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열리다 남극의 본격적인 하계시즌이 시작되면서 모두가 분주해졌다. 특히 하계시즌에만 가능한 연구과제가 있는 연구팀의 경우가 그렇다.
12월 초 해빙이 깨지면서 바다는 유빙으로 가득 찼다. 1월 초가 되자 바다가 열리기 시작했다.
1월 중순부터 2월 중순까지 한 달 정도는 바람이 적고 파고가 높지 않아 해양 연구 활동을 하기에 적기다. 이때를 놓치면 바다는 다시 얼기 시작해 해양 분야의 각종 연구가 분주하게 진행된다.
이때 조디악이라는 보트를 운영하는데 안전대원의 임무 중 하나다. 또 많은 인원이 보트를 이용하므로 사전 안전교육과 안전점검 역시 내 몫이었다.
다행히 우리 차대 중장비대원은 보트운행이 많은 세종과학기지에서의 월동대 경험이 있었다. 따라서 보트 정비 등 기계적인 부분에서 큰 도움을 줘 수월하게 바다로 나갈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입남극 후 해상하역을 하느라 사흘간 보트를 운전했던지라 별로 어려울 건 없었다. 하지만 사소한 문제들이 발생했다. 해양정점 조사는 GPS 좌표에 표시된 위치에서 연구 샘플을 채취해야 하는데 보트가 파도에 자꾸 밀려 위치가 변경되곤 했다.
한번은 샘플 채취를 위해 유빙을 건져 올려야 했는데 이왕 하는 거 다른 용도로도 활용해야겠다 싶어 조금 큰 유빙을 로프에 연결해 부두로 끌고 오려고 했다.
하지만 유빙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보트는 유빙 주변을 빙빙 돌기만 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물밑에 숨겨진 얼음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걸 두고 ‘빙산의 일각’이라고 한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다시 적절한 유빙을 찾아 바다를 떠돌았는데 유빙에 갇혀 버렸다. 어쩔 수 없이 파도에 보트를 맡기고 유빙에서 벗어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조금 바다에 익숙해졌을 뿐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이날은 적당한 크기의 유빙을 잘 골라 겨우 부두까지 끌고 올 수 있었다. 그 후 중장비대원이 굴삭기 삽날에 유빙을 싣고 옮기는 작업을 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앞서 언급한 다른 용도로 유빙을 사용했다. 얼음을 깨는 건 지구물리대원 분야라는 억측 같은 대장님의 명을 받고 지구물리대원이 유빙을 깨서 용기에 담아왔다.
우린 남극에서 구하기 힘든 위스키에 유빙 조각을 넣어 한 잔씩 마셨다.
얼음이 녹으면서 얼음 속에 갇혀있는 수만 년 전의 공기들이 기포 터지는 소리를 내며 위스키에 녹아들었다.
수만 년 전의 공기가 들어있는 위스키를 마시고 있자니 술을 마신다는 느낌이 아니라 과거의 시간과 잠시 함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 수 없는 감격에 가슴 한편이 울컥해졌다.
‘이렇게 신비한 경험을 하다니… 너무 좋은 추억이다’
하지만 바다는 항상 평온하지 않았다. 기지 앞 메인부두는 바다와 바로 접해있어 파고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그날도 어김없이 바다에 나가기 위해 중장비대원이 포크레인으로 보트를 바다에 진수하려고 했다. 파고가 평소보다 높긴 했지만 누가 봐도 작은 파도처럼 보였다.
그렇게 조디악 1호를 진수하고 계선주에 홋줄을 묶은 후 조디악 2호를 진수하려고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너울성 파도로 바뀌면서 보트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먼저 보트에 탑승한 대원들은 보트에서 떨어질까 봐 안절부절못했다.
나는 급히 홋줄을 당겨 최대한 보트를 부두에 붙인 후 보트에 타고 있던 대원들을 내리게 했다. 하지만 파도가 점점 거세지고 보트가 부두로 올라올 것처럼 높이 치솟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보트를 다시 육지로 올려야 한다. 하지만 파도가 너무 거세서 보트를 굴삭기에 연결할 수 없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홋줄은 터질 듯이 팽팽한 상태로 유지되다가 계선주를 뽑고 말았다. 보트에 누군가 탑승해서 조정하지 않는다면 떠내려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다행히도 뽑힌 계선주가 바다에 빠지면서 닻 역할을 해 보트는 떠내려가지 않았다. 파고가 잠시 낮아진 틈을 이용해 보트에 탄 후 홋줄을 잘랐다. 이후 신속하게 굴삭기에 와이어를 연결해 육지로 끌어올리며 아찔했던 순간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남극 바다의 위험성을 새삼 느낄 수 있던 순간이었다.
