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talktalk] “지휘관은 계급이 아니라 경험이 만든다”소방 전반의 과학화로 국민 보호 위한 소방서비스 제공해나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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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경험의 축적’이다. 어느 날 갑자기 계급이 오른다거나 교육 몇 번으로 지휘관의 역량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우리 조직은 지휘관의 역량에 따라 현장대응에 많은 차이가 날 수 있다. 초급 간부부터 각 단계에 맞는 보직을 충분히 경험하고 실력을 갖추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장부터 정책 업무까지 모든 경험이 몸에 녹아있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지휘를 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홍영근 서울소방재난본부장. 그는 소방 조직을 개인이 아닌 유기체로 본다. 조직의 모든 구성원이 하나로 연결된 이 유기체를 잘 관리하고 이끌 수 있는 그런 내실 있는 지휘관을 꿈꾼다.
1997년 9기 소방간부후보생으로 공직에 입문한 홍영근 본부장은 경기 의정부소방서 광적파출소장으로 소방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경기 여주소방서장, 전북ㆍ전남소방본부장, 소방청 장비기술국장ㆍ기획조정관ㆍ화재예방국장 등을 거쳐 2025년 9월 현재의 자리로 부임했다.
“화재가 발생하면 단순히 몇 시간 만에 진화했다는 보고로 끝나선 안 된다. 왜 인명피해가 났는지, 대응 메커니즘은 제대로 작동했는지, 예방할 순 없었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홍 본부장의 소방 철학은 명확하다. 사고가 발생하면 진압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때부터가 시작이라고 강조한다. 예방과 화재조사뿐 아니라 대응까지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 중 소방 과학화의 최선봉에 서야 하는 분야로 ‘화재조사’를 꼽는다.
“소방의 예방과 대응, 특히 화재조사가 과학이라는 생각은 늘 변함이 없다.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화재 원인을 규명해 특정 제품의 고유한 결함 같은 근원적 요인을 밝히는 게 중요하다.
단순히 개인의 부주의로 결론짓기보다 과학적 분석을 통해 실질적인 개선책을 이끌어내는 것이야 말로 소방서비스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훗날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고 원칙에 충실했던 “참 괜찮은 동료이자 지휘관이었다”는 평을 받고 싶다는 홍영근 서울소방재난본부장. 그를 <119플러스>가 직접 만나 소방관으로서의 인생사와 서울소방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소방에 입직한 지 어느덧 3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어떤 소방관으로 살아왔나.
우연히 들어선 소방의 길이었지만 지난 30년을 돌아보면 현장의 비극을 정책의 전환점으로 바꾸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해 온 시간이었다. 특히 소방청 화재대응조사과장 시절 겪은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와 밀양 세종병원 화재가 기억에 남는다.
이를 기점으로 범정부 화재안전 TF가 출범했고 요양병원이나 고시원에 소방시설을 소급 적용하는 등 우리나라 예방대책의 큰 전환점을 만드는데 일조할 수 있었다. 2018년 인천항 선박 화재를 겪으며 화물선에 대한 SOP(표준작전절차)를 제정하기도 했다.
2019년 강원 동해안 산불 땐 주민이 마을에 설치된 비상소화장치를 직접 활용해 마을로 번지는 불길을 막아냈다. 그 결과 전체 23채 중 19채를 온전하게 지켜냈다. 이 모습을 보고 국비 지원을 건의해 산림 인접 마을에 비상소화장치를 지속해서 확충해 왔다. 산불대응은 어느 한 기관의 주도가 아니라 관계기관의 협업이 필수라는 점을 깊이 인식하게 된 계기였다.
과학적인 화재조사와 기술 도입에도 앞장서 왔다. ‘수입 디젤차의 EGR(배기가스 재순환장치) 결함 메커니즘’을 밝혀내 제조사의 결함 인정을 끌어냈다. ESS(에너지저장장치) 발화 원인을 최초로 규명해 충전율 제한 등 안전기준을 정립하는 데도 힘을 보탰다.
고양 저유소 화재를 계기로 도입한 ‘대용량 포 방수시스템’ 역시 큰 보람이다. 전문가들의 이론적 뒷받침을 바탕으로 당시 기획재정부를 설득해 예산을 확보했다.
이 시스템은 대형 화재 진압이 주목적이지만 물을 멀리 쏘아 보내는 압력이 곧 물을 대량으로 빨아들이는 배수 역량과 직결되는 메커니즘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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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전천후 성능 덕분에 포항제철 침수 복구와 오송 지하차도 참사 현장에서 방대한 양의 물을 신속히 퍼내며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장비 고도화가 현장 대응력에 미치는 영향을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였다.
