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더는 소방관 생활을 지속할 수 없었을지 모릅니다. 30대의 제 삶은 요즘 말로 표현하면 ‘억까’를 당하는 게 아닐까 고민했을 만큼 힘든 일이 많았습니다.
‘억까’는 ‘억지로 까다’의 줄임말로 특정 대상을 비판ㆍ비난하는 데 그 이유가 말도 안 되는 억지인 경우 사용하는 말입니다.
가정 문제뿐 아니라 출동 나가서 발생한 심각한 트라우마로 고생하고 이유 없이 아픈 게 오래 가기도 하는 등 30대는 그야말로 죽지 못해 사는 삶이었습니다.
‘내 삶은 그저 힘들기만 하고 나는 이렇게 천천히 시들어 사라지겠구나’
아마 ‘미움받을 용기’를 읽지 않았다면 그 감정에 휘말려 스스로 많은 걸 포기하면서 살았을 수도 있겠단 생각을 자주 합니다.
‘미움받을 용기’는 세계 3대 심리학 거장인 아들러의 심리학을 일본의 철학자 기시미이치로와 유명 작가 고가 후미타케가 쉽게 각색해 낸 책입니다.
이 책은 시작부터 파격적인 이론을 전개합니다. 바로 ‘트라우마’는 존재하지 않으며 자신을 싫어하는 ‘자기 혐오감’은 다른 누군가와 관계를 맺지 않으려는 나의 바람이 투영된 결과물이라는 겁니다.
더 나아가 저자는 아들러의 심리학을 빌어 과거의 경험이 나를 구속하는 게 아니라 과거의 경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자신을 결정한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즉 과거의 사건으로 힘든 상태가 되는 건 철저히 내가 내린 결정이며 그 결정은 지금의 나를 변화시키고 불완전한 미래로 나아가지 않으려는 무의식 속 욕망의 결과물이라는 이야깁니다.
저자는 ‘과거의 사건’은 나를 변화시키지 못하며 ‘과거의 사건’을 해석한 내가 나를 힘들게 한다고 표현합니다. 다시 말해 과거의 사건이 지금의 나를 힘들게 한다는 건 사실이 아니며 지금의 나를 변화시키고 싶지 않은 내가 과거의 사건을 해석해 나를 힘든 상태로 묶어 둔다는 겁니다.
처음엔 이 주장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제가 겪은 사건은 너무나도 큰 일이었습니다.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고 슬픔이 차오르는데 과연 지금의 나를 변화시키지 못한다고 표현할 수 있는지, 생각하기도 끔찍한 과거의 일을 선택해서 계속 기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됐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과거 사건을 떠올리면서 그제야 수긍이 갔습니다.
20대 시절, 목표했던 대학원에 진학하지 못하게 되자 원인 제공자와 당시 환경을 원망했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대학원 진학 후 힘들어질 내 삶과 눈덩이처럼 불어날 학비 걱정에 스스로 도망갈 핑계를 찾았단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대학원 진학에 실패한 것 자체가 상처고, 트라우마라고 여겼지만 스스로 변화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도전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계속해서 이 일을 빌미로 다른 도전을 막고 있었던 자신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트라우마는 결코 ‘지금의 나’를 바꿀 수 없으며 트라우마에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에만 의미가 생긴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그 트라우마는 왜 의미가 생길까요? 전 언제부턴가 도전에 실패하면 누군가로부터 받을 비난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도전조차 하지 않고 도전하지 않을 이유로 대학원 진학 실패를 내세웠던 겁니다.
마찬가지로 과거 여러 가지 일 때문에 받은 상처를 더 받지 않기 위해 사람을 만나지 않으려 하고 새로운 걸 하지 않을 핑계가 필요했습니다.
그런 제게 구급출동에서 얻은 PTSD와 가정사는 너무나도 좋은 방어막이 돼 줬습니다. PTSD로 구급 업무에 소홀해지고 가정사를 이유로 다른 누군가를 만날 기회를 차단하면서 더는 누군가로부터 비난받거나 질책받을 사건을 만들지 않을 욕심을 채워나갔습니다.
저자는 이런 이유들로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일단 ‘지금의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결과가 어떻든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갖는 걸 강조합니다.
‘미움받을 용기’는 타인의 비난이 두려워 과거의 경험까지 소환해가며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내지 못하는 나를 버리라는 것과 같은 의미였습니다.
삶이 힘들고 슬픔에 잠식될 때마다 ‘미움받을 용기’의 구절을 곱씹으며 나를 힘들게 하는 과거의 기억을 정확하게 바라볼 힘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삶이 무너지는 걸 막을 수 있었습니다. 제겐 생명의 은인처럼 느껴지는 책입니다.
혹시라도 세상이 나를 ‘억까’한다고 느끼는 분이 계신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는 게 어떨까요?
충북 충주소방서_ 김선원 : jamejam@korea.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3년 10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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