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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시행 9년 맞은 ‘손실보상제도’… 지급? 기각? 그 기준이 궁금하다

최근 5년 반 동안 총 458건서 4억1천만원 수리비 지급, 10건 중 7건 인정
소방청, 명확한 지급 기준 마련 목소리에 ‘손실보상제도 가이드라인’ 제정
손실보상 요건 기준과 실제 사례, 처리절차 등 알기 쉽도록 정리한 가이드
단체보험 가입해 ‘과실’도 보상… 소방청 “안심하고 활동하도록 적극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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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호 기자 | 기사입력 2025/10/02 [10:00]

[FOCUS] 시행 9년 맞은 ‘손실보상제도’… 지급? 기각? 그 기준이 궁금하다

최근 5년 반 동안 총 458건서 4억1천만원 수리비 지급, 10건 중 7건 인정
소방청, 명확한 지급 기준 마련 목소리에 ‘손실보상제도 가이드라인’ 제정
손실보상 요건 기준과 실제 사례, 처리절차 등 알기 쉽도록 정리한 가이드
단체보험 가입해 ‘과실’도 보상… 소방청 “안심하고 활동하도록 적극 지원”

박준호 기자 | 입력 : 2025/10/02 [10:00]

#1 

“저 스스로 목숨 끊을 거예요”

119종합상황실에 접수된 다급한 신고. 대원들은 서둘러 현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초인종을 눌러도, 문을 아무리 두드려도 들리지 않는 인기척. 어떻게든 사망만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강제로 문을 열었는데… 너무나도 멀쩡한 신고자. 심지어 현관문 파손 비용을 요구했다.

 


#2 

한 건물 4층 거주자가 위급한 상황. 구조대원이 로프를 걸고 집 안으로 진입하다가 창문 방충망이 그대로 떨어져 나갔다. 하필 1층에 주차된 차량 위로 낙하한 방충망. 차량 소유자는 수리비를 청구했다.

 


#3 

전시관을 찾은 4세 남아가 에스컬레이터에 발이 끼어버렸다. 출동한 구조대원이 아이를 구출하는 과정에서 에스컬레이터 스텝이 망가졌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는 무사했지만 전시관 관계자는 소방에 수리비 청구서를 내밀었다.

 


#4 

차 안에 사람이 갇혔다. 스마트키를 연신 눌러보지만 먹통이다. 할 수 없이 119에 신고를 했다. 차량 소유자인 동시에 구조대상자의 보호자인 A 씨는 “장비를 써서 얼른 꺼내주세요”라며 독촉한다. 출동한 소방대원이 장비를 이용해 문을 열었다. 다행히 구조대상자는 크게 다치지 않았다. 그런데 차량 소유자가 돌변해 보수 비용을 요청했다.

 


#5 

화재 현장에 소방펌프차가 아닌 굴착기가 출동했다. 소방서가 ‘소방기본법’에 따라 소방활동 종사 명령을 내린 것. 이 굴착기는 잔불 정리와 잔해물 제거 등의 임무를 받았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쓰레기 더미 등을 옮기는 과정에서 굴착기 일부가 고장났다. 기사는 영업손실액 보전을 신청했다.

 

현장 소방대원이라면 한두 번쯤 겪었을 에피소드다. 시민을 구조하겠단 일념으로 나서지만 현장은 다양한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분명 선한 의도로 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불가피하게 시민 혹은 그 소유물에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소방대원은 억울한 면이 있다. 때론 터무니없는 민원에 상처를 입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피해를 본 시민 입장에선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아니겠는가.

 

소방청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7년 6월까지 소방대원이 적법한 소방활동을 하다 발생한 피해를 자비로 변상한 건 20건이다. 금액은 1732만원에 달한다. 

 

특히 2015년 전남의 한 소방대원은 땅속에 있는 벌집 제거를 위해 가스 토치를 활용했다가 불이 주변 임야로 번지는 바람에 1천만원의 피해를 입혔다. 이 대원은 변상금 전액을 개인 돈으로 냈다. 모기장을 망가뜨리거나 에어컨 실외기를 파손해 물어준 사례도 있었다. 

 

이에 소방청은 소방대원이 적극적인 현장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법적 안정성 제공에 나섰다. 지난 2017년 12월 26일 소방대원이 현장 활동을 하다 피해를 본 시민에게 적절한 보상을 하는 ‘손실보상제도’를 도입했다.

