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 강화 숙명 놓인 배관 보온재… 표면만? 심재까지? 시험법 놓고 ‘갑론을박’천장 타고 번지는 대형 화재 주범 배관 보온재, 수술 나선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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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 화재 현장 © 차량 블랙박스 캡처 |
[FPN 박준호 기자] = 대형 화재 주범으로 지목되는 배관 보온재와 관련해 소방청이 소화배관의 내화성능 규정 정비에 나선 가운데 보온재 시험방법을 두고 분야 내에서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화재 안전 담보를 위해 심재까지 시험해야 한다는 주장과 배관을 감싸는 만큼 겉면 평가 방법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의견이 교차한다. 이에 따라 건축자재 화재시험을 관장하는 국토교통부의 시험기준 정비 방향이 보온재의 향후 화재안전성을 가르는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건축물엔 급ㆍ배수와 냉ㆍ난방, 소화수 공급 등을 위해 각종 배관이 구축된다. ‘건축물의 에너지절약설계기준’에 따라 이러한 배관에는 열 손실과 결로방지 등을 위해 보온 조치를 해야 한다. 배관 보온재로는 그라스울 등 무기질과 폴리에틸렌(PE), 고무 발포 등 유기질 보온재가 주로 쓰인다.
그러나 최근 내화성을 확보하지 못한 보온재로 인한 화재 확산 사례가 이어지면서 제도개선 필요성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2021년 천안 불당동 지하주차장, 지난해 8월 인천 청라 지하주차장, 올해 2월 부산 반얀트리 리조트 화재 등은 불에 취약한 보온재 때문에 피해가 커졌다.
특히 인천 청라 화재 당시 배관 보온재를 삼킨 불씨가 마치 ‘불비’처럼 쏟아지는 장면이 매스컴을 통해 보도되면서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위험성이 알려지자 소방청 등 정부는 배관 보온재의 난연성능 관련 규정을 강화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행법상 화재안전성을 갖추도록 한 배관은 소화배관뿐이다. 그나마 있는 이 규정도 ‘건축법’상 정한 ‘난연재료’ 성능에 비해 현저히 낮은 실정이다. 실제 여러 화재사고에서 문제를 일으킨 보온재가 모두 이 시험을 통과했다.
소방청은 이런 문제를 고치기 위해 소화배관 보온재 규정을 ‘건축법령 상 난연재료’ 기준으로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기존 KS 기준 등에 따라 난연성을 인정받던 제품이 ‘건축자재등 품질인정 관리기준’ 내 강화된 규정을 적용받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새롭게 바뀔 예정인 해당 시험방법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작은 시편 위에 복사열을 일정 시간 동안 아래로 내리쬐는 식으로 난연성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관련 업계에선 보온재의 심재까지 난연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과 표면만으로도 화재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의견이 충돌한다.
A 업계 관계자는 “일부 배관 보온재는 표면에 알루미늄 재질의 외피재를 부착한다”면서 “이럴 경우 한 면만 테스트하기에 심재가 가연성이더라도 통과하는 허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배관 보온재는 시간이 지나면 틈이 벌어지는데 불꽃이 이 내부로 들어가면 홀랑 다 타버린다”며 “샌드위치 패널이나 외벽마감재료는 단열재 자체가 준불연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배관 보온재도 심재까지 화재 안전성을 시험해야 근본적인 화재 예방책이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다른 업계는 정반대의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배관 보온재 겉면에 난연성을 갖춘 외피재를 부착하는 데다가 마감 테이프까지 감싸기에 불이 내부로 파고들 틈이 없다는 주장이다.
B 업계 관계자는 “배관 보온재의 화재 안전성이 불거진 천안, 청라 지하주차장 사고는 모두 배관 내부가 아닌 표면을 타고 번졌다”며 “대부분의 건축자재가 이 시험을 준용하는데 모든 게 다 잘못됐다는 얘긴가”라고 반박했다.
전문가들은 심재의 재질을 떠나 보온재의 실제 설치 환경을 고려한 시험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면서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에서 채택 중인 실물모형시험 도입 필요성을 강조한다.
미국의 FM4924는 약 7.3m 길이의 수평 배관에 보온재를 감싼 뒤 가스버너로 점화해 10분 내 화염전파 여부를 평가한다. NFPA274는 가로 1.12, 세로 1.65m인 L자 형태의 강관에 보온재를 덧대 열방출률과 연기발생률, 화염의 길이, 평균온도 등을 측정한다. 유럽의 NT FIRE 036도 금속파이프에 배관 보온재를 설치해 내화성능을 테스트한다.
배관 보온재의 화재 안전성과 관련해 오랜 시간 연구해 온 유우준 경일대학교 소방방재학부 교수는 “시료 시험에서 난연성을 통과하더라도 외국 규정처럼 실물로 시험하면 열방출률이 크게 일어난다”며 “이는 시료 테스트 제품이 실제 화재 안전성을 담보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로 실모형 시험을 해야만 실제 성능을 검증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박계원 방재시험연구원 수석연구원(KS심사위원ㆍ공학박사)은 “소재 시편에 대한 화재 시험결과로는 화염전파, 플래시오버 등 공간 내에서 발생하는 화재환경의 특이성을 판단하기에 미흡하다”며 “배관 보온재가 현장에 수평 또는 수직으로 길게 시공되는 만큼 화염전파를 보기 위한 실모형 시험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해권 한국안전인증원 이사장(소방기술사, 경기대학교 공학대학원 소방ㆍ방재 전공 교수)도 “현재 배관 보온재로 쓰이는 일부 제품이 외국의 실모형 시험에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실모형 시험을 시급히 도입해야 실질적인 화재안전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준호 기자 parkjh@fpn119.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