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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 삽시간에 불구덩이로… 위험천만 방음터널 방치해 온 국토교통부

“화재 위험성 크다” 방음터널 방재 기준 미흡 지적 10년 동안 외면
불나면 ‘활활’ 플라스틱 방음판, 규제 없어 방음터널에 무차별 적용
한국도로공사 수차례 연구로 개선방안 제시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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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 기자 | 기사입력 2023/01/02 [23:29]

[집중취재] 삽시간에 불구덩이로… 위험천만 방음터널 방치해 온 국토교통부

“화재 위험성 크다” 방음터널 방재 기준 미흡 지적 10년 동안 외면
불나면 ‘활활’ 플라스틱 방음판, 규제 없어 방음터널에 무차별 적용
한국도로공사 수차례 연구로 개선방안 제시했지

최영 기자 | 입력 : 2023/01/02 [23:29]

▲ 지난달 29일 발생한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  ©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제공


[FPN 최영, 최누리, 김태윤 기자] = 방음터널에서 발생한 화재로 5명이 숨지자 전문가들 사이에선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오래전부터 여러 차례 화재 위험성 연구가 있었던데다 2년 전 유사 사고를 겪고도 위험을 방치해 왔다는 지적이다. 

 

<FPN/소방방재신문> 취재결과 방음터널의 화재위험 문제는 지난 2012년부터 수면 위로 떠 오르기 시작했다. 한국도로공사는 2012년 ‘고속도로 방음자재의 연소특성 및 방염성능기준에 관한 연구’를 시작으로 2016년 ‘고속도로 방음터널 제연 및 피난방안에 관한 연구’를 추가 진행했다. 

 

이후 2018년 도로교통연구원은 ‘고속도로 터널형 방음시설의 화재안전 및 방재대책 수립 연구’ 보고서를 펴내며 구체적인 화재안전ㆍ방재대책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부 차원의 정책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터널형 방음시설은 건물 고층화와 도시 과밀화에 따라 주거지역을 통과하는 도로가 증가하면서 해마다 늘고 있다. 우리나라 방음터널 대부분은 철골과 투명 플라스틱 수지 재질의 방음판을 활용한다. 하지만 내부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

 

▲ 다양한 형태의 방음터널 종류  © 2018 고속도로 터널형 방음시설 화재안전 및 방재대책 수립 연구 보고서

 

특히 지난 2020년 8월 20일에는 용인 수지구 신대호수 사거리에서 방음터널 화재가 발생하면서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당시 BMW 차량에서 시작된 불은 방음터널로 옮아 붙으며 터널 내부 50m 정도를 태우고 꺼졌다. 차 한 대에서 시작한 불은 터널 벽면과 천장을 막고 있던 방음판을 타고 빠르게 번졌다. 방음터널을 구성한 가연성 플라스틱 재질의 방음판이 문제로 지적됐다. 그러나 이 사고를 겪고도 정부는 뒷짐을 진 손을 풀지 않았다.

 

▲ 2020년 용인 수지구 신대호수 방음터널 화재 당시의 모습이다. 불에 타는 모습이 이번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과 굉장히 닮아 있다.  © FPN


특성 고려 안 한 엉터리 방재시설 기준

▲ 최초 화재가 발생한 폐기물 수거 화물차  ©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제공


도로에 설치되는 터널은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 관련 법규(도로터널 방재시설 설치 및 관리지침)에 따라 안전시설을 갖춘다. 하지만 가연성 재질의 방음판 등이 적용되는 고위험 방음터널에 대한 기준은 딱히 없는 상황이다. 소방 관련법에선 지하나 해저, 산 등을 뚫어 만든 것만 해당하기 때문에 사실상 방음터널은 규제 대상이 아니다.

 

지난 2016년 국토부는 관련 기준 개정을 통해 방음터널에 대한 정의와 방재시설 기준을 반영했다. 이 지침에선 터널의 길이와 교통량을 판단해 위험도 지수를 4개 등급으로 나눈다. 각 등급에 따라 화재 시 자동으로 물을 뿌려주는 물분무설비를 비롯해 옥내소화전, 자동화재탐지설비, 비상방송설비, 유도등, 제연설비 등을 갖추도록 규정한다. 그러나 방음터널에 일반 도로터널과 유사한 기준으로 방재시설을 갖추도록 규정하고 있어 특수성 반영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박재성 숭실사이버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방음터널은 일반적인 콘크리트 구조의 터널과는 전혀 다르게 화재에 취약한 플라스틱 재질의 방음판이 적용돼 급격한 연소확대가 이뤄지게 된다”며 “취약성을 고려한 별도의 관리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8년 진행된 한국도로공사 도로교통연구원의 연구보고서에도 “(현행) 지침에서 다루는 방음터널 관련 사항은 자세한 검토를 통해 도출된 규정은 아니다”고 선을 긋고 있다.

 

이영주 서울시립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특히 차량 화재는 일반적인 화재보다 열량이 커 화재 시 구조물이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서 “주요 구조부 또한 내화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일반 터널보다 더 취약하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방음터널에 쓰이는 ‘불쏘시개’ 방음판

방음터널의 가장 큰 화재 위험요소는 터널 벽면과 지붕을 둘러쌓는 투명 방음판이다. 도로교통공사 조사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방음터널의 방음판 재질로는 폴리카보네이트(PC), 폴리메틸메타크릴레이트(PMMA), 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PET)가 주로 쓰인다. 강화유리 등 접합유리를 적용하는 곳도 있지만 극히 드물다.

