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취재] 성능 없는 방염합판은 어디서 왔을까?만원짜리 방염합판에 구멍만 뚫으면 3~4만원 ‘껑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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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간 합판 형태로 성능검사를 통과한 제품이 재가공을 거쳐 검사 당시와는 다른 형태로 유통되는 상황은 누구도 막지 못했다. 미흡한 관련 법령이 성능검사를 담당하는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이하 KFI)과 관리ㆍ감독 의무가 있는 소방관서 사이의 간극을 메우지 못한 탓이다.
KFI 관계자는 “우리에겐 아무런 권한이 없다”고 말한다. 검사기관에 불과한 KFI로서는 방염성능검사 이후 재가공이 이뤄져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설명이다. 이를 감독해야 할 일선 소방서의 한 소방공무원은 “검사는 KFI에서 하는 거고 우리는 필증이 붙어 있으면 믿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검사와 감독, 그 사이 사각지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양 측이 입을 모아 법적 근거의 부재를 말하는 동안 성능을 장담할 수 없는 타공합판은 반드시 방염성능기준 이상의 제품을 사용해야 하는 곳들에도 여과 없이 설치됐다.
타공합판이 대체 뭐길래?
흔히 방염타공합판이라고 하면 방염 인테리어 필름을 부착한 중밀도 섬유판(MDF)에 구멍을 뚫은 제품을 말한다. MDF 합판 자체는 치밀하고 균일한 조직과 우수한 강도, 뛰어난 가공성 때문에 일반 목재를 대신해 가구와 실내장식물 자재 등으로 널리 이용된다.
이런 MDF 합판에 구멍을 뚫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미관상의 목적이고 또 하나는 타공부를 통해 소리의 울림을 잡아줌으로써 일정 수준 흡음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잇따른 화재로 안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방염제품에 대한 수요는 급증했다. 정부에서도 방염성능기준 이상을 갖춰야 하는 제품군과 설치 의무 대상물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방염성능은 물론 흡음까지 가능하다는 타공합판은 특히 종교시설이나 체육시설, 문화ㆍ집회시설 등 현행법상 반드시 방염성능을 갖춘 실내장식물을 써야 하면서도 흡음이 필요한 공간의 실내장식물로 크게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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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되니까… 제조ㆍ유통ㆍ시공사까지 너도나도
일반적인 방염 MDF 합판의 경우 온라인에서 장당 1~2만원 선으로 거래된다. 그런데 이 MDF 합판이 타공을 거치면 단가는 두 배 이상 높아진다. 제조사뿐만 아니라 중간 유통, 시공사까지 앞다퉈 나서는 이유다.
분야 관계자들은 엄연히 공인기관의 성능검사를 통과하고 필증을 발급받아 출고되는 제품의 임의적 재가공이 너무나 쉽게 허용되고 있다는 점을 문제로 꼽는다. 시장에서의 수요는 높고 중간 단계의 감독 시스템은 부재한 상황. 여기에 한 번의 공정으로 많은 추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구조가 어우러진 결과라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제는 유통업체와 인테리어 업체에 방염 MDF 합판을 공급하던 제조업체들 역시 직접 타공을 하는 실정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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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체도 합격 어려운데…
무분별하게 난립하는 타공합판의 방염성능 문제도 우려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타공된 형태로 방염성능검사를 통과하는 건 전문 제조업체들도 어려움을 겪는 실정”이라며 “하물며 방염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인테리어 업자나 유통업자가 구멍만 뚫은 제품은 어떻겠나”고 반문했다.
KFI에 따르면 현재 타공된 MDF 합판으로 KFI의 방염성능검사를 받는 업체는 4곳에 불과하다. 이들조차 10mm 이하의 얇은 두께로만 성능을 인정받았다. 12mm 이상 두께로 방염성능검사를 통과한 제품은 아직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시중에서는 12mm, 15mm 두께의 타공합판도 많이 유통되고 있다. 이는 MDF 합판 타공의 주목적이 흡음에 있기 때문이다. 흡음효과는 자재가 두꺼울수록 커지기 때문에 이에 대한 수요도 높다. 그리고 제품에 대한 높은 수요는 업체들이 다시금 검사를 통과한 MDF 합판에 구멍을 뚫게 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개발은 멀고 편법은 가까운 현실
제품에 대한 높은 성능요구와 법정 기준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업체도 어려움을 토로한다. 지금 같은 구조에서는 정직하게 개발에 몰두하는 업체가 되레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MDF 합판에 특수약품 등을 첨가해 15mm 이상 제품도 방염성능기준을 충족하게 할 수 있다”며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장당 3~4,000원의 단가 인상이 불가피하다. 결국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어낸 업체는 부도덕한 업체들과의 가격 경쟁에서 밀려 도태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근본적 개선 위해선 법 강화 뒷받침돼야
타공합판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KFI는 지난 8월부터 자체적으로 방염성능검사 성적서를 개선했다. 타공 형태로 검사를 통과했을 경우에는 성적서에 ‘타공’이라는 문구를 추가로 표기해 사후 소방관서의 현장 검사ㆍ지도 시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국민안전처는 지난 15일 이 같은 내용을 전국 시ㆍ도본부에 전달했다. 또 검사 이후 타공한 제품은 필증에도 구멍이 뚫려 있어 이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하지만 이는 소극적인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9mm 두께로 합격한 제품의 필증을 도용해 20mm 제품에 부착하는 등 소방서의 현장 검사에서 걸러내지 못할 사각지대가 여전히 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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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근본적인 개선을 위해서는 관련 법규의 강화가 시급하다는 분석이다. 성능검사 통과 후 임의적인 재가공에 대한 처벌근거 확립과 함께 처음부터 방염제품에 대한 체계적 관리가 가능하도록 성능검사 자체를 의무화하는 등의 방안도 제시되고 있다.
[소비자 포커스] 구멍 뚫린 방염합판, 구분은 이렇게!
방염과 흡음이 가능하다는 타공합판을 무턱대고 구입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꼭 필요한 방염성능을 갖추지 못한 제품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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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증에도 구멍 있다면 방염성능검사 이후 재가공
만약 합판에 부착된 방염필증에도 구멍이 있다면 이는 100% 성능검사 이후 타공된 제품이다. 타공된 제품으로 검사에 합격한 경우 타공부 위로 필증이 부착되기 때문에 훼손되지 않는다.
필증 번호로 KFI 홈페이지서 합격 여부 확인 가능
필증에 표기된 번호로 정상 제품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KFI 홈페이지(www.kfi.or.kr)에 접속해 합격표시조회란에 이를 입력하면 제조사부터 검사ㆍ합격 일시, 검사 당시의 형태까지 상세히 알 수 있다.
이재홍 기자 hong@fpn119.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