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광고

[집중취재] 남양주 부영애시앙 화재, 피해 컸던 이유는?

시커먼 연기로 가득했던 대형 화재… “7시간 만에 초기 진화”

광고
최영 기자 | 기사입력 2021/04/26 [11:47]

[집중취재] 남양주 부영애시앙 화재, 피해 컸던 이유는?

시커먼 연기로 가득했던 대형 화재… “7시간 만에 초기 진화”

최영 기자 | 입력 : 2021/04/26 [11:47]

도시급 주상복합 부영애시앙 “소방시설도, 관리도 엉망이었다”
1층 중국음식점 주방서 처음 시작한 불길 천장 타고 ‘활활’
잇따르는 음식점 주방 덕트 화재… “현실적인 대책 마련해야”
‘있는 둥 마는 둥’ 미흡한 건축물 방화구획 “피해 키웠다”
“소방시설 두뇌가 멈췄다” 수신기 기록 2분 19초 후 ‘뚝’
스프링클러설비 정상 작동했을까?… “펌프 가동 기록 없어”
소방청, 부영애시앙 주상복합건물 화재 계기로 대책 추진

 

▲ 경기 남양주 다산동 부영애시앙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에서 검은 연기기 피어오르고 있다.     ©독자제공

 

[FPN 최영 기자] = 지난 4월 10일 남양주에 위치한 부영애시앙 주상복합 화재. 투입된 소방공무원만 500명이 넘는 대형 화재다. 다행히 큰 인명피해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1천여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막대한 재산피해를 낳았다.


사고 직후 소방이 추산한 피해액은 약 94억원. 그러나 상가와 아파트, 지하 대형마트의 영업 불가 등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따진다면 그 피해액은 못해도 수백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 화재로 부영애시앙 1, 2층 상가 185개 중 35개가 전소됐으며 25개는 반소됐다. 필로티 형태로 이뤄진 주차장 내 차량 40여 대와 천장도 불에 탔다. 남양주시에 따르면 이번 화재로 366세대 11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FPN/소방방재신문>이 남양주 일대를 검은 연기로 뒤덮으며 주상복합건물의 화재 위험성을 그대로 보여준 ‘부영애시앙 화재 사고’를 집중 취재했다.

 

불 난 부영애시앙 주상복합 건물은?

 

▲ 부영애시앙 건물과 2층 연소 확대 경로. 화재 사고 당시 불길은 부영애시앙 건물 중앙 필로티 형태로 이뤄진 중정과 뒤편 공조실 및 제연휀룸을 통해 위층으로 확대됐다는 게 소방의 분석이다.  © 국회 서영교 행정안전위원장실


지난 10일 불이 난 부영애시앙 건물은 상가동과 아파트가 융합돼 지하 4층, 지상 18층 규모로 지어진 주상복합건물이다. 겉으로 볼 때 한눈에 차지 않을 정도의 큰 건축물로 대형마트와 각종 상가, 아파트가 한데 어우러진 작은 도시의 형상을 띤다.


건물 내 지하 4층은 기계실, 지하 2~3층은 주차장, 지하 1층에는 주차장과 이마트가 들어서 있다. 지상 1층과 2층에는 각종 소규모 음식점, 판매시설 등 상가 시설과 학원, 스포츠센터가 운영돼 왔다.


지상 1층은 건물 중앙에 있는 차량 진입로를 중심으로 좌측이 원앙관(상가 57개소), 우측이 사랑관(상가 93개소) 등 총 150개소의 상가가 밀집해 있다. 1층의 중앙 통로와 뒤편은 필로티 형태의 주차장이 있는 구조다.


상가 위로는 4개 동의 아파트가 각각 3층부터 18층까지, 364세대가 입주해 약 1200여 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지하부터 상가 층까지는 연면적 7만4494㎡, 아파트는 8만9540㎡ 규모로 2005년 7월 25일 건축허가를 받아 약 3년 뒤인 2008년 5월 21일 준공됐다.

 

긴박했던 화재 현장… 7시간 만에 잡힌 불


부영애시앙에 불이 났다는 신고가 들어온 건 지난 10일 오후 4시 29분. 인근 행인으로부터 “주상복합건물 1층 쪽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은 4시 39분 교문119안전센터와 남양주소방서 대원들이 선착대로 현장에 도착했다.


선착대가 도착했을 땐 이미 다량의 연기가 이곳저곳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인명구조와 화재진압을 중심으로 대응에 나선 소방은 도착 2분 뒤인 6시 41분 대응 1단계를 발령, 7분 만인 4시 48분 대응 2단계로 격상했다.

