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화재/집중취재⑥] “오작동이겠지…” 쿠팡의 부실 대처 뒤에 숨은 진실신고 16분 전 화재 첫 신호, 소방시설 ‘싹 다 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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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재로 전소된 쿠팡 물류센터 지하 2층 © 최영 기자 |
[FPN 최영 기자] = 쿠팡 물류센터 화재 당시 관리자가 소방시설 작동을 정지시킨 사실이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FPN/소방방재신문>이 쿠팡 물류센터의 화재 수신기 이력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당일 화재는 소방서 신고가 이뤄지기 16분 전 처음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스프링클러 설비가 애초부터 작동하지 않도록 밸브를 잠가 놓은 사실도 드러났다.
화재 당일 소방이 쿠팡 물류센터 화재 신고를 받은 시각은 오전 5시 36분. 소방 선착대는 신고 접수 후 7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쿠팡 물류센터에서 불이 처음 감지된 건 이보다 16분이나 빠른 5시 20분께였던 것으로 확인된다. 쿠팡 물류센터 측은 소방시설을 통해 첫 화재 신호가 들어온 오전 5시 20분 18초에 경보 등을 모두 고의로 차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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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PN/소방방재신문>이 단독 입수한 쿠팡 물류센터의 화재 수신기 작동 이력에는 이 같은 쿠팡의 부실 대처 정황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화재 당일 수신기 기록을 보면 오전 5시 20분 18초께 지하 2층에서 화재감지 신호가 처음 발생한다. 동시에 주경종(방재실 내 경보)이 울리자 6초 뒤인 5시 20분 24초부터 이를 고의로 정지시켰다. 경보시설 정지 버튼을 누르기 시작한 관리자는 이후에도 수차례 소방시설의 작동을 차단한 것으로 확인된다.
또 쿠팡 측은 소방시설 오작동에 대비한 예비 신호(축적 신호) 이후 실제 화재 신호가 들어온 5시 22분 3초 이후에도 시각경보와 사이렌, 스프링클러 밸브, 비상방송 등을 모두 강제 정지하고 심지어 스프링클러 설비의 심장부인 펌프 동작까지 중지시켰다.
이후 5시 26분께 ‘수동발신기’로 표시되는 화재 입력신호가 또 들어왔다. 하지만 쿠팡 측은 소방시설 정지 상태를 여전히 풀지 않았다.
32분 22초가 돼서야 스프링클러 펌프와 비상방송, 사이렌, 스프링클러 밸브, 소화전 펌프, 경종 등을 다시 자동으로 전환(강제 정지 해제)했다. 처음 화재 신호가 들어온 5시 20분부터 5시 32분까지 무려 12분 동안 소방시설이 작동하지 않도록 고의로 시스템을 정지해 놨던 셈이다.
결국 물류센터 내에서 가장 빠르게 반응했어야 하는 경보시설과 스프링클러 등 주요 소방시설은 최초 화재 신호가 들어온 5시 20분보다 13분이 늦은 5시 33분 9초부터 가동될 수 있었다.
창고 내 빼곡히 쌓인 적재물 등으로 불길이 옮아붙으며 빠르게 번지는 상황에서도 전체적인 소방시설이 제때 작동하지 못했던 배경이다.
특히 쿠팡 물류센터 수신기 이력에는 스프링클러 설비의 밸브를 잠가 놓은 흔적도 고스란히 남았다. 불이 처음 시작된 지하 2층은 물론 지상 1, 2층 할 것 없이 모두 밸브가 잠겨 있었다.
이는 수신기 이력에서 ‘PㆍV TAMPER SW’(준비작동식 밸브 탬퍼 스위치) 신호로 확인할 수 있다. 탬퍼 스위치 신호는 스프링클러 밸브가 정상적으로 열려 있으면 수신기에 신호가 들어오지 않고 밸브가 닫혀 있을 때만 들어오는 신호다.
