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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0대 소녀 숨진 은마아파트 “경보 울리면 일단 정지”가 매뉴얼이었다

주경종과 지구경종, 방송까지 싹 다 정지… 평소 주민 안전은 뒷전이었나
화재 발생 세대조차 정확히 몰라, 매뉴얼 따르면 골든타임 허비 불 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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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호 기자 | 기사입력 2026/03/07 [01:22]

[단독] 10대 소녀 숨진 은마아파트 “경보 울리면 일단 정지”가 매뉴얼이었다

주경종과 지구경종, 방송까지 싹 다 정지… 평소 주민 안전은 뒷전이었나
화재 발생 세대조차 정확히 몰라, 매뉴얼 따르면 골든타임 허비 불 보듯

박준호 기자 | 입력 : 2026/03/07 [01:22]

▲ 은마아파트 1층에 설치된 화재 수신기. 이 수신기 전면부엔 화재 경보가 울리면 표시창에서 위치를 파악한 후 정지 버튼을 누르라는 매뉴얼이 부착돼 있다.  © FPN


[FPN 박준호 기자] = 서울 강남구 은마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로 10대 여학생이 숨지고 모녀가 다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이 참사 뒤에는 상식을 뒤엎는 화재 대응 매뉴얼이 운영돼 온 것으로 드러났다. 화재 경보가 울리면 경보부터 우선 차단하라는 내용이다.

 

<FPN/소방방재신문>이 사고 다음 날인 지난달 25일 찾았다. 불이 난 25동엔 8층부터 12층까지 검게 그을린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화재가 발생한 8층엔 화재감식이 한창이었고 1층 현관 앞에는 주민이 모여 전날 밤 화재사고에 대한 불안 섞인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승강기 오른편에 자리한 노후 화재 수신기 전면부엔 ‘수신기 화재경보 시 조치사항’이라는 매뉴얼이 부착돼 있었다. 여기엔 ‘화재 경보가 울리면 표시창에서 위치 파악 후 1번, 2번, 3번(정지) 버튼을 차례로 누른다’고 쓰여 있다. 이 1번, 2번, 3번은 동그란 스티커를 붙여 놓은 주경종, 지구경종, 방송연동 버튼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경종은 수신기 바로 위에 설치되는 경종으로 화재 시 관리자가 알 수 있도록 한 경보설비다. 지구경종은 각 층 복도 소화전에 설치돼 화재 시 거주자들에게 화재 발생 사실을 알려주는 핵심 기능을 한다. 비상방송은 각 세대 내 스피커를 통해 방송을 내보낸다. 이 버튼들을 누르라는 건 화재 감지기의 동작 직후 경보를 강제로 끄라는 얘기다.

 

또 이 매뉴얼에는 경보를 정지시킨 뒤 ‘불(표시등)이 들어온 층에 방문해 화재 여부를 확인한다’고 적혀 있다. 일단 경보가 울리지 않도록 막은 뒤 화재 경보가 들어온 층으로 직접 가 실제 불이 났는지, 오동작인지를 파악하라는 내용이다.

 

만약 화재 감지기가 오동작했다면 전기실에 연락하고 화재 발생 시엔 119 신고와 함께 다시 1, 2, 3번을 눌러 화재 수신기 기능을 정상 복구해야만 세대에 방송이 나간다는 설명도 적혀 있다. 화재 경보가 울리면 일단 경보부터 끄는 게 기본 매뉴얼인 셈이다.

 

은마아파트는 각 동에 하나의 경비실이 들어서 있는 구조다. 이 경비실과 수신기의 거리는 고작 2~3m 정도다. 만약 화재 경보가 울렸을 때 상주하는 경비원이 매뉴얼대로 수신기를 조작한다면 불과 몇 초 만에 모든 경보가 차단될 수밖에 없다.

 

불이 난 25동은 복도식 구조의 14층 높이로 한 층에 8개 세대가 자리한다. 각 층 세대에 설치된 화재 감지기가 적게는 2개 세대, 많게는 3개 세대까지 한 회로로 묶여 있다. 쉽게 말해 화재 감지기로부터 신호가 들어오더라도 정확히 어떤 세대에서 불이 났는지 알 수 없다는 걸 의미한다. 경비원이 경보를 정지하고 매뉴얼처럼 화재 신호 발생 층에 갔을 때 실제 화재 여부를 알 수 있는 건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일뿐이다.

 

만약 실제 화재라면 경비원은 매뉴얼에 따라 1층에 있는 수신기로 돌아가 경보를 재가동해야 한다. 이 과정에 소요되는 시간만 경보 장소에 따라 수십분이 걸릴 수도 있다. 초기 진압과 주민 대피를 위한 ‘골든타임’을 스스로 걷어차는 ‘매뉴얼’이다.

 

일각에선 화재 당시 감지기 자체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하지만 설령 감지기가 정상 작동해 경보가 울렸더라도 매뉴얼대로라면 주민들은 화재 사실을 인지조차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화재 때 경보를 차단하는 문제는 대형 참사 때마다 반복된 고질병으로 꼽힌다. 9명이 숨진 2018년 인천 세일전자 화재, 2021년 쿠팡 물류센터 화재, 7명이 사망한 2022년 현대아울렛 화재, 2024년 청라 아파트 화재 역시 경보를 고의로 차단하거나 연동 정지시켜 피해를 키웠다.

 

박준호 기자 parkjh@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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