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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 우정총국 소화가스 질식사고, 엉터리 소방시설이 문제였다!

- 불 끄려고 설치한 소방시설, 안전 위협한 숨겨진 이유는?
- 단품 개념 캐비넷형 소화장치 연동, 설비개념으로 편법 적용
- 버튼 하나로 오방출 막을 수 있는데… 부실한 관리능력 도마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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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 이재홍 기자 | 기사입력 2014/12/10 [08:34]

[집중취재] 우정총국 소화가스 질식사고, 엉터리 소방시설이 문제였다!

- 불 끄려고 설치한 소방시설, 안전 위협한 숨겨진 이유는?
- 단품 개념 캐비넷형 소화장치 연동, 설비개념으로 편법 적용
- 버튼 하나로 오방출 막을 수 있는데… 부실한 관리능력 도마위
최영, 이재홍 기자 | 입력 : 2014/12/10 [08:34]

▲ 지난달 23일 소화가스 방출사고가 발생한 우정총국     © 이재홍 기자
본지(FPN) 취재결과 최근 우정총국에서 발생한 소화약제 방출사고는 소방시설에 대한 이해 부족과 소화장치의 편법 적용이 불러온 예견된 사고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23일 오전 11시 53분경 종로구 견지동 우정총국에서 화재진압용으로 구비된 ‘HCFC-Blend A’ 소화약제가 방출돼 11명이 소화가스를 흡입해 질식하거나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아찔한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심각한 인명피해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10명이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사고 당시 우정총국 내에는 초등학생 등 10여 명이 전시물을 관람하던 중이었으며 한 초등학생이 소화장치의 수동작동 버튼을 장난으로 누른 것으로 밝혀졌다.

우정총국에는 50kg짜리 캐비넷형 자동소화장치 4대가 구비돼 있었으며 이 사고로 실내에 있던 HCFC-blend A 소화약제가 건물 내부로 일제히 방출됐다.

본지 취재결과 우정총국의 소화장치는 애초부터 안전에 대한 고려 없이 전기적 배선을 개조해 여러 대의 제품을 연동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또 시설에 상주하는 관계자는 소화장치에 대한 기본 지식조차 없어 미흡하게 대처하면서 피해를 키운 것으로 확인됐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 같이 개조된 소화장치들이 전국적으로 산재해 있는 것으로 파악되면서 시급한 대책이 요구되고 있는 상황이다. 본지에서는 이번 관람객들의 생명을 위협한 우정총국 소방시설의 문제점을 집중취재했다.

기본 개념 무너진 캐비넷형 자동소화장치

▲ 우정총국 내 설치된 단품 캐비넷형 자동소화장치의 모습.  
우정총국 내부에는 50㎏짜리 ‘HCFC-Blend A’ 소화약제가 든 캐비넷형 자동소화장치 4대가 설치돼 있었다. 캐비넷형 자동소화장치는 가스소화약제를 사용하는 단품형 자동소화시스템이다.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이하 KFI)의 형식승인도 단품 형태로 성능검증이 이뤄지기 때문에 현장에 적용할 때 역시 단품으로만 적용해야 한다.

그러나 현장 확인결과 우정총국에 설치된 캐비넷형 자동소화장치는 하나의 소화장치가 작동될 경우 4대가 동시에 터지도록 개조한 상태였다. 소규모 공간에 단품으로 설치해 화재를 방호하도록 고안된 제품을 임의적으로 모두 연동시켜 ‘소화설비’의 개념으로 확대 적용시킨 것이다.

소방 관련법에서는 단순한 소화기구 개념의 ‘소화장치’와 ‘소화설비’가 별도로 구분된다. 특히 캐비넷형 자동소화장치는 단순 소화기구의 개념으로 이러한 캐비넷형 자동소화장치는 형식승인 과정에서 방호 가능한 공간의 크기가 정해진다. 이 범주를 넘어설 경우에는 반드시 장치가 아닌 소화설비 개념으로 접근해 시설을 갖춰야 하는 것은 기본적인 사항이다.

