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광고

소방에 빠진 화학-Ⅷ

화학자가 바라본 심오한 소방의 세계

광고
국립소방연구원 한동훈 | 기사입력 2026/04/03 [10:00]

소방에 빠진 화학-Ⅷ

화학자가 바라본 심오한 소방의 세계

국립소방연구원 한동훈 | 입력 : 2026/04/03 [10:00]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화재가 전파될 수 있다 ①

추운 겨울이 무척 싫다. 부산에서 나고 자라서다. 어릴 적 부산에선 겨울이어도 학교 교실에 난로를 두지 않았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았고 눈을 보는 일도 가물에 콩 나듯 적었다.

 

처음 수도권의 겨울을 몸으로 맞닥뜨렸던 날이 생생하다. 영하의 기온이 몸으로 전달될 때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심장이 멈춰 죽을 것 같았다. 많이 나아졌지만 매서운 추위와 눈은 여전히 적응이 잘 안 된다.

 

추운 겨울이 되면 퇴근 후 따끈한 온돌바닥에 몸을 눕히곤 한다. 온기가 몸으로 전달될 때 기분이 참 좋다. 온기를 즐기다 보면 종종 ‘아하, 이건 전도에 의한 열전달이지’와 같은 생각이 떠오른다. 빨갛게 달아오른 전기 히터를 향해 손을 펼치면서는 ‘아, 이건 복사에 의한 열전달이지’라고 생각한다.

 

일상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뭐, 극히 드물 거다. 소방학과 대학생이나 몇몇 사람은 비슷한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도 열이 어떻게 전달되는지는 막연하게나마 인식하고 있다.

 

먼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이 열이 전달되는 원리를 이해하고 이용했듯 오늘날 우리도 본능적으로 같은 방식을 사용해 열을 이용하고 있다.

 

높은 곳에 있는 물이 아래로 흐르듯 일반적으로 열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전달된다. 그리고 액체와 고체가 있다면 밀도가 낮은 건 위로, 높은 건 아래로 내려간다.

 

커피머신에서 갓 내린 에스프레소를 차가운 우유에 부으면 저어 주지 않는 한 섞일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면 ‘차가운 우유는 아래로, 뜨거운 에스프레소는 위로, 밀도 때문이지’라고 생각하며 스틱으로 음료 전체를 저어 전자레인지에 넣고 1분 30초간 데운다.

 

우유를 데우는 기계가 없는 필자는 그제야 골고루 따뜻한 카페라테를 마실 수 있다.

 

▲ 열이 전달되는 세 가지 방식. ‘전도(Conduction)’, ‘대류(Convection)’, ‘복사(Radiation)’.

 

열이 전달되는 방식은 ‘전도’, ‘대류’, ‘복사’ 등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일상생활이나 화재 상황에선 이 중 하나의 방식이 아니라 복합적으로 열이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

 

가장 먼저 고려하고 싶은 열전달 방식은 ‘전도’다. 그냥 서로 옆에 있어서 열을 주고받는, 접촉하고 있는 물질끼리 열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프라이팬에 달걀을 구울 때 달궈진 프라이팬에서 달걀과 접촉된 부분으로 열이 전달돼 바닥부터 달걀이 익어가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눈에 잘 보이는 고체만이 전도열을 전달하는 거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전도는 접촉해 열을 전달하는 방식이므로 액체와 기체를 포함해 모든 물질 상태에서 가능하다.

 

그런데 우린 국을 끓일 때 쇠로 만든 국자와 나무로 만든 국자 중 전자가 국에 의해 더 빠르게 뜨거워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전도는 가장 직관적으로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열전달 방식이다.

 

누구나 경험적으로 철 국자는 온도가 빨리 전달되고 나무는 천천히 전달된다는 걸 안다. 나무는 열전도도가 좋지 않아 열이 천천히 전달된다. 반면 철은 열이 빠르게 전달된다.

 

물질 열전도도(Wㆍm-1ㆍK-1)
공기 0.026
유리(접시) 0.76
스티로폼 0.033
벽돌 0.69
콘크리트 0.8-1.4
스틸 45
알루미늄 273
구리 384
천연 다이아몬드 895-1350
소나무 0.14
▲ 열이 전달되는 세 가지 방식. ‘전도(Conduction)’, ‘대류(Convection)’, ‘복사(Radiation)’. 

 

전도로 인한 화재는 어떤 시나리오로 진행될까? 단순히 뜨거운 물체나 불을 접하게 돼 화재가 발생할 수도 있겠지만 ‘소방관을 위한 물리화학’에선 구획된 다른 공간으로 화재가 전이되는 상황을 제시한다.

 

▲ 철제 대들보를 따라 열이 전도돼 건물 내 다른 공간으로 화재가 전파되는 걸 묘사한 그림. 가연물의 자연발화점보다 높은 온도의 열이 전달될 때 화재가 발생한다.

