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시원 화재로 인한 27명의 사망자매년 고시텔 화재가 발생하면서 인명피해가 속출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마련은 전무한 채 사후약방문격으로 고인의 빈소를 순례하는 순으로 쓰라린 사고의 아픔은 이내 잊혀지고 만다.
돌이켜 보면 지난 2003년부터 2008년 7월 25일 현재에 이르기까지 고시원 화재로 사망한 사람은 모두 27명으로 부상을 입은 사람을 더하면 51명에 이른다. 27명의 죽음을 무엇으로 보상해줄 것인지에 대해 대답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
단순히 안전 부재를 정부의 관료주의적인 매너리즘에서 빠져 안일한 자세로 대처해온 부처 간의 갈등과 이기주의가 빚어낸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인지 아니면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지켜야할 안전규범을 소홀히 해온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성찰하여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특단의 대책들이 마련되고 장치되어야할 것이다.
■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고시텔
▶ 두 사람이 마주 걸어가면 비좁을 정도로 협소한 통로 © 김영도 기자 ◀ | |
지난 7월 25일 새벽 1시30분경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 용인타워 9층 고시텔 중앙통로에 위치한 6호실과 8호실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동시에 발생되어 7명의 사망자와 11명의 중경상자를 낳았다.
이 고시텔은 바닥면적 552㎡에 총 66개의 호실로 9층 전체를 칸막이 형태로 빽빽하게 채워놓았고 통로 역시 두 사람이 마주보고 걸을 때 비스듬히 옆으로 비켜 지나가야 하는 구조로 위급상황 발생시 안전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이날 화재는 고시텔 21호실에서 잠을 자던 관리자가 비상벨 소리에 깨어 나와 보니 비닐 타는 냄새가 진동하여 이를 확인하던 중 6호실 문을 여는 순간 불길이 치솟았고 급격히 천정상층부로 화재가 확대되면서 유독성 농연이 확산되었다고 한다.
▶ 용인타워 9층 고시텔 내부가 66개의 호실로 촘촘하게 들어서있다. © 김영도 기자 ◀ | |
용인소방서 화재조사관에 따르면 “화재발생 당시 소화전과 감지시설 등은 100% 완벽하게 작동되었다”며 "고시텔 관리인이 소화기를 사용해 초기진화를 시도하다 119에 신고했다"고 전했다.
고시텔 관리자가 화재소방시설 경보장치의 비상벨을 듣고 화재가 발생했다는 것을 인지한 것으로 보아 소방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음을 알게 하지만 7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원인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화재가 발생한 시각은 새벽인 1시25분경으로 대부분의 투숙자들이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화재가 발생한 6호실과 8호실에서 농연이 죽음의 그림자처럼 9층 고시텔 전체로 확산되어갔다.
용인소방서는 다수의 인명피해발생 원인을 신고지연, 초기진화실패, 인명대피유도지연과 벌집형 구조의 방배치, 협소한 미로형 통로로 보고 있다. 현 제도권에 있어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 염화수소가스 눈에 닿으면 염산으로 실명7명의 사망자 중 1명을 제외한 6명 모두가 직접적인 사망요인을 연기흡입으로 인한 기도손상 및 호흡기손상으로 보고 있다. 화상에 의해 목숨을 잃는 것보다 유독성 가스로 인한 사망자가 더 많다는 것이다.
지난 1987년 영국에서 발표한 화재통계를 보면 연무와 연소가스에 의한 사망이 전체 사망자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 타다 남은 잔해가 당시의 상황을 전달해주고 있다. © 김영도 기자 ◀ | |
화재가 발생되면 검은 농연으로 가득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칠흑 같이 어두운 상태로 변해 피난통로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 일선 화재진압 대원들의 말이다.
특히 통로가 비좁고 벌집형 구조의 고시텔에서 잠이 덜 깬 상태의 투숙자들이 소량의 검은 농연을 흡입한 채로 화재현장을 빠져나간다는 것은 사실상 매우 어렵다.
화재의 2차효과로 불리는 연기 및 유해가스에 의해 판단력이 저하되고 행동불능을 일으키며 심하게는 실명까지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연무 그 자체는 흡입에 의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은 아니나 이에 동반하는 현상 즉, 일산화탄소 등의 독성가스와 산소결핍, 열의 방사 등에 의해 사망하게 된다고 보고 있다.
고시텔의 경우 공기가 순환되지 않는 밀폐된 환경이 화재발생시 죽음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참사를 불러온 용인 고시텔 역시 9층 내부가 밀폐된 상태로 외부로부터 공기유입이 원활하지 않았다.
