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강화된 기준이 적용되는 ‘캐비넷형 간이스프링클러설비’가 설치 대상의 현실은 뒤로한 채 운영될 조짐이어서 관련 제조업계와 시공 관계자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소방방재청은 지난해 말 간이스프링클러설비의 화재안전기준을 정비하면서 캐비넷형 간이스프링클러 설비에 대한 명확한 규정들을 정립했다.
간이스프링클러 설비는 소방관련법에 따라 노유자시설과 다중이용업소, 고시원 등에 의무적으로 설치해야만 하는 소방시설이다.
이러한 간이스프링클러 설비 중 하나로 구분되는 ‘캐비넷형 간이스프링클러설비’는 가압송수장치와 수조, 유수검지장치 등을 셋트화 한 일체형 시스템으로 관련 규제에 따른 시공성과 경제성이 뛰어나 적용 현장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소방방재청은 지난해 말 이 같은 간이스프링클러설비에 대한 설치기준(화재안전기준)을 정비하면서 수원 확보량을 최소 1,000리터 또는 2,000리터(2개의 간이헤드에서 최소 10분/근린생활시설의 경우에는 20분)로 강화시켰다.
이에 따라 소방방재청은 관련 기술기준을 강화하는 내용의 ‘캐비넷형 간이스프링클러설비의 성능인증 및 제품검사의 기술기준’을 지난달 1일 제정 고시한 상태이며 이 기준은 오는 2013년 1월 본격적인 시행을 앞두고 있다.
신규 기술기준이 시행되면 지금까지 300~600리터 가량의 수원을 확보하던 기존 캐비넷형 간이스프링클러 설비(KFI인정품)는 사라지게 되며 강화된 화재안전기준에 따른 1,000리터의 수원을 확보한 대형 제품들이 제조사들을 통해 개발 및 유통될 전망이다.
하지만 캐비넷형 간이스프링클러설비의 구조적 형상에 제한을 두고 있어 현장 여건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1,000리터의 수원 확보 규정은 간이스프링클러 설비의 신뢰성 향상을 위해 타당한 조치라는 시각이지만 수조의 크기가 커 현장 시공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별도의 수조 분리타입으로 개발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캐비넷형 간이스프링클러, 현장 현실성 떨어진다!
현행법에 따라 설치가 가능한 간이 스프링클러설비의 종류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되는데 가압송수장치와 별도의 수조를 이용해 설비로 구성하는 방식과 상수도와 직접 연결하는 ‘상수도직결형’, 그리고 캐비넷형 방식 등이다.
간이스프링클러는 대부분 다중이용업소나 노유자시설, 고시원 등 비교적 소규모 시설 또는 세입자 형태로 들어서 있는 곳에 설치해야 하는 소화설비이기에 현장에서는 별도의 수조와 가압송수장치 방식으로 적용할 경우 펌프실과 수조를 갖춰야 하는 등 복잡한 공사가 필요하고 경제성 또한 떨어져 시공자체를 꺼려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방식은 건축주나 동일 건축물 내 세입자간의 배관 노출에 따른 인테리어 훼손 문제까지 초래하면서 실제 시공이 힘든 경우가 많다.
상수도직결형 방식의 경우 지난해 강화된 화재안전기준으로 인해 수도배관 호칭지름을 32mm 이상으로 사용토록 규정화되면서 건축물 자체가 그 이하 배관을 쓰는 건물에는 적용조차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즉 이 두 가지 형태의 간이스프링클러 설비를 신축 건축물에 반영하기에는 어렵지 않지만 기존 건축물이나 시설물에 설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실정이다.
특히 고시원이나 다중이용업소 등은 명의변경이 이뤄지거나 내부구조, 실내장식물이 변경되는 경우 강화된 법에 따라 간이스프링클러설비를 설치해야 하기 때문에 간이스프링클러 설비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대다수 시설에는 캐비넷형 간이스프링클러 설비를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강화된 법 규정으로 수원량이 늘어남과 동시에 제품의 크기가 커지면서 캐비넷형 간이스프링클러 설비를 설치조차 하기 어려운 현장이 적지 않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다수의 간이스프링클러 설비를 시공해 온 A씨는 “고시원이나 다중이용업소 등 설치 대상 시설의 대부분이 복도 폭과 비상구가 좁고 미로식으로 되어 있는 구조가 많다”며 “1,000리터 이상의 수원을 확보한 시스템의 외형 사이즈는 들어갈 수조차 없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A씨는 또 “복도에서 제품을 옮기는 것은 그렇다 쳐도 별도 공간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계단을 통과하거나 위치를 확보해야 하는데 제품의 외형 자체를 절개해 옮길 수도 없는 것 아니냐”며 “현장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처사”라고 꼬집어 말했다.
별도 분리형 수조, 인정 안하는 이유가…캐비넷형 간이스프링클러 설비를 제조하는 관련업계에 따르면 제품의 수조를 별도 분리타입으로 구성한다해도 관련법에서 규정하는 방수 성능 등을 충족시키고 설비의 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며 이 같은 문제에 대해 수차례 개선 건의를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제품의 성능인증을 맡고 있는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은 별도 분리형 타입의 수조 형상을 가진 제품에 대해서는 성능인증을 내줄 수 없고 캐비넷 내부에서 분리하는 형태만 허용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소방방재청이 지난해 말 개정 고시한 국가화재안전기준에는 캐비넷형 간이스프링클러설비를 ‘수조 및 유수검지장치 등을 직접화하여 캐비넷 형태의 함 내부에 구성시킨 간이 형태의 스프링클러설비’로 정의 내리고 있다.
기술원은 이 규정에서 ‘직접화하여 캐비닛 형태의 함 내부에 구성’이라는 문구가 존재하기 때문에 별도 분리형 수조에 대한 성능인증은 진행할 수가 없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제조업계 일각에서는 제품성능검증의 복잡성이 요구되는 분리형 타입을 인증하는 것이 번거로워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이 화재안전기준을 핑계대고 있다며 쓴소리를 내뱉고 있다.
이와 관련해 소방방재청의 국가 화재안전기준 담당자는 “금년 하반기 화재안전기준 개정안이 곧 입법예고 될 예정”이라며 “이 때 관련 문제가 건의되면 내용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늘어나는 대상물, “특성 따른 선택권 넓혀줘야”간이스프링클러 설비의 설치대상은 지난 몇 년간 소방관련법의 강화로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지난 2010년에는 지하 및 무창층 다중이용업소에 간이스프링클러 설비를 설치토록 강화했고 올해 2월부터는 노유자시설에도 간이스프링클러설비를 설치토록 했다.
또 소방방재청은 올해 5월 발생한 부산 시크노래주점 사고를 계기로 지상층 밀폐구조의 영업장에 간이스프링클러 설치 의무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이러한 소방관련법 강화는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한 올바른 정책으로 평가되지만 관련 정책에 해당 규제 대상 특성을 고려한 현실 반영은 미흡하기만 하다는 지적을 낳고 있다.
또 실제 규제 대상 시설 관계자나 현장에서 신뢰성을 갖춘 여러 형태의 설비를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는 것은 정부의 의무이자 국민의 마땅한 권리다.
특히 간이스프링클러 설비의 설치 대상물이 대폭 확대되면서 규제 대상물의 구조적 다양성도 늘어가고 있어 현장에서 실용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여러 형태의 시스템 보급은 필수적 사안이라는 지적이다.
이처럼 캐비넷형 간이스프링클러설비의 현장 설치를 고려해 일체형과 분리형 타입 등 다양한 구조의 제품들이 보급될 수 있는 개선책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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