 

그림 속 건물엔 철로 만들어진 대들보가 있다. 아래층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대들보가 가열된다. 비교적 낮은 자연발화온도를 가진 위층 가연물에 전도로 열이 전달되고 결국 화재가 발생한다. 전도로 인해 아래층에서 불이 났는데 갑자기 위층에서도 불이 붙는 귀신에 홀린 듯한 현상이 관찰될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선박은 주로 바닥과 벽이 열전도도가 좋은 금속으로 만들어진다. 즉 선박에서도 전도로 인한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 강철의 녹는점은 1천℃가 넘고 종이는 발화점이 300℃ 정도다. 화재로 강철이 뜨거워지면 접촉이 되도록 놓인 종이는 점화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열전달 방식은 ‘대류’다. 앞서 언급한 밀도차로 유동을 통해 열이 전달되는 방식이다.

 

액체 또는 기체가 뜨거워지면 부피가 증가하면서 밀도가 낮아지게 된다. 밀도가 낮아진 물질은 상대적으로 덜 뜨거운, 밀도가 높은 물질을 타고 중력에 반해 위로 올라가게 된다. 위로 올라간 물질은 열원과 멀어지므로 아래에 있는 물질보다 온도가 내려가게 된다.

 

반면 열원과 가까운 아래쪽 물질은 데워지기에 밀도가 낮아지면서 위로 올라가게 된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며 전체적으로 열이 순환한다. 냄비에 물을 끓이거나 방 내에서 공기 순환이 일어날 때 이 같은 대류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건물 내에서 불이 났을 땐 층 사이사이를 수직으로 연결하는 계단ㆍ엘리베이터 등을 통해 뜨거운 열기가 유입되면서 다른 층으로 화재가 전파된다. 이 역시 대류 현상 때문이다.

▲ 대류에 의해 아래층 화재가 높은 층으로 번지는 걸 보여주는 그림. 방화문을 닫고 댐퍼에서 바람이 나온다면 다른 층으로 열과 연기가 가는 게 어렵다.

 

예전에 인명피해가 컸던 대규모 복합건물 화재현장을 조사해 본 적이 있다. 내부 공간에서 화재 전파는 음식물이나 기자재를 나르는 소형 엘리베이터 통로를 통해 이뤄졌고 그 내부는 심하게 그을려 있었다.

 

화재 시 열ㆍ연기는 복도와 계단실을 통해 다른 층으로 전파된다. 재실자 또한 복도와 계단실을 통해 피난하므로 잘 대피하지 못하면 대류 현상으로 인해 사망하기도 한다.

 

그래서 소방시설 관련 법과 화재안전기준 등은 다양한 소방시설을 설치토록 규정하고 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라면 각 세대 현관문 밖에서 공기가 나오는 이상하게 생긴 댐퍼를 본 적 있을 거다.

 

▲ 화재실 앞에는 대기압보다 높은 압력을 가해주는 댐퍼와 다른 층으로 연기의 퍼짐을 막는 방화문이 있다. 출처 그림으로 이해하는 화재안전기준

 

층별 방화문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사람을 살리고 싶으면 방화문을 닫아야 한다. 필자는 아파트 5층에 거주하는데 계단으로 올라갈 때마다 열려 있는 방화문을 닫는 습관이 있다.

 

댐퍼ㆍ방화문 같은 소방시설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 방화문을 닫으면 일단 실내의 연기와 열기가 화재가 난 층에만 머물게 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댐퍼에선 바람을 내보내 기압을 상승시킨다. 화재안전기준상 세대 내부 공기압보다 현관문 바깥의 압력이 40㎩ 정도 커야 한다. 상대적으로 기압이 낮은 집 안에서 발생한 연기는 현관문 밖으로 나가기 어려운 구조가 된다. 즉 사람들이 피난하는 계단으로 연기가 이동하기 어렵게 만든다.

 

▲ 화재 시 문을 닫고 대피하면 피해가 줄어드는지 실험하고자 진행된 재현 실험 출처 서울소방재난본부

 

과거 서울소방에서 빌라를 대상으로 화재 실험을 한 적 있다. 마주한 두 세대에 동일하게 불을 질렀을 때 현관문을 열고 대피한 사례와 닫고 대피한 사례를 비교했다.

 

현관문을 닫고 대피한 경우 산소가 집안으로 더 적게 들어와 화세가 문을 연 세대에 비해 약했다. 문을 닫았기에 유독한 연기도 계단실로 유입되기 어려웠다.

 

결론적으로 불이 난 세대의 피난자는 빠르게 대피하되 반드시 현관문을 닫고 계단으로 통하는 방화문까지 닫아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화재실의 연기와 불이 대류로 인해 다른 곳으로 전파되지 않고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안전하게 피난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자 하는 열전달 방식은 ‘복사’다. 복사에 대해 생각하면 대학원 시절 회색 펄이 많은 좋은 옷을 두 번이나 태웠던 A가 떠오른다. A는 자기 자리 의자에 옷을 걸어 뒀을 뿐인데 주변 전열 히터 탓에 팔 부분이 타버렸다.