안전대원이 고립됐다고? 장보고과학기지는 해안에 있어 남극의 깊은 대륙으로 이동할 때나 멀리 이동갈 땐 주로 헬기를 이용했다. 특히 하계기간에는 많은 연구팀이 헬기를 타고 연구지까지 이동하는데 이때 종종 안전대원으로 동행하곤 했다.
이날은 조간 회의 때 갑자기 대만대학교 연구팀의 야외연구 활동 지원 업무를 통보받았다. 연구지는 기지에서도 날씨가 좋으면 보이는 해발 3천m 조금 못 미치는 높이의 활화산인 멜버른산이었다. 보통은 하루 전에 통보받는데 그날은 당일 아침에 통보받아 정신없이 부랴부랴 준비해야만 했다. 준비를 마친 후 대만대학교 연구팀과 함께 헬기를 타고 멜버른산으로 연구지원을 나갔다.
산 정상은 바람이 많이 불고 날씨가 좋지 않을 때가 많아 헬기가 착륙하지 못하곤 했는데 그날은 매우 좋아 보였다. 그렇게 산 정상에 도착해 비상상황에 대비한 서바이벌 백과 연구 장비 등을 챙기고 헬기에서 내렸다. 헬기는 2시간 후에 우릴 데리러 오기로 하고 복귀했다.
대만대학교 연구팀과 연구장소로 이동하는데 갑자기 구름이 몰려오더니 눈발이 조금씩 날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지나가는 구름인 줄 알았다. 우린 계속해서 연구 장비를 설치하고 데이터를 수집했다. 그런데 날리던 눈발이 눈보라로 바뀌더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기상악화로 인해 헬기는 착륙지점에 착륙할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린 산에 고립되고 말았다. 그사이 영하 25℃에 강풍이 불어 체감온도는 더욱 낮아졌다. 산 정상이라 마땅히 바람을 피할 곳도 없었다. 그저 어서 구름이 걷히고 헬기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바람이 너무 강했을 뿐 아니라 구름이 잠깐이라도 걷히면 헬기가 바로 우릴 데리러 오기로 했기에 텐트를 설치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당시를 회상해 보면 보온병에 있는 따뜻한 물을 마시기 위해 잠깐 장갑을 벗었다가 꼈는데도 10분 넘게 손가락이 잘려나갈 것 같은 통증이 느껴지는 추위였다. 그런 극한 상황에서 고립된 시간이 점점 길어지자 기지에서도 심각성을 느끼고 1시간 간격으로 하던 무전 교신을 30분 간격으로 하다 급기야 15분 간격으로 줄였다.
장시간 고립될 것을 고려하고 대비해야 했기에 바람을 막고 텐트 칠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결국 헬기 착륙지점과 멀지 않은 곳에 장소를 정하고 서바이벌 백을 사용해 비상대응을 준비했다.
주변 탐색을 다녀온 사이에 대만대학교 학생 한 명이 혼자 바람과 싸워가며 작은 이글루를 만들고 있었다.
“뭐 하고 있나요?”
“대만은 남극에 기지가 없어서 멜버른산에 대만 최초의 남극기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극한의 기상 상황에서 이런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그 학생이 대단하기도, 무모해 보이기도 했지만 남극에 대만 기지를 세우겠다는 강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점차 바람이 줄고 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고립된 지 8시간 만에 아름다운 주변 풍광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사이 기지로부터 헬기가 우리를 데리러 이륙했다는 무전을 받았다. 그 소식을 전하자 대만대 학생은 마음이 급해졌는지 배낭에서 골판지를 꺼내 유성펜으로 ‘TAIWAN STATION’이라고 적어 작은 이글루에 붙였다.
“헬기가 오기 전에 대만 기지를 완공했어요!”
드디어 저 멀리 바다가 보이자 하늘이 열리면서 헬기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무사히 그곳을 탈출했지만 눈보라와 강추위 속에서 이글루를 만들던 대만대 학생은 얼굴이 동상에 걸려 피부가 벗겨지고 작은 물집이 잡히는 후유증을 겪어야만 했다.