![]() ▲ 쿠팡 물류센터 화재 수신기에 저장된 이력에는 탬퍼 스위치 신호가 들어온 것이 확인된다. © 최영 기자 |
쿠팡 물류센터 화재 당시 화재 경보가 정상 작동했더라도 스프링클러 설비는 잠긴 밸브 탓에 작동하지 못했다는 걸 의미한다.
화재 당시 소방에 신고가 이뤄진 시각이 5시 36분인 점을 고려하면 쿠팡 물류센터는 소방시설의 최초 작동 시 화재 사실을 인지했는데도 무려 15분이 넘도록 소방서에 신고조차 안 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소방시설 정지 상태를 푼 5시 26분과 비교하더라도 10분이나 지난 시각이다.
현장에 출동한 소방 구조대장의 안타까운 목숨을 앗아간 쿠팡 물류센터 화재는 평소 부실하게 운영돼 소방시설 관리실태가 피해를 키운 꼴이다. 여기에 늑장 신고까지 더해져 최악의 대형화재로 번졌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오작동이겠지” 일단 끄고 보는 소방시설
쿠팡 화재 사고도 ‘역시나’였다. 쿠팡 물류센터처럼 소방시설 차단 문제는 큰 화재 때마다 어김없이 단골로 등장한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소방시설 차단 문제가 쿠팡 물류센터 같은 창고시설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 ▲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한 물류창고 메자닌 층에 설치된 속칭 일반식 열감지기 © 최영 기자 |
불과 3개월 전인 4월 10일 수천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경기도 남양주 대형 주상복합건물 ‘부영애시앙’ 화재 때도 같았다. 사고 당일 관리자는 화재를 감지한 뒤 울어대는 경보를 오작동으로 치부하고 소방시설 전체를 고의로 정지시켰다. 심지어 상가 관계자들로부터 걸려온 전화 문의에도 오작동이라며 안일하게 대응했다.
화재 당일 상가동 1층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신호가 들어온 뒤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지만 관리자는 비상벨 등 소방시설의 가동 명령을 연타해서 끄기 시작했고 화재 수신기가 이상을 일으키며 먹통이 되는 2분 19초 동안 계속해서 정지시킨 사실이 <FPN/소방방재신문> 취재결과 (관련 기사 본지 4월 25일자 - [집중취재] 남양주 부영애시앙 화재, 피해 컸던 이유는?) 드러났다.
![]() ▲ 부영애시앙의 화재 당일 수신기 로그 기록에는 화재 경보 등을 모두 정지시킨 이력이 남아 있다. ©최영 기자 |
지난해 7월 21일 5명이 숨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의 SLC 물류센터 화재에서도 소방시설 차단 문제가 드러났다. 경찰 조사 결과 물류센터 관리업체 등은 물류센터 사용 승인일인 2018년 12월 28일부터 무려 2년 가까이 화재감지기 등 소방시설을 정지시킨 상태로 운영해 왔던 사실이 드러났다. 관리업체가 오작동을 우려해 연동을 정지시켜놨던 거다.
2019년 2월 19일 3명이 숨지고 88명이 다친 대구 중구 포정동 사우나 화재 사고도 화재경보시설을 꺼놨었다. 잦은 오작동으로 상가 관계자들과 이용객 항의가 많아 경보시설 전원을 임의 차단했다는 게 당시 경찰 조사 결과다.
2018년 11월 7명이 숨진 ‘국일 고시원 화재 사고’도 마찬가지다. 고시원 입주자가 켜 놓은 전기난로에서 불이 났지만 화재경보시설을 꺼놔 피해가 커졌다. 당시 고시원장은 화재경보기가 평소 오작동이 잦았으나 수리하지 않았고 정지 버튼을 눌러 놓은 채 운영해 왔다.