 

이후 A는 그 펄이 많은 옷을 세탁소에 맡겨 반팔 코트로 만들어서 입고 다녔다. 반팔 코트를 볼 때마다 웃음이 났던 기억이 있다.

 

이때 A의 옷을 태운 열전달 방식이 바로 복사다. A는 단지 옷을 전열 히터 근처에 뒀을 뿐이다. 그런데 공간을 통해 열이 전달되고 지속해서 축적돼 팔 한쪽을 그을리게 만들었다.

 

놀랍게도 A는 그 옷을 전열 히터에 한 번 더 태웠고 결국 버렸다. 전열기의 복사열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주변에 가연물을 두면 안 된다. 정말 조심해야 한다.

 

복사는 캠핑장에서 불멍을 할 때 불과 거리를 뒀음에도 불의 적절한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는 열전달 방식이다. 학창 시절 지구과학 시간에 ‘태양의 복사열’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봤을 거다. 지구와 아주 멀리 떨어진 태양의 열이 공기 등 전달 매체가 없어도 우주의 진공을 지나 전달된다. 참 놀랍다.

 

인간은 가시광선 외의 빛(전자기파)을 눈으로 볼 수 없다. 하지만 태양은 물론 타고 있는 물체는 가시광선 이외의 다른 빛도 낸다. 그중 하나가 바로 적외선이다.

 

적외선 카메라로 몸을 촬영하면 부위별로 다른 색이 표시된다. 이를 통해 온도의 차이를 볼 수 있다. 왜 하필 적외선일까. 과학책에 나오는 흑체복사를 유심히 공부하면 이해가 될 거다.

 

‘흑체’는 말 그대로 ‘검은 물체’라고 생각하면 된다. 검다는 건 대부분의 빛, 즉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시광선 영역에 해당하는 빛이 반사되지 못하고 흡수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검은 물체의 온도에 따라 나오는 빛이 다르다. 사실 빛이 나온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는 것이지 보이지는 않는다. 그냥 믿을 수밖에 없다. 흑체든 우리 몸이든 세상의 모든 물질은 빛, 즉 전자기파를 항상 방출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 온도에 따른 흑체복사 곡선. 물체의 온도가 낮아지면 파장이 큰, 낮은 에너지의 빛을 방출한다.

 

이 그림은 흑체복사 곡선으로 흔히 말하는 플랑크 곡선이다. 온도에 따라 흑체에서 나오는 빛의 파장이 다르다. 파장은 크기가 작으면 높은 에너지, 크면 낮은 에너지다. 따라서 흑체 온도가 7000K이면 4000K 흑체에 비해 높은 에너지를 갖는 짧은 파장의 빛을 더 많이 내게 된다. 

 

반면 낮은 온도의 흑체는 상대적으로 낮은 에너지의 적외선을 더 많이 낸다. 절대온도인 0K(약 –273℃) 흑체도 적외선 에너지를 방출하는 거로 알려졌다. 우리 몸은 온도가 높지 않고 적외선이 나온다.

 

적외선 온도계는 몸에서 나오는 적외선 파장(약 0.7~1000㎛)을 보고 온도를 파악한다. 적외선 카메라는 어두운 밤에도 인간의 몸 또는 물체에서 나오는 적외선을 검출하기에 사물의 형상을 표현하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그렇다면 소방관은 화재현장에서 열이 전달되는 걸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 먼저 바닥에서 느껴지는 온기나 화재실 내 물건과 접촉했을 땐 전도에 의해 화상 등을 당할 수 있다.

 

또 화염으로부터 발생한 연기와 열은 천장으로 향하고 차가운 공기는 문 아래로 들어오는 대류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다소 먼 거리의 화염으로 방화복 표면이 뜨거워지는 복사도 느낄 수 있다.

 

▲ 화재현장에서 소방관이 느낄 수 있는 열의 전달 방식. 왼쪽부터 전도, 대류, 복사 출처 nist.gov 웹페이지


하지만 화재현장에서 화염이 확산하고 방 전체가 타는 경우엔 하나의 방식으로 열이 전달되는 게 아니다. 이 세 가지 열전달 방식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소방관은 다양한 보호구를 제대로 잘 착용해 화상 등의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자.

국립소방연구원_ 한동훈 hdongh1@korea.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6년 4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119플러스 정기 구독 신청 바로가기

119플러스 네이버스토어 구독 신청 바로가기

소방에 빠진 화학 관련기사목록
광고
포토뉴스
[릴레이 인터뷰] “환자를 ‘사례’ 아닌 ‘사람’으로 바라보는 응급구조사 되길”
1/5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