 

▲ 오후 4시 30분 35초(CCTV 시각) 출차하는 차량의 블랙박스에 찍힌 영상에는 천장으로부터 확산되는 불길이 확인된다.  © 소방방재신문

불은 건물 내 천장을 타고 화재에 취약한 필로티 구조의 지상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차량으로까지 확산됐다. 이후 2층까지 번진 불길 탓에 소방은 화재진압 작전에 애를 먹었다.


소방은 대형마트가 들어선 지하 1층과 상층부인 아파트로의 화재 확산 방지를 위해 인력을 집중 투입했다. 이날 투입된 인력은 소방 595, 관계기관 363명 등 모두 958명에 달했다. 경기와 서울, 중앙119구조본부 등 소방의 광역 대응으로 동원한 장비는 169대에 이른다.


결국 7시간 동안 화마와의 전쟁 끝에 오후 11시 31분이 돼서야 초진을 완료할 수 있었다. 다음날 0시 18분 대응단계를 1단계로 낮춘 소방은 오전 2시 37분께 완진과 함께 대응단계를 해제했다.

 

1, 2층 상가 ‘활활’ 위험천만했던 화재 현장… 문제는?

 

음식점 주방서 발생한 불… 덕트 타고 천장으로


소방은 사고 당일 화재가 1층의 한 중국음식점 조리대에서 처음 시작돼 상부 환기구를 타고 천장 속 덕트로 옮아붙으며 급속히 확대된 것으로 보고 있다.

 

▲ 최초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추정되는 1층 중국음식점  © 소방방재신문


소방청이 국회 서영교 행정안전위원장실에 제출한 ‘남양주시 주상복합건물 화재 대처상황 및 주요 대책’ 자료에 따르면 소방은 화재 당시 1층 중국음식점 식당 주방에서 프라이팬의 식용유가 발화점 이상으로 가열되면서 불이 시작됐고 상부 후드를 통해 덕트에 착화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렇게 시작된 불은 덕트가 연결된 천장 속으로 번지면서 필로티 형태의 1층 주차장으로 옮아붙었고 차량 40대와 건물 내 35개 점포를 태웠다. 25개 점포도 절반 이상이 탔다. 중국음식점 주방에서 시작된 불이 상가 층 대부분을 휘감은 최초의 범인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음식점 주방에서 시작된 불씨가 덕트를 타고 천장 속으로 전이되면서 대형 피해를 불러온 사고는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고는 지난 2018년 2월 3일 오전 7시 56분께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화재다. 당시 1100여 명에 달하는 환자가 입원해 있던 세브란스병원은 지하 3층, 지상 21층 높이의 연면적만 17만1852㎡에 달하는 대형 건물이다.

 

▲ 2018년 2월 3일 불이 난 세브란스병원의 3층 평면도와 사진. 피자 화덕 덕트에서 시작된 불은 60미터를 날아가 복도통로 천장을 모두 태우고 소방관들이 출동해서야 진압됐다.

 

당시 본관 3층 푸드코트 내 피자집에서 영업을 준비하다 화덕에서 시작된 불은 천장 속 배기와 공조 덕트로 번져 나갔다. 불길은 약 60m나 떨어진 복도 천장까지 옮겨갔다. 소방의 발 빠른 대응과 병원의 신속한 조치로 큰 피해가 발생하진 않았지만 자칫 대참사를 불러올 뻔한 아찔한 화재였다.

 

▲ 신촌 세브란스 병원 내 푸드코트에서 발생한 화재는 덕트를 타고 60m 거리를 날아가 복도의 천장을 모두 태웠다.


지난 2016년 발생한 서울 송파구 방이동 ‘계절밥상’ 화재도 같은 유형이다. 당시 화재는 1층 주방의 고기 굽는 화덕에서 시작돼 덕트를 타고 확산하면서 외식을 즐기던 130여 명의 손님과 종업원 30여 명이 긴급히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 지난달 20일 송파구 방이동에 위치한 대형 음식점에서 주방 화재가 발생해 출동한 소방관들이 화재진압을 하고 있다.     ©송파소방서 제공


음식점 주방 덕트로 확대되는 크고 작은 화재는 이외에도 비일비재하다. 올해 2월 5일 인천 남동구 간석동의 한 음식점에선 주방 튀김기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1월 24일에는 서울 광진구 자양동 상가건물 1층 음식점에서 식용유 과열로 불이 나 환기 덕트와 주방기기가 소실됐으며 1명이 경상을 입었다.


