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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어 동료의 생명을 지킨다- Ⅰ

한ㆍ일 RIT 합동훈련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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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119특수구조단 김도훈 | 기사입력 2026/03/03 [10:00]

국경을 넘어 동료의 생명을 지킨다- Ⅰ

한ㆍ일 RIT 합동훈련의 기록

서울119특수구조단 김도훈 | 입력 : 2026/03/03 [10:00]

9월 나고야, 그리고 12월 서울의 약속

 

“여러분은 이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지난해 12월 서울에서의 합동훈련 중 일본 측 발표자(SUZUKI TOMOAKI, Nagoya 소속)가 화면에 띄운 숫자 ‘24’ 앞에서 회의장 내부는 숙연해졌다. 이는 2019년 이후 지금까지 일본 화재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소방관의 숫자다.

 

아키타와 도쿄, 시즈오카, 홋카이도까지 비극의 장소는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공통된 사고 원인이 있었다. ‘화재 성상에 대한 오판’, 그리고 ‘FFS(Fire Fighter Survival, 소방관 생존 기술)의 결여’였다.

 

일본의 ‘RIT JAPAN’은 바로 이런 반복되는 비극을 막기 위해 현장 소방관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단체다. 필자는 지난해 9월 나고야에서 열린 ‘RIT JAPAN’ 대회에 참가하며 그들이 핵심으로 강조하는 단어 하나를 마주했다. 바로 ‘必生(필생)’이다.

 

 

必 반드시 필

生 살 생

 

‘반드시 살린다. 그리고 반드시 살아 돌아온다’. 이 짧은 두 글자는 동료의 구출과 대원 자신의 생존을 동시에 의미한다. 이는 단순한 구호를 넘어 구조자와 구조대상자 모두 현장에서 안전하게 복귀해야 한다는 RIT의 본질적 가치를 관통한다. 

 

나고야에서의 경험은 단순히 구조 기술의 우열을 가리는 자리가 아닌 동료의 생존이라는 본질적 문제를 두고 각자의 환경에서 최적의 답을 찾아가는 고민의 장이었다.

 

짙은 연기와 화염으로 가득 찬 현장에서 길을 잃거나 고립된 소방관. 그들에게 RIT(Rapid Intervention Team, 신속동료구조팀)는 단순한 구조팀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마주하는 마지막 희망의 손길이자 ‘필생’, 즉 동료를 반드시 구출해 함께 복귀하겠다는 실전적 원칙의 이행이다.

 

나고야에서 일본 대원들과 교류하며 고립된 동료를 반드시 구출해 함께 복귀해야 한다는 RIT의 본질적 목표는 절대 다르지 않음을 확인했다. 이에 우린 국경을 넘어 ‘필생’의 가치를 함께 공유하며 현장에서 동료의 안전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실전 전술을 함께 완성해 나가기로 약속했다.

 

그 약속은 3개월 후 서울에서 ‘한국ㆍ일본 RIT합동훈련’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 글을 통해 대한민국 소방의 체계적인 기준과 일본 소방의 실천적인 현장 전술을 교차하며 전술적으로 융합된 사흘간의 기록을 공유하고자 한다.

 

서울에서 마주한 두 개의 시스템, 하나의 마음

1. 체계가 만드는 안전, 경험이 빚어낸 기술: 서로 다름 속에서 흐르는 본질

한국 소방의 RIT 체계는 소방청 주도의 ‘표준화’에 기반한다. ‘신속동료구조팀 표준교재’에 명시된 편성 원칙의 일관성과 ‘재난현장 표준작전절차(SOP)’는 전국 어디서나 동일한 수준의 구조 역량을 보장하는 강력한 토대가 된다.

 

반면 일본의 RIT 체계는 각 지자체 소방본부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현장 중심형’ 구조를 띠고 있다.

 

이런 차이는 조직 명칭에서부터 드러난다. 한국은 ‘특수구조대’라는 통일된 명칭을 사용한다. 반면 일본은 요코하마의 ‘SR(슈퍼 레인저, 특별고도구조대)’이나 도쿄의 ‘HR(하이퍼 레스큐)’ 등 지역별 고유 명칭이 있어 각자의 지역 색채를 반영한다.

