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같이 쓰고 읽으면서도 그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채 습관적으로 쓰는 단어들이 꽤 많다. 필자에게는 어쩌면 ‘청렴’이란 두 글자가 그런 단어 중 하나일 수도 있다.
청렴(淸廉)의 사전적 의미는 품위가 높고 마음과 행동이 맑고 깨끗하며 욕심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예전과 다르게 현재 한정된 의미의 청렴이란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정약용은 자식들에게도 유산으로 ‘근’과 ‘검’의 두 글자를 남겨주겠다고 편지에 썼을 만큼 근검과 청렴, 검소를 중요시했다. 목민심서에는 ‘청렴은 목민관의 본무요 모든 선의 근원이요 덕의 바탕이니 청렴하지 않고서는 능히 목민관이 될 수 없다’는 내용도 있다.
퇴계 이황은 어떨까? 퇴계는 영의정까지 지냈지만 작은 초가집에서 생활할 정도로 청렴을 실천했다. 누구나 2벌 정도 갖고 있다는 의관조차 단 1벌만 지니고 있어 생긴 일화가 유명하다.
일화는 다음과 같다. 한날은 임금님이 퇴계 이황을 불렀는데 아직 의관이 다 마르지 않았다. 그래서 퇴계 이황은 그냥 젖은 옷을 입고 입관했다.
그런데 대신들은 이황이 양모로 만든 옷을 입은 것으로 착각하고 모함했다. 왕은 화가 나서 물어보자 이황에게 물어보자 ‘그냥 젖은 의관입니다’라는 답변을 들었다. 이에 왕은 크게 웃고 이황의 청렴함과 검소함이 대단해 의관 1벌을 내렸다.
그러나 오늘날의 청렴은 검소의 의미만을 한정하지 않고 확대ㆍ재생산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친절이다. ‘거절은 불친절’이라는 이상한 프레임이 작동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해 올바른 결정을 주저하게 만든다.
단속이나 검사를 나갔을 때 터무니없을 정도의 기준 미준수 상황에서의 청탁은 거절하기 쉽다. 누가 봐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속대상이 기준을 잘 준수해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에 제공되는 금품, 향응은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 수 있다. 오히려 상대방의 정성과 진심을 야박하게 거절하는 불친절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닌지 착각하게 된다.
‘법규를 위반한 것도 아니고 민원인의 감사 표시를 무안하게 거절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라던지 ‘안 받으면 오히려 불친절하고 건방지다는 얘기를 듣게 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그릇된 판단을 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그런데 오히려 이것이 큰 불친절은 아닐까? 그 청탁인을 제외한 모든 주민에게 불친절한 처사다. 사람들이 화를 내는 이유는 ‘내가 배려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라도 청탁은 해서도 받아서도 안 된다.
청탁을 한 사람에게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불친절한 게 아니라 죄가 자라지 않도록 미리 조치한 훌륭한 처사다.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면서 배려받기 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친절은 배려해야 할 사람에게 진심을 담아 서비스하는 것이지 내 기분에 따라 내 이해관계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는 게 아니다. 넓은 의미로 이렇게 편애하는 태도 역시 청렴의 기준에 어긋난다고 할 수 있다. 특정한 사람에게만 친절하다는 것은 공무를 불편ㆍ부당하게 처리한다는 뜻이다.
결국 청렴과 친절은 서로 다른 맥락에서 해석되는 게 아니라 동일한 가치 기준이다. 친절은 감성적인 단어이지만 실체가 감성적인 것은 아니며 태도의 문제라고 본다.
단호하지만 공손하게 거절하는 태도가 바로 청렴의 시작이고 오늘날 필자가 바라보는 청렴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보은소방서 소방행정과 소방위 어경석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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