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누군가의 평범한 하루를 지키기 위해
또 한 번 평범함을 지켜낸 그날의 감각이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았던 어느 아침.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혹시 오늘이 마지막 출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날 아침 벚꽃이 흩날렸다.
봄을 맞은 바람이 따스하게 목덜미를 스쳤고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그 아이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미소가 행사장 곳곳에 퍼져 있었다. 나는 CPR 체험 부스에서 시민들을 맞으며 비록 일터에 나왔지만 참 좋은 날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그때, 주머니 속 무전기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공기를 찢었다.
“◯◯공장 화재 발생, 동일신고 다수 접수 중. 인명피해 가능성. 폭발 위험”
관제요원의 평정심 너머로 묻어난 이상한 떨림. 숨겨지지 않던 다급함.
무전은 평온하던 공기를 찢으며 재난의 문을 열었다. 내 시선이 향한 쪽 멀지 않은 하늘에 검은 연기가 솟구쳤다. 버섯구름처럼 부풀어 오르는 그것은 단순한 화재가 아니었다.
행사 총괄에게 상황을 전했고 급히 체험 부스를 정리한 후 곧장 현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구급차로 진입하기엔 이미 소방차들로 진입로가 꽉 들어차 들것과 응급가방, 산소통을 들고 도보로 전진했다. 단 100m였지만 그 발걸음마다 가슴이 조였다. 누굴 살리게 될까? 혹은… 더 큰 폭발이 일어나진 않을까. 머리는 복잡했지만 몸은 훈련된 대로 움직였다.
현장은 혼돈이었다.
불타는 소방차, 검게 그을린 하늘, 연소된 차량 곁에서 폭발을 무릅쓰고 물을 뿌리는 진압대원들의 모습. 호스 끝에서 터져 나오는 물소리, 고함, 사이렌, 그리고 타는 냄새.
물러설 틈이 없었다.
이미 한 명의 부상자는 선착 구급차가 이송 중이라는 보고, 추가 환자 대비를 위한 구급 동선 정비, 그리고 곧 이어질 물 부족에 대비해 소화전 확보 임무까지. 진압대원은 불을 막고 나는 물을 댔다. 경찰에게 요청해 도로 일부를 통제했고 그 사이 현장은 조금씩 질서를 되찾았다.
그러던 중, 코끝을 찌르는 이상한 냄새가 스쳤다.
화학약품이 타는 듯한 인체에 해가 되는 냄새. 지휘본부에 보고한 뒤 현장을 구경하던 시민을 향해 뛰었다.
“여기 위험합니다! 대피해 주세요!”
하지만 사람들의 눈은 재미난 걸 보는 아이의 눈처럼 여전히 멈춰 있었다. 경찰에게 다시 협조를 요청했고 그제야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임무는 하나씩 정리됐고 소화전도 확보됐다. 그렇게 현장은 차츰 안정되는 듯했다.
그때 문득 돌아본 도로 건너편의 풍경.
도로 건너, 각자의 삶을 위해 발길을 서두르는 사람들. 커피를 든 손, 아이의 어깨를 잡은 손, 바삐 돌아가는 일상. 그리고 내 뒤, 불길과 연기, 그 모든 것을 막기 위해 버텨낸 단 몇 걸음의 거리.
막연하던 걸, 그때 처음 또렷이 느꼈다.
우린 바로 이 거리를 지키는 사람들이란 것을. 일상과 재난 사이—그 얇은 경계의 가장자리에서 내가 선 자리는 불길의 앞이었지만 지키려던 건 결국 웃음이 스며든 평범한 하루였다.
사명감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날 확실히 알았다.
내가 지키려는 건 거창한 이상이 아니라 이 봄, 이 거리, 이 순간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또 나는 하루를 지켜냈다.
인천 계양소방서_ 김동석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8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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