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우리가 어른이 되면 로버트 친구가 생기는 거야?”
어릴 적 흑백 TV 앞에서 동생과 나눴던 이야기다. 그때 우리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우주소년 아톰’과 ‘마징가 Z’였다. 악당과 맞서 지구를 지키는 그들의 눈부신 활약은 단순한 만화가 아니었다. 하늘을 나는 로봇과 사람처럼 생각하는 기계는 어린 우리에게 다가올 새로운 세기를 기다리게 한 희망의 불꽃이었다.
2003년 4월 7일, 아톰의 생일이 현실로 다가왔다. 그러나 상상 속 미래와 현실은 달랐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우리는 우주여행과 로봇 친구를 꿈꿨지만 현실에서는 벽돌 같은 크기의 M사 전화기를 손에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에 만족해야 했다. 우연이 필연이 돼 소방의 길로 들어선 지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 소방 기술은 그 간극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처럼 느껴진다.
세상은 놀랄 만큼 변했다. 스마트폰으로 세계 어디서든 소통하고, 인공지능이 글을 쓰며,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달린다. 하지만 소방관은 여전히 수십 킬로그램의 장비를 짊어지고 연기에 가려진 시야 속에서 맨몸으로 돌진한다. 첨단 도시 속 불 앞에서 우리는 여전히 20세기에 머물러 있다. 더 뼈아픈 현실은 1950년대 말 기술로 개발된 4~5천원짜리 화재감지기에 여전히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방 기술의 더딘 발전은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관심, 투자, 제도의 문제이기도 하다. 전기차 충전소, 데이터센터, 고층 건물, 메타버스 공간까지 우리의 생활공간은 급격히 바뀌고 있는데 소방은 그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반면 세계는 이미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인공지능 기반 감지 시스템과 드론이 화재를 조기에 포착하고, 로봇이 위험 지역에 투입된다. 초고층 건물과 협소한 공간에는 경량 진압 장비와 무인 소방 로봇과 드론이 사용되고, 전기차 화재나 대형 화학사고 등 다양한 위험에도 활용된다.
소방의 미래는 더 똑똑하고, 더 빠르며, 더 안전해야 한다. 그 길은 기술과 제도, 안전 문화, 사람 중심의 통합 전환에 있다.
첫째, 기술과 제도를 함께 발전시켜야 한다. 소방 기술은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생명을 담보하는 자산이다. 로봇ㆍ드론ㆍIoT 감지기 등 첨단 장비를 위한 국가적 R&D 투자가 절실하다. 제도 또한 단순 설치 확인에 그치지 않고 건물 위험도를 반영한 스마트 안전 규제로 전환돼야 한다. 기술과 제도가 조화를 이룰 때 첨단 장비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며 생명을 지킬 수 있다.
둘째, 안전 문화는 이름뿐인 구호가 아니라 실제 행동과 습관까지 포함해야 한다. ‘소방안전관리자 현황표’라는 문패만 걸려 있는 유령 소방관이 아니라 현장과 건물, 사람을 잘 아는 살아 있는 소방안전관리자가 중심이 되는 조직 문화가 필요하다. 안전 의식이 조직 전체로 확산되고, 안전관리에 관한 교육ㆍ훈련과 점검ㆍ기록이 일상적 습관으로 자리 잡을 때, 기술과 제도를 뒷받침하는 안전 문화가 완전히 정착한다.
셋째, 사람이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과 제도가 마련돼도 결국 이를 운영하고 현장에서 활용하는 것은 사람이다. 소방안전관리자는 전문 직업군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육성해야 한다. 그 시작이 소방안전관리자의 건물 내 상근 또는 상주다. 전문성을 갖춘 소방안전관리자가 체계적으로 배치될 때 현장 운영과 안전 관리가 안정적으로 이뤄지고, 기술과 제도가 현장에서 최대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1970~1980년대 우리가 꿈꾸던 미래는 어디로 갔는가? 소방 기술의 미래는 언제쯤 현실이 될 것인가? 과거에도 답하지 못했던 질문을 오늘 우리는 여전히 되묻는다. 하지만 불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리 기술과 제도가 발전해도 안전망은 허상에 머물 뿐이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내년도 R&D 관련 국가 예산안은 35조3천억원으로 역대 최대가 될 것이라 한다.
앞서 언급했듯 소방 현장은 여전히 과거에 개발된 4~5천원짜리 감지기와 제한된 기술에 의존하고 있어 초기 대응의 한계와 인명 위험이라는 현실적 제약을 안고 있다. 급변하는 도시 환경과 새로운 화재 위험을 고려하면 소방 분야도 국가 차원의 첨단 기술 투자가 절실하다.
국가가 앞장서 첨단 기술을 현장에 적용하고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안전한 대한민국, 행복한 국민을 위해, 아톰이 가르쳐준 희망의 불꽃처럼, 소방의 미래는 결코 누군가 대신 만들어주지 않는다. 정부와 국민, 그리고 소방 현장의 모든 이가 함께 만들어야 한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했듯 “국가의 존재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며, 우리가 하는 모든 국정이든 지방행정이든 가장 먼저 챙겨야 할 것이 국민의 안전”이라는 의지가 행동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기술과 제도가 조화를 이루고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진정한 안전망이 완성될 것이다.
어린 시절 아톰을 보며 미래를 꿈꾸었던 것처럼 이재명 정부의 실천을 기대하며 꿈꾼다.
한국소방안전원 부산지부 시상수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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