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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 119] 불꽃처럼 정열로 살았던 사람, 김영명 소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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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태 스토리텔러 | 기사입력 2023/04/20 [10:00]

[리멤버 119] 불꽃처럼 정열로 살았던 사람, 김영명 소방관

김진태 스토리텔러 | 입력 : 2023/04/20 [10:00]

소방관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우리는 안전한 일상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를 기억하는 일. 그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첫걸음이지 않을까요?

 

<119플러스>가 순직소방공무원추모기념회와 함께 순직소방관의 이야기를 지면에 담으려고 합니다. 이번 호에선 지난 2001년 3월 7일 부산 연제구 연산동 소재 한 빌딩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에 출동했다가 순직한 김영명 소방관의 이야기를 재구성했습니다. 그의 일대기 속으로 떠나보시죠.


 

소속: 부산 동래소방서 계급: 소방위 성명: 김영명(金營明)

1960년 9월 4일 경남 거제 출생 ~ 2001년 3월 7일 부산 연제구 화재 현장에서 순직

 

‘불꽃처럼 정열로 살았던 사람’. 한 방송국 앵커는 2001년 3월 7일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고 김영명(41세) 소방관을 두고 그의 생전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2001년 3월 7일 정오 무렵 부산시 연제구 연산동 소재 한 빌딩 10층 사무실에서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동래소방서는 소방차 26대와 소방관 100명을 현장으로 출동시켰다. 5분 만에 도착한 소방관들은 곧바로 진화작업을 벌였다. 김영명 소방장도 동료들과 함께했다. 

 

큰불을 잡고 연이어 도착한 후착대가 잔불 진화에 나서면서 현장은 일사천리로 정리되는 듯했다. 모두 철수를 준비하던 그때 꼼꼼하기로 소문난 김 소방장은 혹시라도 하는 마음에 여느 때처럼 현장에 재진입했다. 순간 현장에 있던 시너 통이 폭발했다. ‘쾅’하는 굉음과 함께 건물 내부 천장이 모두 무너져 내렸다. 김영명 소방장을 비롯해 3명의 소방관이 이 사고로 콘크리트 더미에 깔렸다. 

 

그는 동료들에게 “마지막 불씨가 중요하니까 다시 한번 확인해보고 가자”는 말을 끝으로 잿더미가 된 현장에 다시 들어가 갇혀버렸다. 화재 현장 때마다 버릇처럼 하던 ‘다시 한번’이라는 말이 그를 삼켜버린 것이다. 동료 소방관들이 불길 속에서 콘크리트 더미를 헤치고 방화범과 소방관을 구출해 병원으로 옮겼으나 김 소방장은 끝내 사망했다. 사인은 화염에 의한 질식사.

 

김 소방장은 경남 거제시 장목면 장목리에서 농사를 짓던 부친 김태인 씨와 모친 서종악 여사의 3남 4녀 중 셋째 아들로 출생했다. 거제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살림이 변변치 않아 고생하시는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드리겠다며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을 하기도 했다.

 

군에 입대해 훈련소 조교로 활동하다 만기 전역한 그는 교정직 공무원이 돼 부산교도소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하지만 보다 활동적인 일을 하고 싶었던 그는 3년 만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소방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한다.

 

시험에 합격한 후 1988년 2월 20일 소방사로 임관한 그는 이듬해 소방관이던 삼촌의 주선으로 지금의 아내 박미영 씨를 만났다. 

 

박미영 씨의 부친과 김 소방관의 삼촌은 친구 사이였기 때문에 만난 지 1년 만에 양가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을 올렸다. 이들은 두 자녀를 기르며 노모(80)를 모시는 효심 깊은 부부로 소문이 자자했다.

 

2000년 10월 동래소방서 수안소방파출소에 배치된 이후 그는 화재 현장에서 가장 선두에 나서는 방수장 보직을 맡았다. 실력과 경험이 뛰어났기에 항상 앞장서서 진화에 나섰다. 후배들을 동생처럼 보살펴 수안소방파출소에선 ‘큰형님’으로 통했다. 부산시 소방왕경진대회에 참여해 4위를 차지한 진압업무의 베테랑 소방관으로 불꽃처럼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

 

동료들에 따르면 그는 건장한 체격에 조금 무뚝뚝해 보이는 외모를 가졌다. 하지만 화재 현장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동료에겐 “소방 일이 힘든 만큼 아무나 할 수 없기에 사명감이 필요하다”며 “한번 힘내봐. 같이 해보자”라고 늘 용기를 북돋아 주는 자상한 사람이었다. 

 

아내 박 씨와 자녀들에게도 더없이 좋은 가장이었다. 격일제 근무를 하는 출근길에 종종 박 씨를 품에 안고 “내일 봐”라고 다정한 인사를 건네던 모습을 아내 박 씨는 지금도 잊질 못한다. 격무로 인해 자주 놀아주지 못하는 자녀들을 위해선 잠잘 시간을 아껴가며 함께 떡볶이를 만들고 공놀이를 해주던 아버지였다.

 

정부와 부산시는 순직한 김영명 소방장에게 소방위 특진과 옥조근정훈장을 추서했다. 영결식은 2001년 3월 9일 오전 9시 동래구 사직동 사직소방파출소 앞에서 동료와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부산시 소방본부장으로 치러졌다. 그의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 소방공무원 묘역에 안장됐다.

 

현재 한국도로공사에 근무하는 아내 박미영(59) 여사는 순직소방공무원유가족회장으로 활동하며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는 유가족을 돌보는 일을 병행하고 있다.

 

박 씨는 “사고 전날 남편이 다른 날처럼 내일 보자는 말이라도 남기고 나갔더라면 정말 다시 만날 수 있었을까? 왜 큰불 진압이 끝난 건물 안에 다시 들어가 그리도 꼼꼼히 살폈던 것일까?”라며 “매일같이 그날을 회상한다”고 전했다.

 

글_ 김진태 스토리텔러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3년 4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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