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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일 년 살기- 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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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파주소방서 김성한 | 기사입력 2024/04/01 [10:00]

남극 일 년 살기- Ⅰ

경기 파주소방서 김성한 | 입력 : 2024/04/01 [10:00]

2022년 6월 초 전일 당직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샤워한 후 머리를 말리고 있는데 휴대전화에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극지연구소 인사실입니다. 남극 과학기지 월동연구대 기관파견자 선발 결과, 합격을 통보 드립니다. 후속 건강검진 및 심리검사 진행 관련하여 담당 부서에서 연락드릴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네 번의 도전 끝에 얻어낸 값진 합격이었다. 이렇게 출국 준비과정을 거쳐 우여곡절 끝에 2022년 12월 2일 남극 장보고 과학기지에 도착했다. 주어진 모든 업무는 낯설었고 평소 소방관으로서 해 온 업무와는 무관한 여러 일을 당장 해내야만 했다.

 

한국에서라면 절대 경험하지 못할 24시간 동안 해가 떠 있는 백야, 24시간 해가 뜨지 않는 극야 기간을 18명의 대원과 고립된 공간에서 경험하는 일이 현실로 다가왔다.

 

그 과정은 모두 일기로 기록했다. 그리고 그 기록을 이번 호부터 동료 소방관들과 나누고자 한다.

 

▲ 인사

 

남극을 못 간다고?

합격통보를 받은 후 건강검진과 심리검사가 진행됐다. 혹시나 몰라 검진 전까지 음주를 자제하고 기름진 음식을 피하며 다이어트 아닌 다이어트를 했다. 심리검사는 일관된 답변을 해야 한다는 팁만 얻은 후 나 자신을 믿기로 했다. 

 

마지막 관문인 건강검진과 심리검사를 마치고 8월 초 함께 남극으로 가게 될 대원들과 처음 만났다. 대면식에서는 1년간 입을 피복 사이즈를 측정했다. 그렇게 본격적인 남극준비가 시작됐다.

 

일주일간의 극지 적응 안전훈련과 2박 3일간의 소양 교육까지 모두 마친 후 2022년 9월 29일 장보고 10차 월동연구대 발대식이 진행됐다. 정식으로 장보고 과학기지 10차 월동연구대 일원이 된 순간이다.

 

▲ 극지 적응 안전훈련

 

▲ 발대식

 

출국일은 10월 22일로 정해졌다. 10월 15일까지 분야별 전문교육을 받고 출국해 뉴질랜드를 경유한 후 이탈리아 화물 수송기로 10월 말 입남극하는 계획이 세워졌다.

 

차근차근 남극에 가기 위한 준비를 하던 10월 11일, 부산 앞바다에서 소형선박 조종 교육을 받고 육지로 올라왔더니 단체 채팅방에 꽤 많은 메시지가 와 있었다.

 

“대장입니다. 입남극 계획에 문제가 생겨 다음 사항을 안내합니다. 남극에서 비행기 활주로로 사용하는 기지 앞 해빙이 충분히 얼지 않아 비행기 이착륙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합니다. 그래서 비행기로 장보고 기지에 들어갈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불가피하게 이후 일정은 연기됐음을 알려드립니다”

 

9월 중순부터 교육이 시작되면서 소방서의 모든 짐을 싸놓은 나는 요즘 흔히 하는 말로 멘붕이 오고 말았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모든 대원이 마찬가지였다.

 

‘설마 이러다 남극을 못 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하지만 며칠 뒤 다행히도 우리나라 최초 쇄빙선인 아라온호를 타고 입남극해야 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아라온호는 뉴질랜드에서 11월 말께 탑승할 수 있어 10월 20일 출국 예정이던 우리의 일정은 한 달가량 미뤄졌다. 좀 더 여유롭게 출국 준비를 할 시간이 생기게 된 셈이다.

