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광고

[집중취재] 은마아파트 화재로 본 노후 아파트 화재 취약성… 사각지대 해소할 해법 없나

새벽 화재로 세 모녀 중 10대 큰딸 숨져, 이사 온 지 닷새만 참변
47년 된 아파트 속엔 스프링클러 설비 없고 노후 소방시설만 가득
소방청, ‘살펴서 대피’ 매뉴얼 정립했지만 발화 세대엔 사실상 무력
세대 내 설치된 열감지기, 연기감지기보다 동작 느려 초기 인지 한계
옥내소화전엔 1993년산 소방호스… 노후 제품일수록 불량률↑ 연구도
전문가 “인명피해 줄이기 위해선 화재 감지 속도 높이는 대책이 급선무”

광고
박준호 기자 | 기사입력 2026/03/10 [10:25]

[집중취재] 은마아파트 화재로 본 노후 아파트 화재 취약성… 사각지대 해소할 해법 없나

새벽 화재로 세 모녀 중 10대 큰딸 숨져, 이사 온 지 닷새만 참변
47년 된 아파트 속엔 스프링클러 설비 없고 노후 소방시설만 가득
소방청, ‘살펴서 대피’ 매뉴얼 정립했지만 발화 세대엔 사실상 무력
세대 내 설치된 열감지기, 연기감지기보다 동작 느려 초기 인지 한계
옥내소화전엔 1993년산 소방호스… 노후 제품일수록 불량률↑ 연구도
전문가 “인명피해 줄이기 위해선 화재 감지 속도 높이는 대책이 급선무”

박준호 기자 | 입력 : 2026/03/10 [10:25]

▲ 소방대원이 은마아파트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 강남소방서 제공


[FPN 박준호 기자] = 10대 여학생이 사망한 은마아파트 화재를 계기로 노후 아파트의 화재 취약성이 다시금 부각되고 있다. 소방청은 유사 사고를 줄이기 위해 대피방법 개선과 감지 속도 향상 방안 등을 마련했지만 노후 아파트의 화재위험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24일 오전 6시 18분께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은마아파트 8층에서 불이 났다. 불이 난 은마아파트는 총 28개 동, 4424세대를 갖춘 대규모 단지다. 강남 개발이 본격화하던 1979년 지어져 강남 1세대 아파트 상징으로 알려진다.

 

이날 알 수 없는 이유로 시작된 불길은 출동한 소방대원에 의해 화재 발생 1시간 18분 만인 오전 7시 36분께 꺼졌다.

 

이 사고로 당시 세대 내에 있던 일가족 세 명 중 큰 딸인 A 씨가 목숨을 잃었다. 그는 베란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40대 어머니는 얼굴에 화상, 작은딸(10대)은 연기를 흡입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아버지는 이른 새벽 출근한 상태였다. 특히 이사 온 지 닷새 만에 참변을 당해 더 큰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 은마아파트 전경  © FPN

 

아파트 화재 피해 유형은 둘 중 하나인데…

아파트 화재 사망 사고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발화 세대가 아닌 다른 세대 주민이 피난하다 숨지거나 화재가 시작된 세대 내 재실자가 목숨을 잃는 것.

 

소방청은 2024년부터 화재대피요령으로 ‘무조건 대피’ 대신 ‘살펴서 대피’ 원칙을 정립해 홍보하고 있다. 지난 2023년 수원 팔달구 화서동과 서울 도봉구 방학동 아파트 화재 당시 불이 난 세대 상층부 주민이 계단으로 피난하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 가이드라인은 무리한 피난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덴 분명 효과가 있다. 그러나 발화 세대원의 피해를 방지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보긴 힘들다. 수면 중 또는 화재 발생 사실을 뒤늦게 인지했을 땐 ‘살펴볼 시간’ 자체를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 은마아파트 사고도 잠들어 있거나 막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대에 일어났다. 취침 중에는 시ㆍ후각으로 불이 난 사실을 알아차리기엔 한계가 있다. 청각 기능은 둔화하지만 상대적으로 반응이 남아 있는 감각이다. 따라서 선명하고 신속한 경보음이 생사를 가르는 핵심 요인 중 하나다.

