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조명] 한반도 휩쓰는 ‘괴물 산불’… 전문가들 “대응 패러다임 바꿔야”민홍철ㆍ김정호 의원 주최, ‘산불 예방ㆍ진화ㆍ복구 원스톱 시스템’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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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월 31일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대형 산불재해 예방ㆍ진화ㆍ복구 원스톱 시스템 구축 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 김태윤 기자 |
[FPN 김태윤 기자] = ‘산불 포비아’가 전국을 잠식한 가운데 현 산불 대응체계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진단하고 예방ㆍ진화ㆍ복구 전반에 걸친 근본적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국회 토론회가 마련됐다.
지난달 31일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더불어민주당 민홍철(경남 김해갑)ㆍ김정호(경남 김해을) 의원이 공동 주최한 ‘대형 산불재해 예방ㆍ진화ㆍ복구 원스톱 시스템 구축 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엔 주최 의원들과 같은 당 신정훈 의원(전남 나주ㆍ화순, 행정안전위원장), 국민의힘 이종배 의원(충북 충주), 조국혁신당 차규근 의원 등 여야 국회의원들을 비롯해 산불 관련 공무원과 기관ㆍ단체, 학계 인사 등 100여 명의 분야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민홍철 의원은 “산불 관리 정책이 더 이상 단편적인 대응에 머물러선 안 된다”며 “산불 발생을 사전에 감지ㆍ차단하는 예방 단계부터 신속ㆍ효율적 진화, 회복력을 갖춘 복구체계까지 전 과정을 원스톱 시스템으로 통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호 의원은 “산불 현장에서 지휘체계의 일관성과 정보 공유의 효율성을 어떻게 높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건 물론 예방부터 복구까지 전 주기를 포괄하는 전략적 접근 방향에 대해서도 폭넓게 논의해야 한다”며 “국회 산불피해지원대책특별위원장으로서 입법과 정책의 영역에서 실질적 대안을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공언했다.
![]() ▲ ‘대형 산불재해 예방ㆍ진화ㆍ복구 원스톱 시스템 구축 방안 토론회’ 참석자들이 단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김태윤 기자 |
이날 발제자로는 ▲황정석 산불정책기술연구소장(산불정책 실태 및 제도개선 방안) ▲장재영 (주)김앤장산림 사내이사(대형 산불 복구 방안) ▲방기성 한국방재협회장(산불 대응 지휘체계 개선 방안) ▲이병석 순천향대학교 교수(군집 투하형 산불진화드론 도입) ▲이환호 (주)클레비 대표(AI 기반 화재 관제 시스템) ▲권춘근 국립산림과학원 산불연구과 박사(첨단 기술을 활용한 산불재난 관리) 등이 나섰다. 이어진 토론엔 농촌진흥청ㆍ국립공원연구원 관계자와 대학 교수, 산림기술사 등이 참여했다.
<FPN/소방방재신문>이 이날 발제자로 나선 인물들의 주요 발언을 정리했다.
“왜곡된 산불 통계로는 실효적 대책 나올 수 없어”
![]() ▲ 황정석 산불정책기술연구소장 © 김태윤 기자 |
황정석 소장은 기관별 산불 통계 관리 실태와 주요 산불 예방 정책, 대응체계상의 문제점 등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가장 먼저 그는 관계자 인식에 따라 달라지는 산불 통계 관행에서 벗어나 원칙과 시스템에 의한 산불 통계 관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에 따르면 2010년 이후 산불 통계를 놓고 봤을 때 소방청과 산림청은 산불 발생 건수에서 연평균 약 5배에 달하는 집계 차이를 보인다. 특히 2017년을 기준으로 산림청 통계에선 그 전보다 이후의 연평균 발생 건수가 약 52% 증가한 반면 소방청 통계에선 48% 감소했다.
이 같은 통계적 차이는 ‘산불’과 ‘산불 외’를 구분하는 산림청과 달리 소방청은 ‘산불 외’까지 ‘임야 화재’로 분류ㆍ포함하기 때문이라는 게 황 소장 진단이다. 반면 미국의 경우 자연 지역(숲, 초지, 관목지)에서 발생한 모든 형태의 화재와 계획된 산림 소각까지 포괄하는 국제 표준 용어 ‘와일드랜드 파이어(Wildland Fire)’를 사용해 산불을 다룬다.