소화기구와 소화설비의 개념은 법령의 제재 방식에서부터 확연한 차이가 있다. 소화기구의 경우 소방시설 착공신고를 하지 않아도 되고 고수준의 소방시설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전문적인 설계가 이뤄지지 않는다. 또 관리자나 시설 점검에 있어서도 소홀한 구조가 될 수밖에 없고 착공신고 대상이 아니다 보니 허가받은 소방시설공사업자가 시공을 했는지조차 확인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소화설비는 시설을 설치할 때부터 관할 소방서에 의무적으로 소방시설 착공신고를 해야 하며 이 같은 설비는 최초 단계부터 KFI성능인증을 받은 설계프로그램을 통해 안전성을 확보한 상태로 설치된다. 시공 역시 법에서 규정하는 소방시설공사업자만 시공할 수 있다.

우정총국은 단순한 소화기구의 개념을 넘어 편법적인 설비개념의 시설을 적용했지만 소화기구 중 하나인 캐비넷형 자동소화장치라는 이유로 행정 절차나 사후관리에 있어서도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았다.

연동시킨 캐비넷형 자동소화장치… 문제는?

우리나라의 모든 소방용품은 제품에 대한 형식승인을 법적으로 받아야 하고 형식승인을 받은 제품의 형상을 임의로 변경하는 것은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관련법을 지키지 않은 상태로 설치할 경우 오히려 안전을 위협하는 유해시설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우정총국 건물은 가로 14.158m, 세로 7.165m, 높이 4.17m로 총 체적은 423㎥에 이른다. 정상적이라면 이 공간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서는 153.7kg의 소화약제가 필요하다.

▲ 우정총국 내부 도면(평면도). 내부에는 4대의 캐비넷형 자동소화장치가 설치돼 있었다.    @ 소방방재신문 

그러나 우정총국은 대당 138㎥를 방호할 수 있는 50kg짜리 캐비넷형 자동소화장치 총 4대를 무분별하게 연동시켰다. 무려 46.3kg의 소화약제를 과다하게 적용시킨 것으로 화재 소화능력은 갖췄을지 모르지만 인명안전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가스소화약제를 사용하는 소화설비를 사람이 상주하는 공간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최대허용설계농도(NOAEL)를 지켜야만 한다. 최대허용설계농도는 ‘인간의 심장에 영향을 주지 않는 최대 허용농도로, 관찰이 불가능한 부작용 수준'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해당 농도를 초과해 방출될 경우에는 인간에게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최대허용설계농도는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강제하는 엄격한 규정이다. 때문에 해당 농도를 넘어설 경우에는 가스소화설비를 상주공간에 절대로 사용하면 안된다.

사고가 발생한 우정총국의 경우도 우편업무를 병행하는 전시시설이기 때문에 야간을 제외하면 사람이 상주하는 공간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이러한 사항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우정총국에서 방출된 HCFC-Blend A 소화약제를 사람이 상주하는 공간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현행 국가화재안전기준에서 규정하는 10%의 농도를 초과하면 안된다.

소방기술사 등 복수의 전문가와 함께 우정총국에 방출된 소화약제의 농도를 계산해 본 결과 10.9%로 허용설계농도 기준을 초과했다. 여기에 내부 구획된 일부분을 제외하면 실제 방사된 소화약제의 농도는 12%까지 달할 수 있는 구조였다.
▲ 우정총국에 방출된 소화가스의 실제 소화농도 산출 결과     ©소방방재신문
 소화설비가 아닌 소화기구인 캐비넷형 자동소화장치를 위법하게 연동시켜 아무런 제약없이 소화설비 개념으로 적용하면서 반드시 지켜야할 부분마저 간과해 질식사고를 불러왔다는 지적이다.

