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기고에서는 선박 화재 시 알아야 할 날씨와 바람, 조수 등 돌변하는 해상 상태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선박 화재는 육상 화재와 달리 외부 지원이 쉽지 않은 특성이 있습니다. 초기에 자력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자력 대응의 한계로 인해 화재가 확산되면 인명피해나 대규모 재산 손실이 발생합니다.
만약 정박 중인 선박에서 불이 났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선박 화재는 ’18년 인천에서 발생한 오토배너호 화재입니다. ’18년 5월 21일 인천항에 정박 중이던 자동차 운반선(PCTP/Pure Car and Truck Carrier)에서 불이 났습니다.
보통 자동차 운반선은 차량을 4천대에서 많게는 7천대까지 싣고 다닙니다. 그 당시 오토배너호에 실린 차량은 2500대였고 무게는 5만t가량이었습니다.
불이 나자 인천과 서울, 경기, 충청지역의 소방인력 800여 명이 투입됐지만 완전히 진압하는 데까지는 ‘67시간 25분(약 3일)’이 소요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차량을 실어야 하는 자동차 운반선이다 보니 다음 그림과 같이 빼곡히 적재된 차량들 사이로 들어가 초기 화재진압을 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차량마다 담긴 연료가 불쏘시개 역할을 하며 화세는 더욱 커졌습니다.
이 내용을 통해 몇 가지 사실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우선 자동차 운반선 내부의 통로가 좁아 발화원에 직접 소화가 어려워 초기 대응을 못 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초기에 발화구역을 밀폐하지 않아 화재가 더욱 커지면서 접근이 어려웠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우선 항구에서 선박에 불이 난다면 선박의 종류와 크기, 적재물, 선박 내 인원 유ㆍ무, 화점의 위치 등을 확인해야 합니다.
또 선박의 구조는 선박의 종류, 크기마다 다르므로 소방관들은 배의 내부 각 갑판(DECK)의 수(층수), 격실 위치 등을 알아야 하지만 사실 이러한 것들을 단시간에 숙지하기엔 어려움이 따릅니다.
2014년 세월호 침몰사고 현장에서 수중구조작전에 참여했습니다. 잠수 전날에는 세월호 도면을 온종일 보고 외우기를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배가 좌측으로 기울어져 있어 선체 안으로 들어가면 모든 구조가 달라 보였습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조건은 화재 현장과도 비슷합니다. 이렇듯 배의 구조를 잘 숙지했는데도 선체 내부를 수색하기엔 상당한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실제 선박에서 불이 난다면 사실상 짧은 시간에 배의 구조를 알기란 불가능합니다. 우선 선박 내 화재가 발생했다면 고정식 화재진압시스템(폼 장치, CO₂ 등)을 사용하기 전 격실이 밀폐됐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선박의 화점실부터 상부 갑판으로 대피ㆍ이동하면서 해치(Hatch)1) 또는 스컷틀(scuttle)2)을 아래부터 차례로 닫아야 합니다. 만약 대피 후 상부 갑판의 해치만 닫아버리면 화점실에서 나온 가연성 가스 등 연소 생성물들이 아래쪽 개구부로 밀려 나옵니다.
이후 배의 좁은 통로는 열 축적 때문에 고온의 열과 가스로 채워져 재진입이 어렵거나 불가능해집니다. 격실의 완전한 밀폐를 위해 팬과 통풍구를 닫는 것도 잊어선 안 됩니다.
팬과 통풍구를 열어둔다면 연소 가스들이 인접 격실에 흘러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미연소 가스들은 연소 조건만(연소범위 내) 만들어진다면 선박 외부에서의 절단 작업이나 동력절단기 사용 등에 의해 화재가스폭발(FGI, Fire Gas Ignition)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으로 봤을 때 우리 소방관들이 화재 발생 시 선박의 환기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려면 이 시스템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자연 환기는 기계적인 보조 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공기가 수평 또는 수직으로 이동하는 걸 말합니다. 불이 난 구획실에서의 연기가 외부갑판으로 직접 환기할 수 있을 때 권장됩니다.
양압 환기는 내ㆍ외부의 압력 차이를 강제로 만드는 방법입니다. 팬을 사용해 외부 환경보다 선박 내부에 더 높은 압력을 생성합니다. 이렇게 관창 주수 또는 팬으로 인해 생성된 내부의 높은 압력과 연기는 소방관에 의해 제어되는 개구부, 즉 단방향 경로로 이동해 외부로 배출됩니다.
선박 내 호스를 이용해 화재를 진압한다면 호스는 어떻게 배치해야 할까요? 화재 시 예비 충수가 되지 않은 호스는 선내로 진입할 때 쉽게 내부로 이동이 가능합니다.
반대로 예비 충수됐을 때 호스를 선박 내부로 전진하기에는 무게에 따른 어려움이 생깁니다. 또 많은 구조물과 선박의 코밍3)에 걸리는 걸 방지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소방관들을 카플링이나 호스 중간, 급격히 구부러지는 위치, 각 도어ㆍ해치 코밍에 추가로 배치해야 합니다. 문이나 해치를 통해 소방호스를 통과시키는 방법에는 지퍼 또는 스태거(엇갈림) 방법이 있습니다.
