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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⑤/대전 안전공업 화재] ‘블랙박스’ 없는 P형 수신기… “대한민국 소방시설 민낯 드러냈다”

안전공업 수신기, 작동 이력 안 남는 구식 ‘P형’… 고의 차단 수사는 ‘깜깜이’
조작 기록 증발에 경찰은 진술ㆍCCTV 전적 의존… 완벽한 ‘알리바이’ 되나
3천원짜리 깡통 감지기가 부르는 오작동과 고의 차단, 사고 때마다 ‘반복’
비용과 타협한 후진국형 소방 현실… “제도적 장치 마련으로 뼈대 고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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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 최누리 기자 | 기사입력 2026/03/30 [23:03]

[집중취재⑤/대전 안전공업 화재] ‘블랙박스’ 없는 P형 수신기… “대한민국 소방시설 민낯 드러냈다”

안전공업 수신기, 작동 이력 안 남는 구식 ‘P형’… 고의 차단 수사는 ‘깜깜이’
조작 기록 증발에 경찰은 진술ㆍCCTV 전적 의존… 완벽한 ‘알리바이’ 되나
3천원짜리 깡통 감지기가 부르는 오작동과 고의 차단, 사고 때마다 ‘반복’
비용과 타협한 후진국형 소방 현실… “제도적 장치 마련으로 뼈대 고쳐야”

최영, 최누리 기자 | 입력 : 2026/03/30 [23:03]

▲ 지난 2023년 6월 16일 옥상 집진기 화재 당시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이 촬영한 안전공업 동관 2층 내부 © 용혜인 의원실, 소방 화재현장조사서


[FPN 최영, 최누리 기자] =74명의 사상자를 낸 대전 안전공업 화재 참사의 진상 규명이 ‘구닥다리 소방시설’의 벽에 부딪혔다. 소방시설의 작동 이력이 남지 않는 구형 ‘P형 수신기’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화재 당시 경보가 울렸다가 단 몇 초 만에 꺼졌다는 직원들의 진술이 확보됐지만 정작 과학적인 규명은 어려워 보인다. 누군가 고의로 경보를 차단했는지를 밝혀야 하는 경찰 수사에 짙은 안개가 낀 셈이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저가형 깡통 감지기’에 더해 진실을 밝혀줄 기록조차 남기지 못하는 ‘낡은 P형 화재 수신기’의 조합이라는 안전공업의 저급한 소방시설 수준이 확인되면서 대한민국 소방 제도의 후진성이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누가, 언제 껐나”… 블랙박스 없는 P형 수신기

화재 수신기는 건물 곳곳에 설치된 감지기가 보내는 신호를 받아 경보를 울리고 소방시설을 작동시키는 ‘두뇌’ 역할을 한다. 

 

소방청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용혜인 의원실(기본소득당)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대전 안전공업에 설치된 수신기는 작동 이력을 저장하는 기능이 아예 없는 구식 ‘P형 수신기’였다. 2014년 증축 과정에서 감지기 숫자와 장소를 늘리면서 새로 설치한 시스템이다.

 

▲ 소방청은 용혜인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서 ‘해당 공장에 설치된 수신기는 P형 1급 수신기로 로그기록이 저장되지 않아 확인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 용혜인 의원실


안전공업에 설치된 이 노후 P형 수신기는 단순히 불이 들어오고 벨을 울리는 원시적인 릴레이 방식에 불과한 시스템이다. ‘누가, 언제 스위치를 껐는지’ 기억하는 블랙박스(이벤트 로그 메모리)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이 ‘기록의 부재’는 대형 참사 이후 건축주 등 소유자 측과 관리자에게 완벽한 알리바이를 제공한다. “시스템 결함으로 울리지 않았거나 멈췄다”고 잡아떼면 경찰과 소방은 잿더미가 된 현장에서 그들의 고의적 과실을 입증할 데이터를 찾을 수 없어 수사에 난항을 겪게 된다. 전국 수십만 동의 노후 공장과 상가들이 여전히 이 위험천만한 ‘깜깜이 수신기’에 노동자와 시민의 생명을 맡기고 있다.

 

안전공업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 역시 현장 근로자들의 “경보가 울렸다가 5~30초 만에 꺼졌다”는 진술을 바탕으로 수신기 강제 조작 가능성을 조사 중이다. 하지만 명백한 근거를 확보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조대현 대전경찰청 광역범죄수사대장은 지난 26일 열린 수사 브리핑에서 “(화재 당시) 개인마다 체감하는 바가 달라 5~10초 또는 30초 정도 (경보가) 울렸다고 다르게 진술한다”면서 “현재 설치된 P형 수신기에는 로그 기록이 남지 않아 시스템상 확인이 어렵다”고 밝혔다.

 

▲ 지난 26일 경찰 수사 브리핑에서 조대현 광역범죄수사대장이 설명하고 있다.   © FPN


수신기 자체에 로그(기록)가 남지 않다 보니 수신기 고의 차단 등 과실 여부와 정확한 차단 시점을 밝히기 위해서는 오로지 관계자들의 기억(진술)이나 존재 여부가 불명확한 CCTV 영상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R형 수신기’ 썼다면 남았을 기록… 법 고치면 뭐하나

수신기는 크게 통신 방식과 기록 여부 등에 따라 P형과 R형으로 나뉜다. R형 수신기는 고유 통신 신호로 화재 발생 위치나 정보를 문자로 표출하고 경보가 언제 울렸는지, 누가 언제 정지 버튼을 눌렀는지 등 방대한 양의 이벤트 기록이 실시간으로 자동 저장된다. 