소방분야의 한 전문가는 "캐비넷형 자동소화장치는 태생부터가 단품 형식의 제품이기 때문에 현장에서 무차별적으로 연동을 시킬 경우엔 과다한 약제로 인해 안전성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단품으로 방호할 수 있는 규모를 넘어가는 공간에는 소화설비의 개념으로 접근해 모듈러나 가스계소화설비 등 정상적인 시스템을 알맞게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소방시설 이해부족과 대처능력 부재가 피해 키워
 
▲ 우정총국에 설치돼 있는 캐비넷형 자동소화장치의 제어부 모습.    
사고 당시 우정총국 시설물 관계자의 안일한 대처능력도 피해를 키운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캐비넷형 자동소화장치는 수동 또는 자동 작동시 경보가 나오고 소화약제 방출까지 길게는 30초의 딜레이 타임이 주어진다. 실수나 오작동으로 소화장치가 작동되더라도 이 딜레이 타임 안에 제어부에 있는 스위치 하나만으로도 방출을 취소할 수 있다.

하지만 사고 당시 우정총국 내 있던 시설물 관계자는 이러한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속히 대처하지 못했다.

본지는 사고 당시 기기 자체의 결함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 제조사 측에 문의해 봤다. 사고 이후 현장에서 직접 이상유무를 확인했다는 해당 제품 제조사의 관계자는 “직접 가서 제품을 확인한 결과 기기의 이상은 없었다”며 “딜레이 시간과 방출취소 스위치도 정상적으로 작동했다”고 밝혔다.

본지에서 입수한 사고 당시 CCTV 영상을 보면 초등학생이 손을 뻗어 수동 작동 스위치를 누른 후 실제 방출까지는 약 20초의 딜레이 타임이 주어진다. 이후 현장 관리자가 음향경보를 듣고 해당 기기로 다가간 시간은 약 7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관계자는 소화장치 표면을 만지작 거리다가 결국 소화약제 방출을 취소하지 못하고 방출 전 약 8초를 남겨둔 상태에서 허겁지겁 어디론가 달려 나간다. 그리고 5초 후 소화약제가 방출되면서 건물내에는 순식간에 소화가스가 방출되는 모습이 연출된다.

우정총국 운영을 맡고 있는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사고 당시 관리자가 대처를 하기 위해 다가갔지만 눈이 잘 보이지 않아 안경을 가지러 간 것"이라고 말했다.

소화장치의 비정상적인 작동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사고였지만 사전에 이를 대처하기 위한 관리능력조차 확보하지 않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수한 소방시설 중 하나인  '캐비넷형 자동소화장치'를 적용한 주요시설에서 특성 숙지 등 관리적 측면의 안전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멋 모르고 설치한 소방시설, 문화재 소실 막기는 커녕

소방시설에 대한 우정총국의 무지함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우정총국 건물은 당초부터 가스소화 방식을 적용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발상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우정총국 건물의 출입문은 목재 재질로 밀폐성이 보장되지 않을 뿐 아니라 평상시 대부분의 시간은 출입문이 열려 있는 상태로 운영되고 있다. 또 자동폐쇄장치 등의 시스템도 적용되지 않아 소화약제가 방출되더라도 문은 자동으로 닫힐 수 없는 구조다.
 
▲ 목재 재질로 만들어진 우정총국 출입문의 모습.     © 이재홍 기자
가스소화설비의 소화성능 확보를 위해서는 공간 내에 방출된 가스의 적정한 농도유지가 관건이기 때문에 방호공간의 밀폐는 가장 기본이 되는 조건이다. 이러한 이유로 가스소화설비는 밀폐 조건이 갖춰진 장소에 설치해야 하고 일부 개방된 부분이 있다면 소화설비가 작동될 때 자동으로 닫아 주도록 관련법에서 규정한다.

결과적으로 우정총국에 적용된 소방시설은 전문성이나 시설적 이해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부실하게 갖춰지면서 불조차 못 끄고 관람객들의 안전만을 위협하는 시설이 된 것과 다름없다.