황 소장은 “산불은 산에서 난 불로만 다룰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 언제든 인접한 불이 산으로 올라갈 수 있다”며 “통계가 왜곡되면 그 안의 원인 자체가 다 틀어지는데 이에 맞춰 대응책을 마련하니 그게 맞을 리가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산불과 임야 화재를 소방청 국가화재통계시스템으로 일원화해 산불 통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며 “일단 통계부터 바로잡지 않으면 그 어떤 실효적인 대책도 나올 수 없다”고 지적했다.
산불 대응체계를 소방으로 원스톱화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산불 발생 시 초기 대응 단계에선 관할 소방서장, 확산 저지 단계에선 관할 소방본부장, 총력 대응 단계에선 소방청장이 지휘권을 행사해 대응의 일관성과 효율ㆍ신속성을 확보하자는 주장이다.
그는 “소방서장과 소방본부장, 소방청장은 모두 한 줄기다. 특수직 공무원들은 일사불란한 대응 태세를 위해 이런 지휘ㆍ계급체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초 단위로 움직이는 산불 상황에서 복잡한 현 지휘체계에 맞게끔 여러 조건을 따져가며 지휘권이 누구한테 있는지 계산하고 있는 사람들은 정말 머리가 좋은 것 같다”고 꼬집었다.
“산림재난 복구 매뉴얼, 사유림 재산 관리 방안 수립 시급”
![]() ▲ 장재영 (주)김앤장산림 사내이사 © 김태윤 기자 |
장재영 이사는 실제 대형 산불 피해지 사례를 중심으로 현행 복구체계를 짚어보며 개선 방안을 제안했다. 특히 발간된 지 20여 년이 된 산림청 ‘산불 피해지 복구 매뉴얼’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산림 복구는 일반적으로 피해 정도와 경사, 토양형, 임지 생산력 등을 고려해 실시되지만 문화재 보호구역 등 특수 조건을 제외하면 일률적인 복구 의사 결정 패턴을 보이고 있다”며 “지침을 세워 큰 틀은 가져가되 현실 조건에 맞는 표준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불 피해 사유림에 대한 재산 관리 방안 수립이 시급하다고도 지적했다. 그는 “울진 산불의 경우 사유림 피해지에서 송이를 캐는 사람들이 보상을 받으려고 했지만 송이 채취를 감추고 있었기에 재산피해로 집계되지 않은 사례가 있었다”며 “이런 부분들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사유림 재산 관리 방법이 수립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산림청 국가산불위험예보시스템의 고도화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에 따르면 현재 국가산불위험예보시스템 접속 시 표출되는 건 ‘산불위험등급’과 ‘대형산불위험예보’, ‘소각산불징후예보’, ‘날씨예보’, ‘레이더영상’, ‘위성영상’ 등 6개 정보뿐이다. 그나마도 지도 이미지로만 표시돼 있어 특정 지역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찾기 어렵다.
그는 “국가산불위험예보시스템을 활용하려고 해도 뭘 봐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겠다”며 “간단하게 볼 수 있는 건 물론 긴급 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편해야 한다”고 했다.
“단일 기관이 산불 지휘 맡는 건 불합리, ‘합동지휘’로 나아가야”
![]() ▲ 방기성 한국방재협회장 © 김태윤 기자 |
방기성 회장은 우리나라 산불 대응 지휘체계의 실태를 두고 통합지휘체계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놨다.
방 회장에 따르면 우리나라 산불 대응 지휘체계는 산림청과 소방청, 지자체 간 지휘권 중첩으로 인해 혼선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각 조직이 독립적으로 지휘권을 행사하고 상황 보고체계가 분산돼 실시간 협업이 어려운 건 물론 인력ㆍ장비 동원이 중복ㆍ누락되는 등 자원 배분상의 비효율이 발생하고 있다. 사고 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에 그는 통합지휘체계 기반 산불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통합지휘체계는 기관별 지휘관이 협의를 통해 공동으로 지휘하되 모든 결정이 합의로만 이뤄지면 의사 결정이 지연될 수 있어 조율자 또는 총괄지휘자를 두는 체계다. 국군의 합동참모본부와 유사한 시스템이라는 게 방 회장 설명이다.
방 회장은 “최근 산불 현장들에서 드러난 지휘체계상의 문제점 탓에 일각에선 소방 중심 대응의 필요성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면서도 “단일 기관으로 지휘권을 명문화하는 건 불합리한 발상”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그러면서 “현장 지휘권을 특정 기관에 공식적으로 일임하지 말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지휘체계를 활성화할 수 있는 통합지휘체계의 합동지휘 개념을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드론ㆍAI 도입으로 산불 대응체계 혁신해야”
![]() ▲ 이병석 순천향대학교 교수 © 김태윤 기자 |
이병석 교수는 군집 투하형 산불진화드론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교수가 구상한 군집 투하형 산불진화드론은 산불을 초기에 진화하거나 잔불을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최대 16개의 소화볼을 탑재한 드론을 수십에서 수천 대까지 군집 운용하는 형태다.