가연성 물질이 연소되면서 발생하는 유해성 가스의 유독성분을 살펴보면 가장 문제가 되는 독성가스로 일산화탄소로 꼽고 있다.
일산화탄소는 혈액 중의 헤모글로빈과 결합하여 cohb의 생성에 의해 산소운반기능이 저하되며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유기물의 불완전 연소에 의해 발생되기 때문에 어떠한 화재에도 생성될 수 있어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 경민대학교 소방안전관리과 현성호 교수는 "일산화탄소, 이산화탄소, 암모니아, 아황산가스, 황화수소, 시안화수소, 염화수소, 이산화질소, 아크릴로레인, 포스겐 등은 인체에 가장 치명적인 연소가스라고 설명했다. © 김영도 기자 ◀ | |
경민대학교 소방학부장인 현성호 교수는 “일산화탄소, 이산화탄소, 암모니아, 아황산가스, 황화수소, 시안화수소, 염화수소, 이산화질소, 아크릴로레인, 포스겐 등이 인체에 가장 치명적인 연소가스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시안화수소는 아크릴이나 나일론, 폴리우레탄 수지, 멜라민 수지 등에서 나오는 질식성 가스로 호흡기에 영향을 미쳐 마비증상을 가져온다.
특히 염화수소(hci)의 경우 잠깐 동안인 50ppm에 노출되어도 피난능력이 상실되고 가스가 축축한 눈에 닿으면 염산으로 화학적 성질이 바뀌어 실명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증상으로는 염증(가려움, 통증)을 동반하며 시력감퇴 또는 시력상실의 우려와 결막염까지 일으킬 수 있고 구토와 위통 등의 증세를 느낄 수 있다.
또한 흡입할 경우 진한 염산가스인 경우 들여마시면 기침이 나거나 코나 목에 염증을 유발하며 많은 양을 흡입하면 폐수종으로 사망하고 진한 가스나 증기를 흡입하면 인체의 조직을 손상시켜 목의 통증이나 경련으로 사망하는 수가 있다.
▶ 화재로 인한 농연으로 천정이 시커멓게 그을려 있어 당시 농연이 얼마나 가득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 김영도 기자 ◀ | |
0.15~0.2%의 염산을 함유하고 있는 공기를 흡입해도 수분 내 사망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염화수소를 발생시키는 소재가 pvc 계열의 합성수지로 실내에서 사용하고 있는 가구류 중 책상과 신발장, 옷장 등의 표면에 부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 유독성 가스 내뿜는 방염제이번 고시텔 화재로 인한 사망자들의 직접적인 사인을 유독성 가스로 인한 호흡기 손상으로 볼 수 있어 가연성 물질에 대한 유독가스의 법적기준과 규제가 따라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화재발생으로 인한 연소를 지연하고자 설치하는 방염재료에서 유독성 가스가 발생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법적 규제가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다.
현재 시중에서 방염제로 사용되고 있는 종류는 세 가지로 수성방염재료와 유성방염재료, 합성수지 소재의 방염필름으로 구분되어진다.
지난 2004년 8월 한국건자재시험연구원에서 수성과 유성방염도료와 pvc 방염필름을 9.5㎜ 두께의 합판에 대어 각각 20분간 동일한 조건에서 연기밀도를 시험한 결과를 살펴보면 수성방염도료는 139.9, 유성방염도료 385.7, pvc 방염필름 431.6으로 나와 수성방염 도료외 최대연기밀도 기준치 400에 거의 육박하거나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소방검정공사 방내화팀은 유해성 가스실험에 대해서 “가스유해성 실험은 의무사항은 아니고 권장사항”이라고 전하면서 “1년에 1회씩 모든 방염필름 제조사가 실시하고 있다”고 답했다.
■ 국민의 안전 아랑곳 않는 법제처지난달 22일 법제처는 규제완화 차원으로 지하층 간이스프링클러설비 설치의무와 방염처리 실내장식물의 중복적 방염성능검사를 개선하겠다고 '국민불편법령 개폐사업'의 추진사항을 국무회의에 보고했다.
법제처는 한국소방검정공사에서 이미 방염성능검사를 받아 합격표시된 제조공정방염처리물품(방염필름지)으로 현장방염처리가 필요한 목재 및 합판에 도배를 할 경우에도 다시 제조공정방염처리물품을 목재, 합판 등에 부착시공한 후 현장에서 시료를 채취해 방염성능검사를 받고 있어 중복규제라고 지적했다.
