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일은 제35주년 여성소방의 날이었다. 이 날 서울소방재난본부에서 여성소방공무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여자는 불편해! 함께 근무하기 싫어!’라는 말을 가장 듣기 싫어했고 임신, 출산 및 육아 문제를 가장 힘들어했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소방공무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여성소방의 날을 맞아 여성소방공무원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찾아간 서울소방학교에서 만난 그녀들은 누구보다 밝았고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다. ‘소방’이라고 하면 왠지 거칠고 남성스러움이 짙게 뭍어나 여성들이 접근하기 쉬운 분야가 아니라는 선입견이 있는데 그녀들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그녀들의 일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을 느끼고 나니 사뭇 그녀들이 부러워지기까지 했다. 우리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어머니 같고, 언니 같고, 여동생 같았던 그녀들이 여성이기에 소방공무원으로서 느끼는 업무현장에서의 애로사항이나 육아, 건강 등에 대해 솔직담백한 얘기들을 들려줬다.
“‘성공하는 여자의 대화법’이라는 책이 있어요. 우리와 같이 남성의 비율이 많은 곳에서 근무하시는 분들게 추천해 드리고 싶은 책이에요. 그 책을 보면 대화를 통해 남성들과 어떻게 융화될 수 있는지 깨닫게 되실 겁니다” 소방에 입문한지 27년차인 석명희 교수는 말 그대로 배테랑이다. 업무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남자소방공무원과의 유대관계에 있어서도 누구 못지 않은 노련함을 자랑했다. 석 교수는 “소방공무원들이 봉사정신이 투철하잖아요. 그래서 여성소방공무원을 동료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과잉보호하려는 경향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여성소방공무원 대부분이 근본적인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인정하지만 업무에 있어서는 여자이기 때문에 보호받기 보다 한 사람의 소방공무원으로서 인정받고 일하고 싶어하는 책임의식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남성의 비율이 훨씬 높은 소방이라는 분야에서 근무하며 적잖은 피해의식도 느꼈다는 석명희 교수는 ‘성공하는 여자의 대화법’이라는 책을 추천했다. 석 교수는 “‘남자들은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는 걸 쉽게 받아들이지만 여자는 돌려 얘기해서 문제가 생긴다’는 것부터 보는 내내 공감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나요”라며 “타 소방서에 계시는 여성소방관들도 이 책을 읽으면 남자 직원들을 대하는 기술이 생길 것”이라고 귓뜸했다. 그녀는 감찰 쪽에서 4년 정도 근무를 하다 강동소방서에 검사팀장으로 발령을 받아 갔었는데 10명의 팀원 모두 자신을 팀장으로는 생각하지만 그 이전에 ‘여자’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석 교수는 “팀원 중 한명이 바지 지퍼가 반 정도 올라간 상태로 서 있길래 ‘지퍼가 올라간거야, 내려간거야. 똑바로 해! 내가 자기들 지퍼관리까지 해줘야겠어?’ 했더니 여자로 생각 안하기 시작하더라”며 환한 웃음을 보였다. 관념과 통념상 아직 우리나라에서 여자에게 지시 받아 움직이고 싶은 남자는 없을 것이다. 이를 서울소방학교 석명희 교수는 특유의 재치와 배려심으로 풀어나가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줬다.
“10여년 동안 2교대 구급대원으로 활동하면서 아이들을 돌봐주지 못했다는게 참 마음이 아파요. 이미 대학생이 돼버린 딸 아이가 등교할 때 머리 한번 예쁘게 묶어주지 못한게 너무 미안하죠” 신연화 주임은 시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며 2교대를 해왔던 10여년 동안 밤에 출동이 아무리 많았어도 퇴근 후 집에 가서 단 한번도 낮잠을 자지 않고 빨래와 청소, 식사 준비까지 손수 했다. 사회에서는 한 사람의 소방공무원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했지만 가정으로 돌아가면 며느리로, 아내로, 또 두 아이의 엄마로서의 역할 또한 소홀히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연화 주임은 “물론 2교대를 하면서 힘든 점도 있었지만 2교대 덕분에 평일에만 처리할 수 있는 관공서 업무나 은행 업무들을 처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또, “비번 날을 이용해 아이들 학교에 일일교사로 교단에 선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죠”라고 덧붙였다. 그녀는 얼마 전 발생했던 은평구 나이트클럽 화재로 동료 세 명을 잃었다. “오늘이 49제 였어요”라고 그녀가 어렵게 말문을 열며 눈시울을 붉혔다. 은평 소방서에서는 49일내내 아침 점검시간에 그들의 넋을 기리는 차원에서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신 주임은 “아직도 직원들끼리 있으면 그 분들의 얘기를 하곤 해요”며 “바로 전 날까지 같이 근무하던 직원이 이런 화를 당하면 마음이 너무 무거워지죠”라고 말했다.