 

그러나 은마아파트는 조기 경보가 쉽지 않은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FPN/소방방재신문> 취재결과 은마아파트 세대 내엔 ‘열감지기’가 구축돼 있었다. 열감지기는 실내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거나 기준치에 이르렀을 때 작동한다. 대부분의 노후 아파트는 은마아파트처럼 열감지기를 갖추고 있다.

 

▲ <FPN/소방방재신문>이 직접 확인한 결과 은마아파트 세대 내엔 열감지기가 구축돼 있었다.  © FPN

 

문제는 이 열감지기가 ‘연기감지기’보다 화재 발생 인지 속도가 느리다는 점이다. 화재 시 온도와 상관없이 연기를 감지하는 연기감지와 달리 열감지기는 일정 온도에 도달해야만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는 정부 차원의 실제 실험에서도 입증됐다. 2008년 소방방재청(현 소방청)이 주택에서 가정용 가스레인지의 튀김기름 화재를 재현해 실험한 결과 열감지기는 연기감지기보다 작동 시간이 무려 8분이나 느렸다.

경보는 입주민이 수동으로 누르지 않는 한 감지기가 작동해야 울린다. 열감지기 사용 공간에서의 화재 인지 시점이 늦어질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화재 상황에서 8분은 대피 가능 여부를 갈라놓는 골든타임이다. 이번 사고에서 어머니와 작은딸은 복도로 피난했고 숨진 큰딸은 베란다에서 발견됐다. 이를 미뤄볼 때 재실자 모두 화재 발생 사실은 알았으나 인지 시점이 늦어져 피해가 커졌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화재 초기 불을 진화하는 스프링클러 설비가 설치되지 않은 점도 인명피해를 키운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일부 언론 등은 당시 화재 감지기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이 화재 감지기가 실제 작동했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확인된 은마아파트 화재 수신기는 제조된 지 수십 년 된 제품이었다. 이 수신기에는 소방시설의 동작 타임라인과 작동 이력 등이 남는 기능이 없다. 이는 화재 당시 소방시설이 정확히 어떤 패턴으로, 언제 작동했는지 파악할 수 없다는 얘기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 2016년 1월 11일 모든 화재수신기에 기록장치 탑재를 의무화했다.

 

유사 사고 반복에 관련 대책 쏟아냈지만…

은마아파트와 유사한 사고는 지난해에도 두 차례나 있었다. 6월과 7월 부산의 한 노후 아파트에서 불이나 어린 두 자매가 부모님 부재 속에 연달아 숨졌다. 두 사고 모두 화재 발생 세대 내에서 어린 자녀들이 취침 중이거나 피난하다 목숨을 잃었다.

 

▲ 지난해 6월 24일 발생한 부산 개금동 화재. 이 불로 2014년, 2018년생 자매가 목숨을 잃었다.      ©FPN

 

이곳 역시 연기감지기가 아닌 열감지기가 설치돼 있었다. 이로 인해 어린 자매들이 화재를 조기에 인지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사고를 계기로 소방청은 2005년 이전에 건축허가받은 아파트 중 스프링클러 설비와 연기감지기가 없으면서 최근 3년 이내 아이돌봄서비스 신청 이력이 있는 2만4570세대에 ‘단독경보형 연기감지기’를 무상 보급했다.

 

단독경보형 연기감지기는 연기를 인식하면 제품 자체에서 경보음을 울려 재실자의 빠른 피난을 돕는 설비다. 설치도 비교적 간편해 기존 설비 보강이 어려운 노후 공동주택에 효과적인 대안으로 평가받는다.

 

소방청은 올해부터 2028년까지 2005년 이전에 건축허가받은 아파트 중 스프링클러 설비와 연기감지기가 설치되지 않고 노인 또는 장애인이 13세 미만 아동과 함께 있는 세대에 단독경보형 감지기를 무상 설치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소방청 관계자는 “올해 37만5천 세대마다 3대씩 단독경보형 감지기를 무상 보급할 계획”이라며 “최대한 빠르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또 소방청은 전국 시도 소방본부와 한국소방시설협회, 한국소방시설관리협회, 한국소방기술사회, 대한주택관리사협회 등에 노후 아파트의 열감지기를 연기감지기로 교체하도록 권고하는 안내문을 배포해 홍보하고 있다.