덧붙여 민원처리기간도 평균 7.5일이 걸려 이에 따른 비용 손실이 예상된다며 생산과정에서 성능을 인정받은 제품을 목재, 합판 등에 시공하는 경우 이를 방염성능검사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단기 개선 계획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안전에도 규제완화가 필요한지 의문시되는 사항으로 국민의 안전보다는 경제적 손실에 더 민감한 정부의 입장을 시사하고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법제처가 주장하고 있는 관점으로 본다면 방염제로 사용되고 있는 도료 역시 목재나 합판 위에 덧칠하기 때문에 방염필름 검사와 동일하게 중복적인 검사로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앞선다.
■ 스프링클러 vs 방염처리
▶ 조용선 소방기술사는 "고시원에 설치되는 가연성 물질을 모두 난연이나 방염처리 하거나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거나 양자택일하도록 법적인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 김영도 기자 ◀ | |
“고시원 화재로 더 이상 애꿎은 목숨을 잃지 않게 하려면 고시원에 설치되는 가연성 물질을 모두 난연이나 방염처리를 하든지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든지 양자택일하도록 법적인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조용선 소방기술사는 이번 고시텔 화재를 관심 깊게 꼼꼼히 살펴보며 이면에 감춰진 노출되지 않은 문제점들을 찾아 구조적인 해법들을 제시했다.
그는 먼저 고시텔 구조 중 천정에 방화구획이 없어 유독성 가스가 9층 전체로 확산된 것으로 보고 있다.
건축법상 급수관과 배전과 그 밖의 관이 방화구획으로 되어 있는 부분을 관통하는 경우 그로 인해 방화구획에 틈이 생긴 때에는 그 틈을 메울 것을 명시하고 있지만 용인 고시텔의 경우 통로와 각 호실을 구분하는 방화구획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천정 마감이 윗층 슬라브 아래에 일정한 공간을 두고 설치되기 때문에 화재가 발생되어 연무가 천장으로 올라가면 빈 공간을 통해 급속도로 실내 전체로 퍼질 수 있어 이에 대한 대책도 강구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조용선 소방기술사는 “임의의 호실에서 사용자의 부주의로 화재가 발생되어 대피하기 위해 문을 열고 빠져나왔을 때 문이 자동으로 닫혀 화재의 연속성을 차단해야 하고 바닥마감재 역시 난연성을 가지고 있어야 피난자들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간이 스프링클러를 소급적용하는 것에 대한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 “책상이나 침대 등 이동이 가능한 가연성 물질에 대한 난연 또는 방염의 강제성을 둘 필요가 있고 간이 스프링클러와 같은 자동소화설비 이상의 설비를 설치하면 이를 대신해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안전은 규제가 아닌 사회적 규범지금까지 화재로 인해 고귀한 생명을 잃는 것이 현 제도에서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또한 용인 고시텔 희생자 중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닥쳐올 불행에 대해서 짐작하지 못했고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사회구성원으로 우리 시대가 만들어낸 안전을 도외시한 주거환경에서 비참하게 삶의 종지부를 마감해야만 했다.
이는 사회적으로 안전이라는 중요성 보다는 영리를 추구하는 개인의 경제성을 앞세워 안전과 생명이라는 사회적 안전약속을 무시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경제적 논리에 귀속시킨 결과라고 단언할 수밖에 없다.
싸늘하게 변해버린 죽음 앞에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돈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되는지 묻고 싶다. 고인의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차원으로 고위직의 정치인들이 온다고 해서 죽은 이가 살아나는 것도 아닌데 마치 관행처럼 변질되어 버렸다.
지난 2006년 잇따른 고시원화재로 인명피해가 발생하면서 고시원에 대해 위생관리의무 및 손해발생시 배상책임을 위한 보증보험가입과 예치금 납부 등을 주요 골자로 하는 공중위생관리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지난해 4월 입법예고 되어 11월 국회에 제출되었지만 유야무야 폐기되고 말았다.
고시원 업주들의 잦은 민원과 민생에 대한 규제완화를 외치는 법제처의 반대로 미루어지다 지난 5월말 17대 국회임기를 끝으로 자동폐기된 것이다.
개인의 생존권을 앞세워 반대를 주장하는 집단 이기주의에 생명의 존엄성이 무시되고 우리 사회가 지켜야할 안전규범을 규제로 착각하는 정책입안자들의 시각은 국민의 안전은 경제적 논리보다 못한 존재로 여기고 있어 특단의 대책이 강구되지 않는 한 이와 같은 인명피해는 앞으로 계속될 전망이다.
특별취재팀(김영도, 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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