지난해 9월 9일 경기도 수원 권선동의 치킨집과 6월 13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음식점, 5월 11일 서울 자양동 음식점, 4월 26일 인천 남동구 간석동의 중국음식점, 4월 19일 서울 마곡동 복합건물 음식점, 4월 9일 경기 하남시 망월동 음식점, 2월 20일 인천 계양구 음식점, 2019년 12월 9일 경기 수원역사 AK플라자 음식점, 12월 22일 인천 남동구 복합건물 5층 음식점 화재 등 쉽게 셀 수 없을 정도다.

 

잇따르는 주방 덕트 화재 “현실적인 대책 나와야”


부영애시앙은 스프링클러설비가 설치된 대규모 건물이다. 하지만 이런 일반적인 소방시설은 주방화재에 아무 소용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영애시앙 건물의 스프링클러설비가 화재 당시 정상 작동했더라도 덕트 화재에는 효과가 없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우리나라는 이런 상업 시설에서 발생하는 주방 덕트 화재를 고려한 제도가 미비하기 때문이다.

 

▲ 화마가 휩쓸고 간 부영애시앙 상가층 모습은 천장 속 천장을 타고 번진 불의 위엄을 그대로 보여준다.


미국이나 일본, 중국만 해도 이런 상업용 조리대의 화재 피해를 줄이기 위해 상업용 조리시설에 설치되는 전용 소화장치를 갖추는 곳이 많다. 우리나라도 지난 2015년 이 같은 전용 소화장치에 대한 국가 성능인증 기준(성능 규정) 정립과 함께 화재안전기준(설치 규정)을 마련했다. 그러나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설치 대상물을 정하지 않고 있다.


다만 2017년 조리대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식용유 화재를 고려해 전용 소화기인 K급(식용유 화재용) 소화기를 음식점과 다중이용업소, 호텔 등 주방에 1대 이상 의무 설치토록 법을 강화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전용 소화기만으로는 주방화재의 위험을 해소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이택구 한국소방시설관리사협회장(소방기술사)은 “상업용 주방은 후드와 덕트를 갖는 형상으로 단순한 조리기구 문제가 아니라 찬장 속 덕트 화재의 위험이 더 크다”며 “외국은 이런 덕트 화재 방호 소화장치를 기본으로 갖추고 K급 소화기를 보조기구의 개념으로 쓴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배경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우리나라 소방은 K급 소화기를 주방화재의 초기 진압용으로 오해하고 있다”며 “이제부터라도 상업 시설 주방화재를 보는 시각을 바꾸고 법규를 손질해 시설 설치와 관리를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식용유 등을 사용하는 주방을 스프링클러 설비로 방호하는 건 세계적 추세와도 맞지 않는다”며 “공동주택에 스프링클러 설비와 별개로 주방화재를 고려해 자동소화장치를 설치하는 것처럼 상업 시설 주방도 위험성을 현실적으로 고려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집이나 치킨집처럼 유증기가 많이 발생하는 음식점은 환기구로 올라가 끈적하게 달라붙게 되면 자연발화가 되는 일도 있다”며 ”미국은 이런 위험을 고려해 덕트 청소를 의무적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소화장치뿐 아니라 주기적인 덕트 청소 규정 등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장 속으로 번진 불길에 ‘속수무책’

 

▲ 화마가 휩쓸고 간 필로터 형태의 1층 주차장     ©소방방재신문


소방은 천장 덕트를 타고 번진 불길이 필로티 형태의 주차장과 차량까지 태우며 확산한 배경으로 천장 내부의 있던 단열재와 반자의 영향이 컸다고 보고 있다.


소방 조사결과 남양주 부영애시앙의 상가 층 천장에는 공조 덕트와 각종 전선 등 선로가 있었고 주차장 천장 반자 속엔 가연성 유기단열재인 XPS(압출법 발포폴리스티렌)까지 붙어 있었다.

 

▲ 필로티 형태 1층 주차장의 천장에는 가연성 재질의 단열재가 붙어 있다.  © 소방방재신문


분홍색을 띠는 이 단열재는 천장이나 벽면 단열을 위해 사용되는 건축 자재로 경제성과 현장 가공성이 좋지만 화재 땐 불길이 급속히 확산돼 다량의 유해가스를 방출한다.


주방 후드에서 시작된 화재가 덕트 등을 통해 필로티 주차장과 지하주차장 입구까지 확대되면서 가연성 단열재와 반자가 불에 탔고 아래로 떨어진 화염은 주차 차량 40대를 모두 태웠다.