 

소방청 조사 결과 2020년부터 올해 6월까지 손실보상 건수는 2020년 50, 2021년 63, 2022년 67, 2023년 105, 2024년 108, 2025년 65건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시도별로 보면 서울이 121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경기 115, 부산 29, 인천 28, 경남 23, 강원 21, 대전 18, 대구 18, 충북 16, 경북 14, 충남 11, 광주 8, 전북 8, 창원 8, 전남 7, 제주 6, 울산 4, 세종 3건 등이다.

 

지급액 역시 2020년 2922만9940원, 2021년 4249만8860원, 2022년 4448만7090원, 2023년 1억1386만4920원, 2024년 1억3378만6975원, 2025년 5008만7670원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사례들은 제각각이다. 지급과 기각 등을 결정하는 데 무척 애를 먹은 경우도 많았다. 각 시도 소방본부 담당자 사이에서 지침과 같은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에 소방청은 최근 ‘손실보상제도 운영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가이드라인엔 손실보상 인용 요건과 지급ㆍ기준 실제 사례, 손실보상 처리절차 등의 내용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됐다.

 

앞서 살펴본 다섯 건의 사례, 과연 모두 보상받았을까. <119플러스>가 손실보상제도 운영 가이드라인을 낱낱이 살펴봤다.

 

어디까지 보상해주는 거예요? 손실보상제도 A to Z

손실보상 처리절차는 어떻게 될까. 

 

적법한 소방활동으로 인한 손실이 발생했다. 청구인이 소방서에 보상금 청구서를 접수한다. 소방서는 이를 시도 소방본부로 이송하고 현장지휘관이 사실조사 확인서 등을 작성ㆍ검토한다. 소방본부는 청구인에게 손실보상 절차가 개시됐음을 통보한다.

 

손실보상청구금액이 100만원 이하면 소속 소방공무원 3명이 심의한다. 100만원을 초과하면 5~7인으로 이뤄진 손실보상심의위원회(성별 고려해 과반수는 외부위원으로 위촉)가 운영된다.

 

위원회는 과반수가 출석하면 개의한다. 그중 과반수가 해당 행위의 적법성과 인과관계 등을 고려해 보상금액 지급 등에 동의하면 최종 확정된다. 결정일로부터 10일 이내에 청구인에게 통지하고 30일 내로 보상금을 지급한다.

 

▲ 손실보상 처리 절차

 

각 시도 소방본부는 ‘손실보상금’ 항목으로 매년 적게는 500만원에서 많게는 3천만원까지 예산을 편성한다. 초과분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충당한다.

 

소방청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해 6월까지 5년 반 동안 손실보상 청구 건수는 총 662건이다. 이 중 458건이 실제 보상으로 이어졌다. 10건 중 7건만 인용된 것.

 

그럼 어떤 경우에 손실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다음의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소방활동을 한 자가 시도 소방본부 소속 소방대원이어야 한다. 의용소방대원도 허용한다. 즉, 개인이 소방활동을 하다 다친 경우엔 보상받을 수 없다. 다만 소방본부장 또는 소방서장이 현장에 있는 사람에게 소방활동 종사 명령을 하던 중 죽거나 다친 경우엔 가능하다.

 

둘째, 소방대의 직무집행이 ‘적법’해야 한다. 고의 또는 과실로 발생한 피해는 손실보상 대상에서 제외된다.

 

셋째, 직무집행과 손실 발생 간에 인과관계가 존재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한 소방대원이 A 주택 화재를 진압하고 있었는데 인근 주민이 A 주택 근처의 B 주택 유리창을 파손했다. B 주택 관계자가 보상을 청구하더라도 들어줄 의무는 없다.

 

넷째, 손실 당사자가 청구하고 그 당사자에게 지급함이 원칙이다. 다만 소유자가 치매거나 고령으로 인해 가족이 위임받아 손실보상을 청구할 때 등 사안에 따라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다섯째, 청구인에게 손실 발생 원인에 대한 책임이 없어야 한다.

 

다음의 사례들을 보자.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119 신고. 응답이 없어 장비로 도어락을 뜯고 들어갔다. 멀쩡한 피의자가 돌연 보상을 요구한다. 손실 발생의 원인 책임이 청구인에게 있기에 불인정된다. 