 

▲ SUZUKI TOMOAKI 의 NAGOYA 현 RIT 소개

▲ SANJOU YUKINORI 의 YOKOHAMA 현 RIT 소개 

 

특히 긴급상황 시 구조 요청 신호인 ‘MAYDAY’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지역마다 독자적인 무선 부호를 사용했다. 요코하마는 ‘至急(지급, 매우 급함)’, 나고야는 ‘MAYDAY’ 2번 외침(한국과 미국은 3번)을 유지한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심지어 무전기 채널 운영 방식조차 지역마다 상이해 일본 대원 사이에서도 광역 대응 시 상호 통신과 채널 할당이 중요한 과제로 다뤄진다.

 

또 현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일본 대원들의 외형적 다양성이다. 한국 소방관들이 규격화된 특수방화복을 착용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일본은 소속된 현(나고야, 와카야마, 요코하마, 하수다 등)에 따라 방화복 색상이나 디자인, 반사 테이프의 배열이 모두 달랐다.

 

▲ 김도훈 반장의 한국식 공기호흡기ㆍMAYDAY 절차 교육 

 

또 대원들의 헬멧과 방화복에 부착된 각양각색의 패치는 단순한 장식을 넘어 자신의 소속과 팀의 역사, 전문성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상징했다. 이는 국가 단위의 일사불란함을 강조하는 한국과 지역 사회를 지키는 개별 조직의 정체성을 중시하는 일본의 소방 문화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지점이었다.

 

▲ 등지게를 벗은 상태로 종합 장애물을 통과 중인 SUZUKI TOMOAKI 

 

이런 체계ㆍ문화적 차이는 첫날 진행된 종합장애물 통과 훈련에서 전술적 차이로 구체화됐다. 특히 뚜렷하게 확인된 지점은 ‘장애물 통과 시 등지게 탈착’ 여부였다. 한국 대원들은 표준교재에 따라 장애물 통과 후 즉시 등지게를 다시 착용하는 방식을 견지했다.

 

이는 면체 이탈의 위험을 방지하고 장비 체결력을 유지해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한국 소방의 원칙을 잘 보여줬다. 반면 일본 대원 중 다수는 장애물을 통과한 뒤 신속한 이동과 공기 소모 최소화를 위해 등지게를 벗은 상태 그대로 전진하는 유연함을 보여줬다.

 

단순히 어느 방식이 정답인가의 문제가 아니었다. 일본의 좁고 복잡한 목조 가옥 환경과 한국의 고층 아파트 중심 환경이 각기 다른 전술적 최적화를 요구해왔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원칙에 기반한 안정성’과 일본의 ‘현장 경험에 기반한 유연성’이 마주한 지점은 서로의 기술이 가진 전략적 장점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계기가 됐다.

 

첫날의 밀도 높은 소통과 교류는 자연스럽게 이튿날 진행된 RASP(Rope Assisted Search Procedures, 로프 활용 광범위 수색절차) 전술과 비상호흡법에 대한 기술 공유로 연결됐다.

 

2. 기술을 공유하고 변화를 결심하다

둘째 날은 양국의 ‘공기호흡기 관리(SCBA Management)’와 ‘비상호흡법’ 공유, 한국의 RASP 전술, RIT 장비 소개로 이어졌다.

 

• 공기 관리의 기준: 최저선과 현장의 유연성

전술 공유에 앞서 확인한 양국의 공기 관리 기준은 무척 흥미로웠다. 한국은 약 75㍴라는 명확한 경보음 기준(공기호흡기의 형식승인 및 제품검사의 기술기준)을 탈출 시점(중앙소방학교 2025년 소방전술 교재)으로 설정해 대원의 안전을 보수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반면 일본 대원들은 현장의 긴박함과 상황 변화에 따라 30~50㍴ 혹은 그 이하의 잔압까지도 유연하게 운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국가적 표준을 통해 ‘절대적 안전’을 담보하려는 한국과 현장 대원의 판단을 신뢰하며 ‘대응의 지속성’을 중시하는 일본 시스템이 교차하는 지점이었다.

