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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은 설명이 아니라 환경으로 완성된다”- Ⅱ

싱가포르 민방위학교(CDA) 연수에서 본 소방교육의 한 가지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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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소방학교 표수정 | 기사입력 2026/03/03 [10:00]

“훈련은 설명이 아니라 환경으로 완성된다”- Ⅱ

싱가포르 민방위학교(CDA) 연수에서 본 소방교육의 한 가지 방식

중앙소방학교 표수정 | 입력 : 2026/03/03 [10:00]

한계를 느끼는 공간이 아니라 계산하는 공간, HEAT Lab

▲ HEAT Lab(호흡기 능력검사(BAPT)를 통해 대원 작전 적합성 평가 시행)

 

HEAT Lab은 말 그대로 하나의 실 전체가 온ㆍ습도를 조절하는 거대한 챔버였다. 온도는 -10℃부터 80℃까지, 습도는 최대 95%까지 설정할 수 있다고 했다.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단순히 덥다는 느낌을 넘어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은 감각이 찾아온다. 대원은 방화복을 착용하고 호흡기를 멘 상태에서 이 환경에 그대로 놓인다.

 

이곳에서의 훈련은 가만히 서서 버티는 방식이 아니다. 계단을 오르고, 사다리를 타고, 호스를 들고 이동하는 등 실제 화재현장에서 반복되는 동작들이 그대로 이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체온은 빠르게 올라가고 호흡은 거칠어진다. 그 상태에서 측정되는 건 개인의 인내심이 아니라 심폐 지구력이 어느 지점에서 한계에 이르는지, 열 스트레스 상황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는지였다.

 

이 데이터는 그대로 작전 투입 시간과 휴식 시간 산정의 근거가 된다. 대원이 현장에서 얼마간 활동할 수 있는지, 언제 교대해야 하는지는 개인의 감각이나 경험에 맡기지 않는다. HEAT Lab에서 축적된 수치와 분석 결과가 현장 매뉴얼로 연결된다. 휴식 기준의 느낌이 아니라 데이터로 관리되는 구조인 셈이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개인의 체력훈련 역시 기록과 분석의 대상이라는 점이다. 심폐 지구력 변화가 수치로 남고 그 결과가 다시 훈련 방식과 현장 운영 기준으로 환류된다.

 

HEAT Lab은 극한 환경을 체험하는 공간이라기보다 대원의 안전 한계를 과학적으로 확인ㆍ관리하는 공간에 가까워 보였다. 이곳에서의 측정과 분석은 곧바로 현장과 연결되고 그 연결 지점이 바로 대원의 안전이라는 점에서 HEAT Lab의 역할은 분명한 것 같았다. 

 

STRiVE와 HEAT Lab 두 곳 다 훈련을 더 강하게 만드는 데 목적을 두지 않았다. 전술 동작은 데이터로 분해되고 대원의 한계는 수치로 확인된다. 그 결과는 다시 훈련 기준과 현장 매뉴얼로 되돌아간다. 개인의 감각이나 경험에 기대던 영역을 과학적으로 정리해 가는 과정이었다.

 

훈련시설과 교육방식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결과물이 아니었다. 연수 기간 점차 분명해진 건 이런 훈련 환경의 이면에는 교관을 대하는 제도와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교관을 거쳐 가는 자리가 아닌 경력으로 만드는 제도

연수 기간 만난 교관들과의 대화에서 공통으로 들었던 말이 있다. 싱가포르에서 소방학교 교관은 지휘관들에게도 매우 매력적인 보직이라는 점이다. 단순히 현장을 잠시 떠나 맡는 역할이 아니라 하나의 전문 경력으로 분명하게 인식되고 있었다.

 

교관은 등급제로 운영되고 그에 따른 역할과 책임, 수당 체계가 달라진다. 등급을 획득하는 과정은 절대 느슨하지 않다. 매년 교관 등급 유지를 위한 위원회 평가를 받아야 하고 이 평가를 통과하지 못하면 등급을 유지할 수 없다.

 

▲ 교관 등급ㆍ교관평가 체계

 

이런 구조는 교관직을 ‘한 번 맡으면 끝나는 보직’이 아니라 지속해서 증명해야 하는 전문 직무로 거듭나게 했다.

 

엄격한 관리만큼이나 인상 깊었던 건 교관에 대한 조직 내부의 인식이다. 교관들은 자신이 맡은 역할에 대해 분명한 자부심이 있었다. 그에 대한 존중 역시 조직 문화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했다. 

 

학교에서 마주친 교관들의 태도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교관이라는 역할을 대하는 자세였다. 그들은 자신의 교관 등급을 나타내는 패치를 달고 있었는데 단순한 표식이라기보다 역할과 책임을 상징하는 표지처럼 보였다. 권위와 상징이 제도를 통해 명확하게 부여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 싱가포르 민방위학교 등급별 교관 배지(badge)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교관 경력이 퇴직 이후에도 이어졌다. 싱가포르에서는 소방학교 교관으로 쌓은 경험이 교육ㆍ훈련ㆍ안전 분야에서 재취업할 때 중요한 전문 이력으로 활용된다. 따라서 CDA 교관 경험은 현직 소방관 사이에서도 선호도가 높은 경력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싱가포르의 보수 구조 역시 이런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 현장과 내근 근무 간의 보수 차가 크지 않은 구조에서 소방학교 교관이라는 지위 획득과 등급별 수당은 현실적인 보상 측면에서도 분명한 메리트로 작용했다. 교관직이 명예와 책임, 보상이 함께 따라오는 자리라는 점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이런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생각이 이어졌다. 교관에 대한 예우와 영예가 단지 개인의 처우 문제에 그치는 게 아니라 결국은 교육의 밀도와 완성도를 좌우하는 요소라는 점이다. 