 

남극 도착까지 13일

11월 19일 인천공항에서 간단한 출국 행사를 마치고 뉴질랜드 오클랜드행 비행기에 올랐다. 남극에 간다는 설렘과 장시간 비행을 해야 하는 부담감, 또 한국에 남을 가족들 걱정이 앞섰다. 10시간이 넘는 비행 끝에 뉴질랜드 오클랜드를 경유해 크라이스트처치 공항에 도착했다.

 

▲ 출국 행사

▲ 뉴질랜드 상공

▲ 뉴질랜드 도착

 

생애 처음 방문한 뉴질랜드의 하늘은 대한민국의 하늘과는 또 다른 느낌의 푸르름이 있었다. 뉴질랜드는 코로나19 격리가 해제됐지만 우린 남극에 들 어가야했기에 자체적으로 작은 호텔에서 2박 3일간의 격리와 함께 매일 코로나19 검사를 진행해야 했다. 이때 가장 불편했던 건 음식이다.

 

▲ 호텔 격리

 

외출이 불가능해 방 앞으로 배달되는 음식으로만 식사를 해결해야 했다. 햄버거가 나왔던 첫날 저녁을 제외하곤 처음 접하는 뉴질랜드 현지 건강식 같은 음식들이 대부분이라 입에 맞지 않았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너무나도 건강한 맛이었다.

 

그래도 그 기간 일광욕하며 여유롭게 책을 읽던 기억은 온통 눈으로 덮여 있던 남극에서 틈틈이 꺼내 보는 아름다운 추억이 됐다.

 

드디어 2박 3일간의 격리가 끝났다. 우린 서둘러 남극 관문의 상징인 리틀턴 항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대한민국 최초 쇄빙선인 아라온호에 올랐다.

 

▲ 출항 전 리틀턴 항 전경

 

생애 처음 장시간 배를 타는 거라 또 다른 설렘이 있었다. 배에 탑승해 객실에서 바라본 리틀턴 항은 매우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남극의 하얀 설원에서 생활하면서 이 푸르름이 내내 그리웠다. 1년 후 다시 아라온호를 타고 리틀턴 항에 도착했을 때의 그 푸르름은 말로 표현이 안 되는 감격까지 안겨줬다. 

 

아라온호가 출항을 알리는 뱃고동을 힘차게 울렸다. 간단한 안전교육과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해상탈출 훈련을 마친 후 본격적인 항해가 시작됐다. 

 

순조로울 줄만 알았던 항해에서 큰 변수가 생겼다. 탑승할 때까지 모두 코로나19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었는데 탑승 다음 날 일부 대원에게 양성 반응이 나왔기 때문이다.

 

▲ 출항 후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한 선박 야영생활

 

공조시설로 인한 전파가 있을 수 있다는 가정하에 양성이 나온 대원들은 헬기 보관 데크에 작은 텐트를 치고 해상 야영 생활을 해야 했다. 다행히도 이후에 더는 코로나19 감염자가 나오지 않았다.

 

4일 정도 지나자 바다 공기가 차가워지더니 뜨문뜨문 유빙이 떠다니는 모습이 관찰됐다. 5일째 되는 날부터 아라온호는 해빙 지역을 쇄빙하며 장보고 기지가 있는 테라노바만을 향해 달렸다. 

 

자려고 침대에 누워 있다 보면 얼음을 부수는 충격을 몸소 체험하기도 했다. 쇄빙 중 얼음이 깨지지 않으면 배가 전ㆍ후진을 반복하는데 그때 반동으로 몸이 마치 트램펄린을 탄 듯 떠올랐다 내려앉기를 반복했다. 

 

유빙 위에는 반가운 친구들이 우릴 맞이했다. 바로 유빙에 올라탄 펭귄들이다. 그만큼 우리가 남극대륙에 가까워진다는 의미기도 했다.