소방청 혁신행정담당관 시절 장비기술국을 신설해 K-소방산업을 지원하고 장비 고도화의 기틀을 마련한 점도 의미 있는 성과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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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소방재난본부로 자리한 지 반년 정도 됐다. 소회가 어떤가.
전남 등 도 단위에서도 근무해봤지만 서울은 확실히 다르다. 서울이라는 큰 도시에 걸맞게 아주 안정된 소방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게 가장 인상적이었다.
25개 자치구에 소방서가 촘촘하게 배치돼 있다 보니 큰 불이 나면 관할 구역을 따지지 않고 정말 ‘선택과 집중’을 해서 소방력을 쏟아붓는 모습이었다. 장비나 인력 운영 역량을 보며 서울소방의 저력을 많이 느끼고 있다.
그리고 불꽃 축제나 핼러윈, 연말 제야의 종 등 큰 행사를 치러보니 느낀 점이 많다. 이태원 참사 이후로 소방, 경찰이나 지자체 같은 재난관리 부서들이 이 같은 행사에서 정말 과잉 대응이다 싶을 정도로 촘촘하게 협업하고 있다.
앞으로도 대통령께서 강조하신 것처럼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과잉 대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인파 관리와 안전사고 예방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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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서울소방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정책이 궁금하다.
서울소방은 소방ㆍ안전분야에 로봇과 AI 등 첨단 기술을 도입ㆍ고도화해 복잡하고 다양한 대도심 재난 환경에 대응하고자 한다. 대표적으로는 화재순찰로봇과 4족 보행 로봇, AI 119 콜봇이 있다.
전국 최초로 도입한 전통시장 화재순찰로봇은 2025년 시범운영을 거쳐 올해 4개 전통시장으로 확대 운영한다. 로봇은 심야시간대에 자율주행으로 순찰하면서 고온 물체를 감지하면 관계인에게 실시간 경보를 전송한다.
이후 영상 분석을 통해 화재로 판별하면 자동으로 119 신고와 동시에 탑재된 분말소화기를 작동시켜 초기 진압을 시도한다.
4족 보행 로봇의 경우 지하 공동구 등 유해가스와 짙은 연기로 소방대원의 진입이 어려운 현장에 선제 투입한다. 이 로봇은 라이다(LiDAR) 장비와 8종 가스 측정기를 탑재해 실시간 위험 요소를 파악하고 인명을 검색할 수 있다.
나아가 통신 음영지역에서 영상이 끊김 없이 전송될 수 있도록 ‘Private 5G’ 기술 적용을 추진 중이다. 이를 통해 소방대원은 직접 위험에 노출되지 않고도 현장 정보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2025년 3월부터 전국 최초로 도입한 ‘AI 119 콜봇’ 운영도 강화한다. 대형 재난 시 신고 폭주에 대비하고자 채택한 이 시스템은 최대 240건의 신고를 동시에 응대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 실시간 사고 유형을 파악해 긴급 상황을 접수 요원에게 우선 연결해 주기도 한다. 이로써 통화 대기 없는 빠른 초기 대응과 현장 골든타임 확보가 가능하다.
이런 ‘첨단기술 기반 3대 혁신 사업’을 통해 전통시장의 화재 예방ㆍ초기 진압 체계를 강화하고 지하ㆍ밀폐구역 등 고위험 현장에서 활동 중인 대원의 안전을 확보함과 동시에 재난 대응의 효율성을 높여 나가겠다.
앞으로 소방 발전을 위해 가장 시급하게 변화해야 할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가장 먼저 ‘낡은 옷’부터 갈아입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쓰는 화재조사 분류체계가 2006년에 만들어졌다. 그때는 전기차라는 개념조차 없었을 때다.
AI와 빅데이터가 세상을 바꾸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도래했다. 데이터가 곧 정보고 권력인 지금 상황에 맞게 조사체계를 완전히 새로 정립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빅데이터를 쌓고 그걸 바탕으로 AI를 소방정책 전반에 활용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진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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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뒷받침할 기술 혁신과 규제 합리화도 절실하다. 현재 503억원 수준인 소방 R&D 예산을 최소 1천억원 이상으로 대폭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축물의 대형화와 복합화로 인해 기존의 인력 중심 점검 방식으로는 안전 관리의 정밀도를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예방 차원에서는 성능 위주 설계의 적합성을 AI가 정교하게 검증토록 하고 현장대응에서는 대원이 진입하기 곤란한 고위험 환경에 드론과 로봇을 선제 투입하는 등 실효성 있는 연구과제를 더 많이 발굴해야 한다.