이 부영애시앙은 사랑관과 원앙관 사이 중앙 통로에 두 개의 중정이 자리 잡고 있다. 건물 내부 천장을 타고 필로티 형태의 중앙 통로까지 넘어온 불길은 이 중정 내 벽면을 타고 2층 창문을 통해 상층으로 확대됐다.


소방에 따르면 최초 불이 난 중국음식점과 1층 필로티 형태의 주차장까지 직선거리는 약 32m였다. 천장 속에서 번진 불은 결국 이 주차장을 넘어 반대편 상가인 원앙관까지 태운 뒤에야 꺼질 수 있었다.

 

여기저기 깨져버린 엉터리 방화구획


지난 2008년 준공된 부영애시앙 방화구획은 한 마디로 엉터리였다. 이는 천장 속에서 번진 불이 건물 벽체를 넘어 주차장과 반대편 상가 구역까지 넘어간 근본적인 이유로 꼽힌다.


소방 조사결과 부영애시앙은 건축 당시부터 배관과 환기 덕트, 전선트레이 등이 벽면을 관통하는 부분에 내화충전을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수평은 물론 수직 방화구획도 미흡해 화재가 다른 구역까지 빠르게 번진 요인이 됐다.


특히 필로티 주차장의 경우 차량이 지나다니는 중앙 통로와 주차장 부분이 외기에 면해 있음에도 상가 쪽 실내와의 방화구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 필로티 형태 1층 주차장 쪽에서 바라본 상가 벽면의 천장 부근이 제대로 구획돼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상가 1층 천장에는 2층으로 연결된 전기 트레이가 보이지만 내화충전 구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이며 화재 당시 내려오지 않은 방화셔터가 설치된 천장 사이도 방화구획이 깨진 채 틈새가 있는 게 확인된다. 실제 화재가 확산되지 않은 부영애시앙 건물 내 벽체 구획의 내화충전 상태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모습이다.  © 소방방재신문


필로티 형태 주차장에는 스프링클러설비 같은 자동소화설비도 없었다. 2019년 소방청은 잇따르는 필로티 주차장의 화재 위험을 줄이기 위해 스프링클러설비 등 자동식 소화설비를 갖추도록 법을 강화했지만 2005년 허가를 받은 부영애시앙은 적용 대상이 아니었다.


화재 시 작동했어야 하는 방화셔터도 엉망이었다. 사고 직후 현장을 조사한 소방에 따르면 1층 상가는 방화셔터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고 2층은 극히 일부만 작동된 것으로 확인됐다. 소방은 화재 초기 1층 상가 천장 속에서 화재가 순식간에 진행되면서 방화셔터와 연결된 화재감지기 전선이 먼저 불에 탄 것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


방화셔터는 내화구조로 된 벽을 설치하지 못할 때 적용하는 자동 제어용 폐쇄장치다. 평상시에는 천장 속에 올라가 있다가 화재 시 열과 연기를 감지하면 자동으로 내려와 불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차단해 준다.


부영애시앙은 이 같은 방화셔터가 무용지물이었고 내화충전구조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모든 건축물에는 파이프나 전선 등 전기, 배관 시설이 들어가고 수직 또는 수평으로 이 시설들을 연결하기 위한 관통부를 뚫는다. 이 구멍으로 배관이나 전기설비가 지나가는데 그사이 틈새를 제대로 메우지 않으면 화염이나 연기의 확산경로가 돼 버린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게 바로 내화충전구조다.


부영애시앙은 건물 내 벽체의 대다수 내화 충전구조가 미흡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화재 확대와 진압에 취약한 ‘천장 속 화재’ 특징을 보인 사고였지만 미흡한 방화구획은 더 큰 피해를 불러온 요인으로 지목된다.

 

2분 19초 만에 먹통 된 소방시설 ‘두뇌’… “원인 규명해야”


건축물의 화재 안전성을 좌우하는 방화구획 외에도 화재 시 경보와 소화설비 등을 작동해주는 소방시설 역시 문제가 많았다.


<FPN/소방방재신문>은 화재 당시 부영애시앙 건물에 설치된 화재 수신기의 작동 이력을 입수했다. 화재 수신기는 모든 소방시설과 연동돼 작동 상태가 기록되며 건물 내 시설을 제어하는 핵심 장치다.


