 1998년 실내 놀이시설(어드벤쳐)과 롯데호텔의 1층에서 7층 외벽 유리창 사이를 방화구획하면서 윈도우스프링클러를 적용했고 무역센터와 아셈 건물은 리모델링 이전인 1999년 지하층 120,000㎡의 대규모 공간 내 점포와 위락시설의 통로 사이 등에 방화셔터를 설치하지 않고 윈도우스프링클러를 설치했었다.
현재 코엑스몰에 적용되는 윈도우스프링클러에 따른 내화구조가 인정되지 않을 경우에는 인천국제공항과 롯데월드 등 기존 건축물에 대한 내화구조의 안전성 시비로도 이어질 공산이 크다.
윈도우스프링클러 정식 허용은 판도라의 상자?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이번 윈도우스프링클러의 내화성능을 인정할 경우 향후 나타날 수 있는 파급효과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 스프링클러 혼용 시스템을 방화구획으로 정식 인정하면 현재의 내화구조 인정 제도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특히 향후에는 스프링클러 접목 기술로 불연이나 준불연, 난연재료 등 설계부위를 내화구조로 변경하고 철판이나 합판, 시멘트보드 등을 접목하는 등 예상치 못한 파장을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를 내비친다.
여기에 준공 이후에는 스프링클러 동작 여부에 따라 방화구획의 성능이 결정될 수 있기 때문에 사용 중인 건축물에 대한 내화구조 작동 여부를 확인하는 제도까지 마련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표출하고 있다.
고난이도 기술이 요구되는 윈도우스프링클러
▲ 윈도우 스프링클러의 특성을 나타내는 그림 © 글로벌 기업 TYCO사 뉴스레터 발췌 | |
소방관련 전문가들은 윈도우스프링클러는 패시브적인 부분을 액티브적인 방법으로 보완해 성능을 확보하는 기술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성능 구현을 위한 방법과 고난이도의 기술은 방화구획 자체에 대한 신뢰성을 좌우하는 핵심적인 요인이 된다고 강조한다.
일각에서는 윈도우스프링클러를 방화구획으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실험 결과물을 토대로 실제 건축물과의 형상과 구조를 일치시키고 사후 관리 측면에서의 확실한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특히 윈도우스프링클러 구현에 따른 방화구획의 효능은 일부 선진국에서 입증된 것이 사실이지만 스프링클러 헤드에서 방출되는 물의 분무 형상이나 스프링클러의 작동 시점 등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를 완벽히 해소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까다롭고 다양한 조건들이 완벽하게 고려되지 않는다면 내화성능을 잃게 되고 결국에는 불완전한 방화구획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건축물 다변화 따른 해소방안 ‘시급’
윈도우스프링클러는 건축자재와 소방시설의 융합으로 구현되는 고차원적인 기술로 일부 선진국에서는 유리벽체 구성 시 경제성과 안전성을 높이면서도 건축물의 내화구조를 실현하는 방안으로 활용되고 있다.
국내 건축법규에서는 방화구획 시 건축물의 특성에 따라 해당되는 내화성능을 만족하는 벽체를 적용토록 규정하고 있고 이에 따른 방화구획 선상에 유리구조물이 있을 경우 대부분의 건축물에서는 그 대안으로 방화셔터를 설치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 화재 시 셔터의 작동은 건물 내 사람들을 구획된 공간에 가두거나 안전지대로의 피난을 방해하는 등 악영향을 불러올 수 있다.
특히 갑작스러운 셔터의 구획은 사람들의 공포심이나 패닉현상을 일으키면서 시야 확보마저 방해해 오히려 건물 내 사람들의 큰 인명피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또 2시간의 내화구조를 갖춘 유리벽체의 경우 국내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사례가 없는 실정이고 국내에 보급되고 있는 수입 유리벽체는 그 가격이 일반 제품에 비해 많게는 수 십배, 1시간짜리 내화구조 유리벽체와 비교할 때는 3배 이상 비싼 것이 현실이다.
코엑스몰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윈도우스프링클러와 함께 적용한 1시간 내화구조의 유리벽을 2시간짜리로 교체할 경우 유리벽체 값으로만 약 100억원의 추가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우리나라 건축물의 형태는 요동치듯 변화하면서 건축물에 유리를 사용하는 비중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건물의 디자인과 전망을 중시하는 경향이 커지고 초고층화, 밀집화되는 특성 때문에 창의 종류와 사용량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이러한 유리벽체는 화재 시 화염 확산 우려가 커 이에 대한 내화성능 확보와 방호 대책의 필요성은 더욱 더 절실한 상황에 놓여지고 있다.
내화성능 확보를 위한 하나의 방안이 바로 미국 등 일부 선진국에서 사용되는 윈도우스프링클러다. 신뢰성이 보장됐을 경우에는 고가의 유리벽체로 구획하는 것보다 경제성이 뛰어나고 안전한 방법으로 평가 받으면서 일부 소방선진국에서 실제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일부 선진국에서는 윈도우스프링클러를 통해 방화구획 능력을 부여하고 동시에 피난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많은 실험과 연구도 수행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윈도우스프링클러의 활용을 위한 연구 사례는 한 손에 꼽힐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다.
코엑스 리모델링 방화구획의 인정 방향은 향후 국내 건축물의 방화구획 인정 형태의 변화를 불러오는 등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번 코엑스몰 유리벽체의 대한 내화구조 인정 논란을 계기로 건설 및 소방관련 부처와 연구기관 등이 확실한 정책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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