 

또 드러난 노후 소방용품, 제 기능 가능할까

은마아파트 화재는 감지 체계의 한계뿐 아니라 노후 소방용품 관리 기준의 공백도 함께 드러냈다. <FPN/소방방재신문>이 현장을 찾아 아파트 여러 동의 옥내소화전 소방호스를 직접 확인해봤다. 그 결과 일부 2015년 생산품으로 교체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1989, 1993년 등 30년이 지난 제품들이 비치돼 있었다.

 

▲ 은마아파트는 일부 2015년 생산품으로 교체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1989년, 1993년 등 30년이 지난 제품들이 비치돼 있었다.  © FPN

 

이번 화재에서 노후 소방호스가 피해를 키운 직접적 요인은 아니다. 하지만 오래된 소방시설이 장기간 방치되고 있다는 점은 노후 아파트의 또 다른 잠재적 위험요인으로 지목된다.

 

이를 뒷받침하는 실제 시험 결과도 존재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지난 2022년 전국 아파트 56개 단지에서 수거한 소방호스 313본에 대해 내압시험을 진행했다. 내압시험은 방수 과정에서 호스가 파열되거나 누수가 발생하진 않는지 확인하는 검사다.

 

한국소방산업기술원에서 규정하는 내압시험 결과 경년변화가 15년인 소방호스(40㎜) 25%, 16년인 소방호스 42.9%가 합격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60㎜ 소방호스의 경우 16년 제품은 22.2%, 17년 된 호스는 20%가 불량 판정을 받았다. 생산한 지 15년이 지난 제품 상당수에서 성능 저하가 확인된 셈이다. 부연하면 은마아파트의 소방시설은 성능 이상 발생 시기를 두 배 나 초과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와 달리 해외에선 일정 기간이 지난 노후한 소방호스는 교체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미국 NFPA(1962)는 옥내소화전용 소방호스에 대해 제조일로부터 5년을 초과하지 않는 간격으로 이후에는 3년마다 시험압력 이상 유무를 확인하도록 규정한다. 일본소방호스공업회도 교체주기를 6~7년으로 정하고 있다.

 

이 같은 시험 결과와 해외 기준을 근거로 LH는 소방호스에 대한 내용연수 제도 도입을 제안하며 교체 기준은 15년으로 제시했다. 한국소방산업기술원으로부터 용역을 받아 중앙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수행한 ‘소방용품 내용연수제도 확대 도입을 위한 연구’에서도 소방호스의 내용연수는 15년이 적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러한 연구 결과에 이어 국정감사에서도 소방용품 내용연수 부재 문제가 반복 지적됐지만 소방청은 최근에서야 ‘노후ㆍ불량 소방용품 교체관리 종합대책’을 수립했다.

 

이 대책엔 특정 소방용품(소방호스, 완강기, 연기감지기, 자동확산소화기)의 ‘권장 내용연수’ 기준을 마련하고 불량ㆍ노후 정도를 판단해 누구나 납득 가능한 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게 골자다. 이 제도는 4월부터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전문가들 “신속 감지 체계 전환, 초기 대응 환경 조성 시급”

전문가들은 노후 아파트 화재로 인한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감지 체계 개선과 더불어 현장 대응 여건을 보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윤해권 경기대학교 공학대학원 소방ㆍ방재전공 교수(소방기술사)는 “연기감지기가 비화재보를 자주 일으킨다는 우려 때문에 2015년 이전에 지어진 아파트 대부분엔 열감지기가 설치됐다”며 “하지만 열감지기는 연기보다 늦게 작동하는 구조라 화재 인지 시점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특히 취침시간대 화재는 재실자가 상황을 인지하기 어렵기에 초기 감지 속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화재 감지 속도를 높이는 대책이 빠르게 반영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화재 진압 과정에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꼽히는 소방차 진입로 확보 문제 역시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손귀성 소방기술사는 “당시 소방차가 신고 6분 만에 도착했지만 이중 주차 차량 탓에 현장 도착까지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최소한 소방차의 동선을 고려해 주차 공간을 관리하고 진입로를 확보하는 등 초기 대응이 지연되지 않도록 하는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박준호 기자 parkjh@fpn119.co.kr

광고
[연속 기획]
[연속 기획- 화마를 물리치는 건축자재 ⑧] 내화채움구조 넘어 종합 방화솔루션 기업으로의 도약 꿈꾸는 아그니코리아(주)
1/4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