 

한 전시관 에스컬레이터에 4세 남아의 발이 끼었다. 구조과정에서 에스컬레이터 일부가 파손됐다. 전시관 관계자가 보상을 요구한다. 인정되지 않았다. 에스컬레이터의 유지ㆍ관리 책임은 전시관에 있고 손실 발생이 시민의 부주의로 발생했기에 기각.

 

상점 수족관에서 물이 새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전기합선 등 화재 우려로 경찰이 공동대응을 요청했다. 소방은 즉시 출동해 단전ㆍ단수 조치를 했다. 이로 인해 관상어(가오리) 10마리가 폐사했다.

 

그러자 주인이 보상을 청구했다. 역시 기각이다. 수족관 관리 책임은 주인에게 있고 무엇보다 소방대원의 단전ㆍ단수 조치와 가오리 죽음과는 명확한 인과관계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아이가 차에 갇혔다는 신고로 현장에 출동했다. 보호자(차량 소유자) 동의하에 강제로 문을 개방하고 구조했다. 시간이 흐른 후 차량 수리비를 청구했다. 차량 소유자가 원인책임자이면서 파손 가능성에 동의했기에 기각이다.

 

반대로 보상이 인정된 예도 있다. 구급대원이 가변형 들것으로 환자를 이송하던 중 계단 난간을 파손시켰다. 이런 상황에선 청구인에게 수리비가 지급된다. 또 세대 내 진입 중 창문의 방충망이 아래로 떨어져 차량이 손실되자 수리비를 청구한 차량 소유주에게는 지급된다.

 

여섯째, 재산상 또는 생명ㆍ신체상 손실이 발생해야 한다. 주택화재 당시 소방은 민간자원(굴착기)을 요청했다. 굴착기가 현장에 접근하려는데 도로 통행이 막혀 인근 논밭으로 진입했다. 이 과정에서 농지가 훼손됐다. 소유주가 복구를 위한 장비와 농기계 사용료를 청구했다. 당연히 지급된다.

 

또 소방활동 종사 명령으로 출동한 굴착기가 잔해물 제거중 파손돼 영업손실액 보전을 요구하면 이 역시도 지급 대상이다.

 

이 밖에도 같은 청구 원인으로 이미 손실보상금을 받았을 땐 중복 지급하지 않는다는 점과 손실보상은 손실이 있음을 안 날부터 3년, 손실 발생일부터 5년 이내에 청구해야 한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실수까지 보장”… 손해배상제로 개인 변상 막는다

정당한 소방활동 중 벌어진 일이라면 응당 조직에서 손실을 책임져 준다. 하지만 소방대원의 과실이나 부주의가 명확하다면 당사자가 변상해야 할까? 이 또한 걱정하지 말자. ‘손해배상제도’가 있다.

 

각 시도 소방본부는 매년 한국지방재정공제회 등과 행정종합배상공제를 계약한다. 행정종합배상공제는 지방자치단체 소속 소방공무원의 업무상 과실 등이 발생했을 때 공제를 통해 제삼자 배상책임을 보상하는 제도다.

 

공무 수행으로 피해를 본 국민이 배상을 청구하면 소속 소방본부에서 한국지방재정공제회에 사고를 접수한다. 이후 손해보험사에서 현장조사를 진행해 처리하고 배상금을 지급한다.

 

1인당 공제회비는 연 1만6500원(2025년 기준)으로 민사사고는 사고당 최대 5억원, 형사사고는 사고당 최대 5천만원을 보장한다. 

 

게다가 ‘소방기본법’에는 화재나 구조, 구급 등 소방활동 중 타인을 사상에 이르게 했을 때 불가피한 소방활동이었고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다면 형사책임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는 근거가 명시돼 있다.

 

소방청 관계자는 “손실보상제도와 손해배상제도가 운영 중인데도 일부 소방대원, 시민, 언론 등에서 헷갈려 하는 부분이 많아 손실보상제도 운영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며 “소방활동 중 발생한 불가피한 손실ㆍ손해에 대해선 소방공무원 개인이 보상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소방공무원이 재난 현장에서 안심하고 활동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박준호 기자 pakrjh@fpn119.c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10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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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소방조직 미래 ‘새내기 소방관’ 교육, 전면 개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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