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공무원 동료 상담제도는 2012년 경기도소방재난본부 가 소방관 동료상담사과정을 강남대학교에 위탁하면서 시작됐다. 심리적 소진을 경험하고 심리상담학부 과정을 마쳤던 2012년 봄, 소방서 주관 동료상담사 1기 과정을 이수하면서 ‘조직 동료 상담’이란 새로운 영역에 관심이 생겼다.
강남대에서 수업을 받으며 상담보다 상위 카테고리인 사회복지 코칭을 알게 됐다. 심리상담과 다르게 코칭이란 개념으로 접근해 내담자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부분을 해소해주고 심리적으로 접근해 상담까지 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해결중심상담사 성향인 나는 코칭(멘토)이 더 효과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이후 조직 내 동료 상담업무를 맡았다. 그 과정에서 코칭과 지속적이면서도 심층적인 전문상담뿐 아니라 조직 내에 기본적인 사항을 해결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말 그대로 소방조직에서는 다각적인 접근으로 맞춤형 상담을 하는 게 핵심이었다.
소방공무원 대부분은 일반인보다 강하고, 씩씩하고, 용감하다는 인식이 만연하다. 하지만 소방공무원 중에도 외상 후 스트레스나 직무 스트레스에 취약한 기질을 가진 부류가 있다. 반면 스트레스 대처능력이 강한, 즉 회복 탄력성이 높은 일부도 있다.
스트레스에 강한 부류는 일과 생활을 분리해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개인 영역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수 있다. 또 개인적인 부분과 일을 동일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스트레스에 취약한 부류는 일과 개인 생활의 경계가 모호하고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개인을 넘어 가정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두 가지를 별개로 보려 해도 연결 선상에서 동일시되고 이어지는 감정을 경험하며 스트레스 중심에 나를 두게 된다. 소방관도 사람이기 때문에 개인이 가진 기질을 무시할 수 없다.
나는 기질적으로 스트레스에 취약한 편이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 생각 속에서 괴롭다가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란 생각으로 발전해 가면 모든 일상생활에 제약이 따른다.
현장 경험으로 인해 지하에 있는 다중이용업소는 가기 꺼려진다. 소형차는 사고위험 때문에 부담스럽다. 이렇듯 각종 사고가 걱정돼 매사가 불안하다.
예기불안이 평균 이상으로 높다고 볼 수 있다. 그간 활동한 모든 현장 활동의 결과가 걱정스럽고 불안한 데다가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변수까지 가늠하다 보니 늘 피곤하다.
구급대원 7년 차가 됐을 때 심리적 고갈을 경험했다. 출동을 나가서 환자를 만나면 적극적으로 환자의 히스토리를 청취하고 적절하게 처치하며 가능한 병원으로 이송하는 게 주 업무인데도 환자와 말을 나누는 게 너무 싫었다.
현장 활동하며 많이 했던 말은 “어디가 아프세요?”다. 그런데 이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정말 경험하고 싶지 않은 순간을 겪었다.
출동벨이 울리면 먼저 가슴부터 심하게 뛰었다. 이런 불안한 증상은 날로 심해졌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런 증상을 겪던 2007년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가 편안하던 시기가 아니었다. 드문 일이기도 했다.
마음이 행복하지 않고 우울한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던 그 시절, 소방관의 PTSD가 수면 위로 오르며 구급대원들이 상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소방조직에 도입됐다.
연계된 보건소에 상담하러 갔는데 노년의 의사 선생님께서는 이것저것 질문을 하시더니
“소방관과 맞지 않으니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다른 일을 찾아보셔야겠어요”
돌아오는 길에 힘든 상황을 이야기한 후 위로받고 치유가 되긴커녕 조직 내 보이지 않는 이면을 떠들어댄 기분이 들었다. 상담 자체가 실망스러웠다.
‘도대체 뭐하러 시간을 들이고 에너지를 쏟아서 이야기했나?’ 싶어 허무하기도, 속상하기도 했다. ‘날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구나. 아무리 상황을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싶으면서 너무 기운이 빠졌다.
일상으로 돌아와 한참을 고민했다. 그즈음 응급구조학과나 보건학과로 편입을 준비 중이었는데 문득 소방서에도 학교 보건실처럼 소방관들을 치유해주는 조직 내 상담소나 치유센터가 생기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방관을 이해하고 있는, 그래서 굳이 다 설명하지 않아도 공감대가 형성돼 더 현실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소방관 상담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차라리 내가 상담사가 되자’
학업과 일을 병행하기도 어렵지만 추가해서 육아까지, 세 가지 모두를 잘 해낼 수 있을 거로 생각하면서 용감하게 심리상담학부로 편입했다. 그러나 현실은 상상처럼 녹록지 않았고 난관에 부딪혔다. 결국 예상했던 시간보다 오래 걸려 9년 만인 2016년 석사과정을 마쳤다.
물론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심리상담과정을 따라가며 내 내면의 아이도 치유했고 행복했다. 시작과 다르게 소방관 외 다른 전문적인 직업을 꿈꾸며 이직도 생각하고 있을 때 운명처럼 김일수 본부장님을 만났다.
그리고 2017년 4월 6일 소담이라는 소방 동료들과 상담을 하기 시작했다.
경기 파주소방서_ 이숙진 : emtpara@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8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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