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소방청이 소방산업 수출 전략 수립을 위해 ‘소방산업수출협의회’ 구성을 논의하는 회의를 개최했다. 늦게나마 소방산업의 세계화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응원의 마음을 보탠다.
이번 회의를 계기로 소방청이 보다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소방산업의 세계화를 선도해주길 기대한다. 나아가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자리로 이어져 소방 산업계의 세계화에 밀알이 되길 바라며 필자의 생각을 몇 가지 전하고자 한다.
삼성을 세계적 기업으로 이끈 고(故) 이건희 회장은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임원들과 해외 주재원을 소집해 ‘신경영 선언’을 발표했다. 당시 이건희 회장은 “세계화를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 말은 오늘날까지도 우리 산업 전반에 큰 울림을 주고 있다.
필자 역시 고(故) 이건희 회장의 말에 크게 공감하며 소방제조업도 세계화를 이루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1994년 동경 소방전시회를 시작으로 세계 유수 소방전시회에 꾸준히 참관단을 파견하며 우리나라 소방제조업의 세계화에 작은 힘을 보태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수출보다는 수입 위주의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에 필자가 지난 30여 년간는 직간접적 경험을 토대로 우리 소방산업이 세계로 나가야 할 방향을 고민해본다.
소방산업 세계화를 위한 준비 우리 소방산업이 글로벌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하기 위해선 다각도의 준비와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각국은 모두 자국산 중심주의를 내세우며 자국 인증제도를 운영한다. 소방인이라면 누구나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중국은 이미 소방차까지 자국 내 제품을 구매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로 인해 세계적 기업 로젠바우어 조차 중국 내 매출이 전무한 수준이 됐다. 미국과 일본 역시 ‘닫힌’ 시장이다. 제조업 기반이 거의 없는 중동의 일부 국가도 자국 생산 조항을 내거는 시대가 됐다.
브랜드와 판매 네트워크의 힘으로 글로벌 소방시장을 선도해 온 강자들의 시대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중국 업체들의 비약적인 성장이다. 필자가 경험한 2023년 북경소방전시회는 세계 최대의 소방전시회로 불리는 독일 하노버 전시회에 버금가는 규모로 열렸고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구매 담당자들의 경연장이었다.
전시회에 참여한 대다수 기업이 택갈이(?)를 할 완제품을 찾거나 신규 부품, 기존 부품의 대체품을 발굴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한편에서는 전시장을 돌며 업계의 동향을 살피고 자신들의 제품을 사줄 만한 잠재 고객을 물색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런 현상은 중국 소방산업의 발전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원자재나 완제품을 중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는 우리나라 역시 대응 준비를 게을리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미 국내에서도 일부 대기업에서는 UL이나 FM 인증을 획득한 제품을 찾고 있다는 점 역시 수수방관해서는 안 될 사안이다.
이 때문에 우리 소방기업들이 해외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강력한 지원과 함께 기업 스스로도 뛰어난 기술력으로 무장하고 많은 자본을 투자해야 하는 등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이에 필자는 내수에만 의존해오던 우리 소방산업이 세계로의 진출을 꾀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 명확하기에 이런 현실을 극복하고 해외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필요한 준비가 무엇인지 살펴봤다. 이는 어디까지나 객관적 입장에서 정리한 필자의 생각임을 밝힌다. 필자가 말하는 세계화를 위한 핵심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기술력ㆍ제품 경쟁력 강화다. 미래형 재난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 대응 기술과 무인 소방로봇 등 차세대 기술 개발에 집중해야 한다. 단순한 성능 개선을 넘어 혁신적 솔루션 제시가 필요하다.
둘째, 신기술ㆍ신제품 인정 및 표준화다. 국내에서 개발된 우수 기술과 신제품에 대한 인정 제도를 강화하고 국제 표준에 부합하는 기술기준을 정비해야 한다.
셋째, 연구개발(R&D) 투자 확대다. 정부와 기업이 함께 R&D 투자를 늘려 기술 경쟁력을 높이고 국제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
글로벌 시장을 향한 맞춤형 전략 수립 핵심 과제에 대한 준비가 끝나면 다음으로는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맞춤형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먼저 시장을 분석하고 타켓을 설정해야 한다. 대상 국가의 소방 관련 규제와 표준, 시장 규모, 경쟁 환경, 주요 화재 유형 등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우리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틈새시장을 발굴하는 게 중요하다.
예를 들면 소방 분야의 엄격한 규정이 설정된 북미와 건설 활동과 도시화가 활발한 남미ㆍ중동ㆍ아프리카 등은 모두 성장 잠재력이 큰 시장이다.
이러한 시장은 각기 다른 특성과 요구사항을 지니고 있기에 제품과 서비스를 현지화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단순히 수출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현지 기업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해 해당 시장에 특화된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이와 함께 가격 경쟁력 확보가 필수다. 중국 제품보다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원가 절감 노력을 지속하고 고품질 전략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통해 가격 외적인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
UL, FM, CE 등 국제 공인 인증 획득에도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러한 인증은 제품의 신뢰성을 높일 뿐 아니라 해외 바이어들의 구매 결정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국소방산업기술원에서 제공하는 해외 인증 획득 지원사업 등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울러 미국의 NFPA(미국방화협회), IBC(국제 건축법), 유럽의 PED(압력장비 지침) 등 주요 국가의 소방 관련 규격과 표준을 정확히 이해하고 준수하는 것 역시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적극적인 해외 전시회 참가를 통해 마케팅과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국제소방안전박람회’를 국가 차원의 전문 비즈니스 장으로 전환해 해외 바이어 초청을 확대해야 한다. 또 해외 소방 전시회에서 통합 한국관을 운영해 ‘K-소방’ 브랜드의 글로벌 인지도를 높이는 전략이 필요하다.
시대에 맞는 온라인 마케팅의 활성화도 중요하다. 글로벌 B2B 온라인 플랫폼(알리바바, 글로벌소시스 등)을 활용해 우리 제품을 홍보하고 해외 바이어와의 비대면 매칭 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
또 중동 지역의 NAFFCO와 같은 선도 기업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어 현지 유통망을 확보하고 개발도상국에는 소방 장비 무상 지원을 연계한 ODA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수출 기반을 넓힐 수 있다. 동시에 해외 주요 국가 대표단을 초청해 국내 소방 장비의 우수성을 직접 시연하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도 효과적일 수 있다.
수출 기업의 경제적 부담 완화를 위한 금융 지원책도 절실하다. 수출 보험료 지원과 소방산업공제조합 보증 수수료 인하, 이자 비용 경감, 통합 보증 한도 확대 등 실질적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아울러 중소벤처기업부와 KOTRA 등 유관 부처의 수출 지원 공모사업에서 가점을 부여하고 해외 지사화, 수출 멘토링 사업을 연계하는 범부처간 협력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정부의 자세다. 신산업 육성과 연구ㆍ산업 활성화를 위해 불합리한 규제를 과감히 개선하고 소방용품의 기술 기준을 국제 수준에 맞게 정비하는 등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이어진다면 우리 소방산업은 분명 세계화를 실현할 수 있다.
소방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준비들이 체계적으로 이행된다면 한류의 긍정적 파급력과 맞물려 우리 소방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더 큰 성장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최기환 발행인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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