 

교관직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그에 상응하는 존중을 부여하는 구조는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에게 분명한 책임 의식을 요구한다. 교관의 자부심이 곧 교육의 품질로 이어진다는 점을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었다.

 

지휘관을 만들어 가는 과정, RCC(Rota Commander Course)

▲ RCC 과정 훈련 모습 출처 instagram/scdf.cda

 

RCC 과정을 이해하는 데는 현장에서 만난 한 사람의 이야기가 큰 도움이 됐다. 싱가포르 시민권자인 그는 어린 시절 이주해 정착했고 일정 나이가 됐을 때 국가 의무복무인 NS(National Service)를 이행해야 했다.

 

싱가포르의 NS는 군ㆍ경ㆍ소방으로 나뉘는데 그는 소방을 선택해 민방위학교(CDA)에서 훈련을 받았다. 의무복무를 마친 뒤에는 개인의 선택에 따라 직업 소방관의 길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다.

 

RCC는 이런 의무 소방 인력 가운데서도 장교후보생을 선발해 운영되는 지휘관 과정이다. 단순한 보직 교육이 아니라 일선 소방서에 배치됐을 때 초급 지휘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과정이라는 점이 분명했다.

 

교육 기간은 약 7개월로 전문 직무 훈련과 리더십 교육이 함께 진행된다. Hazmat 대응이나 도시탐색 같은 고난도 과정도 포함돼 있어 교육 내용만 놓고 보면 상당히 밀도가 높아 보였다.

 

그가 가장 힘들었던 과정으로 꼽은 건 마지막 관문이다. 바로 교육 막바지에 진행되는 2주간의 통합 시나리오 훈련이다. 총 40개의 시나리오 상황을 팀 단위로 수행해야 한다. 모의 재난 상황을 주면 본인이 직접 지휘관 역할을 맡아 상황 판단과 지휘, 자원 배분을 수행한다.

 

변수(장비 고장, 사상자 발생 등)는 매번 달라지고 정해진 답은 없다. 이 훈련에는 현직 소방서장도 교관으로 참여해 현장에서의 판단 기준에 가까운 피드백을 제공한다.

 

그는 이 과정을 통해 “소방서에 배치되기 전 이미 여러 번 지휘를 해봤다는 감각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당장 다음 날 현장에 투입되더라도 팀을 이끄는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점이 RCC 과정을 수료한 사람으로서 가장 큰 자부심이라고 했다.

 

지휘관이 된다는 건 계급이나 직책을 받는 일이 아니라 반복된 경험을 통해 역할을 준비하는 과정이라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모든 과정을 마친 후에는 ‘옐로우 재킷 런(Yellow Jacket Run)’이라는 마지막 통과 의례가 기다린다. 그는 이 절차를 “지휘관으로서 조직에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세리머니”라고 표현했다. 팀과 함께 한계를 넘는 이 과정을 거치면 비로소 조직이 인정하는 지휘관으로 서게 된다는 의미라고 했다.

 

이야기를 들으며 RCC 과정이 지휘관을 가려내는 시험이라기보다 시간과 경험을 통해 지휘관을 만들어 가는 구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점에서 RCC는 성격상 우리나라 소방간부후보생제도와도 닮아있다.

 

일정 기간 교육과 훈련을 통해 초급 지휘관을 준비시키고 현장 배치 이전에 충분한 지휘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이 특히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제도의 형태보다도 지휘관을 ‘과정’으로 다룬다는 접근 방식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연수 막바지에 다다르자 개별 시설이나 과정보다 그 배경에 깔린 생각이 더 또렷하게 남았다. 훈련을 어떻게 설계할 건가, 교관과 지휘관을 어떤 과정으로 준비시킬 건가에 대한 질문은 서로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방향으로 이어졌다.

 

▲ 싱가포르 민방위학교 전경

 

이번 일정은 소방청 교육훈련담당관과 중앙소방학교 교수요원이 함께한 교수 교환프로그램의 한 과정인 연수였다. 정책과 교육의 접점에서 같은 고민을 공유했다는 점에서 더욱 뜻깊었다. 

이제 질문의 화살은 우릴 향하고 있다. 

 

‘대한민국 소방교육은 어떤 방식으로 전문가를 길러내고 그들의 경험을 어떻게 현장의 자산으로 남길 것인가’ 

 

이제 곧 중앙소방학교를 찾을 싱가포르 교관들에게 우린 어떤 답을 보여줄 수 있을지 깊은 고민과 설렘을 안은 채 이번 연수기를 마무리한다. 

 

 

중앙소방학교_ 표수정 : su7177@korea.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6년 3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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