남성들이 많은 소방이라는 분야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업무를 추진할 때 보다 세심하고 부드럽게 진행하는 부분이 많다고 안희 주임은 말한다. 안희 주임은 “많은 사람들과 협조를 구해서 진행해야 하는 업무에 직면했을 때 친분이 없는 이들과 연락을 하게 되도 편하게 대해주는 경우가 많아요”라고 설명했다. 그녀는 또, “시민들을 상대하는 민원업무에 있어 ‘친절하고 부드럽다’라는 평을 많이 받고 있어요”라며 “여직원들은 일을 꼼꼼하게 처리하고 게으르지 않다고 인정을 받죠”라고 덧붙였다. 이렇듯 여성소방공무원이기 때문에 누리는 특수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 안 주임의 의견이다. 그녀는 “만약 다른 행정직 공무원이었다면 이런 특수를 누릴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희 주임은 “지금껏 단 한번도 현장에서 근무하지 못한 것이 개인적인 콤플렉스”라고 말했다. 밑에서부터 여러 업무를 경험해봐야 어느 위치에 있을 때 후배들의 애로사항이라던가 개선사항을 알아낼 수 있을텐데 지금 혹시 원천봉쇄를 당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든다는 것이다. 안 주임은 “이것은 비단 저 뿐 아니라 모든 소방공무원들이 하고 있을 고민일지도 모르겠네요”라고 전했다. 그녀는 후배들에게 “경방요원은 불을 끄는데 있어 전문가이고 구급요원은 구급에 있어 전문가에요. 이러한 사실에 자긍심을 가지고 지냈으면 좋겠어요”라고 조언을 남겼다.
친구들과 여행을 하던 중 꽉 막힌 고속도로에 지나가던 응급차를 보고 ‘저기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이은희 소방교. 현재 그녀가 근무하는 서초 119안전센터는 3교대를 시행 중이다. 이은희 소방교는 “2교대 근무를 하게 되면 여성 호르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주변에서도 생리불순이나 불임, 갑상선 등에 이상이 생기는 직원들을 많이 볼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또, “근무를 하다가 유산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고 외상 후 스트레스로 태교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죠”라고 지적했다. 이미 경기도에서는 출산을 위해 휴가를 냈을 경우 대체인력으로 보강을 해주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 서울에서도 시행했었으나 워낙 소수인력이다 보니 소방쪽에서는 활용 되지 못했던 사례가 있다.
모였던 5명의 소방관 중 가장 새내기였던 이진영 소방사는 192.6:1 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입문한 엘리트 소방관이다. 이진영 소방사는 경방업무를 담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한번도 소방차에 탄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화재현장에 다녀오신 분들이 뿌듯해 하시는 모습을 보면 참 부럽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라며 “뭣 하러 힘들게 소방차를 타려고 하느냐고 말씀하시는 선배님들의 배려가 고맙기도 하지만 ‘여자가…’라고 말씀하시는 것들이 상처가 되기도 했죠”라고 말했다. 그런 일들이 계기가 되어 이 소방사는 얼마 전 있었던 전국소방기술경연대회에 참가했다. 여자도 힘든 훈련들을 잘 견뎌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이진영 소방사는 “훈련 현장에 가면 여자, 남자 구분 없이 훈련을 시키시는 교관님을 보면서 몸은 고됐지만 마음은 너무 뿌듯하고 좋았어요”라며 “지금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전했다. 그녀는 “경쟁률도 세고 필기부터 체력, 면접까지 어렵게 소방에 입문하게 됐는데 중간에 포기하고 나가는 동기들을 보면 안타깝죠”라며 “힘들게 들어온 만큼 애착이 커요. 앞으로 더욱 열심히 일 해 더욱 봉사하는 소방관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은영 기자 fineyoo@fpn119.co.kr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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