지난 2018년 8월 21일 9명이 숨진 인천 남동구 세일전자 공장 화재도 관계자가 화재 신호가 들어온 후 소방시설을 일부러 꺼 내부에 있던 근로자들이 제때 피난하지 못했다. 이 외에도 소방시설을 차단해 놓거나 화재 직후 고의로 정지시킨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꺼놓거나 차단하는 ‘소방시설’ 대체 왜…
대형화재 사고 뒤에 숨은 ‘소방시설 정지, 차단’ 문제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대다수 화재 사고에선 늘 이 같은 문제가 도마 위로 오른다. 처벌을 받은 건축물 관계인도 많다. 최근에는 소방서의 조사 과정에서 화재 수신기의 작동 이력 확인을 통해 정지 사실이 드러나 처벌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화재감지를 위해 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설치한 소방시설은 왜 이렇게까지 엉망으로 관리되는 걸까. 그 배경은 설치된 화재 감지시설의 잦은 오작동에 있다. 상가나 공동주택, 창고시설, 업무시설 등에서 발생하는 소방시설 오작동은 심각한 혼란을 부르고 일상은 물론 업무에까지 큰 영향을 초래하게 된다.
![]() ▲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한 물류창고 사무동에 설치된 일반식 연기감지기 © 소방방재신문 |
건축 준공 이후 초기에 한두 번 울린 화재 경보는 재실자들이 피난하는 등 초기 대처에 충실할 수 있지만 비상식적으로 잦은 화재 경보는 사람의 인식을 무뎌지게 만들고 결국 ‘양치기 소년’ 취급을 받게 한다.
관리자에게 돌아오는 계속되는 항의와 민원 탓에 소방시설을 차단해 놓거나 경보 이후 최대한 신속하게 경보를 차단하는 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이유다.
쿠팡 물류센터와 남양주 부영애시앙 화재 등 실제 화재 상황에서도 ‘또 오작동이겠지’라는 인식에서부터 출발하는 문제들이다. 소방시설을 신뢰하지 못하는 우리나라 건축물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양치기 소년’ 된 화재감지기, 문제는?
화재 시 발생하는 열이나 연기, 불꽃 등을 감지해야 하는 화재감지기가 실제 화재가 아닌 상황에서 오경보를 내는 현상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화재와 유사한 환경이 조성될 때 나타나는 ‘비화재보’, 기계적 결함이나 오류로 인해 이상 신호가 발생하는 ‘오작동’이다.
이 두 가지 요인 모두 ‘오경보’라는 측면에서 결과가 유사해 보이지만 엄연히 따져보면 명확히 구분해야 하는 문제들이다. ‘비화재보’는 연기감지기 주변에서 고기를 굽거나 수증기, 다량의 먼지 또는 분진 등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현상이다. ‘오작동’은 시설 결함이나 오류, 습기 등으로 인해 나타나는 감지기, 선로 등의 기능적 문제에 따른 이상 신호다.
이 같은 화재경보시설의 비화재보와 오작동 문제는 건축물 관계자의 인식 부재와 소방시설의 부실 관리, 설치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감지기 설치 등 다양한 원인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이를 원천적으로 해소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전문가들은 비화재보나 오작동을 최소화하기 위한 기술적 방안과 이상 신호 발생 시 즉각 대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 ▲ 경기도 이천에 한 냉동창고 저장고 앞 복도에 설치된 일반식 연기감지기는 온도차에 따른 습기 등에 의해 잦은 오작동을 일으키고 있다. © 최영 기자 |
비화재보나 오작동 등이 발생하면 무작정 화재경보시설 자체를 꺼버리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시대적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제도적 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오작동에 신뢰 잃는 소방시설… 소방력 낭비까지
우리나라는 화재 경보가 울리면 이를 정지시키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심지어 수신기의 기능 자체를 꺼 놓은 건물도 여기저기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되레 오경보가 울려 대피를 하도록 조치하면 욕을 먹는 아이러니한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
중대형 건물에서 소방시설 관리 업무를 수행하는 A 씨는 “화재 경보가 발생하면 우선 방재실에서 울리는 주경종과 건축물 내부에서 울리는 지구경종을 정지하고 상황을 관찰한다”며 “만약 오작동이면 문제가 된 화재감지기를 찾아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수많은 감지기를 현장에서 확인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오작동의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거나 오신호를 발한 화재감지기를 찾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우선 소방시설을 정지시켜 놓은 상태로 시설물을 운영하게 된다”며 “건축물의 규모가 중요한 게 아니라 대다수 건물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운영하고 있다는 게 심각한 문제다”고 귀띔했다.