이 데이터를 분석해 본 결과 수신기에는 4시 28분 47초에 첫 축적 신호가 들어온 뒤 30초 후인 4시 29분 17초에 실제 화재 신호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된다. 축적 신호는 화재 신호가 들어올 때 30초 이상의 연속적인 신호가 들어와야 실제 화재로 표시되는 기능이다.

 

▲ 부영애시앙의 화재 당일 수신기 로그 기록


그런데 이상하게도 4시 31분 6초 이후에는 아무런 이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소방시설의 두뇌 역할을 하는 수신기가 화재 발생 신호(축적)를 받은 이후 2분 19초 만에 완전히 먹통이 된 것이다. 이처럼 수신기의 로그 기록이 ‘뚝’ 끊긴 이유는 아직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이를 두고 분야 전문가들은 화재 수신기 예비전원의 문제와 단락 보호 기능 부재의 문제 가능성을 제기한다. 반드시 작동됐어야 하는 부영애시앙의 화재 수신기가 ‘블랙아웃’된 건 예비전원에 문제가 있었을 거라는 추측이다.


화재 수신기의 주전원은 법규에 따라 정전 등으로 갑작스러운 정지 상태가 될 때 예비전원으로 자동 전환돼 그 기능을 유지해야 한다. 60분간 유효하게 감시하고 10분 이상 경보를 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같은 가능성을 따져보기 위해 <FPN/소방방재신문>이 부영애시앙 수신기의 과거 작동 이력을 더 확인해 봤다. 그 결과 예비전원에 대한 이상 징후가 과거부터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불과 두 달 전인 2월 13일 이력에는 수신기의 내부전압이 낮다는 경고 기록이 있고 2월 8일에도 같은 증상이 있었다. 지난해 7월 29일과 23일에는 배터리 이상 신호가 기록돼 있다. 수신기의 전원 문제 징후가 예전부터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문제는 이 같은 예비전원의 이상 징후 이후 특별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다. 이 때문에 화재 당일 화재 수신기가 2분 16초 만에 멈춘 건 이미 예견된 일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화재 수신기 제조업계의 A 씨는 “화재 시 전원 공급에 이상이 생기더라도 보조전원(예비전원)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이때 전압이 떨어지면 수신기가 작동하지 않게 된다”며 “과거에 예비전원 문제 이력까지 있었다면 예비전원이 2분가량밖에 견디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 B 씨는 “우리나라 소방시설의 수신기 예비전원은 점검 과정에서 전압이 24V가 나오는지를 잠시 전환해 확인하는 수준에 그친다”며 “법에 따라 60분을 예비전원으로 유지되는지를 확인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이뤄지지 않고 건물 관리자 또한 관심이 없는 게 현실이다”고 귀띔했다.


일각에선 화재로 인한 전기선로의 순간적인 단락으로 인해 수신기에 이상이 생겼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화재 수신기 제조업체 관계자 C 씨는 “화재 수신기의 전원은 단락으로 인해 순간적으로 큰 충격을 입는 경우가 있다”며 “이로 인해 CPU가 다운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D 소방기술사는 “우리나라 자동화재탐지설비에 사용되는 통신선로 배선 자체는 화재 사고 시 보호될 수 있는 성능이 없기 때문에 언제든 단락 등으로 인해 다운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명확한 원인 분석을 통해 관련 대책을 강구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소방시설 정지’ 버튼 연타한 관리자


<FPN/소방방재신문> 취재 결과 화재 당시 부영애시앙 상가 관리자의 화재 대응도 부실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부영애시앙 1층 상인이 화재 당일 짧은 화재 경보를 듣고 관리소에 전화로 문의하자 관리소 측은 “오작동이에요”라고 답변한 사실이 알려졌다.


관리소 측이 상인에게 이렇게 말한 시간은 오후 4시 30분. 실제 <FPN/소방방재신문>이 입수한 화재 수신기 기록엔 4시 29분 17초에 화재 신호가 처음 들어왔다.


상가동 1층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이 신호 직후 경종과 주경종 등 경보설비가 울리기 시작하고 4시 29분 18초부터 제연설비 급기 댐퍼와 제연 휀 등이 작동한 이력이 기록돼 있다.

 

▲ 사고 당일 화재 수신기의 이력을 보면 화재 발생 신호가 들어온 직후부터 관리자는 수신기에서 강제로 정지 신호를 계속해서 입력한 것을 알 수 있다.  © 소방방재신문


그런데 이 수신기에는 화재 신호를 받고 동작한 비상벨 등 소방시설의 가동 명령을 연타해서 끄기 시작한 내역이 그대로 남았다.


