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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 119] 서해대교 화재로 숨진 이병곤(李秉坤) 소방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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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태 스토리텔러 | 기사입력 2022/12/20 [10:00]

[리멤버 119] 서해대교 화재로 숨진 이병곤(李秉坤) 소방령

김진태 스토리텔러 | 입력 : 2022/12/20 [10:00]

소방공무원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우리는 안전한 일상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를 기억하는 일. 그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첫걸음이지 않을까요?

 

<FPN/119플러스>가 순직소방공무원추모기념회와 함께 순직소방관의 이야기를 지면에 담으려고 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서해대교 화재 현장에서 업무 중 불의의 사고로 순직한 이병곤 소방관의 이야기를 재구성했습니다. 그의 일대기 속으로 떠나보시죠.


 

 

소속: 평택소방서 계급: 소방령

성명: 이병곤(李秉坤)

1961년 4월 충남 청양군 출생

~2015년 12월 3일 서해대교 화재 현장에서 순직


서해안고속도로상에 건설된 서해대교는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내기리와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복운리를 연결하는 대형 케이블 교량이다. 총길이 7310m, 너비 31m 규모로 1993년 11월 착공해 2000년 11월 개통됐다. 주탑의 높이만 무려 182m다. 

 

2015년 12월 3일 오후 6시 12분 하루평균 4만2천여 대의 차량이 통행하는 서해대교 목포 방면 송악IC 인근 2번 주탑 중간부 100m 높이 케이블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 원인은 낙뢰로 추정된다.

 

이곳은 평소에도 강한 바람과 안개 등으로 인해 위험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당연히 화재진압 여건이 좋지 않은 곳이었고 사고 당일도 강풍으로 인해 고가사다리차나 소방헬기 동원이 불가능한 여건이었다.

 

특히 주탑 케이블은 교량의 상판을 지탱하는 중요한 시설물이다. 화재로 인해 교량의 안전까지 위협받고 있었고 연소가 확대돼 그 기능이 상실될 경우 자칫 서해대교가 무너질 수도 있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당시 화재 현장의 지휘자는 평택소방서 포승119안전센터장이던 이병곤(李秉坤) 소방경이었다. 높은 곳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먼저 더 높은 지점까지 소화 호수를 올려야 했다. 

 

바닷바람은 점점 거세게 화재 현장을 덮쳐왔다. 말소리조차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바람 소리 때문에 무전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병곤 센터장은 현장을 지휘해야 했다.

 

화재진압도 문제였지만 대원들의 안전을 챙겨야 하는 건 이병곤 센터장 책임이었다. 그는 순간 만능 소방관이 될 수밖에 없었다.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들은 이병곤 센터장의 지휘에 따라 각자의 위치에서 역할에 충실했다. 하지만 불길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오후 7시께 지름 280㎜, 길이 50m의 교량 케이블이 화재를 견디지 못하고 끊어져 내리면서 다리 위에서 작업을 독려하던 이병곤 센터장을 덮쳤다. 이 사고로 이병곤 센터장은 흉부 손상으로 인한 심정지로 순직했다. 소방관 두 명도 부상을 당했다. 

 

후발대로 현장에 도착한 구조대원들은 살신성인의 모습을 보여준 이병곤 센터장을 생각하며 비장한 각오로 불타는 주탑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때 동료와 함께 주탑을 올랐던 평택소방서 119구조대 소속 박상돈 소방위는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이날 오후 7시께 센터장님이 케이블에 맞고 쓰러졌다는 내용의 무전이 흘러나왔습니다.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현장에 달려가 보니 아무런 장비 없이 순수 인력만으로 불을 꺼야했던 상황이었습니다. 정말 끔찍했습니다”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또 다른 대원은 이런 말을 전했다.

 

“주탑 100m 높이에는 사람이 의지할 만한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강한 바람에 휘청거렸고 미끄러운 진눈깨비에 소방관들은 자신의 안전조차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관창을 통해 쏟아지는 소방용수는 공중으로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진눈깨비로 앞을 보기 어려운 최악의 여건 속에서도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들은 생사를 걸고 교각 위에 올랐다. 공중의 가로보를 타고 내리며 3시간이 넘는 사투를 벌였다. 그리고 저녁 9시 43분께 가까스로 화재를 진압할 수 있었다.

 

이들이 사투를 벌이는 동안 해양경찰은 해상에 500t급 경비정을 배치하고 2차 사고에 대비하고 있었다. 서울과 목포 양방향 차량을 전면 통제하면서 모두가 힘을 모아 조금씩 사고를 수습해 나간 결과 국가적 재난과 재앙을 막아냈다.

 

하지만 이 사고로 이병곤 센터장은 54세를 일기로 가족들과 동료들 곁을 떠났다. 

 

1961년 4월 2일 충남 청양군에서 이민호(부)씨와 정재남(모)씨의 3남 중 막내로 태어난 이병곤 센터장은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성장했다.

 

1990년 3월 일반공채로 소방공무원에 임용된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소방관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2013년 소방경으로 승진한 후 가평소방서 현장대응단을 거쳐 2015년 1월 평택소방서 포승 119안전센터로 발령받아 센터장으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는 배움에도 열성적이었다. 2000년엔 뒤늦게나마 국제대학교를 졸업했고 현장 활동에 도움이 될거란 믿음에 굴삭기와 지게차, 동력수상레저기구 조종면허, 화재 진화사 등의 자격도 취득했다. 각종 구조 이론에도 능숙함을 보였던 그는 후배들에게 늘 모범을 보이는 베테랑 선배였다.

 

이병곤 센터장의 영결식은 경기도 평택시 소사벌 레포츠타운 청소년체육관에서 경기도청장으로 거행됐다. 소방령으로 특진하고 녹조근정훈장이 추서됐다.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 소방공무원 묘역에 안장됐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순녀 여사와 두 아들이 있다.

 

영결식 당시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소방은 대한민국의 영웅이며 영웅을 영웅답게 대접하고 예우하겠다”고 밝히면서 100% 3교대 실시와 부상 소방관에 대한 의료비 전액 지원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소위 이병곤 플랜을 발표해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순직 1주년이 되는 날 서해대교 행담도 휴게소에선 이병곤 센터장의 흉상 제막식이 거행됐다. 2021년 순직 6주년 되는 날에는 ‘도로명주소법’에 따라 평택 국제터미널 입구(평택항마길 78)에서 만호사거리(평택항만길 1) 구간 750m가 ‘소방관 이병곤 길’로 지정되기도 했다.

 

한편 부인 김순녀 여사는 남편을 잃은 슬픔을 딛고 일어나 순직 소방공무원 유가족회 이사로 활동 중이다. 다른 유족을 돕고 지원하는 일에 누구보다 열심히 봉사하고 있다. 

 

글_ 김진태 스토리텔러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2년 12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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