이러한 기술적 뒷받침과 더불어 규제 환경의 전향적인 변화도 절실하다. 지금까지의 규제가 법령에 명시된 기준만을 허용하는 포지티브 방식이었다면 이젠 ‘금지된 것만 빼고 모든 것이 허용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틀을 바꿔야 한다.
안전의 기본 원칙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민간의 창의성과 신기술이 폭넓게 수용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래야만 우리 소방산업이 규제의 틀에 갇히지 않고 국가 전략 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난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기존 패러다임으로 소방행정을 이끌어 갈 순 없다. 전반적으로 혁신 전략이 필요하다. 이제 극한 호우 같은 이상기후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가 됐다. 싱크홀이나 디지털 정부 마비 같은 새로운 유형의 재난도 계속 터지는 추세다.
국민 기대치는 높아지는데 인구는 핵 개인화되면서 공공서비스에 대한 의존도가 더 커지고 있다. 이런 변화에 적응하려면 우리 조직도 단순한 대응을 넘어 문제 해결형 조직으로 혁신해야 한다.
이는 결국 현장 대원의 전문성 강화와 안전 확보로 완성돼야 한다. 지휘관들이 AI 참모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더 정확한 결정을 내리고 대원들의 생체 정보나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해 안전사고를 막는 기술이 현장에 녹아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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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소방활동 전반에 대한 ‘품질관리 제도’도 도입하고 싶다. 누구에게 책임을 묻거나 조직을 경직되게 만들려는 게 아니다. 국민이 기대하는 수준의 안전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 공직자로서 자세를 바로 세우고 내부 기준을 엄중히 가다듬자는 취지다.
소방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높은 만큼 그에 부합하는 전문성과 도덕성을 갖추는 건 우리의 당연한 책무다. 스스로에게 엄격할 때 비로소 재난현장에서 국민의 생명을 온전히 책임질 수 있는 당당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서울소방이 소방청과 긴밀히 협력하면서 무인 지능화 시대를 앞당기는 선도적인 역할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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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소방은 물론 전국에 계신 소방공무원 여러분께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과거 우리 소방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 위축됐던 시기도 있었으나 이젠 현장을 책임지는 당당함과 확고한 자존감을 가진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 일방적인 지시를 따르기보다 조직원 모두가 주인의식을 갖고 능동적으로 협력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길 바란다.
또 단순히 주어진 과업을 수행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각자의 분야에서 대체 불가능한 ‘스페셜리스트’로 성장해야 한다. 화재 진압, 구조, 구급 그 어떤 분야든 30년 뒤에는 그 분야 최고의 전문가가 되겠다는 명확한 목표를 가졌으면 한다”
신임자 교육에 갈 때마다 항상 하는 말이다. 요즘 MZ 세대와의 문화 충돌도 없지 않으나 ‘나’만 우선하기보다 서로를 배려하는 조직문화가 필요하다. 현재의 안락함에 안주하지 말고 AI나 로봇 시대의 변화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여 미래를 주도하는 소방관이 돼야 한다.
특히 요즘 신입 직원들은 누구보다 지식이 많다. 그러나 선배들에게는 그들이 갖지 못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지혜’가 분명히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 소방은 지식과 지혜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조직이 돼야 한다.
끝으로 훗날 내 자식이 직장을 선택할 기로에 섰을 때 “소방이라는 조직은 네 인생을 걸 만한 가치가 있다”고 자신 있게 추천해 줄 수 있는 그런 조직문화를 함께 만들어가고 싶다.
119플러스 독자를 비롯한 국민 여러분께 한 말씀 부탁드린다.
소방 조직에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주시는 국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이런 지지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항상 국민의 관점에서 한 번 더 고민하면서 정책을 추진하겠다.
앞으로도 체계적인 교육ㆍ훈련과 첨단 기술 등을 통해 재난을 선제 예방하고 발생한 재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도록 노력하겠다. 또 재난 취약계층이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항상 낮은 곳에서 소통하며 세심한 안전서비스를 제공하겠다.
소방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다. 이런 목적 달성을 위해선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을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약속드린다.
국민 여러분께서도 생활 속 안전수칙을 준수해 주시고 소방차 통행로ㆍ소화전 부근 불법 주ㆍ정차 금지, 비응급 신고 줄이기 등을 통해 긴급 상황에 직면한 주변 이웃을 배려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유은영 기자 fineyoo@fpn119.c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6년 3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