4시 29분 21초께 주음향을 강제 정지시킨 뒤 24초에는 주경종을, 25초에는 지구음향, 27초부터는 상가동의 지구경종을 모두 정지시켰다. 화재 직후 수신기가 위치한 원앙관 1층 방재실에서 누군가가 고의로 소방시설의 연동을 막았다는 얘기다. 이 이후에도 수신기의 이력이 끊기는 마지막까지도 소방시설을 무차별적으로 정지시킨 이력이 확인된다.


화재 당시 관리자가 실제 화재 사실 여부조차 파악하지 않고 소방시설을 정지시킨 사실이 드러나면서 대처 부실에 대한 책임론을 피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스프링클러 펌프 작동 이력 없어”


부영애시앙 화재 당시 스프링클러의 작동 여부를 놓고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덕트와 천장을 통해 화재가 번진 상황에서 스프링클러설비의 효용성은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하지만 스프링클러설비의 정상 작동 여부는 곧 부영애시앙의 소방시설 관리 실태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FPN/소방방재신문> 취재 결과 부영애시앙의 스프링클러설비가 화재 당시 정상 작동됐을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스프링클러설비가 정상 작동했다면 수신기 작동 이력에 주펌프가 가동했다는 표시가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런데 화재 당시 수신기 기록이 존재하는 2분 19초 내에는 이 주펌프의 가동 내역을 찾아볼 수 없다.


스프링클러설비가 작동하기 위해선 스프링클러 헤드가 열에 의해 개방된 뒤 배관 내 차 있던 물이 흐르면 알람밸브가 열리고 주펌프가 가동해 지속해서 물을 보내줘야 한다. 그런데 펌프가 가동된 흔적이 없다는 건 펌프가 물을 공급해주지 않았다는 걸 방증한다.


현장 조사를 마친 소방청도 정상 작동 여부를 판정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소방청이 국회 서영교 행정안전위원장(더불어민주당, 서울 중랑구갑)실에 제출한 관련 보고서에는 “헤드 개방, 알람밸브 작동, 압력챔버 압력스위치의 접점이 붙은 것으로 보아 화재 초기 작동된 것으로 보이나, 천장 속 화재로 초기 정전이 됐고 수신기에는 펌프 기동 기록이 없으며 물탱크에 65%의 물이 남아 있어 작동 여부를 판정하는 게 불가하다”고 적혀 있다.

 

소방청, 부영애시앙 화재 관련 대책 마련키로


소방청은 이번 사고를 통해 드러난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한 대책을 고민 중이다.


국회 서영교 의원실에 제출한 관련 자료에 따르면 우선 주상복합건축물 등에 입점한 판매시설 중 튀김류 등 식용유를 많이 사용하는 주방에는 ‘상업용 주방자동소화장치 설치 의무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 소방청이 국회 서영교 행정안저위원장실에 제출한 남양주 화재 대처상황 및 주요 쟁점ㆍ대책 자료  © 소방방재신문


잇따르는 음식점 주방화재의 효과적인 피해 저감을 위해 미국이나 일본, 중국 등 외국 사례처럼 덕트 화재를 고려한 소화장치 설치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대다수 작동되지 않은 방화셔터 문제 해소방안으로 소방법령에 따른 감지기의 설치 기준에 따라 방화셔터 감지기를 설치토록 개선하기로 했다. 건축물 시공 시 천장 속 방화구획 등의 부실시공 근절을 위한 처벌에도 협조해 나갈 방침이다.


화재 수신기의 전원차단 등에 따른 ‘블랙아웃’ 현상이 발생하더라도 소방펌프와 비상발전기 등의 동작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한다. 천장 속 가연성 단열재를 사용하는 경우에 대한 스프링클러설비 기준의 개선 방안도 검토한다.


한편 소방청은 지난 19일 전국 시ㆍ도 소방본부와 소방시설 관리 단체 등에 관련 사고 방지를 위한 알림 사항을 전파했다.


하달 문건에서 소방청은 “자동화재탐지설비 화재감지기가 동작한 경우 해당 경계지구의 상황을 먼저 확인하고 후속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소방시설 자체점검 시 중요 소방시설(수신반, 소화설비 등)의 비상전원(예비전원) 점검을 철저히 해달라”고 당부했다.


최영 기자 young@fpn119.co.kr

[인터뷰]
[인터뷰] “다양한 경험ㆍ조직 이해 바탕으로 새로운 변화 물결 만들겠다”
1/5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