우정사업본부 측에 따르면 우정총국의 소방시설은 지난 2008년 2월 10일 발생한 숭례문 화재 이후 적용됐다. 국가적 주요 문화재 소실 이후 구축한 소방시설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보여주기식’ 시설을 갖췄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소방분야의 한 관계자는 “소방시설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없이 무작정 시설을 갖추는 것은 실효성에 문제가 나타날 수 있고 나아가 경제적 손실을 불러오게 된다”며 “소방 전문가들을 통해 시설에 적합한 소방시설을 철저하게 검토하고 실효성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단순 연동 넘은 불법 제품까지… 실태 ‘심각’

취재 과정에서는 캐비넷형 자동소화장치의 연동 문제가 비단 우정총국만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도 드러났다. 캐비넷형 자동소화장치를 생산 및 판매하는 일부 업체는 홈페이지에 버젓이 제품의 연동방법을 설명하는 자료를 게재해 놓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일부 업체의 경우 형식승인조차 받지 않고 제어부가 없는 형태의 제품을 별도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을 정도다. 형식승인을 받은 제품과 연동시켜야만 사용 가능한 불법 제품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이러한 비형식승인 제품을 소위 ‘B타입 자동소화보조기기’라고 부르는데 이 제품은 KFI의 형식승인을 받지 않고 소화약제만을 구비한 형태로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 소화장치 제어부가 있는 형식승인 제품으로부터 전기적 신호만을 받아 소화약제를 동시에 방출시켜줄 수 있도록 한 오로지 연동 목적의 제품이다.

이러한 B타입 제품을 시중에 가장 많이 유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모 업체에 공사업체를 가장해 통화를 시도해봤다.업체 관계자는 “B타입은 형식승인 받은 제품과의 연동용으로 제작돼 제어부가 없고 형식승인은 받지 않았다”면서도 “캐비넷형 자동소화장치는 자진설비로 사용되기 때문에 착공신고 대상도 아니다. 그렇기에 법적으로도 문제될 것은 없다”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캐비넷형 자동소화장치의 연동은 모든 제품이 가능하고 청정소화약제 제품은 사람이 상주하는 곳에도 모두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자진설비라는 이유를 들며 형식승인조차 받지 않은 불법제품을 버젓이 판매하는 것도 모자라 최대허용설계농도나 위험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조차 없었다. 심각한 문제는 일부 제조업체가 유통하고 있는 이 불법 제품들이 시중에 얼마나 설치됐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점이다.

제조업계의 한 관계자는 “캐비넷형 자동소화장치는 주로 법적으로 소화설비를 갖춰야 하는 곳이 아닌 곳에 설치되는데 대부분 연동을 시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고객들이 B타입을 요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 일부 제조사는 B타입 연동 제품을 오래전부터 보급해 온 것이 사실이다”고 귀띔했다.

문제점 확인한 국민안전처, 대책 추진키로

본지 취재과정에서 이러한 캐비넷형 자동소화장치의 연동 문제점을 인지한 국민안전처 중앙소방본부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지난 1일 국민안전처 중앙소방본부, 종로소방서, KFI 관계자 등 5명은 취재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을 재확인하기 위해 본지 기자들과 함께 현장을 찾았다. 이 과정에서 중앙소방본부도 캐비넷형 자동소화장치의 개조 연동 사실을 직접 확인했다.

▲ 지난 1일 국민안전처 중앙소방본부에서 각시도 소방본부와 관계기관에 하달한 문건.    © 소방방재신문
중앙소방본부는 조사 직후 캐비넷형 자동소화장치의 무분별한 개조 연동 문제를 근절하기 위한 협조 공문을 전국 시도 소방본부와 관계기관에 하달한 상태다.

소방본부는 형식승인 받은 캐비넷형 자동소화장치 여러 개를 현장에서 연동시켜 설치한 경우 가스계소화설비를 설치토록 지도하도록 하고 형상등을 임의로 변경한 경우 관련법에 따라 벌칙을 적용하기로 했다.

또 형식승인 받은 캐비넷형 자동소화장치에 형식승인을 받지 않은 캐비넷형 자동소화장치를 연동시켜 설치한 경우에는 판매업체에 벌칙을 적용하고 제조업체와 공사업체에 대해서도 조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중앙소방본부 관계자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무분별한 캐비넷형 자동소화장치의 연동 문제가 조속히 개선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며 "관련 산업계에서도 위법행위로 인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주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최영, 이재홍 기자 young@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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