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119] “국민이 안심하려면 먼저 소방관이 건강해야 하지 않을까요”권지운 국립소방연구원 안전정책연구과 보건연구관
“현재 소방관의 건강을 지키려면 가장 시급하게 다뤄야 할 부분이 ‘마음 건강’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방관이 안전하게 국민을 지킬 수 있으려면 먼저 그들의 정신적 안전망이 단단히 구축돼야 합니다”
지난 2022년 7월 국립소방연구원에 임용된 후 소방관의 건강과 환경 개선을 주제로 연구를 이어오고 있는 권지운 안전정책연구과 보건연구관.
그는 화재 현장에서 발생하는 발암물에 대한 노출, 소방관의 신체와 개인보호장구 오염 관리, 소음 노출 등 복합적인 건강 위험요인 관련 건강 영향을 조사ㆍ분석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ㆍ기술적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권 연구관은 국립소방연구원 이전에 20년간 각종 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의 보건환경과 건강 증진을 위한 연구를 수행한 이력이 있다. 고위험 직종 근로자의 건강 문제에도 큰 관심을 가져왔다.
“소방관은 국민을 위해 누구보다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면서도 정작 본인의 건강은 충분히 보호받지 못한다는 현실이 늘 마음에 걸렸어요. 그간 쌓아온 지식과 경험이 소방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국립소방연구원으로 오게 됐습니다”
국립소방연구원으로 자리한 후 그는 소방관의 신체ㆍ정신적 건강을 위한 연구를 지속했다. 신임 소방공무원에 대한 환경보건 코호트 연구를 비롯해 비화재 상황에서 소방관의 유해물질 노출 가능성 확인을 위한 연구,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과 함께 소방관 청력 보호 연구 등을 진행했다.
이 중 그가 가장 뜻깊게 생각하는 연구는 2024년 ‘소방서와 차량, 개인보호장비에서의 발암물질 오염에 관한 연구’다. 당시는 소방서와 차량, 개인보호장비가 화재 현장의 유해물질로 인해 오염된다는 일반적인 인식은 있었지만 어떤 곳이 얼마나 오염됐는지를 확인한 적은 없던 시기다.
이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 소방서의 사무실과 대기실, 차고지, 차량의 실내, 보호장구가 유해물질에 광범위하게 오염돼 있음을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구체적인 수치로 확인했다. 상대적으로 높은 농도의 유해물질로 오염된 구역을 식별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이 결과는 소방청이 전문업체를 통해 소방차량 내부를 청소하는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는 데 중요한 과학적 근거가 됐어요. 올해 경기도와 충청남도 지역의 119안전센터를 대상으로 소방청사의 오염 실태에 대한 조사를 확대하고 유해물질 노출 저감을 위한 지침을 개발해 현장 적용을 유도할 계획입니다”
소방관들이 활동하는 화재 현장은 건축 자재 등 다양한 연소물에 따라 수백 가지가 넘는 화학물질이 한꺼번에 발생한다. 이 유해물질들은 연기나 그을음, 먼지 형태로 공기 중에 퍼질 뿐 아니라 바닥이나 장비 표면에도 쉽게 달라붙는다. 일부는 단기적으로 기침ㆍ인후통 같은 호흡기 증상, 눈ㆍ피부 자극, 두통ㆍ어지럼증을 일으키고 심하면 급성 중독이나 사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실제 2022년 7월 국제암연구소(IARC)는 소방관 직업을 인체 발암성이 충분히 입증된 그룹 1 발암 요인으로 분류했다. 특히 중피종, 방광암과 관련이 뚜렷하다고 평가했다. 또 대장암과 전립선암, 고환암, 피부 흑색종, 비호지킨 림프종은 암 발생의 제한적 증거(그룹 2B)가 있는 거로 보고됐다.
“소방관의 건강을 지키려면 무엇보다 근무 중 유해인자 노출 감소 노력과 노출 이후 체계적 건강관리 강화가 동시에 이뤄져야 합니다. 사전 예방과 사후 관리의 두 축이 함께 맞물려 돌아가야 성과를 낼 수 있죠. 현장 데이터를 근거로 한 연구가 정책을 뒷받침하고 정책적 지원이 다시 연구와 현장 개선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최근 권지운 연구관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건 소방관의 마음 건강이다. 극한 상황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마주하며 생기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단순한 스트레스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볼 때 우울증이나 대인관계의 어려움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심하면 극단적 선택까지 초래할 수 있다.
“많은 소방관이 ‘정신건강 문제를 드러내면 약해 보인다’는 시선 때문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곤 합니다. 이 부분이 반드시 바뀌어야 해요. 개선하려면 자신의 어려움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높은 심리적 안정감의 조직뿐 아니라 직원 간에 신뢰 문화를 구축해야 합니다. PTSD와 자살 위험요인을 조기 발견할 수 있는 체계적인 연구와 선별검사, 맞춤형 지원 프로그램도 필요하겠죠”
권 연구관은 ‘소방관 건강 빅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고 싶다는 목표를 품고 있다. 화학물질이나 스트레스 등 유해인자에 대한 노출 이력 데이터를 구축하고 이를 건강 데이터와 연계해 분석함으로써 소방관의 직무와 질병 관련성을 과학적으로 밝혀내고 싶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소방서 차원에서 체계적인 보건관리가 이뤄지도록 매년 전문가가 현장을 방문해 지도ㆍ점검, 조언하고 소방관들이 건강에 대해 상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 한다. 현장에서 직접 배우고 소방관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해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살아 있는 연구야말로 그의 이상향이다.
“궁극적으로는 세계적 수준의 소방관 건강 보호 체계를 만들고 싶습니다. 소방관의 건강은 개인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안전의 문제와 직결되니까요. 국민이 안심과 일상을 지키려면 먼저 소방관이 건강해야 하지 않을까요?”
유은영 기자 fineyoo@fpn119.c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10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Hot!119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