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뺑뺑이’ 2배 급증… “해법은 정부 차원 시스템 개선”전문가들 국회 세미나서 “응급처치 최선 다한 의료진 면책 제도 시급” 강조
[FPN 최누리 기자] = 응급환자가 병원을 전전하다 골든타임을 놓치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사태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이 가운데 관련 문제 해결을 위해 응급의료 전달체계를 재정비하고 현장 의료진의 법적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난 12일 국민의힘 서명옥 의원(서울 강남구갑)이 주최하고 대한응급의학의사회가 주관한 ‘응급의료체계 소생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국회의원회관 제2간담회의실에서 열렸다.
‘응급실 뺑뺑이’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엔 평택에서 한 임산부가 응급실을 찾지 못해 창원까지 이송됐다. 청주의 뇌졸중 환자가 병원 5곳을 전전한 끝에 치료를 받기도 했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병원 이송에 2시간 이상 소요된 응급환자는 2023년 상반기 1656건에서 올해 상반기 3877건으로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이날 발제를 맡은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은 현재 응급의료 현장이 ‘붕괴 직전’이라고 진단했다.
이 회장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응급의학 전공의 10% 이상이 수련을 포기했고 현장을 지키던 전문의들마저 10% 이상 응급실을 떠나 개원하는 등 핵심 인력의 유출이 가속화됐다. 특히 의정 갈등을 겪으면서 전공의들이 빠져나간 상급종합병원 응급실 환자는 약 40% 급감했다.
이 회장은 “환자들이 응급실 방문을 참은 게 아니라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고 병원은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한 결과”라며 “결국 이런 문제가 드러나지 않을 뿐 실제 수치로 집계되고 있다. 초과 사망률 상승 등 악화된 지표를 어떻게 정상으로 되돌릴지가 당면 과제”라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소극적인 환자 수용 원인으로 과도한 법적 책임을 꼽았다. 그는 “정부의 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은 응급의료센터에 최종 치료의 책임을 지우고 있지만 이는 현장을 모르는 탁상공론”이라며 “응급실은 응급처치하는 곳이지 모든 진료과의 최종 치료까지 책임지는 곳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역할과 책임이 불분명하다 보니 병원들은 소송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환자 수용에 소극적일 될 수밖에 없다는 게 이 회장 주장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응급처치에 최선을 다한 의료진에게는 결과와 상관없이 면책해 주는 제도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법적 위험을 감수한 채 환자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면서 “미국에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엠탈라 법을 제정한 것처럼 우리나라 역시 방향을 제대로 잡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엠탈라(EMTALA)는 응급치료가 필요한 사람이 병원을 찾을 때 병원비 지급, 불법체류 여부 등과 관계없이 치료해 주도록 한 법이다. 지난 1986년 미국 의회가 통과시킨 뒤 현재까지 시행 중이다. 이 회장에 따르면 이 법에 따라 응급처치가 적절히 이뤄졌을 경우 중대 과실이나 고의 위법 행위가 아니라면 의료진을 보호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형성됐다.
이 회장은 비응급환자의 무분별한 119 이용을 막기 위한 ‘119 유료화’도 공론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해외에선 119가 현장에서 병원까지 환자를 이송할 경우 비용을 청구하지만 최종 치료 병원으로 옮기면 이를 청구하지 않는다”며 “우리나라는 비응급 이용에 비용을 부과하지 않아 비도덕적 행위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응급과 최종 치료 분리 측면에서도 병원 간 전원 또한 119가 담당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진 토론에는 ▲김찬규 응급의학과 전공의 ▲최주영 소방청 119구급과 구급정책팀장 ▲김정언 중앙응급의료상황실장 ▲송영조 보건복지부 응급의료과장 ▲최대해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응급의료 체계가 더는 개별 기관의 노력만으로 유지될 수 없으며 정부 차원의 시스템 개선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김찬규 전공의는 응급의학과 기피 현상의 심각성을 설명하며 전공의들이 응급의학과를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소위 상위 5대 병원의 전공의 충원율은 100%에 달하지만 지방은 50%에 불과하다”며 “결과가 좋지 않으면 최선을 다했더라도 민ㆍ형사상 책임을 져야 하는 구조 속에서 의사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해결책으로는 환자에게 전공의나 수련의 진료 참여를 의무적으로 알려 법적 부담을 완화하고 지역 간 격차가 없도록 수련 환경 표준화를 이룰 독립된 평가기관의 출범 방안을 제시했다. 또 엠탈라와 같은 과정 중심의 면책 제도를 도입해 소신 진료 환경을 보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최주영 팀장은 병원 전 단계의 현실을 전했다. 그는 “산부인과와 소아과 등 특정 진료 과목 환자는 100번 넘게 전화해도 갈 곳이 없는 경우가 있다”며 “의료 환경에 대한 개선이 선행되면 병원 수용력이 높아져 이송 관련 문제 역시 해결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언 실장은 다양한 위기 발생 시 실시간으로 대응하기 위한 컨트롤타워 구축 계획을 밝혔다. 김 실장은 “상황실은 응급의학과 전문의와 구조사, 간호사로 구성된 전문 조직”이라며 “IT, AI 기반의 통합 관제 시스템을 구축해 응급과 재난 시 실시간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최대해 센터장은 “필요한 곳에 의사와 장비 등 자원이 적정하게 배치되고 그 효과가 제대로 측정ㆍ평가돼 다시 시스템 개선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관계기관 등과 상의하겠다”고 강조했다.
송영조 과장은 보건복지부 차원의 문제 해결 의지를 피력했다. 그는 “응급의료진이 겪는 법적 부담이 크다는 점을 인지하고 이를 완화하려고 미국 엠탈라 모델을 포함한 법 개정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권역응급의료센터가 이름에 걸맞게 중증 응급환자 최종 치료 역량을 갖추도록 역할을 재정립하고 그에 상응하는 충분한 보상 체계를 마련하는 등의 방안을 고민 중이다”고 했다.
최누리 기자 nuri@fpn119.co.kr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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