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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 119] 영등포 지하다방 화재 현장서 순직한 박영서(朴泳緖) 소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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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태 스토리텔러 | 기사입력 2023/01/20 [10:00]

[리멤버 119] 영등포 지하다방 화재 현장서 순직한 박영서(朴泳緖) 소방관

김진태 스토리텔러 | 입력 : 2023/01/20 [10:00]

소방관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우리는 안전한 일상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를 기억하는 일. 그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첫걸음이지 않을까요?

 

<119플러스>가 순직소방공무원추모기념회와 함께 순직소방관의 이야기를 지면에 담으려고 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1970년 4월 서울 영등포구의 한 지하다방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에 출동해 구조대상자 6명을 구하고 순직한 박영서 소방관의 이야기를 재구성했습니다. 그의 일대기 속으로 떠나보시죠.


 

소속: 서울 영등포소방서  계급: 소방위  성명: 박영서(朴泳緖)

1935년 5월 서울 출생 ~ 1970년 4월 순직

 

1970년 4월 10일 오전 5시 20분 동틀 무렵 영등포소방서에 화재 출동 비상벨이 울렸다. 화재 발생 장소는 영등포구 영등포동 4가에 소재한 한 지하다방. 신고 접수 후 박영서 소방사(현 소방장)는 동료들과 함께 긴급히 출동했다. 

 

현장에 도착한 그는 소방호스를 단단히 움켜잡고 다방이 위치한 건물 지하로 내려갔다. 자욱한 연기로 입구부턴 앞이 보이지 않았고 안쪽에선 ‘살려달라’는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방독면을 꺼내 쓰고 다방 안으로 진입한 박영서 소방사는 방수와 함께 연기, 장애물을 치우며 안쪽으로 크게 소리쳤다. “길을 텄으니 정신 차리고 빨리 뛰어나오세요” 

 

이때 연기 속에서 질식 직전의 다방종업원 8명이 비틀거리며 걸어 나왔다. 이들을 부축하고 밖으로 나왔을 때 종업원 중 한 명이 박 소방사에게 “다방 안에 미처 나오지 못한 6명이 더 있다”는 말을 다급하게 전했다.

 

당시 현장을 취재한 조선일보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지하실에선 비명과 신음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박 소방사는 소방호스를 집어던진 채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동료들이 위험을 알렸지만 들릴 리가 없었다. 

 

박 소방사는 카운터를 붙잡고 쓰러져있는 주인 이봉구(32) 씨를 먼저 등에 업고 밖으로 기어 나왔다. 그리고 또다시 현장으로 진입한 그는 주방에서 허우적거리는 종업원 이정대(17) 군을 구했다. 이후에도 그는 여종업원 이필자(19), 이선희(20), 조미경(23), 이정희(28) 씨를 차례로 구해냈다. 죽음 앞에 놓였던 6명을 그렇게 살려냈다. 

 

박 소방사는 동료들에게 “아직 구조대상자가 더 있는 것 같다”고 말한 뒤 지하로 다시 뛰어들었고 두 명의 동료가 그의 뒤를 따라 지하로 진입했다. 동료 소방관들은 주방 주변을 살핀 후 현장에서 철수했다. 더이상 구조대상자가 없다는 걸 확인한 후였다. 그런데 박 소방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다급히 다시 지하실로 내려가 창고 속을 더듬었고 질식상태에서 허우적거리는 박 소방사를 발견했다. 동료들에게 구조된 박 소방사는 인근 삼일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숨을 거뒀다. 그는 숨을 거두면서까지 동료들에게 “모두 구했소, 모두 구했소”라는 말을 남겼다(출처 1970년 4월 11일 자 조선일보). 

 

이날 화재는 연탄난로가 과열되면서 빨랫줄에 널어놓은 수건 등으로 불이 옮겨붙으며 발생했다. 60여 평의 다방 내부를 모두 태운 뒤 1시간 30분 만에 진화됐다.

 

서른여섯의 나이로 순직한 고 박영서 소방관. 1954년 3월 한양공고를 졸업한 그는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만 했다. 곧바로 군에 입대한 뒤 1958년 9월 하사로 전역했고 1959년 12월 소방원으로 소방에 입문했다. 소방사로 승진한 건 1968년 6월이다. 

 

그는 부인 최수영 씨와 결혼한 후 슬하에 세 명의 자녀를 뒀다. 또 부모님을 모시며 동생까지 건사하는 대가족의 가장 역할을 했다. 10만원짜리 전셋집에 살았지만 부모님을 잘 모시는 효자로 소문이 자자했고 소방서에서도 구차스러운 내색 없이 늘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 동료들 사이에서도 신망이 두터웠던 소방관이었다.

 

11년간 소방관으로 시민을 섬기며 활동한 박영서 소방관은 700여 회에 달하는 출동에서 숱한 인명을 구하고 재산을 지킨 베테랑 소방관이다. 몸 여기저기에 훈장처럼 남아있는 화상이 그를 괴롭히기도 했지만 항상 위험을 무릅쓰고 누구보다 먼저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위기에 처한 생명을 구해냈다. 모범적이고 따뜻한 인품을 지녔던 그였기에 동료들 역시 그의 죽음을 유난히 슬퍼했다고 한다.

 

영결식은 1970년 4월 12일 오전 11시 영등포소방서 앞에서 소방서장으로 엄수됐다. 옥조근정훈장과 소방경위(소방위)로 특진이 추서됐고 선영에 안장됐다. 

 

당시 언론은 너나 할 거 없이 박영서 소방위를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소방관’이라 보도했다. 대통령도 내무부 장관을 통해 유족에게 금일봉을 전달했고 각계각층에서도 성금을 보내왔다.

 

특히 미션 스쿨인 서울 계성여자중ㆍ고등학교 교사ㆍ학생 2640명이 유가족 돕기 운동을 벌여 모금한 1만1957원의 성금을 전하기도 했다. 당시 학생회장이던 고선육 양은 “박 경위(소방위)님은 남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누구보다 잘 실천하신 분”이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박영서 소방관의 그림은 순직소방공무원 추모기념회가 옛 신문에 보도된 기사 내용을 참고해 복원한 것으로 실제 박영서 소방관의 모습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또 1988년 순직하신 고석창, 이영현 소방관에 대해 잘 알고 계시거나 자료가 있으신 분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글_ 김진태 스토리텔러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3년 1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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