 

• RASP 전술의 메커니즘: 광범위 수색의 기술적 혁신

▲ 가이드 라인과 오토 롤을 이용해 구조대상자를 수색 중인 일본 소방관들

 

일본 소방 내에서 RASP 전술은 다소 생소한 영역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표준화된 운용 절차를 바탕으로 한 시연은 일본 대원들에게 새로운 전술적 방향을 제시하며 깊은 영감을 줬다.

 

RASP의 핵심은 단순한 진입이 아니다. ‘확보된 지점(Anchor)으로부터의 체계적인 확장’에 있다. 로프(가이드라인, 오토 롤)를 활용해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공간에서도 대원 간의 연결성을 유지하며 수색 범위를 수치화하고 정밀하게 확장해 나가는 방식이다.

 

일본 대원들은 고립 대원을 발견한 뒤 탈출 경로를 즉각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가이드 라인의 신뢰성’과 수색의 ‘중복 없는 효율성’에 주목했다. 이는 감각에만 의존하던 기존 수색방식을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기술적 혁신이었다. 

 

일본 대원들은 고립 대원 수색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RASP 전술의 실효성과 필요성을 체감했다. 그러면서 자국 시스템 도입에 대한 깊은 공감을 표했다.

 

• 비상호흡법: 표준 체계와 숙련된 감각의 조화

비상호흡법 공유 시간에는 한국의 표준화된 네 가지 기술과 일본의 실전 노하우가 맞물렸다.

 

한국의 표준화된 네 가지 비상호흡법

스킵 호흡법

(건너뛰기 호흡법)

숨을 들이마신 후 숨을 내뱉는 과정을 건너뛰고 다시 한번 숨을 들이마신 후 천천히 내뱉는 호흡법
카운트 호흡법(BOX 호흡법) 3~5초 동안 숨을 들이마시고, 3~5초 동안 숨을 참고, 3~5초 동안 숨을 내뱉고, 3~5초 동안 숨을 참는  과정을 반복하는 호흡법
라일리 호흡법(Humming 호흡법) 평상시와 같이 숨을 들이마신 후 “흐음~(Hum~)”이라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코로 숨을 내뱉는 호흡법

휠 호흡법

(Wheel 호흡법)

공기호흡기 용기 밸브를 폐쇄한 후 필요시 등지게 경보음이 울리지 않도록 소량으로 밸브를 개방해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고 전부 들이마시기 전 밸브를 다시 폐쇄해 호스의 잔여 공기까지도 사용한 후 천천히 숨을 내뱉는 호흡법

 

일본의 경우 비상호흡법 도입이 오래되지 않아 아직 조직 내에 정착되는 과정이다. 하지만 일본 대원들은 제도적 공백을 실전 경험으로 메우듯 현장 활동상황에 따라 호흡을 4단계로 세분해 공기를 관리하고 체내 이산화탄소 누적을 줄이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공유해줬다.

 

한국의 ‘이론적 체계’와 일본의 ‘숙련된 감각’이 만나 서로의 전술적 빈틈을 채워주는 시간이었다.

 

SANJOU YUKINORI(Yokohama 소속)의 4단계 호흡법

1단계(약)

코로 들숨, 코로 날숨
2단계(중) 코로 들숨, 입으로 날숨
3단계(강) 코로 들숨, 입으로 2회 나눠 날숨

4단계(극한)

입으로 들숨, 입으로 날숨

 

▲ 휠 호흡법을 진행 중인 UCHIKADO TAKASHI

▲ 쉬는 시간 한국과 일본의 개인보호장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대원들 

 

• 장비의 혁신, 전술의 진화

한국 RIT PACK의 ‘Quick-Fill(급속충전장치)’과 ‘EBSS(비상호흡 공유시스템)’ 기능은 일본 대원들에게 단순한 장비의 우수성을 넘어 전술적 변화의 필요성을 시사했다. 

 

일본 대원들은 RIT PACK 휴대 진입이 보편화 되지 않은 일본의 현장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이번 훈련에서 확인한 기술을 자국 시스템에 녹여내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였다. 한국의 장비 운용 노하우를 밑거름 삼아 일본 실정에 최적화된 RIT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하며 교육의 의미를 더했다.

 

서울119특수구조단_ 김도훈 : 98kdodo@seoul.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6년 3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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