자동화재탐지설비의 오작동 문제는 지난 2015년 연기감지기의 공동주택 주거공간 설치 확대 정책이 시행되면서 더욱 늘고 있다.
연기감지기는 기존 열감지기보다 화재 반응속도가 빠르지만 축적된 먼지나 수증기, 요리 등 복합적 요인에 따라 이상 신호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잦은 이상 경보를 즉시 조치하기 어려워 결국 화재경보시설을 차단하거나 소방서에 민원을 제기하는 일 역시 늘어나면서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지난 2018년 세종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선 하루 10~83회까지 발생하는 비화재보 탓에 주민들의 강한 민원이 제기되기도 했다. 세종소방본부와 소방청은 문제 해소를 위한 실태조사를 벌이는 등 고초를 겪었지만 뚜렷한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최근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16층 30세대 아파트에 산다는 한 청원인은 “시도 때도 없이 오작동하는 연기감지기로 인해 미칠 지경”이라며 “5년째 너무 잦은 오작동으로 인해 이제 입주민들은 화재 경보가 울려도 대피하지 않는다. 아침, 점심, 저녁, 새벽 등 언제 오작동으로 화재 경보가 울릴지 모른다”고 하소연했다.
![]() ▲ 화재 감지기 오작동을 호소하는 청와대 청원글 © 최영 기자 |
이어 “오작동이 아닌 실제 화재 시 바로 대피하는 입주민이 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양치기 소년처럼 화재경보기가 거짓말을 너무 많이, 오랫동안 하고 있어 신뢰가 바닥이다.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내 집, 안락한 잠자리를 선물해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소방시설 오작동 등에 따른 비화재보로 현장에 출동하는 소방력 낭비도 심각한 수준이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1년 4124건에 그쳤던 비화재보 출동 건수는 지난해 3만8119건으로 9년 새 약 9.2배가 늘었다. 2020년 한 해 동안 하루 평균 104건의 소방력이 비화재보 처리에 동원된 셈이다. 실제 화재 시 출동해야 하는 소방력에 막대한 낭비를 초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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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 문제 고치려면… “구시대 소방법부터 바꿔야”
화재감지시스템인 자동화재탐지설비는 건축물의 소방시설 중 가장 핵심이 되는 시설이다. 불을 끄기 위한 스프링클러 등 소화설비와 피난, 제연설비 등 모든 화재 방호 시스템은 이 자동화재탐지설비의 신호를 기점으로 가동돼서다.
그런데도 화재경보시설을 믿지 못하고 잦은 오작동을 우려해 꺼놓는 건 관련법에 맞춰 구축된 소방시설이 설치 이후에는 ‘무용지물’이 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이 같은 화재경보시설의 오작동을 줄이고 차단 행위로 이어지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대책은 뭘까.
화재소방 분야 전문가들은 비화재보나 오작동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가장 시급히 개선해야 하는 문제로 ‘화재경보시설의 지능화를 통한 시스템의 고급화’를 꼽는다.
건축물에 설치되는 화재감지기와 수신기 등 자동화재탐지설비를 사람에 비유하면 신경망과도 같다. 그러나 건축물의 화재 안전을 위한 이 신경망이 우리나라는 “둔하다 못해 멍청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대부분의 화재감지 시스템이 1970년대 수준에 그대로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많게는 수십 대가 넘는 화재감지기가 하나로 묶여 경계구역을 설정하는 일반 화재감지기는 화재 신호가 들어온 위치와 평상시 감지기 상태의 이상 유무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심지어 화재감지기 센서가 고장 나거나 누군가가 감지기 본체를 떼어내더라도 수신기에서 알지 못한다.