 

▲ 남극 도착을 반기는 펭귄

 

그렇게 8박 9일간의 항해를 마치고 드디어 12월 2일 오후 장보고 과학기지가 보이는 테라노바 만에 도착했다. 저 멀리 보이는 기지는 사진이나 영상으로 본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가슴이 뛰고 탄성이 절로 나왔다.

 

▲ 장보고 도착 시 기지 전경

 

그렇게 한번 와보고 싶었던 곳인데 드디어 이곳에 내가 있다니 정말 믿기지 않았다. 잠시 후 아라온호에서 헬기를 타고 기지로 이동했다. 헬기로 2분 정도 걸려 기지에 도착하니 9차대 대원들이 손뼉을 치며 우리를 반겨 줬다. 마치 군대에서 말년병장이 전입한 신병을 대하는 모습 같았다. 그리고 그들의 웃음엔 여러 의미가 있는 듯 보였다.

 

▲ 장보고 기지 도착

 

남극 장보고 과학기지, 입주했더니…

▲ 헬기하역

기지에 도착하자마자 한 일은 지난 1년간 기지를 지킨 전 차대와의 인수인계다. 보통 인수인계는 7일 정도 진행되는데 1년 동안의 업무를 1주일 안에 해야 하기에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런 와중에 한국에서부터 실어온 음식과 여러 장비, 생활용품 등을 옮기는 작업을 해야 한다. 기지 앞바다에 얼음이 두껍게 얼었으면 육지에서 하역하는 것처럼 크레인과 중장비를 이용해 작업하게 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기지 앞바다의 얼음이 다 깨져 버린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해상에서 바지선을 띄운 후 조디악 보트를 이용해 바지선을 끌어 기지 부두 앞으로 이동하면 크레인이 컨테이너를 육상으로 옮기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공중에서는 헬기로 화물을 옮기는 하역작업이 진행됐다. 조디악 보트 운행과 헬기유도 업무 모두 안전대원인 내가 담당했다. 해상하역과 헬기하역 모두 태어나 처음 해보는 일들이었다. 컨테이너를 옮기기 위해 크레인에 연결하는 작업과 해체하는 작업 역시 처음이었다.

 

작업 전에는 대원들에게 안전교육을 해야 했다. 현장에 직접 투입돼 일하는 게 매우 부담스러웠다. 물론 9차대 안전대원이 이 업무에 대해 인수인계를 해줬지만 여전히 낯설고 어려웠다.

 

▲ 안전교육

 

특히 바지선을 보트에 연결해 바다에 떠 있는 아라온호에 부딪히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가까이 접근해 컨테이너를 받을 수 있도록 보트를 조정하는 일은 정말 어렵고 힘들었다.

 

한국에서 보트를 몰아본 적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한강에서의 경험이다. 바다에서 운행한 건 두 번이 전부다. 그런 내가 바지선을 연결해 하역작업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해봤다. 그래도 2박 3일간의 하역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 해상하역

 

사실 2박 3일간의 하역작업이긴 한데 마지막 사흘째에는 자정이 다돼서야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해상에서 하는 일을 어떻게 자정까지 할 수 있었을까? 

 

남극의 12월은 백야 기간이라 해가 지지 않는다. 자정에도 날이 훤하게 밝다. 그러니 새벽 3시에도 체력만 된다면 어떤 일이든 가능하다. 즉 일할 수 없는 밤이 오지 않는다.

 

▲ 자정에도 해가 지지 않는 백야

 

그렇게 백야 기간의 장점을 이용해 늦게까지 작업을 마친 후 이틀간의 업무 인수인계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 인수인계식

 

공식적으로 장보고 과학기지 9차 월동대의 업무가 종료되고 10차 월동연구대의 업무를 알리는 인수인계식이 열렸다. 분야별 업무 인수인계서에 서명하고 차대별 단기를 교체하는 순으로 진행됐다.

 

그렇게 본격적인 남극 생활이 시작됐다.

 

경기 파주소방서_ 김성한 : sunghan21@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4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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