 

이 폴리머 계열의 방염판은 차음성능이 우수하고 빛 투과율이 높아 채광 효과가 좋다. 그러나 터널 내부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빠른 연소는 물론 다량의 유해가스가 발생하게 된다.

 

플라스틱류의 폴리머 계열 방음판의 인화점은 280~450℃ 정도로 낮다. 불이 쉽게 붙고 전파되는 이유다. 이 중에서도 일명 아크릴로 불리는 PMMA는 화재에 가장 취약한 소재로 꼽힌다. 불이 난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에 쓰인 자재다.

 

▲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천장에 설치돼 있던 아크릴 소재의 방음판이 모두 불에 타 없어졌다.  © FPN

 

실제 지난 2018년 한국도로공사 도로교통연구원 실험 결과 PMMA는 인화점이 280℃ 정도로 가장 낮고 불이 붙으면 불똥이 뚝뚝 떨어진 뒤에도 낙하 물질 자체가 지속해서 연소하는 심각한 화재 취약성이 확인됐다. 이미 경고된 위험이었지만 이번 제2경인고속도로 화재에서 이 문제가 고스란히 재현됐다.

 

국토부 통계에 따르면 전국에 방음터널은 모두 55개소다. 불이 난 갈현 고가교를 제외하고도 무안-광주선 1개소와 대구-부산선 수성IC 인근 3개소, 제2경인고속도로 안양-성남선 금토대교 등 5곳에 PMMA 재질의 방음판이 쓰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연구로도 충분한데… 이상한 연구용역

<FPN/소방방재신문> 취재결과 국토부는 2022년 4월이 돼서야 약 2억원의 예산으로 관련 연구용역을 발주한 것으로 파악된다. 6월 13일 개찰에선 한 민간 기업이 이 사업을 수주했다. 문제는 이 용역의 기일이 600일이나 된다는 점이다. 

 

▲ 나라장터에 게시된 국토교통부의 ‘터널형 방음시설의 화재안전기준 마련을 위한 연구’ 용역 입찰 결과문  © FPN

 

대표적인 산하기관 연구가 세 차례나 있었고 5명의 목숨을 앗아간 최악의 방음터널 화재까지 발생했지만 연구용역 종료 시점은 2024년이다. 게다가 이 연구용역은 감사원이 현재 처리 중인 ‘광역교통망 구축 추진실태’ 감사에서 문제가 지적된 뒤에야 진행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연구기관 관계자는 “도로공사와 국토부 등 다양한 곳에서 연구가 이미 진행됐고 위험성이 충분히 제기됐음에도 600일이나 되는 연구용역을 진행한다는 건 실질적인 개선보단 담당 부처의 명분 쌓기에 가깝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대책을 마련 중이라는 국토부의 근거를 내세우기 위한 절차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2018년 나온 도로교통연구원의 방음시설 화재안전 관련 대책 연구 보고서 © FPN

특히 연구용역의 과업 범위는 또다른 논란을 낳고 있다. 지난 2015년부터 진행된 여러 차례의 연구에서 이미 확인되거나 제시된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2018년 도로교통연구원은 “PMMA는 위험성이 있어 방음터널에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하다”는 결론을 냈다. 이 연구에선 방음자재의 화재 특성 실험은 물론 화재해석을 위한 시뮬레이션 등 위험성 검토를 거쳐 화재 안전성 확보방안이 제시됐다. 이에 더해 방재시설 설치를 위한 기준안까지 구체적으로 제안한 상태다. 

 

하지만 국토부가 발주한 연구용역에선 ‘방재시설 설치 기준안’이 아닌 ‘화재안전기준안’으로 용어만 달리 제시하라고 했을 뿐 맥락상 큰 차이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수억원의 예산을 투입하면서 추가 연구를 진행할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발등 불… 소 잃고 외양간 고치겠다는 국토부 

▲ 지난달 30일 경기도 과천시 서울지방국토관리청 종합상황실에서 열린 제2경인고속도로 화재 사고 관련 긴급 대책 회의에서 원희룡 국토부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제공

  

이번 사고로 국토부 발등에는 불이 떨어졌다. 우선 사고 구간의 교량 등 안전성을 점검하고 보수와 보강을 통해 교통을 재개하기로 했다.

 

특히 유사 사례 방지를 위해 도로와 철도에 있는 방음터널과 장대터널, 지하차도 등 내부에서 화재가 발생한 경우 화재 진압과 대피 등 대처가 곤란한 교통시설 1953개소에 대한 긴급 점검에 들어갔다.

 

터널 내부 마감 재료의 화재 취약성과 대피 등 비상대응체계 적정성에 대해서도 현황 파악과 점검에 들어갈 방침이다.

 

사고가 발생한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에 쓰인 PMMA재질의 방음판에 대해서도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유사 재질로 계획됐거나 시공 중인 모든 방음터널은 공사를 즉시 중단 조치하고 운영 중인 방음터널에 대해서도 대체방안을 결정하기로 했다.

 

원희룡 국토부장관은 “국민안전은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는 자세로 빈틈없는 화재안전 기준을 조속히 마련하고 전국의 화재위험시설들에 대해 변경된 기준을 앞당겨 적용하는 등 국민안전을 최우선으로 유사 사고 방지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또 “방음터널 뿐 아니라 방음벽도 재질 구조에 문제가 없는지 철저히 점검하겠다”며 “필요하다면 지자체와 화상 긴급회의 추진 등 전수조사를 통해 미시공 구간은 즉각 시공방법을 변경하라”고 지시했다.

 

최영, 최누리, 김태윤 기자 young@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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