다행히 나머지 대원들은 가벼운 저체온증 증상만 있는 등 건강에 큰 위험은 없었다. 하지만 안전대원인 나까지 고립된 웃지 못할 사건 중 하나였다. 그런데도 ‘처음부터 텐트를 치고 바람을 피하는 게 옳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경험이었다.
남극에서는 설날을 어떻게 보낼까? 남극에서 처음 맞는 명절은 한국에서보다 훨씬 거창했다. 20여 년 전 군에서 보낸 명절 느낌도 살짝 났다. 설 연휴가 시작된 첫날 다 같이 모여 명절 음식을 준비했다. 음식 대부분은 조리대원이 준비했다. 우린 특별한 기술이 없어 전을 부치거나 조리대원이 부탁하는 일들을 해결하는 보조의 역할을 했다. 가족이 아닌 대원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전을 부치고 준비하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준비된 음식 중 가장 이쁘게 된 것들은 다음날 차례 음식으로 남겨두고 나머진 나눠 먹었다. 여기저기에선 설맞이 이벤트 예선전이 열렸다.
종목은 제기차기와 윷놀이, 당구, 깡통 축구, 딱지치기였다. 이 이벤트에는 파일럿들과 외국연구팀까지 함께 참여해 모두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설 명절 당일 아침은 차례를 지냈다. 새해 복을 기원하며 서로 맞절하고 조리대원이 준비한 맛있는 음식들로 아침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조금 전 서로의 새해 복을 기원하며 맞절했던 기억은 저 멀리 던져 버리고 윷놀이가 시작됐다.
우승을 향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큰 목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윷놀이를 잘 모르는 외국 연구원들은 하계연구대원의 룰 설명을 듣고는 치열한 경쟁에 합류했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고 떠들며 즐거운 명절을 보냈다. 오후에는 설 명절 이벤트 시상도 있었다. 상품은 남극에서 구하기 힘든 외장 하드부터 주류까지 다양하게 제공됐다.
한국에서라면 가족들과 즐겁게 보냈겠지만 이렇게 새로운 곳에서 여러 사람들과 보낸 명절은 또 다른 추억으로 남았다. 포상으로 주류를 받자 자연스럽게 저녁 회식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걸 시샘이라도 하듯이 급작스럽게 처리해야 하는 업무가 생겨났다.
우선 전날 밤에 눈이 내렸는데 지붕에 쌓였던 눈들이 조금씩 녹아 흘러내리면서 누수가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 대원들은 기지 지붕에 올라 눈을 제거하는 작업을 했다. 중장비대원들은 중장비를 이용해 제설작업을 해야 했다.
그렇게 한바탕 제설작업을 마치고 남은 연휴를 즐기려는데 이번에는 우리의 설 연휴를 모르는 인근 이탈리아기지에서 동계 기간 보관해야 하는 장비들과 생필품 등을 우리 기지로 보내겠다는 연락이 왔다. 이탈리아기지는 하계기지로 우리 기지와는 직선거리로 약 10㎞ 정도 떨어져 있다.
이탈리아기지는 11월 초 오픈해서 2월 초까지 하계에만 운영된다. 그래서 매년 운영하지 않는 나머지 기간 동파나 파손의 위험이 있는 물건들을 장보고과학기지에 맡긴 후 다음 시즌에 다시 물건을 찾아간다.
물품은 헬기와 선박을 이용해 이동시키는데 하필이면 설 연휴 기간 헬기와 선박으로 모두 보내겠다고 하는 통에 안전대원인 나를 포함한 많은 대원이 업무에 투입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연휴 3일 중 마지막 하루는 이탈리아기지 물건들을 처리하는 일정으로 보냈다. 하지만 마냥 부정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코로나19가 발생하고 기지 간 교류가 중단됐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이탈리아기지 하계시즌 종료 전에 각 기지에서 저녁 만찬을 초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탈리아기지가 궁금했던 여러 대원은 이탈리아기지를 방문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소식에 기뻐했다.
이탈리아기지 대장님은 우리 기지 대장님과 일정을 조율해 조만간 만찬 자리를 갖기로 약속했다. 이후 이탈리아화물 운송지원 작업에 참여한 대원들과 함께 단체 사진을 찍었다.
남극에서의 첫 설 명절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경기 파주소방서_ 김성한 : sunghan21@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6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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