이는 소방관을 지그재그로 소방호스 사이에 배치하는 방법입니다. 두 개의 호스 라인이 한쪽 문을 통과할 때 일렬로 한 명씩 문을 통과합니다.
이런 방법들은 좁은 공간에서 소방관들의 이동과 화점실에서 소방호스의 신속한 전개에 아주 적절한 방법입니다. 선박 내 화재진압 시 좁은 복도를 통과하고 수직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 많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제한된 시계, 패닉, 열기, 호스 이동으로 공기는 육상과 다르게 더욱 빨리 소진될 수 있습니다.
이때 공기호흡기에서 경보음이 울릴 때까지 작업하면 안 됩니다. 현장지휘관은 대원들의 공기 소모량을 수시로 확인하고 안전한 곳에서 공기 공급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선박 내 통로는 일반적으로 건물의 복도보다 훨씬 더 좁고 높이도 낮습니다. 게다가 금속 구조로 된 선박의 높은 열부하, 충분치 못한 물 공급 등의 이유로 선박 내 화재를 진압하는 건 상당히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육상에서 소방호스를 들고 선박 내부에 들어가는 걸 제외하고 선박에서의 소방호스 연결은 서로 호환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연결됐더라도 누수 문제로 인해 원하는 만큼의 물 공급이 어렵습니다.
대부분 부두를 가까이 둔 센터는 선박과 호스를 연결하는 호스 커넥션(Connection)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외 선박 자체 현문4)(Gangway) 입구와 호스 연결구 주변에도 인터네셔널 쇼어 커넥션(International Shore Connection, 국제육상연결기구)을 비치하고 있습니다.
갑판 아래 화재를 진압할 땐 최소 2개의 소방호스를 사용해야 합니다. 진압용과 예비 소방호스를 준비하고 가능하다면 진압 팀이 바람이 부는 쪽(바람이 선박으로 불어오는 쪽)에서 진입할 수 있는 경로를 선택해야 합니다.
모든 진압 팀은 일반적으로 같은 방향에서 진입해 화점실과 같은 갑판 또는 직하 갑판에서 진입을 시도합니다. 화점실과 같은 층이나 화점실 아래층에서 진입해 진압하는 게 선호되지만 항상 가능하진 않습니다.
화재진압 계획에 따라 화재 경로를 파악ㆍ추적하고 인원에 대한 장애물과 위험을 식별합니다. 이런 정보수집을 통해 탈출 경로를 식별하고 대피 신호와 절차를 수립합니다. 또 현장지휘관(IC, Incident Commander)은 배치된 각 내부 공격라인에 대해 신속한 개입 팀을 구성하는 걸 고려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선박 내에서는 신속한 탈출이 불가능합니다. 화점실로 진입할 때의 경로는 열이나 연기 가스가 다니는 경로와 동일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경우 열화상카메라(TIC)를 이용해 내부 환경 평가를 계속하며 격벽에 물을 짧게 뿌리고 생성된 증기의 양을 기억해야 합니다.
물을 뿌린 후 표면의 물기가 빠르게 증발했다면 내부의 온도가 아주 높은 걸 의미합니다. 또 격벽의 페인트가 벗겨지는 걸 관찰했다면 고열로 인해 페인트가 녹거나 격벽이 팽창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징후가 보일 땐 내부에 진입하면 안 됩니다. - 빠르게 하강하는 연기층과 난류층 연기 유동 - 소방관 앞 전체공간의 260℃(500℉) 이상의 온도와 연기층의 불꽃 연소 - 장갑을 착용한 상태에서 격벽을 만졌는데 상당한 뜨거움이 느껴질 때 - 방화신발의 밑창이 고열로 인해 바닥에 달라붙을 때 - 갑판과 격벽을 냉각하는데 엄청난 수증기가 발생할 때 - 뜨거운 열과 화염 등이 화점실 통풍구 밖으로 배출될 때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화재선박은 페인트로 인한 연소 가스가 많이 발생하며 시야 확보 또한 어렵습니다. 대부분 선박의 격실은 금속 재질입니다. 열 축적이 쉬우며 이런 밀폐된 공간에서 우리 소방관들은 고온의 환경에 노출된 채 화재를 진압 해야 합니다.
선박 종류별 이해와 연기 유동, 개구부 패쇄, 선박의 밀폐된 공간에서 행동요령을 잘 숙지한다면 좀 더 효율적으로 화재를진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1) 배의 화물 출입구 2) 선박의 동그란 창문 3) 안으로 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갑판 위 선미 조타석 주변에 살짝 세워놓은 프레임 4) 선박의 뱃전 옆에 설비한 출입구
참고자료 MARINE FIRE FIGHTING FOR LAND-BASED FIREFIGHTERS Third edition
부산 강서소방서_ 최광현 : alockh@korea.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10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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