 

이 R형 수신기는 안전공업이 소방시설 적용 과정에서 기능과 안정성이 떨어지는 구식 일반 감지기를 설치했더라도 얼마든지 적용 가능했다. 그랬다면 수신기에 조작 기록이 고스란히 남았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다수의 건축물은 안전공업처럼 비용 절감을 위해 단순 접점 신호만 주고받아 기록이 남지 않는 구식 P형 수신기와 일반 감지기를 고집하는 게 현실이다. 법에서도 건축물의 위험성을 고려조차 하지 않고 아무런 강제를 하지 않아서다.

 

이 같은 ‘깜깜이 수신기’ 문제는 2024년 8월 7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 부천 호텔 화재 때도 똑같았다. 2022년 4월 영등포 고시원(2명 사망), 2018년 1월 밀양 세종병원(47명 사망), 2017년 12월 제천 스포츠센터(29명 사망), 2015년 1월 의정부 대봉그린아파트(5명 사망) 등 대형 화재 이면에는 모두 동일한 문제가 숨어있었다.

 


소방청은 이 같은 낙후된 수신기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지난 2016년(시행 2017년)에서야 P형 수신기에도 작동 이력이 남는 ‘기록장치’를 의무 탑재토록 소방용품 기술기준을 강화했다. 하지만 이미 설치된 수많은 건물은 낡고 기록조차 안 남는 수신기를 그대로 사용하는 실정이다.

 

깡통 감지기와 P형 수신기로 완성된 후진국형 소방시설

결국 대전 화재 참사는 소급 적용의 한계를 떠나 애초에 우리나라 소방 인프라가 지나치게 저렴하고 낙후된 시스템에 고착화돼 발생한 필연적 결과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오작동이 잦은 ‘깡통 감지기’가 시도 때도 없이 울려 관리자들의 안전불감증을 조장하고 기록조차 남지 않는 ‘P형 수신기’는 고의적인 차단 행위의 책임 회피까지 가능하게 만들면서 완벽한 ‘후진국형 소방시설’이 완성되는 형국이다.

 

이번 참사의 씨앗은 현장 환경과 전혀 맞지 않는 ‘저가형 감지기’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안전공업처럼 시야가 뿌옇게 보일 정도의 유증기 또는 분진, 습도 변화가 극심한 공장에서는 환경 변화를 고려해 감지기의 감도 등을 조정ㆍ운영하고 감지기 위치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지능형(아날로그) 감지기가 필수다. 그러나 현장에는 연기나 열의 단순 물리량만 측정해 온, 오프 신호만 보내는 개당 3천원~6천원 짜리 싸구려 일반 감지기가 무더기로 설치돼 있었다.<관련기사 - [집중취재③/대전 안전공업 화재] 양치기 소년 된 화재경보기… 참사 키운 건 ‘3천원짜리 깡통 센서’>

 

결과는 참담했다. 기계에서 뿜어져 나오는 유, 수증기나 작업 분진에도 감지기가 반응하며 시도 때도 없이 화재 경보가 울렸고 이른바 ‘비화재보(오작동)’의 빈발은 현장 노동자와 소방관리자에게 심각한 ‘경보 피로’를 유발했을 가능성이 크다. 

 

진짜 불이 나도 “또 오작동이겠지”라며 무시하는 ‘양치기 소년 효과’가 공장 전체를 지배하게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잦은 오작동을 일으키는 저기능 화재 감지기는 물론 진상 규명조차 가로막는 이 구닥다리 소방시설을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오경보 등 대처가 어렵고 블랙박스 기능조차 없는 수신기를 방치한 채 현장 관리자의 실수나 고의만 탓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다. 

 

박경환 한국소방기술사회장은 “미국이나 유럽, 중국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우리나라처럼 기록장치가 없는 수신기나 설치 장소조차 알 수 없고 오작동까지 잦은 화재감지기는 사용하지 않는 추세”라며 “우리나라의 수많은 대형 화재 사고에서 낙후된 소방시설 실태의 현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잦은 오작동에 지친 관리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쉽지만 치명적인 방법은 수신기의 ‘지구경종(화재 경보장치)’을 끄거나 신호가 울릴 때 일단 정지 후 실제 화재 유무를 확인하는 일일 수밖에 없다. 

 

후진국형 소방시설 관행에서 벗어나 화재감지시스템의 선진화를 위한 소방 인프라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석환 세종사이버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비용 절감을 이유로 오작동이 잦고 관리조차 어려운 저가 후진국형 감지기와 로그 기록조차 남지 않는 구형 수신기를 방치하는 건 예견된 참사를 묵인하는 것과 같다”며 “국내 자동화재탐지설비의 선진화를 위한 기준 개선과 사업주의 안전 투자를 유도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최영, 최누리 기자 young@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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