이 교수에 따르면 드론은 전국 산림 지역에 분산 배치할 수 있어 초기 진화 골든타임을 확보하는 데 유리하다. 진화 인력의 인명피해를 원천 차단하는 건 물론 야간이나 악천후에서도 즉각적인 대응을 기대할 수 있다. 또 저고도ㆍ정밀 운용이 가능해 도심으로의 확산 차단과 문화유산 보호에 효과적이다.
이 교수는 “유인 항공기나 헬기, 인력에 의존한 방식은 고비용ㆍ고위험이고 기상 제약 등 구조적인 문제가 존재한다”며 “경제성 측면에서도 유인 항공기 10대와 유인 헬기 10대를 구매해 10년간 운용할 비용이면 같은 기간 드론 4만6000대를 도입ㆍ운용하는 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 ▲ 이환호 (주)클레비 대표 © 김태윤 기자 |
또 다른 발제자인 이환호 대표는 AI 기반 화재 관제 시스템을 소개하고 산불 현장에서의 적용성을 분석했다. 이 대표에 따르면 현재 산림청 등 여러 관계 기관은 정지궤도 IR과 산악 CCTV, 드론, 기상ㆍ연료ㆍ지형 GIS 등을 활용해 산불을 감시한다. 문제는 분석 작업을 사람이 직접 한다는 점이다.
이 대표는 “인력을 24시간 모든 위치에 빈틈없이 배치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실상 그건 어렵다. 또 사람이다 보니 실수를 하게 된다”며 “데이터를 합성해 산불을 분석하고 진화 자원 배치 자동화를 통해 최적 파견안을 도출하는 등의 방식으로 AI 도입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첨단 기술 기반 산불 통합관리 시스템 구축 필요”
![]() ▲ 권춘근 국립산림과학원 산불연구과 박사 © 김태윤 기자 |
권춘근 박사는 “AI와 위성, 드론, 사물인터넷(IoT), 디지털 트윈, 클라우드 플랫폼 등 첨단 기술 기반의 재난 관리 혁신이 필요하다”며 산불 통합관리 시스템 구축 방안을 예방ㆍ대비ㆍ대응ㆍ복구 단계로 나눠 제시했다.
예방 단계에선 연료량 모니터링 체계 구축을 첫손에 꼽았다. 이는 라이다(LiDAR) 기반 3차원 지형ㆍ식생 데이터로 연료량을 정량화하고 위성ㆍ드론 영상을 AI로 분석해 연료 집중 위험 지역을 실시간 경고하는 체계다.
대비 단계에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통합지휘체계 구축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봤다. 대응기관 간 정보 공유 지연과 혼선을 방지하기 위해 산불통합지휘본부를 디지털 플랫폼으로 전환하고 행정안전부와 산림청, 소방청, 지자체 간 공동상황판을 클라우드로 연계하는 방안이다.
대응 단계에선 산불 조기 탐지와 확산 예측 기술 고도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위성, 드론, 지상 센서 등 감시 자원을 통합한 다중 감시체계를 구축하고 NASA 모디스(MODIS)와 우리나라 천리안 위성에서 수신한 영상 정보를 저고도 드론 영상과 융합해 산불 탐지 정밀도를 높이는 방식을 제안했다.
또 산불이 확대됐을 땐 지형과 풍속, 풍향, 식생 정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물리 기반 산불 확산 예측 모델 활용해 불길의 이동 경로를 실시간 예측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확산 경로에 따라 헬기ㆍ인력 투입 위치를 자동 권고하는 시스템 운용도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복구 단계에선 “디지털 트윈 기술을 활용해 토양 상태와 피해 유형, 식생 재생력 등을 고려한 최적의 산림 복원 모델을 설계해야 한다”고 했다. 스마트 드론을 활용한 자동화 묘목 파종 기술로 피해 지역에 적합한 수종을 효과적으로 식재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권 박사는 “기존 진화 중심 대응체계로는 산불이라는 복합재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며 “관련 R&D 투자 확대와 민ㆍ관 협력 운영 플랫폼 구축, 법ㆍ제도적 기반 정비 등을 통해 실질적 기술 기반의 산불재난 관리체계를 마련해야만 국민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태윤 기자 tyry9798@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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