![]() ▲ 업무시설에 설치된 차동식 열감지기는 이렇게 감지기 자체를 탈락시켜 놓아도 화재 수신기에서 이상 상태를 알 수조차 없다. © 최영 기자 |
소위 ‘구닥다리 화재 감지시스템’의 현실을 개선하지 않으면 잦은 오작동에 따른 현장 대처가 어렵고 시설 차단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필요한 건 화재감지시스템의 첨단화다. 오작동 시 즉각적으로 신호 발생 위치를 파악할 수 있고 평상시 감지기의 이상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의 개선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30층 이상 고층건축물에만 화재감지기의 작동 상태와 설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아날로그 방식의 감지기’를 의무적으로 설치토록 규정하고 있다.
아날로그 방식의 화재감지기는 각 감지기의 상태 확인과 진단을 할 수 있고 오염 정도에 따른 감도의 보정, 개별 감도 설정 등이 가능한 인공지능형 감지기다.
![]() ▲ 일반 화재감지기가 설치돼 있던 쿠팡 물류센터와 달리 선진 시설이 설치된 곳으로 알려진 경기도 안성 BMW 물류센터에는 아날로그 방식의 화재감지기가 설치돼 있다.© 최영 기자 |
열이나 연기 등이 발생하면 ON, OFF 신호만 보내주는 단순한 방식의 일반 감지기와 달리 아날로그식은 이상 상태 파악과 설치 환경을 고려한 적정 온도나 연기 농도 값의 설정이 가능하다.
특히 화재 수신기에서 감지기의 이상 상태를 확인할 수 있고 감지기마다 정확한 주소값을 갖고 있기 때문에 화재 또는 이상 신호 시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오작동 등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관리자가 즉각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소방시설 점검 과정에서도 건축물 내에 설치된 감지기를 하나하나 찾아다닐 필요 없이 수신기에서 각 감지기에 대한 점검이 가능하다.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선진국은 물론 중국, 동남아 등에서도 이미 20여 년 전부터 이런 아날로그식 감지기를 대부분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는 40년 전부터 쓰던 화재감지기 기술을 아직까지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제도 발전이 더디다 보니 보다 못한 건설기업이 자체적으로 아날로그식 화재감지기를 설치하는 황당한 일까지 벌어졌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30층 이상에만 설치토록 규정한 소방법을 비웃기라도 하듯 2017년 7월부터 아파트 설계 시 자체적으로 아날로그식 감지기를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소방 관련 법규는 여전히 구시대적 화재감지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쿠팡과 같은 물류창고 시설은 물론 아파트나 공장, 주상복합 등 30층 이하 건물은 소방법에서 정한 최소 수준에만 맞춰 지어지면서 화재감지시스템의 고급화는 여전히 먼 나라 얘기가 되고 있다.
![]() ▲ 서울시 송파의 한 공동주택 각 세대에 설치된 아날로그식 화재감지기. 이곳은 층수가 30층을 넘어 소방법규에 따라 아날로그식 화재감지기를 설치했다. |
민간 건설사들은 법 수준에 맞춘 건축물을 지어 국민에게 분양해 떠넘기기 급급하다. 차후 관리 측면에서 나타나는 ‘양치기 소년’ 화재감지시스템 문제는 법적 하자가 없으니 그들이 알 바가 아니다.
게다가 소방시설에 대한 전문성이 부재한 다양한 건물의 건축주들은 관련법 수준에만 맞추면 안전할 거라 철썩같이 믿는다.
현행 소방관련법(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ㆍ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소방시설의 기능과 성능에 지장을 줄 수 있는 폐쇄 또는 차단 등의 행위를 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영문도 모른 채 케케묵은 소방법만 믿고 지은 건축물은 결국 소방시설 차단과 정지라는 명목으로 범법자를 양산하고 있는 꼴이다. 지금이라도 제도 개선을 통해 화재감지시스템을 선진화하는 게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최영 기자 young@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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