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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 119]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산 박재석(朴在錫) 소방교

김진태 스토리텔러 | 기사입력 2023/02/20 [10:30]

[리멤버 119]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산 박재석(朴在錫) 소방교

김진태 스토리텔러 | 입력 : 2023/02/20 [10:30]

소방관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우리는 안전한 일상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를 기억하는 일. 그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첫걸음이지 않을까요?

 

<FPN/119플러스>가 순직소방공무원추모기념회와 함께 순직소방관의 이야기를 지면에 담으려고 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1996년 3월 13일 경기도 용인시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LPG 저장탱크 누출 현장에 출동했다가 순직한 박재석 소방관의 이야기를 재구성했습니다. 그의 일대기 속으로 떠나보시죠.


소속: 경기 용인소방서 계급: 소방교 성명: 박재석(朴在錫)

1961년 6월 20일 경기도 평택시 출생~1996년 3월 13일 경기도 용인시 구조 현장에서 순직

 

2022년 소방청에서 발행한 순직 소방공무원 추모백서 ‘기억을 향한 기록’ 163쪽에는 경기소방학교 추모공원의 ‘박재석 소방관 추모상’에 대한 내용이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우리는 1996년 3월 13일 경기도 용인시 드림랜드 아파트 LPG 저장탱크 해체 작업을 하던 중 유독가스에 질식된 가스공사 직원에게 자신의 공기호흡기를 건네주고 순직한 박재석 소방관을 기억한다. 

 

화학을 전공한 만큼 가스의 위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위험에 처한 구조대상자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희생해 생명을 살린 박재석 소방관. 그를 기리기 위해 용인에 위치한 경기소방학교 추모공원 안에 그의 동상이 세워졌다. 

 

2004년과 2005년 경기도의회의 추진으로 건립됐으며 그곳을 지나는 많은 사람에게 희생과 봉사의 삶에 대한 위대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박재석(朴在錫) 소방관은 1961년 6월 20일 미군 부대에서 소방대원으로 근무하던 부친 박기준 씨와 모친 이영숙 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그는 아버지가 하는 일을 늘 자랑스럽게 여기며 성장했다.

 

평택기계공업고등학교(현 평택마이스터고) 화학과를 졸업하고 1980년 군에 입대한 그는 해병대 청룡부대에서 복무했다. 전역 후 남들처럼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결국 아버지의 영향으로 소방공무원의 길을 결심했다.

 

시험에 합격한 후 1992년 소방관으로 임관한 그의 첫 근무지는 평택소방서였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소방관이 됐지만 사명감과 열정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상사의 지시대로 관내 화재 취약 대상을 면밀히 파악하고 유사시 초기 진압 태세를 갖추는 데 최선을 다했다. 이런 과정에서 직언도 서슴지 않아 때론 오해를 산 적도 많았지만 그는 늘 소신 있게 자기 일을 묵묵히 해냈다.

 

그가 평택소방서 팽성파출소에 근무할 때였다. 1993년 7월 평택시 비전동 택지개발지구 내 아파트 신축 현장에서 임금 체불에 불만을 품은 한 노동자가 타워크레인에 올라 농성을 벌이는 일이 발생했다.

 

현장으로 출동한 박 소방관은 안전고리에 몸을 의지하며 타워크레인에 올라 노동자를 설득했다. 노동자가 완강히 저항하는 바람에 실족해 추락할 뻔하기도 했다.

 

아슬아슬한 상황은 3시간여 동안 이어졌다. 끝내 박 소방관은 노동자를 설득하는 데 성공하며 지상으로 내려왔다. 밑에서 숨을 죽이며 이 장면을 바라보던 동료 소방관과 시민으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순직사고 당일인 1996년 3월 13일 박재석 소방관은 경기도 용인소방서 기흥파출소에서 근무 중이었다. 이날 오후 3시 25분께 신고 한 통이 접수됐다. 장소는 파출소에서 불과 500m 떨어진 드림랜드 아파트였다.

 

신고 내용은 지하 LPG 가스탱크를 해체하던 가스공사 직원이 가스에 질식해 쓰러졌다는 거였다. 박 소방관은 동료들과 함께 즉시 현장으로 출동했다.

 

지하 저장탱크 바닥에는 서울 동부가스 소속 직원이 쓰러져 있었다. 탱크의 입구 지름은 42㎝였고 깊이는 3m 정도였다. 아파트 단지 내 도시가스가 공급되면서 쓸모없게 된 LPG 저장탱크 해체 작업을 하러 내부로 들어갔다가 잔여 가스에 질식했던 거다.

 

박 소방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탱크 안으로 사다리를 내린 뒤 공기호흡기를 쓰고 진입했다. 이미 의식을 잃은 가스공사 직원은 미동조차 없었다. 

 

그는 자신이 쓰고 있던 공기호흡기 면체를 벗어 가스공사 직원에게 씌웠다. 그런 후 로프로 몸을 묶어 입구 쪽으로 밀었다. 밖에선 동료 소방관들이 가스공사 직원을 끌어 올렸다. 

 

가스공사 직원을 구조하고 뒤따라 올라와야 하는 박 소방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놀란 동료들은 신속히 탱크 내부로 진입했다. 동료들의 불안했던 생각은 현실이 됐다. 공기호흡기도 없는 상태에서 박 소방관은 이미 질식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를 끌어 올린 동료들은 가스공사 직원과 함께 인근 영동의원으로 신속히 이송했다. 하지만 오후 4시 10분께 두 사람 모두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3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박재석 소방관이 그토록 존경하던 아버지 박기준 씨의 생일이었다.

 

박 소방관의 영결식은 3월 15일 용인소방서에서 도지사를 비롯해 가족과 동료 소방관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다. 박재석 소방관은 소방교로 한 계급 진급이 추서됐다. 옥조근정훈장도 그의 영전에 올려졌다. 영결식 이후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박재석 소방관은 1994년 송명옥 씨와 결혼했다. 순직 당시 슬하에는 두 살배기 딸이 있었다. 부인 송명옥 씨는 현재 순직소방관의 유가족을 살피는 유가족회 공동대표로 활동 중이다. 이젠 어엿한 성인이 된 딸은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순직소방공무원추모기념회는 유가족회와 함께 ‘소방 영웅 박재석 장학회’를 운영 중이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찾아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고인의 살신성인(殺身成仁) 정신을 기리고 있다.

 

박재석 소방관의 순직은 소방에도 큰 변화를 주는 계기가 됐다. 당시 공기호흡기는 지금과 달리 모두에게 지급되는 장비가 아니었다. 1만6천명의 소방관 중 9천여 명의 소방관에게만 지급이 이뤄졌다. 이 사고를 기점으로 정부는 소방관 전원에게 공기호흡기 지급을 확정했다.

 

글_ 김진태 스토리텔러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3년 2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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